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흑마법사입니다-1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청와대 앞.
기자들은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표출했다.
앞뒤 안 보고 소중한 시간을 써 가며 자리를 잡아 놨다.
그런데 기껏 돌아오는 대답이 흑마법사라니.
이게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김민준 씨! 괜찮다면서요!’
마치 폭동이라도 일어난 듯한 상황.
분위기를 가라앉히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
신세형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김민준이 보란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다크사이더가 소환되었다.
“어, 어어!”
“으아아악! 몬스터다!”
손에 낫만 들려 준다면, 그야말로 사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외형.
그 섬뜩한 모습에 기자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소환한 소환수니까요.”
스스스스.
이어서 발밑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저, 저거 진짜야?”
기자들은 거리를 둔 채, 연신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길 몇 분.
다들 뭔가에 홀린 듯 카메라에 손을 가져갔다.
찰칵! 찰칵!
아무 말 없이 이어지는 촬영.
기자들은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질문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무언의 압박감이 너무나도 심했다.
‘미, 미치겠다. 다리가 자꾸 떨리잖아.’
그럴 수밖에.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에 사신 형체의 괴물을 실제로 마주하고 있다.
느껴지는 섬뜩한 공포.
저건 절대 트릭 따위가 아니었다.
“너무 겁먹으신 거 같네요.”
김민준은 머뭇거리는 기자들을 향해 활짝 웃었다.
이 정도 반응이야 당연히 예상했다.
오히려 도망치지 않고 자리에 남아 있는 게 의외일 정도.
“아직 보여 줄 게 많은데…. 기자 한 명 선착순 손!”
“코, 코리아 일보의 김상국 기자입니다!”
“오케이. 김상국 기자. 저랑 유튜브 스트리밍 한번 가시죠.”
“헉! 정말입니까?”
김민준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보유한 스킬을 몇 개 더 공개한 뒤, 언론사 1곳에 독점 인터뷰 기회를 주는 것.
“김민준 씨! 저는 고려 일보의….”
“저는 매일 일보의….”
그러자 다른 기자들이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달라붙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다.
“김상국 씨.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감사합니다! 열정을 다해 인터뷰하겠습니다!”
기자는 김민준과 군용 차량에 탑승해 군부대로 이동했다.
**
“신세형 씨!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방금 김민준 대령이 보여 준 건 대체 뭐란 말입니까!”
해당 영상이 퍼져 나가며 한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아니, 한국뿐이면 다행인 상황.
현재 전 세계가 김민준을 주목하고 있다.
거기다 상황 파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헌터 본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니.
본부 소속 장성들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알아야 하는 정보고요.”
신세형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미 저 영상들이 공개된 이상, 더 이상 무를 수도 없다면서.
“김민준 대령의 힘의 본질. 그리고 예정된 위협에 대해 발표할 겁니다.”
“힘의… 본질? 위협은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은 헌터 본부다.
아무리 청와대 안보실장의 부탁이라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예외가 한 번 생기면 두 번 생기고, 세 번 생긴다.
장성들은 강하게 따지고 들려 했지만….
스스스스.
“허, 허억!”
김민준의 뒤를 따라다니는 소환수를 보고 물러나기 바빴다.
**
“김민준 씨! 카메라 세팅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특수 훈련장 안.
기자가 카메라를 세팅하는 동안, 신세형이 각종 발표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곧 시작되는 스트리밍에는 엄청난 시청자가 몰릴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이 사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최종 검토까지 3일 정도 시간이 있으면 좋았겠는데요….”
자료를 넘기던 신세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랴부랴 관련 자료들을 챙기긴 했지만….
저렇게 화끈하게 질러 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제가 생각하는 최적의 타이밍이 지금이거든요.”
김민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대책 없이 질러 버린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힘에 대해서야 미리 생각해 두고 있었지.’
한국만 납득시켜서는 의미가 없다.
전 세계를 주목시키고, 설득시켜야 했다.
2년 뒤의 일을 대비하려면 말이다.
한미 연합 훈련 중 발생한 사고가 딱 좋은 명분이 되어 주었고.
“거기다 이거 보세요. 구독자 수 쭉쭉 불어나는 거. 이때 아니면 언제 채널 키우겠어요?”
김민준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아직 방송을 켜지도 않았는데, 헌터군 공식 채널의 구독자가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이래서 굳이 스트리밍을 하시겠다고 하신 겁니까.”
“그렇죠. 유튜브 덩치가 커지면 얻을 수 있는 홍보 효과는 막대하니까요. 요즘 헌터의 수가 줄고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특수 훈련장 안에서 진행하시는 것도 일부러 그런 거였네요.”
“역시 신세형 씨.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신세형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얼핏 보면 막 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그 밑에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김민준 씨! 준비 끝났습니다!”
“오케이. 신세형 씨도 괜찮죠?”
“후우. 예.”
신세형이 심호흡을 끝내자, 본격적인 방송이 시작되었다.
[오! 진짜 김민준이다!]
[아까 보여 준 거 도대체 뭐임?]
[그거 뭐임? 스킬임?]
[ㄷㄷㄷ뭐냐 저거. 아직도 김민준 뒤에 떠 있는데?]
[와 씨. 저게 스킬이라고?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나?]
[뭐야! 왜 도네이션 막아 놨어요! 열어 줘요!]
순식간에 불어나는 시청자 수.
한국인 뿐만 아니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등.
수많은 사람이 채널에 몰렸다.
“안녕하세요! 헌터군 채널에서 인터뷰를 맡은 김상국 기자라고 합니다!”
“104사단 무적 헌터 부대 소속 김민준 대령입니다. 반갑습니다.”
처음에는 계획된 대로 기자의 가벼운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김민준 대령 하면 이제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돈데요! 글쎄, 알고 보니 흑마법사라고 합니다!”
그가 굳이 군대를 거치지 않고 이런 형식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위쪽에서는 은폐하거나 왜곡할 확률이 높다.’
당장 대령만 해도 정상이 아닌 놈이 섞여 있었다.
얼마 전, 대규모 게이트에서 병사를 사살하려 한 것을 보면 그렇다.
영관급 장교만 해도 그런데 장성들은 어련할까.
‘이 기회를 이용해 장성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거지.’
자신은 곧 부대를 떠난다.
그렇게 되면 무적 헌터 부대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알리려 한 것이다.
이세계와 자신이 가진 힘뿐만이 아니라, 헌터군이 가진 문제점까지 말이다.
그래야 바뀌려는 노력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제가 보유한 스킬은 26개입니다. 평범한 헌터는 불가능한 숫자죠.”
가벼운 인터뷰가 끝나고, 김민준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훈련장으로 향한 뒤 스킬을 하나씩 시전했다.
스스스스.
격리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짙은 마기.
그리고 흑마법사라는 말이 납득될 수밖에 없는 여러가지 스킬들.
[…….]
[와….]
[미쳤네….]
[진짜 맞죠, 저거?]
[뭔 탁자가 순식간에 썩어들어 가냐?]
시청자뿐만 아니라, 신세형과 기자 또한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자신들이 알던 스킬이 아니었다.
저걸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부터 제 과거 이야기를 들려 드릴 건데,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김민준이 스킬 시범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2년 전. 그러니까 19살쯤이죠. 저는 이스가르드라는 이세계로 소환되었습니다.”
이스가르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세계.
김민준은 그곳에서 성녀에게 소환되어, 흑마법사라는 직업을 부여받았다.
거기까지만 들어 보면 누구나 꿈꾸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말도 안 되게 강한 힘
그리고 화려한 스킬.
용사라는 칭호까지.
하나,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랐다.
“한국 시간으로는 2년이 흘렀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20년이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죠. 지옥이었습니다.”
소환되자마자 격발도 제대로 안 되는 총을 지급받은 채, 전쟁터로 던져졌다.
죽으면 그걸로 끝.
흑마법사의 힘을 사용하는 법도 몰랐다.
“저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15살. 16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요.”
자신은 어떤 대단한 목적을 위해 소환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제국의 이익을 위해 이용된 말에 지나지 않았다.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다 보니, 조금씩 강해졌습니다.”
전쟁터에서 같이 구르다 보니 동료가 생겼고.
살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뭉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흑마법사 집단이었다.
“성녀는 지구에 귀환하는 것을 미끼로 저를 꼬드겼습니다. 이번 일을 해낸다면 귀환에 가까워진다. 한 번 더 하면 된다, 라고요.”
[…….]
[…….]
채팅창은 고요했다.
본래 시청자들은 김민준에게 태클을 걸려 했었다.
그 엄청난 힘을 가졌으면서 왜 지금까지 숨겼냐.
이 세계에 대한 것을 왜 숨겼냐.
자기 혼자 좋은 곳 가서 꿀을 빨고 오면 다냐.
그렇게 채팅을 치려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겪은 일들은 지옥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사선을 넘으면서 얻게 된 힘.
제국에 이용당하면서도, 제대로 된 취급을 받지 못한 용사.
어떻게든 그 힘을 이용하려고 안달 난 이세계인들.
본래의 성격을 유지한 게 기적일 정도.
[…복수를 하고 싶지는 않으셨나요?]
과거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시청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고, 그만큼 당한 것들이 많다면….
어째서 돌려주지 않았을까.
이어지는 그의 대답에 시청자들이 감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제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동료들에게 해가 갈까 봐 참았다.
동료들이 살아가는 데 불편해질까 봐 참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만한 일을 겪고도 한국으로 귀환한 뒤,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입대했다.
그것도 귀환한 바로 다음 날 말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민준 님.]
[그렇게 고생하고도 저희들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감사의 채팅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1시간.
고작 1시간이라는 시간에,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김민준 씨… 정말 무서우신 분이다.’
신세형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흑마법사라는 꺼림칙한 힘.
그런 힘을 보유하고도 굳이 숨겨 온 행동.
증명하기 힘든 이세계의 존재.
이것들을 고작 1시간 만에 해결한 것이다.
‘여기서는 감성적으로 나간 것이 정답이었다.’
때로는 감성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시청자를 모아 그 효과를 극대화했고.
‘지금까지 김민준 씨가 쌓아 온 이미지. 그것들이 부스터 효과를 내고 있다.’
신세형이 침을 꼴깍 삼키는 사이, 김민준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 타이밍입니다. 신세형 씨.’
‘예. 맡겨 주세요.’
저 사람은 자신이 감동할 틈도 안 주는 건지.
신세형은 카메라 앞에서 가져온 자료를 공개했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 없던 자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