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선발
대령과 준장의 차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계급은 한 계급 차이지만, 받는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장군에게는 일반군과 마찬가지로, 전용 차량이 지급된다.
별 달린 번호판에 운전병은 당연히 딸려 온다.
필요하면 헬기도 이용할 수 있고.
일일이 나열하자면 10가지가 넘는다.
“너. 내일부터는 원래 복무하던 부대로 가라. 내가 잘 말해 놓을 테니까.”
“일병! 김! 건! 예! 알겠습니다!”
물론 김민준은 그 혜택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전용 차량? 헬기?
헬 레이서가 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다.
수행 비서? 전용 보좌진? 역시 필요 없다.
자신이 좀 더 움직이면 끝날 일 아닌가.
‘쓸데없는 병력의 소모는 줄여야지.’
김민준이 단 별은 다른 장성들과 비교하면 다르다.
계급 자체는 같다.
하나, 그가 지휘하는 부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기껏해야 1소대 정도.
선발 예정인 팀원이 기준치에 만족 못 할 경우, 분대 규모에서 그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권한이 약하지는 않다.
다른 장성에게는 없는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외부 침략이 의심되거나 확실시되었을 때, 사단 1개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헌터군에 복무한 연수와 계급을 따져 보면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그가 해 온 성과와 신세형의 서포트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원도 고성이라.”
김민준은 새로 창설된 부대를 둘러보았다.
철원과 마찬가지로 외진 곳.
던전과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드물지만, 그 위험도가 높은 편에 속했다.
“이 정도는 돼야 블랙 스완의 근무지로 제격이지.”
블랙 스완의 팀원들은 특별해야 한다.
몬스터와 게이트 처리? 당연히 위급한 상황일 때는 지원을 간다.
하나, 팀의 주된 목적은 외부 세력의 배제다.
그렇기에 선발 과정 역시 자신이 직접 관여할 예정이었다.
“몇 명이나 여기까지 오려나. 뛰어난 인재들이 팍팍 왔으면 좋겠는데.”
**
7일 뒤.
헌터군 특수 부대, 블랙 스완의 선발이 시작되었다.
부대에 지원한 헌터만 해도 수천 명.
병사부터 시작해서 간부와 장교까지 다양했다.
위험한 특수 임무를 주로 수행하는 부대임에도 수많은 헌터들이 몰렸다.
헌터군의 살아 있는 전설, 김민준 준장이 지휘할 부대였으니까.
“뭐가 이렇게 빡세?”
“와 씨…. 체력은 자신 있는 편인데, 1차에서만 절반이 탈락했더라.”
“절반이나? 허….”
헌터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시험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부대에서 나름 실력 있고 경력 있는 인원들이 모였다.
다른 특수 부대원 출신들도 있었고.
그런 인원들조차 체력 시험에서 떨어지는 걸 보니, 선발 시험은 결코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3차 시험에서는 김민준 준장이 직접 나선다고 하지 않았는가.
“2차 시험은 오후에 바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3일에 걸친 1차 선발 시험이 끝나고 휴식 시간.
시험관이 간략한 설명과 주의 사항을 전한 뒤 자리를 떠났다.
“…바로 합니까?”
“네. 3시간 뒤에 바로 시작합니다.”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미친 듯이 구르기만 했다.
체력 시험이라기보다는 몸을 혹사시키는 수준의 1차 시험.
그게 지금 막 끝났는데 고작 3시간의 휴식 시간이라니.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우…. 조금이라도 자자.”
“죽겠다….”
시끌시끌했던 분위기도 잠시.
헌터들 대다수가 쓰러지듯이 잠들었다.
불만을 가질 여유 따위는 없었기에.
‘후우….’
한편.
한쪽에서 손은서 병장이 물을 들이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원자 중 병사 출신의 헌터는 기껏해야 10% 남짓.
그마저도 자신을 제외하고 모조리 탈락해 버렸다.
‘김서현 중사님이 아니었으면… 나도 무조건 떨어졌어. 확실해.’
건너편을 보면, 김서현 중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하품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붙어야 해. 이대로 떨어지면… 민준이를 볼 면목이 없어.’
다른 지원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분명하게 혜택을 봤다.
김민준이 선발 시험을 대비하라며 김서현 중사를 붙여 줬으니까.
덕분에 자신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롭게 생긴 검술 스텟과 검기라는 스킬.
김서현 중사가 따끔하게 혼내 주지 않았다면….
분명 방심하다가 탈락했을 것이다.
‘몇 달 동안 일대일로 지도해 주셨잖아. 쫄지 말자.’
이제 시작이다.
자신의 진면목은 손에 검이 쥐어지고 나서부터다.
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들어, 이쪽으로만 파고들었으니까.
김민준도 그렇고, 김서현 중사도 말하지 않았던가.
검에 관해서는 감각이 있으니, 주 무기로 사용해 보라고 말이다.
‘그래. 할 수 있어. 계급이 뭐가 중요해.’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병사가 자신밖에 없는 게 뭐 어떤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력이야.’
**
5일에 걸쳐 진행된 1차 시험과 2차 시험은 강도만 높을 뿐, 장교 승격 시험과 별다를 바 없었다.
체력 시험에 이어 몬스터 토벌, 던전 클리어, 게이트 대처 요령 등등.
헌터 개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100명이라. 나쁘지 않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피곤할 텐데 듣기만 해라. 경례는 하지 말고.”
3차 시험 당일.
김민준이 단상 위로 올라가 지원자들을 훑었다.
그중, 두 명의 여헌터에게는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김서현, 손은서. 둘 다 여기까지 잘 왔네.’
쉽지 않았을 텐데 잘해 줬다.
물론 저 두 명이 3차 시험까지 도달했다고 한들, 편의를 봐줄 생각은 없었다.
계급, 경력에 상관없이 100% 실력으로 선발할 생각이었으니까.
‘몬스터라면 몰라도 이스가르드 놈들을 상대해야 하거든. 이 중에서는 김서현이 제일 유리하긴 하겠네.’
3차 시험을 자신이 직접 실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서현 중사를 제외한 99명의 헌터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돌파해 내야 했다.
“지원자들은 1명씩 나와 대련을 할 거다. 내 기준치에 만족하면 합격, 만족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3차 시험을 위해 설치된 특수 시험장.
김민준은 특별 제작된 부스 안으로 헌터들을 1명씩 불러들였다.
헌터가 입장하는 순간, 시험관들이 검은 천으로 부스를 가렸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 수 없도록 말이다.
‘뭐지?’
‘도대체 뭘 하길래 우리가 못 보게 가리는 거지?’
헌터들의 그런 의문도 잠시.
“1,101번 지원자, 불합격! 다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헌터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시험관의 제지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1,204번 지원자, 불합격!”
“2,202번 지원자, 불합격!”
“1,333번 지원자, 불합격!”
쉴새 없이 속출하는 불합격자들.
부스 안에 입장한 헌터들은 멍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분함 반, 허탈함 반을 섞으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도대체 뭘 시험하는 거야?’
시간이 지나고 손은서 병장의 차례가 다가왔다.
지금까지 합격한 인원은 0명.
앞의 지원자들이 모조리 탈락한 걸 보니, 괜히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충! 성! 222번 병장 손은서입니다!”
“그래. 앞에 놓여 있는 보호 슈트 착용하고 준비해. 죽을 각오로 해야 할 거다.”
부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호 슈트 한 벌이 놓여 있는 것 말고는.
‘뭐…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보호 슈트가 저렇게 된 거야?’
손은서 병장은 찌그러진 보호 슈트 4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분명 앞의 지원자들이 착용한 장비일 것이다.
보호 슈트 중에서도 고가를 자랑하는 장비가 고작 수 분 만에 걸레짝이 되었다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깨닫게 되었다.
‘저, 저 미친놈! 설마?’
김민준이 스킬을 사용할 것이라는걸.
스스스스.
손은서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그의 등 뒤에서 검은 화살이 여러 발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인터넷 방송에서 본 ‘암흑 화살’.
그가 공개했던 흑마법사의 스킬 중 하나였다.
쉬익! 쉭!
예고 없이 날아오는 검은 투사체들.
그녀는 재빨리 몸을 굴려 스킬을 회피했다.
‘미, 미쳤어!’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었다.
수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조금 전보다 많은 투사체가 날아왔다.
‘검… 검만 있었어도!’
손은서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저 많은 투사체를 깔끔하게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이다.
‘저기 있다!’
구석진 곳에 박혀 있는 군용 검 한 자루를 발견하고 몸을 날렸다.
그 과정에서 몇 발의 공격을 허용했지만, 급소를 비껴 갔으니 허용 범위일 터.
“꽤 잘 버티네. 무기를 찾아낸 것도 네가 처음이고.”
김민준이 씨익 웃었다.
3차 선발 시험에서 중요하게 보는 건 순발력과 냉정함.
그리고 상황 대처 능력이었다.
예고 없이 스킬을 퍼부은 것.
헌터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강도를 조절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을 대처할 수 있어야 이세계인을 상대할 수 있으니까.
‘어찌 보면 이것도 최소 조건이지.’
멀리서 불덩이와 돌덩이를 날려 대거나.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칼을 찔러 오거나.
아니면 공중을 날아다니며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다거나.
이스가르드인이 보유한 스킬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의 훈련 방식으로는 대처가 힘들다는 말이다.
‘나도 적응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 이스가르드 놈들과 같은 종류의 스킬을 가진 나조차도.’
마음 같아서는 헌터군 전체를 훈련시키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년 정도.
놈들에게 대처하려면 확실한 인원을 선발하는 게 최선이었다.
쉬익!
김민준은 뒤로 빠지면서 거리를 재는 척했다.
그러길 잠시, 손은서의 등 뒤로 그림자 도약을 사용했다.
“큭!”
그대로 내질러지는 주먹.
그녀는 재빨리 몸을 틀어 공격을 막아냈다.
김서현 중사와 수도 없이 대련한 덕분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이다.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단순한 주먹질일 뿐인데, 끝에서 끝까지 주욱 밀려났다.
보호 슈트를 착용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한 번. 아니, 두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까….’
손은서는 이를 악물었다.
덜덜 떨리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포기할 것 같아?’
소위를 달려면.
나아가서 대위까지 진급하려면, 이 부대에 소속되는 것이 필수였다.
다음에는 어떤 스킬을 사용할까.
그러고 보니, 채찍을 사용하지 않았나?
무기는 언제 꺼내지?
채찍을 휘두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섣불리 검을 휘두르면 주도권을 뺏길 텐데….
그녀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황을 예측했다.
이대로 공격을 몇 번 더 허용하면, 보호 슈트가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말은, 불합격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쉬익!
“……!”
눈 깜짝할 사이, 김민준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는 어디에서 공격해 올까?’
그녀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경계했다.
그러길 잠시.
“병장 손은서, 합격이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