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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84화 (184/212)

184. 고백

“진지하게 할 얘기라. 얘가 이런 적이 있었나?”

특수 부대나 개인 단련에 대해 상담할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흑마법사라는 정체를 밝힌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만나 볼 필요성을 느꼈다.

“다른 애도 아니고, 얘 정도면 뭐. 나름 가깝게 지냈으니까.”

**

다음 날, 오후.

인적이 드문 골목가 식당.

“후우….”

휴가를 나온 손은서는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그녀는 김민준이 정체를 밝힌 날 충격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가진 힘의 근원에 대해 놀랐다.

병사 때부터 보여 주던 그 말도 안 되는 힘.

뭔가 있을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세계라니.

차라리 외계인이 실존한다는 게 더 신빙성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20년이라… 20년 동안 거기에서 전쟁했단 말이지….”

한국 시간으로는 2년이지만 김민준은 20년 동안 이세계에서 생활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배신감보다는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소환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냥 말만 용사지. 민준이는 쓰다가 버리면 될 뿐인 말이었어.’

그런 핍박받는 생활을 견뎌 낸 데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내색 하나 없이 군대에 입대했다.

무려 5년 동안 의무 복무해야 하는 군대를 말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영영 놓칠 것 같아.’

손은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민준을 따로 불러낸 이유.

옷과 화장에 신경을 쓰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오늘만큼은 심혈을 기울인 이유.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게임에만 정신 팔린 놈이 내 마음을 알겠어? 그냥 내 쪽에서 부딪치는 게 낫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와중,

“네 마음? 뭘 부딪친다고?”

“푸흡!”

어느새 김민준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케흑! 켁!”

그녀는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아니. 개인 훈련에 대한 이야기였어. 요, 요즘 들어 강도가 더 세진 것 같아서….”

“최근에는 김서현 중사가 봐 주고 있다고 했지? 그럼 그럴 만하지. 걔가 의외로 체력이 좋아.”

김민준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는 그녀를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갑자기 또 뭔데.”

“바로 어제,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

“뭐. 또 게임 만렙 찍기 그런 거야?”

“그런 거 말고. 진정한 내 인생의 목표.”

“뭐길래 그래. 뜸 들이지 말고 알려 줘.”

그 말에, 김민준이 씨익 웃으며 계급장을 가리켰다.

“별.”

“별… 별? 별이라고?”

손은서는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곧 종업원의 이목이 집중되자 조용히 다시 앉았지만.

“야…. 장난치지 마. 내가 너 무궁화 다는 거까지는 이해하거든? 아무리 그래도 별은 말이 안 돼.”

“보통은 그렇지.”

별이 왜 별인가.

사령관이라 불리는 준장만 해도 여단장 보직을 맡는다.

‘여단장이 부대에 방문한다.’라는 소리가 들리면 부대가 뒤집히는 그 여단장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별 하나만 더 달면 사단장을 맡게 된다.

지휘관의 꽃으로 불리며 휘하 병력이 1만 명 이상에 이르는 장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요구되는 자리.

김민준이 준장으로 스타트를 끊어 버린 순간, 소장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다는 별은 좀 달라. 여기서 말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그는 할 말을 끝낸 뒤, 여유롭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래서 나한테 말할 게 뭐냐?”

“…가볍게 술 좀 마셔도 될까?”

“부대에서 사고라도 쳤냐?”

“그런 거 아냐. 어쨌든 여기서 할 말은 아니고, 나가서 말할게.”

“싱겁기는. 마음대로 해라.”

**

손은서는 계산을 마치자마자 김민준을 데리고 공원으로 향했다.

“…좋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심호흡을 반복했다.

“아까부터 어색하게 뭐 하냐?”

“에이 씨! 이게 누구 때문인데! 너 때문에 최근 들어 고민이 많다고! 알아?”

“고민? 아. 내가 너무 잘나서 그래? 그건 살짝 미안하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이었다.

“김민준! 나, 너 좋아해! 좋아한다고!”

“…뭐?”

1도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김민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꺼림칙한 기운의 스킬과 흑마법사라는 정체.

이세계에서 구르다 온 인간.

이것에 대해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과 거리를 두면 뒀지, 대뜸 고백해 올 줄 몰랐다.

‘쟤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진급 시험 때 봤었나.’

손은서 병장.

자신이 병사였을 때, 뜬금없는 견제를 해 오던 애였는데.

‘아버지가 사단장이라 다른 애들 깔보고 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지.’

그녀는 아버지의 지위를 이용하지 않는다.

은근히 동기와 후임들을 잘 챙겨 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몇 번 보다 보니, 나쁜 녀석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친해졌지. 쟤가 나를 저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만.’

계기는 분명 사소했다.

밥 한번 같이 먹는 것 정도로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던전에서 단둘이 고립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특별 교육을 받던 때, 그 먼 거리를 내색 없이 면회도 왔었고.

‘다른 쪽에 신경을 쏟느라 눈치를 못 챘네.’

손은서.

같이 있으면 재밌다.

편안하기도 하고, 놀리는 맛도 좋고.

‘내 성격 받아 줄 여자가 흔치는 않지.’

김민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누군지 들었을 거 아니냐.”

“알아.”

“나 껍데기만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뭔 소리야. 너 사람 맞아. 괴물 같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과 일절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재수 없는 헌터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너한테 빠져 있더라.”

“어우, 씨. 느끼해라. 그만해. 닭살 돋는다.”

김민준이 기겁하며 두 손으로 어깨를 감쌌다.

그러자 손은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개진 상태.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좀 듣는 척이라도 해 줘….”

그녀는 그 뒤로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고백을 해 온 것도,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자신을 놓칠까 봐 그랬단다.

그랬다가는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나.

“얌마. 눈물은 왜 글썽거려. 누가 보면 내가 너 울린 줄 알겠다.”

김민준이 피식 웃으며 손은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너도 알고 있지? 외부 세력이 침략하기까지 2년 정도 남은 거. 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응.”

그 말에, 손은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고백에 대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끝까지 들어 봐. 나도 너 싫지 않으니까.”

“…정말?”

“이세계 놈들 침략 막아내고, 다 때려잡은 뒤에.”

“…잡은 뒤에?”

뭔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

김민준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위 계급장 정도는 달고 있어라. 그럼 받아 줄 테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 말에 손은서의 표정이 밝아졌다.

“2년 안에 병장에서 소위? 대위 정도는 달 거야.”

분명 쉽지 않은 길이다.

김민준의 폭풍 같은 진급은 어디까지나 예외로 둬야 한다.

그런 케이스는 전 세계를 뒤져도 없을 테니까.

‘소위. 충분히 할 수 있어.’

힘들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롭게 얻은 스텟 검술이 있다.

새로 발현한 검기라는 스킬까지 있다.

거기다 특수 부대라는 새로운 발판까지.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민준. 너, 내가 찜해 뒀으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기다려.”

“우와, 멘트 봐라. 내가 여자였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시끄러워. 어쨌든 네가 한 말이니까 꼭 지켜. 뒤로 물리기만 해 봐.”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었나?”

여전히 여유로운 저 모습.

손은서는 소위로 그치지 않고, 중위. 나아가 대위까지 달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 정도는 저놈의 예상을 보란 듯이 깨고 싶었으니까.

“시간도 남았는데, 드라이브나 할까?”

“드라이브? 아. 그게 그거야? 하늘을 난다는 아이템.”

“그렇지. 장성이랑 장교, 병사들까지 타 봤지. 하나같이 쩐다더라.”

그녀는 눈앞에 나타난 오토바이를 보고 눈을 빛냈다.

단둘이서 드라이브라.

뒷좌석에 앉는 것이니까, 그것을 핑계로 김민준의 허리를 꼭 껴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올라탔지만….

부아아아아앙!

“간다! 처음은 가볍게 시속 160㎞!”

“아아악! 야! 속도! 속도 줄여 줘!”

“뭐? 더 높여 달라고? 역시 손은서 병장! 그럼 180부터 간다!”

“아아아아악! 나 떨어져! 떨어진다고오!”

그 뒤에 익스트림 스포츠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스릴을 맛보게 되었다.

**

다음 날, 중대장실.

김민준은 평소와 같이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가기 전에 일감을 팍팍 줄여 놓고 가야겠지.”

별것 없는 서류 작업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 어? 컴퓨터 엑셀 버튼 잘못 눌러서 2시간 동안 작업한 게 날아갔네? 그래도 좋아!”

평소 김서현 중사에게 맡기던 문서 작업들을 본인이 도맡아 할 정도.

그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이유는, 준장으로 진급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목표로 잡았던 별을 예상보다 빠르게 달게 되었다.

이것만 해도 만족스러운 수준인데, 힘의 회복까지 순조로운 상황.

“마기 스텟도 꽤 되찾았고. 스킬도 쭉쭉 돌아오고 있고.”

거기다 한술 더 떠 상당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까지 보유하고 있다.

“흠. 아이템까지 전력으로 포함해 보면, 내 전성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충성! 김민준 대령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그렇게 휘파람을 불던 중, 김서현 중사가 들어왔다.

“아, 그전에 진급 축하드립니다!”

“그래. 정신없어 보이네.”

뭔가 다급해 보이는 듯한 표정.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후우….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뭐길래 그러냐. 말해 봐.”

자신의 말에, 김서현이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그… 이봉구가 문제를 일으켜서요….”

분명 그 벌레가 저지른 일인데, 왜 자신이 죄송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지.

김서현은 이봉구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 따귀를 갈겨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김민준 님. 그 벌레 자식이 일을 크게 벌여 놨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흑천교]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전단지였다.

“어둠을 믿는 자, 천국에 가서 안식을 취하리…. 딱 봐도 사이비네.”

어두운 후드를 뒤집어쓴 채 검은 연기를 날려 대는 전단지라니.

저런 중2병스러운 전단지와 이름에 속는 사람이 있을까.

“30만 명이 넘어요. 김민준 님.”

“뭐?”

“저 흑천교의 교인이 얼핏 잡아 30만 명이에요. 그리고 그 교주가 바로 이봉구고요.”

“…30만 명?”

“네.”

“그거. 사이비치고는 꽤 많은 숫자 같은데.”

“흑천교가 만들어진 지 1년도 채 안 지났으니까… 역대급 맞네요.”

김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교주 행세를 하고 있는 건지.

“30만 명? 이놈 요즘 들어 연락이 왜 안 되나 했다. 사람들한테 엄한 짓이라도 하냐?”

“조사해 본 결과,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는 쪽이죠.”

“그래? 그럼 문제가 뭐길래 그러냐?”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거기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돈을 뜯어 간다.

그렇게 권력을 키우고 교인들을 늘린다.

다만.

이봉구가 교주인 이상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터.

“…뭐라고?”

뒤에 이어진 말에, 김민준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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