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고대 마족-2
“나랑 놀아 줘. 그럼 인간들한테 손대지 않을게.”
자신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대 마족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저런 말을 해 올 줄이야.
“난 태어나자마자 갇혀 지냈어. 베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미쳐 버렸을 거야.”
“갇혀 있었다고?”
“응. 거기 있던 아저씨들은 나만 보면 무섭다고 피해. 아빠도 나랑 놀아 주지 않았어.”
“진작에 빠져나오지 그랬냐?”
“베티가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루나는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이건….’
저 말을 듣고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기회.
평생에 한 번 찾아오기 힘든 기회 말이다.
‘김서현의 예지가 아주 완벽하게 들어맞았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마족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김서현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본능에 잡아먹히지 않았다. 고대 마족인데.’
고대 마족의 파괴 본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정보는 상세하게 꿰고 있었다.
고대 마족은 흑마법사의 천적 같은 놈이었으니까.
‘대마법사 아이작. 나한테 이런 선물을 갖다 바친다고?’
분명 저건 실험을 통해 탄생한 고대 마족일 것이다.
느껴지는 힘도 오리지널에 비해 약한 편이다.
마족보다는 인간의 자아가 강하게 자리잡혀 있었고.
‘혼자 방치해 뒀으니까 그렇지. 고대 마족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거 같은데?’
아이작.
저런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 고대 마족을 만들어 냈을 줄이야.
어찌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날 죽이려고 만든 고대 마족이 이스가르드를 박살 낸다라.’
그 순간이 오면, 아이작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상상만 해도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 일단 어울려 줘 보고, 길들이는 게 불가능하면 어떻게 해서든 처리해야지.’
하루나 이틀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만약, 놈이 사람을 건드렸다면 일말의 여지도 없었겠지만.
“루나라고 했냐?”
김민준은 녀석을 끌고 근처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놀아 달라고 했지. 따라와라. 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 주지.”
**
“우와아! 이거 되게 맛있다아! 이거 뭐야?”
“네가 먹고 있는 건 양념치킨. 그 옆에 있는 건 달콤 간장치킨.”
“치키인? 음식 이름이야? 나 이거 더 먹어도 돼?”
“마음껏 시켜라. 다 사 줄 테니까.”
“와아!”
고대 마족, 루나의 호감을 사는 건 쉬웠다.
왜냐.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은 녀석을 무서워하고, 피해 다니기에 급급했다.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단 말이다.
‘10년 넘게 지하에 가둬 놨다라. 고대 마족이 아니었으면 정신이 못 버텼겠지.’
루나는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그동안 말할 상대가 베티뿐이어서 심심하다고 말이다.
“너 말이야. 아이작이 네 아빠가 아닌 건 알고 있냐?”
어린아이에게 할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민준은 거침없이 정보를 캐내고 정보를 주입시키려 했다.
겉만 아이일 뿐이지, 속은 마족이었으니.
“응. 그건 알고 있어. 베티가 알려 줬어. 얌전히 따르는 척만 하랬어.”
“베티라.”
저 어둠은 고대 마족의 본능이며, 힘의 근원일 것이다.
루나는 본능을 깨우치기 전에 인간의 자아가 형성되었다.
그 때문에 저 어둠은 루나의 몸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자리 잡지 못한 대신 베티에게도 자아가 생겼고. 예측하자면 이런 식이겠지. 특이 케이스긴 하지만.’
그래서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저 고대 마족에게 목줄을 채울 수만 있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었기에.
“좋아. 그럼 바로 다음 코스로 넘어가 볼까.”
그때까지는 저 녀석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
“와! 오빠는 하늘도 날 수 있어?”
“그렇지. 내가 할 줄 아는 게 좀 많아서.”
“더 빨리! 더 빨리 달려 줘!”
“너 즐길 줄 아는구나? 그럼 풀 파워로 가 보자고.”
“꺄하하하하!”
김민준은 루나를 등 뒤에 태운 채, 헬 레이서로 공중을 날아다녔다.
‘짧고 굵게. 질리기 전에 새로운 걸로 넘어간다.’
이전까지의 대화를 듣고 확신한 게 있다.
루나는 베티에게 의존한다.
즉, 고대 마족의 힘에 의존하고 있다.
‘본능이 이곳을 부수라고, 아니면 사람을 죽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루나에게 지구가 좋은 곳이라고 인식시킨다면?
그렇게 되면 녀석이 돌발 행동을 할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얼핏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놀아 주는 것 같지만, 계산이 다 깔려 있다는 말이었다.
“와… 와아! 인형! 인형이 막 걸어 다녀. 되게 커!”
그다음 목적지는 놀이 공원.
루나는 인형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감탄사를 토했다.
“뭐? 저 안에는 인간이 들어 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베티. 곰돌이는 곰돌이야!”
“그렇지. 곰돌이는 곰돌이지. 저기 곰돌이한테 선물 달라고 해 봐. 줄 거다.”
“진짜?”
루나가 다가가기도 전, 곰 인형을 입은 직원이 다가와 솜사탕을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먹는 거야. 솜사탕이다. 그냥 뜯어 먹으면 된다.”
녀석은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물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가 이런 곳이라니… 역시 아이작은 거짓말쟁이였구나. 베티의 말이 맞았어.”
어느새 대마법사 아이작의 호칭이 바뀌었다.
이제는 아빠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좋아. 제대로 먹히고 있네.’
김민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대 마족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규제.
자유의 박탈.
이스가르드에서 헛짓거리를 해 준 덕분에, 고대 마족을 훨씬 쉽게 끌어들이고 있었다.
스스스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루나 발밑의 어둠이 요동쳤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베티! 갑자기 왜 그러는데!”
“나한테 화가 난 거 같은데?”
“뭐어? 너 그럴 거야? 저 오빠는 내가 말하는 거 다~ 들어주고 있거든?”
“베티가 나보고 뭐라 그러냐?”
“오빠가 나쁜 인간이라고, 당장 죽여야 한대.”
“오….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어떡하지. 내가 죽으면 지구의 놀 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는데.”
그 말에 루나의 눈이 커졌다.
장난으로 꺼낸 말인데 꽤 충격받은 듯했다.
“네가 들고 있는 솜사탕도 사라져 버리고, 곰돌이랑 토끼도 사라져 버리고, 치킨도….”
“그, 그럼 안 돼. 오빠는 죽으면 절대 안 돼. 베티! 가만히 있어!”
스스스스.
폭발할 듯 요동치던 어둠이 잠잠해졌다.
역시 오리지널이 아니라도 고대 마족은 고대 마족인가.
자신의 몸에 깃든 마기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베티라고 했냐? 이미 늦었다.’
지구의 위대한 문화를 맛보면, 벗어나기가 어렵거든.
“저거 한 번 더 탈래!”
놀이기구부터 시작해서, 동물원.
중간중간 손에 쥐어지는 달콤한 간식들.
루나는 고작 하루 만에 함락당했다.
한국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린 것이다.
“베티.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루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중, 김민준을 쳐다보았다.
“왜.”
“오빠. 베티가 오빠라면 나랑 제대로 놀아 줄 수 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사냥 놀이 말이야.”
이어지는 설명에 김민준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랬단 말이지.’
사냥 놀이.
대마법사 아이작은 루나의 힘을 실험하기 위해 몬스터나 인간과 싸우게 했다.
놀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방금 녀석이 꺼낸 사냥 놀이는 말만 놀이일 뿐.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그냥 하면 재미없지. 이런 건 내기를 해야 훨씬 재밌거든?”
“내기? 그게 뭐야?”
“서로 간에 상품을 거는 거지. 갖고 싶은 거로.”
“가지고 싶은 거… 사냥 놀이….”
루나는 잠시 중얼거리더니, 활짝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좋아. 내가 이기면 오빠는 내 거야.”
“그래? 그럼 내가 이기면 마찬가지로 넌 내 거다.”
녀석을 어떻게 귀속시킬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판이 짜일 줄이야.
‘여기까진 순조롭다.’
고대 마족을 굴복시키기만 한다면 말이다.
“일단 여기서는 안 된다. 위험하거든. 잠깐 기다려 봐.”
김민준은 곧바로 신세형에게 연락했다.
**
고위직 관료들을 위해 만든 특수 방공호.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내구성을 자랑하는 공간.
신세형은 김민준이 왜 이곳을 빌리려 하는지 의문이었다.
새로운 스킬이라도 생겼나?
굳이 이 장소를 빌릴 필요가 있나?
꼭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어렵게 허가를 받아 내긴 했는데….
“…김민준 씨. 이게 지금 무슨 상황입니까?”
그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들어온 상태였다.
“아이를 왜 이런 곳에… 그것보다 머리 색과 눈동자 색이 굉장히 특이하군요.”
“아. 얘는 고대 마족입니다.”
“…예?”
“쉽게 말하면, 인간이 아니란 거죠. 인간형 몬스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간형 몬스터.
그 말에 신세형이 표정이 굳었다.
이전에 울릉도에서 출현한 혈귀 때문에 얼마나 숨을 졸였던가.
“지, 지금 당장 지원 병력을….”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 고대 마족을 저한테 귀속시킬 생각이거든요.”
“…그럼 위험하지 않은 겁니까? 아니, 그것보다 저건 또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저거라니. 난 저거가 아니라 루나야. 그리고 난 몬스터가 아니라구. 그치 베티?”
대화 도중, 루나가 끼어들어 불만을 표출했다.
신세형은 식은땀을 흘리며 김민준의 등 뒤로 숨었다.
“…신세형 씨. 더우니까 떨어져 주세요.”
“네, 네! 죄송합니다…. 몬스터라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신세형에게 쪽지를 하나 건네주었다.
만일, 자신이 패배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대 마족을 죽여야 한다고.
‘김민준 씨가 처리 못 할 정도면… 국가 차원에서 나서도 힘들 텐데요….’
‘만약입니다 만약. 어차피 제가 이길 거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신세형을 건너편으로 보낸 뒤,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혼을 귀속시킬 진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사냥 놀이 빨리하고 싶은데.”
“조금만 기다려.”
10분 가까이 진을 그린 뒤, 이리저리 몸을 풀었다.
실험체라고 해도 루나는 고대 마족이다.
봐줄 생각은 없었다.
“자. 사냥 놀이 시작.”
“으히히. 베티가 오빠는 지금껏 만난 인간들 중에 가장 강하대. 절대 봐주지 말래.”
“그래야 할 거다.”
말이 끝난 직후 루나의 등 뒤로 어둠이 솟아났다.
어둠은 짐승의 모습을 한 채, 김민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익!
몸을 물어뜯으려 하는 거대한 이빨과 발톱.
민첩 스텟이 92인 그의 눈에는 별것 아닌 수준.
“와. 오빠 되게 빠르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허용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고대 마족은 피와 마기를 양분으로 삼는다.
그 말은, 조금만 스쳐도 저놈에게 성장의 여지를 주는 셈이다.
‘흑마법사 스킬은 안 되겠고. 일단 탐색을 좀 해 볼까.’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다.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에서 기가쇼크 그레이드 런처를 꺼냈다.
쿠와아아앙!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망설임 없이, 두 발 연속으로.
드드드드.
엄청난 충격과 함께, 거대한 방공호가 무너질 듯 진동했다.
“두 발 연속으로 갈겼는데 멀쩡하다 이거지.”
김민준은 채찍을 꺼내려다가 관뒀다.
탐색전은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이거보다 더 세게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