198. 거인의 손톱
“우리가 저번에 말했지 않나! 자네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드워프는 호탕하게 웃으며 가슴을 땅땅 쳤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은 항상 부족하고, 지상에는 야생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최악의 땅.
그곳에서 자신들을 꺼내 준 것만 해도 생명의 은인이다.
헌데, 김민준은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컨디션부터 찾으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대가부터 요구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물론 네가 그러라면 얼마든지 그러겠지만.’
제작의 귀재.
제작의 달인.
황금의 손 등등.
드워프에게 온갖 칭호가 다 붙었지만,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
어떤 놈들이든 간에 자신들을 보기만 하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렸으니까.
그런 쪽으로는 진작에 질린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김민준은 예외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 준 셈이었으니.
‘우리를 진심으로 대하다니. 이런 인간은 네놈이 처음이다.’
실제 김민준은 드워프를 지구로 데려오고 나서,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력을 되찾을 때까지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드워프가 좋아 죽는 술을 무한정 공급해 줬다.
맛있는 음식들은 물론이고.
이러니 호감을 살 수밖에.
“지금 해 주는 걸로도 충분한데. 뭐 하러 이런 걸 만들었냐?”
김민준은 못 이기는 척, 드워프가 내미는 선물을 받았다.
‘내가 드워프 덕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
사실 티스파니아에서 고생한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곳에서 야생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경험치 파티를 했지.
귀한 광석들을 가져온 것도 그렇고.
‘역시 이게 정답이었다.’
환하게 웃는 드워프를 보며, 피식 웃었다.
드워프에 대한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호감을 사는 것을 1순위로 삼았다.
그렇게 해 주면,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 주니까.
“어서 사용해 보게! 우리들의 역작이니까!”
드워프가 호들갑을 떨며 선물을 착용하라고 말해 왔다.
목걸이 형태의 장비.
당연히 단순한 귀금속일 리는 없다.
호기심이 일어 목에 가져가 걸어 보았다.
스르르륵.
“응?”
그러자 목걸이가 흐물거리더니 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액체가 된 목걸이는 자신의 목 주변으로 흡수되었다.
“뭐냐, 이거?”
“드워프제 각인이다.”
“새로 익힌 기술이지. 티스파니아에 갇혀 있으니 할 게 기술 연마밖에 없어서.”
“그리고 이 거인의 손톱이 바로 우리들의 역작이란 말이지!”
질문을 하기도 전에, 드워프들이 자랑스럽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각인을 새긴 장비는 착용하자마자 사용자의 몸으로 흡수되어 문양을 남기지.”
“원할 때마다 꺼내 쓸 수도 있다!”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거인의 손톱이란 이름은 너무 촌스럽다. 이름을 바꾸자고. 거인의 일격은 어떤가.”
“뭐? 거인의 일격? 그런 유치찬란한 이름보다 현실적인 거인의 손톱이 훨씬 낫지! 네 대가리는 장식이냐?”
“뭐 이 자식아?”
그러던 중,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해 빠르게 제지했다.
“그쯤들 하고. 이거 사용해 보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음! 그렇지! 여기선 안 될 것 같고,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재밌겠다. 나도 갈래!”
“뭐냐 이 꼬맹이는. 애는 저리 가라.”
“나 꼬맹이 아니거든? 꼬맹이는 못생긴 아저씨들이지.”
“뭐… 못생긴? 이 당돌한 꼬맹이를 봤나!”
이제는 루나와 티격태격하는 걸 보면, 드워프의 정신 연령은 생각보다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넓은 공터.
김민준은 거인의 손톱의 사용 방법을 들은 뒤, 목에다가 손을 가져갔다.
화아아.
그러자 목걸이 형태의 각인이 빛나며, 안에서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워우.”
그 정체는 길이만 10m에 달하는 거대한 검이었다.
직경은 대략 3m.
말 그대로 거인을 위한 무기가 아닐까.
“되게 무겁네, 이거.”
거인의 손톱은 상대를 벤다기보다 뭉갠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드워프의 설명에 따르면, 이 검을 만드는 데 아다만티움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무게만 해도 1톤을 가뿐하게 넘는다나.
‘힘 스텟 100 안 찍었으면 힘들었겠는데.’
한 손으로 휘두르는 건 도저히 안 되겠고, 두 손을 써야 할 수준이다.
‘이 정도의 무게와 강도. 거기다 사용한 재료가 아다만티움이란 말이지.’
드워프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추가로 세밀한 각인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각인이라든가.
아니면 신성력을 받아쳐 내는 각인이라든가.
과연.
거인의 손톱이라는 이름만큼, 파괴력 하나는 일품인 것 같았다.
“뭐 하나! 어서 휘둘러 보지 않고!”
드워프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여긴 어차피 사용 안 하는 곳이니까 괜찮겠지, 뭐.’
자신 역시 새로운 무기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상태.
전력으로 휘둘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적당히 힘을 빼 지면을 향해 내려쳤다.
쿠우우우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마치 미사일이 지상을 폭격한 것 같은 느낌.
“흐하하하! 역시 김민준! 저 무거운 걸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다니!”
“그러게 내가 뭐랬나! 김민준이라면 아다만티움 팍팍 넣어도 된다고 했지!”
드워프들은 흙을 뒤집어쓰면서도 껄껄 웃었고,
“우와! 땅이 막 커다랗게 파였어. 베키. 저것 봐. 대단하지?”
루나 역시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이거 좋긴 좋은데….”
김민준이 볼을 긁적거렸다.
드워프가 만든 장비라 좋을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좋아도 너무 좋다.
적당히 힘을 빼서 휘둘렀는데 크레이터가 생겨 버렸으니까.
풀 파워로 휘둘렀다가는….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서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
그 정도의 구덩이가 파이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어떤가. 마음에 드나?”
“거인의 손톱이라.”
마음에 들고 말고.
대답 대신, 카드를 꺼내 녀석들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마음껏 마셔도 된다.”
“그게 정말이냐?”
“가자! 양주부터 다 쓸어 담자고!”
한국의 생활에 익숙해진 드워프들이다.
카드를 받자마자, 술을 사 오겠다며 후다닥 사라졌다.
“…나는?”
루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커다란 막대 사탕을 들고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훈련 끝나면 솜사탕 사 줄게. 제일 큰 걸로.”
“진짜? 난 딸기 맛이 좋아.”
솜사탕이라는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히히 웃는다.
루나는 노바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좋은 카드다.
실험체라도 해도, 고대 마족의 힘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녀가 힘을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될 터.
‘이 정도면 노바 제국이 당장 쳐들어와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노바 제국의 기밀 자료를 들여다본 이상, 변수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래도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수준으로는 승리는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쪽이 입는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승리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목표였기에.
**
이스가르드의 노바 제국은 어수선한 상태였다.
김민준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든 고대 마족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든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노바 제국 소속 마법사들은 다른 연구를 정지시키면서까지 고대 마족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해서 밝혀진 것은… 현재 고대 마족이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다른 차원이 바로 지구라는 것이었다.
“지구. 으아아아! 하필이면 지구라고?”
마법사 한 명이 머리를 싸맸다.
그토록 찾던 좌표를 알아낸 건 좋다.
대마법사 아이작이 지구의 좌표를 찾기 위해, 엄청난 인력을 투입했으니까.
하나, 동시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해 버렸다.
고대 마족이 지구로 가 버린 것이다.
“분명 고대 마족은 흑마법사에게 강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흑마법사라는 가정하에서다.
아이작조차, 고대 마족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루나는 고대 마족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실험체.
오리지널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이 정도로 흘렀으면… 죽었다고 봐야 할 텐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안 그래도 마법사들 머리가 날아가기 직전인 상황이다.
아무리 지구 좌표를 알아냈다고 한들, 아이작에게 사실대로 보고해 버리면….
노바 제국 소속 마법사 절반이 죽어 나갈 것이다.
마법사가 아무리 귀하다 해도, 대마법사 아이작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야. 넌 뭐 그렇게 숨을 거칠게 쉬냐?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그렇게 끙끙 앓던 마법사 뒤로, 한 여성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은 채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여리여리한 몸.
겉으로 보면 누구나 혹할 만한 외모.
다만, 검게 물든 오른팔만은 다부진 근육을 자랑하고 있으며.
사람 키만 한 검을 허리에 차고 있다.
“허, 헉! 스코티아 님!”
마법사는 헛바람을 삼켰다.
안 그래도 일이 복잡해졌는데, 하필이면 노바 제국의 이인자가 나타났으니까.
“우리 노바 제국의 마법사가 뭘 하고 있나 들여다볼까?”
“바, 방금 지구의 좌표를 찾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지구의 좌표를 뱉었다.
“루나 님이 지구로 도망치신 것 같아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루나? 아~ 그 조그만 고대 마족? 죽었겠지, 뭐.”
스코티아는 별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며,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지구 좌표라. 잘했네. 마법사가 항상 고생이 많아.”
마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저 미친 검사는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웃으면서 노바 제국의 병사를 베는 여자다.
‘아이작 님은 도대체 왜 저런 사이코를 끌어들인 거냐고!”
스코티아.
힘으로만 따지면, 노바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대마법사 아이작 다음으로 강하다.
저 거무스름한 오른팔을 이식받고 나서, 아이작보다 더 강해졌는지도 모른다.
쉬익!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검이 하늘을 갈랐다.
갈라진 것은 마법사의 머리가 아니라 허공이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어둠이 흘러나왔다.
“서, 설마? 스코티아 님! 지구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이작이 그토록 바라는 지구의 좌표가 떡하니 있잖아. 이걸 안 가고 배겨?”
스코티아는 아이작의 진지한 지시가 아니면 거의 독단적으로 움직인다.
아이작 역시 그것에 대해 별말이 없고.
다만, 지구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아이작이라 해도 가지 말라고 지시할 것이다.
“걱정하지 마. 적당히 놀다가 올 테니까.”
스코티아가 히죽 웃으며 차원의 틈 안으로 들어갔다.
“난 아무것도 못 봤다. 난 아무것도 모른다….”
노바 제국의 마법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장소를 벗어났다.
**
그 뒤로 10일이 지났다.
“하하하하! 드워프 특제 탐지기를 드디어 완성했다!”
“이런 미친 자식아! 또 술병 들고 작업하고 있었냐? 그러다 김민준이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머리 식힐 겸 한 모금만 마신 거다. 탐지기는 확실하다고.”
“한 모금에 병이 비워지냐? 실수했기만 해 봐라.”
드워프는 김민준의 부탁을 받고 탐지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세계인이 지구로 넘어올 때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탐지기는 필수였다.
“음! 아주 마음에 들어.”
비석 형태의 거대한 쇳덩이.
다른 드워프들에게 탐지기 모양이 그게 뭐냐고 온갖 말을 들었지만, 이 형태여야만 했다.
“그래야 확실하게 노바 제국 놈들을 잡아내지.”
자신들이 만든 물건이 노바 제국 놈들을 부술 때 도움이 된다니.
복수심과 술만 있다면 뭐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봐! 뒤! 뒤를 보라고!”
여운을 느끼기도 잠시.
드워프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