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별
단련실 벽이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변신 전, 자신의 힘으로는 전력을 다해 봐야 벽에 금이 살짝 생기는 정도였다.
그 정도로 엄청난 내구성을 자랑하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스킬 하나 썼다고 이정도야?”
그러나.
마인화라는 스킬을 사용하고 내지른 정권 한 방은 그 튼튼한 벽을 분쇄해 버렸다.
이 정도의 화력을 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스스스스.
마인화 유지 시간은 10분 남짓.
김민준은 변신이 풀리자마자 숨을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과연.
스킬이 강력한 만큼 반동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건가.
“10분에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치지.”
역시 영구 기관 스텟을 선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새롭게 생성된 2개의 스킬은 자신의 전투를 보조하기에 훌륭했으니까.
“어차피 파괴하고 부수는 스킬은 넘친다.”
증폭 회로는 위력이 부족할 것 같을 때.
마인화는 비장의 필살기 같은 느낌으로 사용하면 된다.
“좋아. 아주 만족스러워.”
한순간 너무 날로 먹나 싶어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와… 와아….”
한편.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서현이 두 눈을 빛냈다.
‘머, 멋있어…. 검은 기운 위로 굵직한 근육들이 드러나는 거 봐.’
몸에서는 검은 기운이 넘쳐 흐르고,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번뜩이는 저 모습.
다른 사람 눈에는 무섭게 보이겠지만, 자신에 한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저 스킬을 얻으신 건지는 몰라. 그래도 이거 하나는 확실해.’
분명 이스가르드의 이세계인들은 김민준을 얕보고 있을 것이다.
지구는 마기가 풍부하지 않으니까.
또한, 그가 귀환하면서 힘의 상당 부분을 소실했으니까.
‘김민준 님을 만만하게 봤다가는 끝장이야. 그렇게 안 봐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은 어떤가.
흑마법사의 고질적인 단점을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강력한 스킬을 손에 넣었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흑마법사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 나만 잘하면 돼. 김민준 님 발목만 잡지 않게 당장이라도 수련을….’
그녀가 의욕을 불태우려 하는 시점,
왜에에에에엥!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단련실의 충격이 외부로 새어 나가 발생한 일이었다.
“음…. 뭐라고 설명하지?”
김민준은 박살 난 단련실을 슥 쳐다본 뒤, 머리를 긁적거렸다.
**
“이야. 마력 미사일을 거뜬하게 견뎌 내는 단련실을 박살 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날, 중대장실.
부대에 방문한 신세형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창설 예정인 특수 부대에 대해 의논하려고 왔는데, 저런 구경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김민준 씨가 부순 벽이 아파트 한 채는 거뜬하게 넘는다고 하는데…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고의로 그러신 것도 아닐 텐데.”
“흠흠. 스킬을 새로 얻어서요. 그거 실험해 본다고 그랬습니다. 예상보다 세서 문제긴 했지만요.”
“…스킬을 또 얻으셨다고요?”
“네.”
“…….”
신세형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그가 보유한 스킬은 28개다.
다른 헌터와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이라는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스킬이 추가되었다니.
“29개라. 무시무시하군요.”
“아. 29개가 아니고 30개입니다. 신세형 씨한테는 굳이 거짓말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하하…. 30개라… 이러다 40개도 돌파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신세형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냈다.
김민준에 대해서 놀라는 건 익숙해질 때도 됐지 않은가.
게다가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부대 창설에 대해서는… 김민준 씨가 이름과 마크만 정해 주시면 됩니다.”
그는 빈 용지 몇 장과 지원자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그… 되도록이면 1분대 정도는 구성할 수 있게 선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민준은 본인의 기준에 만족하지 않으면 헌터를 선발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물론 그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 예정이지만, 선발 인원이 너무 적어도 문제다.
최소한 군대의 모양새는 갖춰야 될 것 아닌가.
“…지원자가 이렇게나 많아요?”
김민준은 눈앞에 수북이 쌓인 종이 더미를 보고 놀랐다.
창설 예정인 부대는 특수 부대다.
거기다 분명 위험한 임무를 주로 맡을 것이며, 외부 세력의 침략에서는 최전선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 놨다.
그럼에도 수천 명에 달하는 헌터들이 지원해 온 것이다.
“저도 놀랐습니다. 기껏해야 100명 정도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이 부분은 김민준 씨에 대한 영향이 클 겁니다.”
“헌터들이 좋게 봐 줘서 다행이네요. 일단 체력으로 절반 이상 걸러 내고 시작하겠습니다.”
“선발 시험 강도는 어느 정도로 하면 될까요?”
“장교 승격 시험의 2배 정도로 해 주시면 됩니다. 2차 시험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 악랄했던 승격 시험의 2배 강도라.
과연 헌터들이 버텨 낼 수 있을까.
신세형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판단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대 마크와 이름이다.
반드시 오늘 안에 제출해야 정해진 일정이 어긋나지 않는다.
“부대 이름이라… 이런 게 막상 정하려면 어렵던데.”
“아무래도 그렇죠. 김민준 씨의 부대는 사회의 주목을 무조건 받을 테니까요.”
김민준은 말과는 다르게, 부대 마크를 휙휙 그려 나갔다.
방패 형태의 마크 위로 검 두 개가 교차해 지나가는 형태.
그리고 그 중앙에는 채찍이 일자로 늘어져 있었다.
‘이 정도 속도면 미리 구상을 해 두셨겠는데.’
신세형은 농담을 툭 던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럴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아서 어떻게든 참았지만.
“괜찮네요. 부대 마크는 별문제 없이 통과될 겁니다. 이름은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신가요?”
“블랙 스완.”
“블랙 스완이라… 나쁘지 않네요.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그 질문에, 김민준이 조용히 웃었다.
“2년 뒤 침략해 올 외부 세력. 그놈들에게 강한 충격과 혼란을 주겠다는 뜻을 담았죠.”
“블랙 스완…. 충격과 혼란이라. 아주 좋습니다.”
신세형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밖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렸다.
“김민준 씨. 혹시 이봉구라고 아십니까?”
“이봉구요?”
“네. 종교 단체… 라 하긴 그렇고. 종교 단체 비슷한 활동을 하고 계시더군요.”
저 이름이 왜 신세형의 힘에서 나오는 걸까.
이봉구가 무슨 사고라도 친 걸까.
“아. 얼마 전에 흑천교에서 정부 쪽으로 연락이 왔거든요. 교주와 30만이 넘는 교인들은 헌터 김민준을 열렬히 지지한다고요.”
“따로 아는 사이는 아니고요. 얼마 전 시리아에서 그분들을 구해 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선을 그어 두기로 했다.
물론 좋은 취지로 저런 행동을 했겠지만, 이봉구는 갑자기 급발진을 하곤 했으니.
“하하. 덕분에 정치계에서는 김민준 씨에 대해서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투표를 가장 무서워하거든요.”
신세형은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뒤 부대를 떠났다.
“얌마. 이봉구.”
김민준은 이봉구에게 연락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는 척하면 뚝빼기를 깨 버리겠다고 말해 두었다.
**
3일 뒤, 오전.
부대 안으로 장성들과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조차 일정을 비우면서까지 참석했다.
오늘이 바로, 김민준이 준장으로 특별 진급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뭐 저렇게 많이 왔냐?”
1시간도 안 돼서 가득 찬 부대 안.
김민준은 바글거리는 인파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성 진급식은 본래 청와대에서 행해진다.
간단하게 끝내려 했는데, 이걸 거절하니 대통령이 직접 부대까지 오게 된 것이다.
“대통령님이 직접 계급장을 달아 주신다라.”
물론 자신의 오랜 목표를 이루어 기쁘긴 했다.
높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 주는 것 또한 마찬가지.
“좋아. 나야 좋은데… 고생은 병사들이 다 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청와대 갈걸.”
자신의 진급식 때문에 병사들은 3일 전부터 청소만 했다.
오늘만 해도 새벽 4시부터 조기 기상을 해 연병장을 싹 청소하지 않았는가.
대대장과 중대장, 소대장에게 과하게 청소하지 말라고 했는데 듣는 척만 했을 뿐이었다.
“진급식 끝나고 병사들 오침 시간 따로 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중대장에게 전달 사항을 남긴 뒤, 연병장으로 향했다.
“부대 차렷!”
“대통령님을 향해 경례!”
“충! 성!”
대통령이 단상 위로 올라가고, 진급식이 시작되었다.
어느 때보다 기합이 들어간 부대원들.
대통령을 시작으로 장성 몇 명의 축사가 끝난 뒤, 김민준이 단상으로 향했다.
병사들은 그에게 축하와 존경,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이병부터 시작해서 별의 위치에 오른 헌터.
본인보다 병사들을 먼저 생각하고, 궂은일은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로 인해 미연에 방지한 사고만 수두룩하다.
그 많은 헌터와 민간인들은 구한 것은 또 어떻고.
김민준.
헌터로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군인이었다.
“앞으로도 나라를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검을 내밀었다.
처음 별을 달게 된 준장 진급자에게 주어지는 삼정검.
일반군은 단순한 예장용 검이지만, 헌터군 삼정검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항상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충! 성!”
대통령이 직접 준장 계급장을 다는 것으로, 진급식이 마무리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
“김민준 준장님!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오자마자, 병사들이 그를 에워쌌다.
장성들이 화들짝 놀라며 말리려 했지만, 김민준이 그러지 말라며 제지했다.
부대원들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김민준 준장님 만세!”
“만세!”
“야! 살살 좀 던져! 나 대통령님한테 받은 검 들고 있다.”
“만세에에!”
헌터 아니랄까 봐 힘도 좋다.
“어우. 좀 떨어져라. 정신 사납다. 응?”
헌터식 헹가래가 끝나고, 여헌터 세 명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이유나 소위는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고.
김서현 중사와 손은서 병장은 눈이 충혈된 채로 웃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
“자, 잠깐!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해서 특수 부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따라와.”
김서현이 손은서의 목덜미를 잡은 채, 단련실로 끌고 들어갔지만.
“다들 몸 건강하게 전역해라. 안전이 최우선이야. 알겠냐?”
“김민준 준장님. 지금껏 위험한 일은 항상 먼저 하셨으면서, 그러기 있으십니까?”
“나야 감당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러지.”
피식 웃으며 부대원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중, 같은 생활관에서 시간을 보낸 분대원에게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이승호. 다음 하사 승격 시험에는 꼭 합격해라.”
“병장 이승호. 충분히 합격할 것 같습니다. 김민준 준장님의 단련 방식이 워낙 힘들어서….”
“이동진. 너도 장기 한다고 했냐? 열심히 하고.”
“상병 이동진. 감사합니다.”
“김광식. 넌 전역한다고 했었지?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상병 김광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밀린 대화를 끝낸 뒤, 전용 차량에 올라탔다.
특수 부대원 선발을 준비해야 했기에.
‘김서현. 손은서. 너네 둘은 꼭 붙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