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헬 레이서
“자동차 키처럼 생겼네.”
“딱 봐도 그렇게 생기긴 했어.”
값비싼 외제 차에서나 볼 법한 스마트키.
겉으로 보면 이게 아이템인지 차 키인지 구별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배려가 부족하네. 무슨 설명서가 영어로 되어 있냐.”
물론 김민준에게는 아무 상관 없었다.
아이템의 정보가 알아서 떠올랐으니.
[헬 레이서]
버튼을 눌러 헬 레이서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헬 레이서는 오토바이의 외형을 지니고 있으며, 지상과 공중을 오갈 수 있습니다.
기력을 연료로 사용합니다.
유사시 전투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전투 모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야…. 이거 미쳤는데.”
하늘을 날 수 있는 오토바이.
이것만 해도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강력한 흑마법을 다룬다 해도, 하늘을 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날아다니는 건 이스가르드에서도 숙련된 마법사만 가능했었지.’
하늘을 날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아이템은 공식적으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일 터.
헬 레이서 역시, 공식적으로 발표한 아이템이 아니었으니.
“이거 도대체 몇 급짜리 아이템이냐? 아무리 낮게 잡아도 A 이상인데.”
헬 레이서의 효과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려 전투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야? 민준이 너 이걸 다 읽을 수 있어? 나도 영어는 꽤 잘하는 편인데,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서 못 읽겠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이유나 소위가 의외라는 듯 물어 왔다.
“흠흠. 아주 술술 읽히네.”
김민준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밖으로 나갔다.
지금 당장 이걸 사용해 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부대에서 구석진 곳에 있는 넓은 부지 안.
그는 주위에 헌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템을 꺼냈다.
“대령이라는 게 편하긴 편하다니까.”
아이템에 관한 등록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전화 한 통으로 끝.
계급도 계급이지만, 미국 국방부 측에서 미리 말을 해 둔 덕분이었다.
“여기서 오토바이가 나온다는 말이지?”
“그렇지.”
이유나 소위는 기대감에 군침을 삼켰다.
그럴 것이, 아이템 테스트를 핑계 삼아 김민준의 등 뒤에 탈 기회가 생겼으니.
꾸욱.
버튼을 누르자, 스마트 키가 진동을 하며 크기가 커졌다.
“오….”
“우와….”
몸집을 부풀린 뒤 이리저리 변형하며 나타난 헬 레이서.
그 과정을 바라보던 김민준과 이유나 소위가 감탄사를 뱉었다.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멋있는데.”
“그러네. 딱 보면 그냥 비싼 오토바이처럼 생겼어.”
검은 빛깔을 띠는 몸체.
보통 오토바이와 비교해 보면 2배 이상 거대하다.
거기다 거대한 바퀴에서는 붉은빛이 은은하게 발산되고 있다.
“좋아. 바로 테스트해 볼까.”
“아! 잠깐만! 나도 타도 될까?”
헬 레이서 위에 올라타자, 이유나 소위가 기다렸다는 듯 뒷자리에 앉았다.
“나 이거 처음인데. 익숙해지고 나서 타지 그러냐.”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뭐. 괜찮아. 안 떨어지게 꽉 잡을 테니까.”
“그러냐? 그럼 바로 간다.”
콰콰쾅!
폭탄이 터질 것 같은 배기음과 함께, 헬 레이서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5분 뒤.
이유나 소위는 헬 레이서에 탄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아아아악!”
“이거지! 하늘을 날아도 멋있게 날아야지!”
“야! 속도 줄여 줘! 제발! 나 기절할 것 같단 말이야아악!”
“뭐? 더 높여 달라고? 진작에 말을 하지!”
“아니라고오오오!”
콰콰콰콰!
“꺄아아아악!”
“아하하하. 좋아 죽네. 그럼 여기서 360도 회전!”
“하지 마아아악!”
그녀는 기겁하며 김민준의 허리춤을 꽉 잡았다.
자신이 같이 타기도 해서 살살 다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배려라는 게 하나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일 줄이야.
“뭐야! 너 도대체 뭔데!”
이유나 소위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분명 이 오토바이는 김민준이 처음 다루는 아이템이다.
설령 오토바이를 운전해 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는 의미가 없었다.
공중을 누비고 있으니까.
처음 써 보는 아이템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콰아아!
“이야. 이거 손맛 죽여 주네. 소리가 큰 게 살짝 아쉽긴 하다만.”
하늘을 휘저은 지 약 30분이 지나서야, 김민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착륙했다.
그에 비해 뒷좌석에 앉은 이유나 소위는 퀭한 얼굴이었다.
“나, 나는… 먼저 가 봐야겠어…. 우욱!”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후다닥 사라졌다.
“이 재밌는 걸 조금밖에 못 즐기다니. 안타까워라.”
콰콰콰콰!
이제 막 헬 레이서에 대해 감을 잡기 시작했을 뿐이다.
김민준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아이템 적응에 집중했다.
**
그로부터 3일이 지났다.
-한미 연합 훈련 도중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미국 대통령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이슨 대위가 말했던 대로 미국 대통령이 공식으로 사과 발표를 했다.
이례적인 신속한 대응과 사과.
한국 정부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것이, 대통령이 앞에 나설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해 규모가 크다곤 하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기에.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 확보 및 미군 헌터를 구출한 김민준 대령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
눈치 빠른 병사와 장교들은, 김민준을 의식해서 저런 발언을 했으리라고 예상했다.
“중대장님이 크게 다치기라도 하셨어 봐. 우리도 그렇고, 러시아 대통령도 엄청 화냈을걸?”
“그렇지. 사고 터졌을 때도 러시아 쪽에서 기사 내고 그랬잖아.”
이제는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대령이라니.
중대원들은 그런 김민준이 자랑스러웠다.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말이다.
콰콰콰콰!
“오늘도 간다! 깐따삐아!”
“…또 시작이시네.”
“몇 일째냐?”
“오늘로 3일째.”
물론 본인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중대장님! 저희도 한번 태워 주시면 안 됩니까?”
아무리 구석에 박혀 있는 부지라도 소문은 막을 수 없는 법.
김민준이 헬 라이더를 사용한 지 2일 차에, 아이템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사실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을 그렇게 휘젓고 다니는데 소문이 안 퍼질 수야 없었지만.
“안 된다. 어제도 태워 달라더니 떨어져 놓고. 위험하게시리.”
“이번에는 제대로 잡겠습니다!”
“힘 스텟 50 찍고 오면 태워 준다.”
“큭….”
“그것보다 당장 내일 던전 공략 있는 거 알지? 준비 잘들 해 놔라.”
“예….”
김민준은 간단하게 전달 사항을 말한 뒤 부대 밖으로 외출했다.
이전, 청와대 안보실장 신세형이 말한 부대 창설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김민준 씨! 마침 도착했을 때 오셨군요! 여기 차에 타시면 됩….”
부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세형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두 눈을 비볐다.
콰콰콰콰!
“어, 어어? 김민준 씨?”
오토바이가….
오토바이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게다가 버튼을 누르자, 스마트 키로 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닌가!
“방금 그건… 뭔가요? 아이템?”
“안녕하세요. 아, 이거 미국 대통령님한테 받은 거죠. 꽤 맘에 드네요.”
“미, 미국 대통령님이요?”
“사과 및 감사의 의미로 받은 거죠. 한번 타 보실래요?”
“…괜찮습니다. 전 높은 곳을 싫어해서요.”
두 눈을 깜빡거리던 신세형은 재빨리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오늘은 그 어떤 때보다 침착해야 했기에.
**
청와대 국가 안보실 한편에 마련된 회의실.
김민준과 신세형은 여러 자료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다.
부대 창설의 시기.
창설 시 몇 명의 팀원을 선발할 것이며, 그 기준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임무를 주로 수행할 것인가 등등.
“무엇보다 중요한 건 김민준 씨의 힘이죠.”
소수 정예 부대를 창설하는 건 매우 까다롭다.
괴물 같은 실적의 김민준과 청와대 안보실장이 서포트를 해 줘도 말이다.
여기서는 그의 힘을 드러내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이세계, 이스가르드.
그곳에서 지구를 침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민준 대령이 창설하려는 부대는 이스가르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우선 명목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게 문제네요.”
“그렇습니다.”
이세계인들의 침략.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던전, 게이트, 몬스터, 헌터 등등.
이것들만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가장 좋은 건 침략해 오는 놈들을 두들겨 패고 생포하는 거긴 한데….”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성녀의 등에 찍힌 노예의 낙인이 노바 제국의 것이었으니.
“성녀는 침략을 주도하는 세력이 노바 제국이라고 했습니다.”
놈들은 철저하게 득과 실을 따진다.
자신들이 불리할 것 같으면 발조차 들이지 않는다.
이득을 보는 것보다 잃는 게 많으면, 역시나 움직이지 않는다.
“노바 제국이라… 그렇군요.”
신세형이 생각에 잠겼다.
이세계에 대한 정보를 나이트 워커에게 넘겨받아, 잘 알고 있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임팩트를 주는 게 베스트겠네요.”
침묵이 길어지려 하는 도중, 김민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밑 준비는 다 끝났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다만,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은지….”
신세형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딱히 다른 방법이 없기도 하고.
이 이상 부대 창설을 미루면 골치 아파지기도 했다.
그래도 염려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한번 믿어 보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김민준은 활짝 웃으며, 기자 회견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
그로부터 1시간 뒤.
청와대 앞은 기자들로 바글거렸다.
청와대 안보실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기자 회견을 열었기 때문.
“어어! 거기 제가 먼저 들어왔어요! 카메라 설치된 거 안 보입니까?”
“그런 게 어딨어요? 그쪽이 자리 30분 넘게 비우신 거 봤거든요?”
“아오! 밀지 말고 좀 비켜 봐요! 기자 하나가 자리를 뭐 그렇게 차지해?”
“뭐요! 발 빠른 사람이 임자인 거 몰라요?”
김민준 대령에 대한 힘의 진실이라니.
이건 말만 들어도 특종 기삿감이었다.
“하긴. 보유한 스킬만 해도 26개라잖아.”
“전문가들 말로는 절대 보유할 수 없는 숫자라던데?”
기자들이 말을 주고받던 사이, 주위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김민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수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기자들이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 냈다.
“김민준 대령님! 청와대 안보실장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힘의 진실이라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만한 스킬을 보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일부러 힘을 숨기고 계셨던 이유가 따로 있으십니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청와대 앞.
신세형이 나서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김민준이 괜찮다며 제지했다.
“시간 질질 끌 것 없고 바로 말하겠습니다.”
그는 기자들을 슥 둘러본 뒤,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전 흑마법사입니다.”
“…….”
그 말 한마디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격한 반응이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