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시리아-2
김민준이 놈들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수 분 남짓.
거대한 손이 탄환을 막아 주면, 자신은 그저 놈들에게 다가가 따귀를 때리면 될 뿐이었다.
사실 스킬도 필요 없었다.
빗발치는 탄환을 피하는 건 아주 쉬웠으니까.
스킬을 꺼낸 건 놈들이 겁먹고 전투 의지를 상실할까 싶어서였다.
물론 저런 무식한 무장 단체에게 먹힐 리는 없었지만.
짜악!
“크헉!”
그저 따귀.
뺨을 때리는 간단한 동작일 뿐인데 맞은 괴한은 공중에 붕 떴다.
고작 한 대.
나름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인원들이, 고작 따귀 한 대에 기절했다.
“뭐,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저놈 정체가 뭐야! 한꺼번에 달려들어!”
짜악!
그럼에도 달려들려던 괴한 3명 역시, 뺨을 얻어맞고 기절했다.
“저, 저놈! 헌터! 헌터다!”
“헌터 무장 단체한테 연락해! 빨리!”
“너네들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커, 컥!”
김민준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마기의 손아귀가 괴한 한 명을 움켜잡았다.
“네가 이놈들한테 지시 내리는 것 같은데.”
괴한은 그대로 김민준의 코앞으로 끌려왔다.
“넌 좀 튼튼해 보이는 거 같네. 부하들 것까지 대신해서 맞아라.”
“자, 잠깐….”
짜악! 짝!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
괴한은 뺨이 불어 터질 때까지 맞았다.
“선택지 두 개 준다. 하나. 다른 무장 단체 위치 불고 나한테 그만 맞기. 둘. 위치 불 때까지 나한테 맞기. 뭘로 할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그만해 주세요!”
“지금부터 1분 준다. 지도에 위치 찍어. 틀리면 알지? 돌아와서 아까 하던 거 계속할 거다.”
김민준이 지도를 건네자, 괴한은 재빨리 무장 단체의 위치를 표시해 주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 봐야 인간일 뿐.
다른 동료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라고 확신했다.
짜악!
“크악! 가, 갑자기 왜 때리는….”
“방금 건방진 생각 한 거 같아서 때렸다. 불만 있냐.”
“…없습니다.”
괴한이 찍어 준 무장 단체의 주둔지는 총 8곳.
그중의 2곳은 헌터로만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저… 이제 풀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 허튼짓 안 하겠습니다!”
“뭔 소리야. 묶을 건데.”
“예? 하지만! 요구하는 걸 알려 드렸지 않습니까! 저 정보들이 새어 나간 걸 알면 전 죽습니다!”
놈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전에 경찰들이 도착하길 기도해야겠네.”
김민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괴한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묶었다.
나머지 뒤처리는 특수경찰들이 해 줄 터.
“무장 단체 싹 쓸어버린 뒤에 이봉구와 교인들 구해 오면… 어후. 생각만 해도 달달하네.”
씨익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낸 뒤 스톱워치 어플을 켰다.
“지금부터 스피드 런 간다.”
**
-3기지! 3기지! 응답해! 정체를 모르는 헌터에게 습격당했다!
-RPG를 정면에서 맞고도 멀쩡하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특수 기지는 어디 있나!
-노, 놈의 손에서 검은 채찍이…. 끄아아아아!
정신없이 울려 대는 무전들.
무장 단체의 수뇌부는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한 명? 고작 한 명을 못 당해 내서 기지 절반이 털렸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무장 단체의 간부를 맡고 있는 민간 헌터, 자이드.
그는 실시간으로 무력화되고 있는 기지를 보며 이를 갈았다.
고작 2시간이다.
2시간 만에 무장 단체 기지 4개가 사라졌다.
도저히 인간의 소행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기지 사이에 떨어진 거리만 해도 70㎞ 이상은 되니까.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데…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범죄 집단에도 계급이 있다.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다.
목숨을 걸며 따낸 간부의 위치가, 단 하루 만에 사라지게 생겼다.
“자이드 님! 정보부한테서 보고받았습니다!”
“보고해! 빨리!”
자이드는 부하가 건넨 서류를 사납게 낚아챘다.
“…망할.”
차라리 몬스터였으면 좋았겠지만, 현재 무장 단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건 한 명의 헌터였다.
그것도 한국에서 온 헌터.
“김민준 대령이라. 대령이나 되는 놈이 단독으로 움직인다고? 다른 정보는!”
“죄송합니다! 높은 수준의 보안이 걸려 있어, 정보 수집에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네놈들 일이잖아! 다음에도 빈손으로 오면 각오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빨리 꺼져.”
자이드는 괜히 부하에게 화풀이를 했다.
다른 기지에 탱크까지 동원하라는 지시를 전달한 찰나,
-야. 들리냐?
무전에서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 헌터, 김민준이었다.
-난 코리아 헌터 김민준이다. 지금이라도 항복해라. 이 무기들 부숴 버리는 게 아까워서 그래. 사회를 위해서 기부하는 게 낫지 않겠냐?
너희들은 나한테 안 된다.
그러니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얌전히 꿇어라.
그동안 약탈하고 밀반입한 무기들은 다 내놔라.
짧게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의 무전이었다.
“건방진 새끼….”
노골적인 도발.
거기다 실시간으로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 알려 주고 있다.
자이드는 이를 갈며 다른 간부에게 연락했다.
“몸값 협상하고 있는 한국인 100명. 모조리 죽여라.”
놈 역시 한국인이며 군인이다.
한국인 100명을 죽여 버리면 정신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데….
-죽이긴 뭘 죽여. 이미 구하는 중인데.
기다렸다는 듯 비아냥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같잖은 말장난을 하다니.”
놈이 방금 전까지 있던 기지와 한국인을 납치한 기지는 끝에서 끝이다.
차를 타도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라는 말이다.
“네가 괜한 허세를 부린 덕분에, 인질들은 고통 속에서 죽을 거다.”
그렇게 이를 갈며 대답한 찰나.
해당 기지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제6기지! 놈이 왔습니다! 지원을 요청합니다! 화력이 필요…. 자, 잠깐! 끄아아아아!
순식간에 끊긴 무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인간일 뿐이다.”
자이드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놈의 얼굴을 직접 마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
“자. 머리 조심하시고 나오세요. 이제 괜찮습니다.”
한편.
김민준은 피랍된 한국인을 구출하고 있었다.
무장 단체의 기지를 박살 내는 건 그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
“살았다! 우린 살았습니다!”
“역시 교주님 말씀대로였습니다!”
“교주님 덕분입니다!”
흑천교의 교인들은 구출되자마자, 감사 인사를 건네왔다.
“…….”
자신이 아닌 이봉구에게.
“흠, 흠!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힘들 때일수록 동요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면, 이렇게 좋은 결과가…. 허억!”
이봉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의 눈을 마주치고 헛바람을 삼켰다.
마치 귀신을 마주친 듯한 표정.
“교주 놀이 재밌냐?”
“이, 이건 모두 한국 헌터 김민준 대령님 덕분입니다! 우린 그에게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녀석은 재빨리 태도를 바꾸며 귓속말을 건네왔다.
‘김민준 님. 정말 감사합니다! 100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거든요!’
‘너도 참 대단하다. 짧은 시간에 사이비 종교의 덩치를 그만큼 키운 걸 보면.’
‘사이비라니요! 흑천교는 사실, 김민준 님을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이봉구는 머릿수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깨달았다고 말했다.
‘높으신 분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저에게 굽신거리거든요. 잘 부탁한다면서 돈도 찔러 주려 하고. 아! 물론 받지는 않았습니다.’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흑천교는 의외로 역할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자신에 대한 헛소문을 원천 차단하며.
자신의 힘에 대해 나쁜 식으로 몰아가는 시민 단체를 견제하며.
자신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씌우려는 정치인들에게 겁을 준다.
그런 역할들을 조용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단 말이지. 하긴, 높으신 분들이 투표를 왜 무서워하겠어.’
이봉구에게 교주 놀이를 그만하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에게 득이면 득이지 해가 될 것이 없었기에.
‘이봉구.’
‘예, 예! 흑천교는 아쉽지만 여기서….’
‘30만이라고 했지? 더 불려 봐라.’
의외의 대답에 이봉구의 표정이 밝아졌다.
‘맡겨만 주십쇼, 김민준 님! 나중에 마크를 김민준 님의 얼굴로….’
‘그건 하지 마. 대가리 깨 버릴 거다.’
잠시 대화를 나누던 사이.
시리아 정부에서 보낸 후송 차량이 도착했다.
이대로 한국인들을 공항까지 데려다준 뒤, 남은 무장 단체를 정리하면 끝.
“저기 있다!”
“저놈이 우리 기지 박살 낸 놈이다! 죽여!”
후송 차량이 출발하려던 찰나, 언덕 위로 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다짜고짜 차량을 향해 RPG를 날렸다.
자신이 아닌 차량에 말이다.
“정신 나간 놈들이네, 이거.”
어떻게든 인질을 처리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김민준은 심연을 머금은 어둠을 꺼내, 특수 효과를 사용했다.
스스스스.
채찍에서 발현된 어둠이 RPG 탄두를 옭아맸다.
그 상태로 채찍을 휘둘러, 탄두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콰콰광!
허무하리만치 무력화된 RPG.
그 장면을 본 괴한들은 기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허억! 저건 인간이 아니잖아! 자하드 님은 우릴 죽으라고 보낸 거라고!”
“무기 버려! 무기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무장 단체는 끝났다.
저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끼기긱!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쪽에 대기 중이던 탱크 4대까지 무력화되었다.
주포가 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버린 것이다.
“아까 차에다가 RPG 날린 4명. 너넨 나한테 좀 맞자.”
“자, 잠깐! 저희는 그저 명령에 따른 것뿐….”
“그럼 따르지 말았어야지.”
“끄아아아아!”
김민준이 괴한들에게 쓴맛을 보여 주고 있던 도중, 무장 단체의 헌터들이 도착했다.
‘한 번에 몰아친다. 두 번은 없다.’
‘예!’
자이드를 포함한 10명 남짓한 민간 헌터.
그들은 각자 지정한 위치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물량 공세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가장 강한 인원들만 추린 것이다.
‘중국산 마력검을 다룰 수 있는 놈이 3명. 반동이 센 마력 기관총은 3명이라.’
김민준.
놈에게는 일반적인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해, 몬스터에게 사용하는 무기로 무장했다.
‘나머지는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묶기만 하면 된다. 몸을 던져서라도!’
저 한국인에겐 약점이 있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분명 위쪽에서 그러한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여긴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다. 망할 놈.’
자이드는 김민준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이곳은 전쟁터다.
애들 장난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명도 죽이지 않고 모조리 제압한다니.
그런 물러터진 헌터가 있을 줄이야.
‘지금이다!’
놈이 한눈을 팔고 있던 사이, 자이드가 신호를 내렸다.
김민준을 향해 일제히 달려드는 무장 헌터들.
다른 괴한들에 비해 날렵하고 체계화된 움직임이었다.
“어쭈. 이것들 봐라?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군대 놀이 하냐?”
자신에게 있어 이놈들이나 저놈들이나 그게 그거였지만.
“야. 너네들은 이거 하나로도 충분해.”
놈들에게 보라는 듯 슬리퍼 하나를 들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괴한을 두들겨 패던 낡은 슬리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