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흑마법사입니다-2
“이건 서울의 종로구 쪽 상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신세형이 양파 까듯 하나씩 정보를 하나씩 공개해 나갔다.
먼저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이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뭐냐? 저거 사람임?]
[게이트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있는데?]
[합성 아님?]
[확대 좀 해 주세요. 잘 안 보여요!]
서울 상공에 열린 게이트.
사진을 확대해 보니, 게이트에서 여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오후 3시경 발생한 게이트는 약 3분 뒤에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게이트에서 사람이 나타난 적이 있던가?
없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것은 오직 몬스터뿐이다.
그건 수십 년 전부터 틀린 적이 없었다.
“해당 여성은 김민준 대령과 같은 이세계에서 차원 이동을 통해 왔습니다.”
신세형은 그 이세계인이 성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김민준이 앞서 했던 말 때문이었다.
‘불필요한 일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의 유명세는 엄청나다.
성녀의 정체를 알리기라도 했다가는….
과몰입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해당 여성의 말에 따르면, 이세계는 전부터 지구의 침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침략까지 남은 시간은 지금 시점으로 약 2년.
신세형은 지금부터라도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건 이스가르드에서만 존재하는 혈귀라는 몬스터입니다. 인위적인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몬스터죠.”
객관적인 증거 제시와 함께 논리적인 설명이 잇따랐다.
이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이레귤러 몬스터.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등등.
[와…. 미쳤네….]
[몬스터랑 던전만 해도 골 아픈데, 침략이라고?]
[이세계에서 지구를 침략해 온다고요? 세계 3차 대전이야 뭐야?]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졌기도 하고.
무엇보다 김민준이 보여 준 힘을 보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리밍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특수 부대가 필요하다는 신세형의 말을 끝으로, 방송을 종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난하네요.”
김민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국민들의 반감을 최소화하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다.
이 정도면 목표치를 충분히 이루고도 남는다.
“하… 하하.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기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카메라를 회수했다.
눈앞에서 본 스킬들.
꿈에서나 나올까 두려운 소환수들.
적의는 없다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덜컥!
“김민준 대령! 이게 지금 무슨 짓인가!”
“본부 허락도 없이 이런 난동을 피우면 어쩌자는 거야!”
“방금 그건 또 뭔가? 스킬이라고? 뭔 말도 안 되는….”
“신세형 씨! 아무리 안보실장이라 해도 이건 선 넘으셨습니다!”
잠시 후.
본부 소속 장성들이 노발대발하며 훈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본부의 승인 없이 밝힌 정보들.
그것이야 어떻게 넘길 순 있다.
이세계에 관한 건 너무 터무니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정보들은 청와대 안보실이 주관해서 수집했다고 하면, 자신들이 할 말은 없었다.
다만.
“헌터군의 사고 사례를 적나라하게 알리면 어떻게 하나!”
“자네의 위치를 알고 있긴 한가? 자네는 대령이야, 대령!”
“별 달려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헌터군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매우 구체적으로 말이다.
안 그래도 군 복무 기간이 5년으로 늘어 사회적 불만이 많은 상황이다.
저런 문제점들만 콕 집어 알려 버리면, 골치 아파지는 건 장성들이었다.
“저도 웬만하면 좋게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병사를 사살하려 했던 건 넘어갈 수 없더군요.”
김민준이 등 뒤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신세형이 기다렸다는 듯 녹음기를 건네주었다.
-전 110사단 소속의 허윤재 일병입니다.
“그, 그건….”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장성들의 몸이 굳었다.
저건 일종의 폭로였기에.
-대규모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 감염체에게 물렸습니다. 해당 사실을 보고하고 1시간 뒤 대대장님이 다짜고짜 저를 사살하려 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계시던 김민준 대령님이 아니었다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저 사실에 대해서야 알고 있다.
한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치료제를 맞고 복귀하니, 다른 부대로 전출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저보고 마치 죽으라는 듯이 최전방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에 투입시키더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을 내던 장성들이 입을 다물었다.
권력을 이용해 일개 병사에게 복수를 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저 내용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순간 헌터군이 뒤집힐 것이다.
다른 일은 몰라도, 병사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가 민감하다.
정치권에서 움직일 것이 틀림없었다.
“기, 김 대령. 일단 진정하게.”
“진정하고 대화를 나눠 보자고.”
순식간에 입장이 역전되었다.
장성들은 김민준을 살살 달래며,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안 그래도 110사단의 대대장 건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별의 힘을 이용해 어찌어찌 넘겼는데, 저런 짓까지 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미리 입장을 밝히자면, 우리는 저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네.”
“그, 그래! 군복을 걸고 맹세할 수 있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김민준은 아무 말 없이 장성들을 응시했다.
무표정한 시선이지만, 뭔가 화가 나 있는 듯한 느낌.
“해당 병사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시고, 처리하세요. 사과는 당연하고요. 110 사단 김영철 대령, 아직 군복 안 벗었던데요?”
“그건 우리가 잘 처리하겠네!”
“그래야 할 겁니다. 이거 공개되기 싫으면요.”
그 뒤에도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남겼다.
부대 창설에 대한 건을 신속히 통과시켜라, 같은 개인의 요구가 아니었다.
헌터군 부대에 퍼져 있는 고질적인 부조리.
병사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제대로 된 군용 장비의 보급 등등.
병사들을 위한 요구밖에 없었다.
“부대 창설이야 기를 쓰고 반대하셔도 못 막을 겁니다. 제가 다 계산했거든요.”
김민준은 할 말을 마친 뒤 훈련장을 떠났다.
신세형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훑어본 뒤, 김민준의 뒤를 따랐다.
“…….”
장성들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한참 동안.
**
“이건 당장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합니다!”
한편.
김민준의 폭로로 인해, 정치계에서도 큰 파장이 일어났다.
“저건 헌터의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규제시키고 통제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상부에 허가를 거쳐 힘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정치인들이 노발대발하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기까지 하시지요.”
정작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과, 나머지 100명 이상의 정치인들은 반응이 없었다.
“규제와 통제라니. 김민준 대령은 인간 취급도 안 하겠다는 겁니까?”
다른 몇 명의 장성은 그를 감싸기까지.
워낙 냉랭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다 보니, 부정적인 의견을 낸 정치인은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조차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시대의 변화를 따르셔야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세형은 입꼬리를 올리며 한마디 툭 뱉었다.
방금 나오는 반응은 당연했다.
이 일을 대비해, 이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해 왔으니까.
**
[속보! 김민준 대령에 대한 힘의 정체가 공개되다! 그 힘의 근원은 다른 차원?]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로… 외부 세력의 침략. 남은 시간은 2년?]
[외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특수 부대 창설. 선택이 아닌 필수]
[터무니없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문제]
[110사단 대령, 권력 남용 적발. 불명예제대 확정]
다음 날.
언론은 쉴새 없이 기사를 쏟아 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어제 있었던 일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는 중이었다.
“최근 들어 대형 악재가 여러 번 터져서 그런가, 예상보다 쉽게 받아들이는데?”
김민준은 의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에 대한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생각했다.
흑마법사라는 꺼림칙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스킬은 또 어떻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공개할 걸 그랬나?”
어떻게 된 게 비난 여론이 하나도 없을까.
신세형이 그런 부분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이 정도로 깔끔할 줄이야.
“앞으로 2년. 전 세계는 이제 출발선에 올라선 거지.”
자신의 힘에 대해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다 이유가 있다.
이스가르드의 침략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였다.
“놈들이 쳐들어오면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겠지.”
아무리 자신이라도 해도, 많은 사람들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대비를 시작해야 했다.
“그냥 이겨서는 의미가 없지. 완벽하게 이겨야 한다.”
자신이 공개한 정보를 토대로, 러시아는 무기 개발에 들어갔다.
미국 역시 대규모 미사일의 개발에 착수했고.
다른 나라는 아직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차피 시간문제일 터.
“음…. 얘네들은 나 무서워하려나 모르겠네.”
김민준은 부대 입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살짝 걱정되긴 했다.
이병 때부터 함께한 부대원들이 자신을 보고 무서워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중대장니이이임!”
“야! 중대장님 오셨다!”
“와! 흑마법사님이다!”
그런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중대장님! 스킬 다시 한번 보여 주시면 안 됩니까? 직접 보고 싶습니다!”
“그런 스킬 얻으려면 이세계 가는 것 말고 방법이 없는 겁니까?”
병사들이 자신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아…. 생각해 보니 사기 아닙니까, 사기?”
“이거 완전 경력 있는 신입 뽑는 거잖습니까.”
같은 생활관을 썼던 김광식 상병이나 이승호 병장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왜. 너네도 이세계 한번 보내 줄까?”
“어우. 아닙니다.”
“그냥 배 아파서 한번 해 본 말이었습니다.”
장난스러운 대답에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지만.
“오후에 던전 공략 있는 거 알지? 아마 나랑 하는 마지막 던전 공략일 거다.”
이제는 힘을 숨길 필요가 없다.
마지막 공략이니만큼, 화끈하고 확실하게 던전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아…. 결국 가시는 겁니까.”
“여기서 대대장에 사단장까지 다셨으면 좋겠습니다.”
병사 대부분이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의 압도적인 실력과 성과를 보면 예정된 일이기는 했지만….
병사들을 저토록 잘 챙겨 주는 간부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어…. 중대장님?”
“왜.”
“던전 공략을… 이렇게 많이 하시는 겁니까?”
공략 계획표를 확인하던 중, 김광식 상병이 어이없다는 듯 질문해 왔다.
그럴 것이….
철원 근처에 발생한 상당수의 던전을, 하루 만에 클리어하겠다고 했으니까.
“너희는 나랑 던전 2개만 클리어할 거다. 나머지는 그냥 들어가서 마무리만 해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 말에 중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저 시도 때도 없이 불어난 던전 때문에 당분간 잠도 제대로 못 잘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걸 손수 해결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약 20개의 던전.
이걸 고작 하루 만에 처리한다고?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중대장님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오예! 당분간 야간 던전 공략 안 해도 되겠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너네들 개인 정비하고 단련하라고 그러는 거다. 놀라고 하는 게 아니고.”
“예! 알고 있습니다!”
“하여튼 대답은 잘해요.”
그러나, 이제 그런 의심을 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그가 가진 힘에 대해서 알아 버렸으니까.
“그럼 준비 단단히 하고 오후 1시까지 집합할 수 있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
“중대장님?”
“어…. 그걸로 뭐 하실 겁니까?”
오후 1시 30분, 던전 앞.
중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민준이 오토바이 형태의 아이템, 헬 레이서를 끌고 온 것이다.
저걸로 던전 공략을 한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이템이라 해 봐야 이동 수단이었으니까.
“잘 봐라.”
김민준이 헬 레이서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오토바이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