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고대 마족-3
루나의 몸을 감싼 어둠이 걷혔다.
거대한 폭발을 저 어둠이 막아낸 것이다.
“와! 오빠 대박이다! 베키가 좀 힘들어하더라!”
녀석이 물개박수를 치는 사이,
쉬익!
김민준의 발밑에서 뭔가가 솟아올랐다.
“징그럽게.”
붉은 눈이 달린 거대한 송곳.
발밑부터 시작해서, 등 뒤, 머리 위까지.
평범하게는 회피할 수 없는 방향에서 나타났다.
‘총 8발이라.’
공격에 대한 전조가 전혀 없었다.
현재 루나는 공격에 대한 의사가 없는 상태.
그런데도 어둠 쪽에서 의지를 가지고 공격한 것이다.
자신을 죽일 기세로 말이다.
‘그림자 도약.’
눈으로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스킬을 사용해 루나의 코앞으로 이동했다.
‘네가 이것도 반응할 수 있을까.’
주먹에 온 힘을 실어 녀석의 몸을 가격했다.
루나 본인은 이 공격을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
그만큼 자신의 공격이 빨랐으며, 진심이었다는 말이다.
쉬익!
“아주 그냥 오토가드네.”
역시나 쉽지 않다.
어둠이 추가로 솟아나 루나를 보호했다.
“전력으로 때렸는데 흐물거리는 게 끝이다 이 말이지.”
보통 마족이라고 한다면, 성스러운 힘에 취약하다.
마를 정화하는 힘을 가진 사제에게 약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대 마족은 성스러운 힘에 저항한다.
사제의 스킬도 놈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약점이 없는 걸까?
‘거의 없긴 하지.’
이렇다 할 약점이 없긴 하다.
그래서 고대 마족이 까다로운 것이다.
특히나 흑마법사에게는 말이다.
‘예전에 이놈을 만났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이스가르드 전성기 시절의 힘으로도 고대 마족을 상대하는 건 버거웠을 것이다.
그때는 마기에 기반한 힘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
하지만,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지금이라면 다르다.
새로운 스텟과 새로운 스킬.
거기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올려 둔 기초 스텟들.
이것들이라면, 고대 마족을 상대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정공법으로 가야겠지.’
녀석에게 가장 확실하고 유효한 공격은 물리 공격.
김민준은 뒤로 물러나 증폭 회로를 켰다.
그 상태에서 마인화를 사용했다.
‘이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증폭 회로를 통해 한층 강력해진 스킬.
그만큼 부담이 커지겠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스스스스.
김민준의 몸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거기다 눈이 붉은빛으로 번쩍거리기까지.
“와…. 그건 또 뭐야?”
루나는 그의 변신한 모습이 신기했다.
흑마법사라는 건 다 저런 걸까.
방금 전까지도 짜릿한 충격을 가져다줬는데, 이번에는 어떤 게 나올까.
“응? 뭐라고?”
눈을 반짝이며 그 공격을 감상하려 했는데….
베키가 당장 도망치라며 경고해 왔다.
“베키가… 겁을 먹었어?”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베키는 벌써부터 자신의 몸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베키! 힘을 그렇게 많이 사용하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 강력한 충격이 루나의 몸을 강타했다.
그 충격의 정체는 주먹이었다.
“카학!”
루나의 몸이 기역 자로 꺾였다.
주먹질 한 번일 뿐인데, 거인의 발이 몸을 짓누른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베키가 방어에만 집중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베, 베키. 도망… 도망쳐….”
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방금보다 더한 충격이 몰아쳤다.
쿠웅! 콰직!
세 번.
고작 세 번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다.
베키가 작정하고 만든 배리어가 허무하리만치 깨져 버렸다.
“우욱….”
“끝이냐? 난 이제 시작인데.”
기운 없이 늘어진 루나 앞으로, 김민준이 걸어왔다.
‘잘 통해서 다행이네.’
사실 방금 말한 건 허세였다.
증폭 회로를 통해 강화된 마인화는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컸으니까.
‘스텟이 3배는 뻥튀기된 거 같은데.’
강한 파괴력과 신체 능력을 얻었지만, 변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0분 남짓.
그 안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사냥놀이. 계속할 거냐?”
“졌어…. 내가 졌어…. 제발 베키를 죽이지 말아 줘….”
힘없이 꾸물거리는 어둠에 눈길을 주자, 루나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약속대로 넌 내 거다. 절차가 복잡하니까 기절하지 말고 준비해. 기절하면 베키 죽일 거다.”
“응….”
루나는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느꼈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아픈 고통을 받아 본 적도 없었으며.
누구에게도 질 것 같지 않았던 베키가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해라. 진심을 담아서. 거짓말하면 효과 없다.”
존재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특수한 계약.
흑마법사가 가진 자잘한 능력 중 하나.
이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 저 고대 마족은 자신의 하수인이 된다.
조건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라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계약문을 읊는 데 걸리는 시간만 10분이었으니까.
‘크으…. 마인화에 적응하려면 단련을 더 해야겠는데.’
저 고대 마족에게 일말의 여지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계약이 끝날 때까지 마인화를 유지했다.
변신한 모습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서.
“나는 내 자유의사를 김민준에게 바친다, 따라 해. 마지막이다.”
“나… 는. 내 자유의사를 김민준에게 바친다….”
미리 설치해 둔 진이 붉게 빛나며 루나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것으로 계약은 끝났다.
“하라는 대로 했어. 베키는 안 죽일 거지…?”
“그래. 내 말 잘 들으면.”
김민준은 계약이 적용된 걸 확인하자마자, 마인화를 해제했다.
그리고 바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마인화는 그냥 써도 부담이 되는데, 증폭 회로까지 켠 상태로 썼으니. 당연한 건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다.
온몸의 근육과 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스킬인 마인화를 강화하기도 했고.
기력만을 사용해 기가쇼크 그레네이드 런처도 사용했으니까.
의식을 잃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이제 쫓겨나는 거야?”
숨을 돌리고 있던 사이, 루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냥놀이에서 졌으니 지구에서 쫓겨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가.
“누구 마음대로. 사냥놀이에서 이겼으니까, 넌 내 거다.”
“그럼 원래 있던 곳으로 안 가도 되는 거야?”
“그래.”
“그럼… 그럼! 오빠 말 잘 들으면, 또 솜사탕 사 줄 거야?”
“그거보다 더 맛있는 것도 얼마든지.”
“그럼… 이번처럼 또 같이 놀아 줄 거야?”
“내 말 잘 들으면 얼마든지.”
그 말에, 루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빠는 나랑 잘 놀아 줘. 맛있는 것도 막 사 주고. 그리고 베키보다 훨씬 강해.”
“내가 좀 강하긴 하지.”
“응. 앞으로 말 잘 들을게.”
김민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대 마족에게 흑마법사의 계약이 통할까 싶었는데, 아주 잘 통했다.
아무래도 오리지널보다 약한 실험체라 그런 듯했다.
‘대마법사 아이작. 고맙다, 나한테 이런 선물을 줘서.’
자신을 제거하려고 만든 고대 마족이, 방금 노바 제국의 적으로 돌아섰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방법으로 말이다.
‘활용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활용한다.’
갑작스럽게 고대 마족이 지구로 넘어온 이상, 성녀의 예지를 믿을 이유는 없다.
대비를 더욱 앞당겨야 했다.
지금 시점에서 저 고대 마족을 자신에게 귀속시킨 건 행운이었다.
‘루나의 힘이 약하다면 내가 강화시키면 된다.’
고대 마족은 마기와 피만 공급되어도 일정 수준까지는 강해진다.
루나는 노바 제국에 대항할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좋아.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김민준은 한동안 휴식을 취한 뒤, 루나에게 베키를 불러내라고 지시했다.
“야.”
그는 꾸물거리는 어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너. 노바 제국에서 챙겨 온 거 있지? 다 뱉어라. 하나도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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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 뭘 본 거지…. 꿈인가?”
한편.
건너편에서 전투를 지켜본 신세형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화 유리 너머로 벌어진 전투.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저게 이세계에서 넘어온 세력이라는 말인가….”
겉보기에는 그냥 이국적인 여자아이다.
그런 아이의 몸에서 시꺼먼 어둠이 피어났다.
“저런걸 헌터들에게 대응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할 수 있을지….”
어둠은 짐승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날붙이의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해지는 공격.
거기다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아무리 김민준 씨라 해도 이번엔 고전할 줄 알았는데….”
고전은 무슨,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고대 마족인지 뭔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저 인간형 몬스터가 약하다?
절대 아니다.
“…내부가 아주 박살이 났네.”
방금 벌어진 전투로 인해, 고위 관료.
특히나 VIP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특수 방공호가 여기저기 작살이 났다.
외부는 물론, 내부의 충격에 대한 대비도 완벽한데 말이다.
“하하…. 저 내부는 가장 강도가 높은 마력석으로 공사했는데….”
신세형은 한쪽 벽이 완전히 뚫려 버린 걸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 뻥 뚫린 구멍은 김민준이 주먹을 휘둘러 발생한 결과물이었다.
“마치 몬스터처럼 변하셨지.”
멀리서 보는데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외형.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김민준이 저 인간형 몬스터를 두들기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감았다 떴을 때는, 상황이 거의 끝나 있었고.
“저분을 적으로 돌리지 않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
신세형은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에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이세계의 존재가 이쪽으로 넘어온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두 번 모두,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특히나 저 인간형 몬스터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김민준 씨가 빠르게 발견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도대체 몇 명이 죽어 나갔을지.
혈귀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의식 불명에 빠졌지 않은가.
‘저 정도의 몬스터가 10마리 정도만 넘어와도… 한국은 큰 피해를 입을 거다.’
김민준이 아무리 강해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수백 킬로 떨어진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지는 못하니까.
‘인명 피해는 무조건 발생하겠지. 그걸 최소화시키는 게 문젠데….’
어떤 방향으로 대비를 해야 할까.
새롭게 개발하는 무기가 이세계인들에게 효과는 있을까.
그렇게 끙끙 앓던 사이, 눈앞으로 잿빛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아저씨! 이거 봐 봐. 되게 큰 사탕이야.”
방금 김민준과 전투를 벌이던 고대 마족, 루나였다.
“허어억!”
그녀는 신세형이 놀라 넘어지든 말든, 김민준에게 받은 막대 사탕을 자랑했다.
“오빠가 말 잘 들으면 이거보다 더 큰 사탕 사 준댔어. 이거 이름이 사탕이래. 되게 맛있다?”
“어… 어어?”
“아저씨. 어디 아파?”
신세형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던 사이, 김민준이 옷에 묻은 흙을 털며 나타났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우리 편이니까요.”
“…예?”
그게 무슨 말인가.
저 아이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몬스터가 아닌가?
몬스터를 살려 둔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
“…….”
이어진 김민준의 말에, 신세형은 큰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