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제 스킬입니다
“제가 사용한 스킬입니다. 확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새… 미군 병사의 스킬이 워낙 큰 피해를 줘서요.”
“헉….”
“바, 방금 저 거대한 토네이도를… 김민준 대령님이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잭슨 병장 같은 케이스도 드문 편이다.
의식을 잃었는데도 스킬의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으니까.
“커억! 컥!”
“이놈 당장 옮겨!”
“예!”
물론 그는 스킬의 반동이 엄청난지 피를 토하며 의식을 잃었다.
‘그래. 저게 정상이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털어 내는 김민준.
제이슨 대위는 그 모습을 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멀쩡했으니까.
‘스킬을 사용하면 반동이 온다.’
강력한 총기를 사용하면 큰 충격이 오는 것처럼, 스킬 또한 마찬가지다.
위력이 강한 스킬을 사용할수록 시전자에게 부담이 온다는 말이다.
물론 효과도 적고 단순한 스킬은 해당이 안 되긴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저건 말이 안 된다.’
100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한 자연재해.
방금 전 발생한 토네이도는 그것조차 한 수 접어야 했다.
-콰콰콰콰콰!
제이슨 대위가 아무 말 없이 카메라 영상을 틀었다.
카메라 안에는 조금 전 일어난 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 대령… 자네는 대체….”
“오 마이 갓….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군.”
“다, 다시 한번 돌려 봅시다. 천천히 다시!”
이준범 대령과 라이언 대령은 영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장교들도 마찬가지.
“…….”
CG.
차라리 저게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CG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터무니없었으니까.
‘그렇게 겁먹은 거 같지는 않은데.’
김민준은 마른침을 삼키는 장교들을 보며, 어느 정도 확신했다.
힘을 드러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순탄하리라는 것을.
‘힘에 대해서야 어차피 시간문제였지.’
여기서도 어떻게 넘어가려고 하면 넘어갈 수야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받아야 할 성과는?
운이 좋다면 VIP가 받아야 할 아이템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허무하게 날려 버리는 것은 싫었다.
-콰콰콰!
장교들은 녹화된 영상을 10번 넘게 돌려 보고 나서야 카메라를 껐다.
“하하…. 웃음밖에 안 나오네….”
사막처럼 타들어 간 대지.
새까맣게 타오르다 만 건물과 풀들.
잭슨 병장이 지닌 스킬의 위력은 진짜였다.
그 거대한 불덩이를, 말도 안 되는 토네이도를 일으켜 집어삼킨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미군 장교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건 다른 장교들도 마찬가지.
스킬에 대한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연구도 한창 진행되고 있고.
한데, 방금 김민준이 보여 준 장면은 앞의 것들을 모조리 박살 내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를 뒤져 보아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킬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어설프게 은폐하려다 큰일 납니다.”
김민준은 장교들을 살핀 뒤 말을 뱉었다.
“있는 그대로 발표하고, 공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제 힘의 근원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힘의 근원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장교들은 질문을 퍼붓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지만,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지금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었다.
“기, 김민준 대령님!”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제이슨 대위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그, 그… 영상을 공개하려면 김민준 대령님이 사용하신 스킬을 알아야 하는데….”
스킬 명을 알려 달라는 말.
김민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마기 폭풍.”
**
한미 연합 훈련은 당연히 중지되었다.
훈련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으며, 주위 일대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다.
훈련보다는 피해 복구가 우선이었다.
[한미 연합 훈련 도중 대형 사고 발생.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훈련장이 통째로 날아가.]
[사고 원인은 훈련 규정을 어기고 스킬을 사용한 미국 헌터 때문.]
[거대한 불덩이를 집어삼킨 토네이도. 그야말로 신이 내린 타이밍. 하늘이 내린 선물?]
[자칫했으면 주위 민가에까지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자연재해가 추가 피해를 막아.]
[김민준 대령, 훈련 규정을 어긴 잭슨 대령을 단신으로 구해.]
사고 규모가 규모다 보니 언론에서는 쉴새 없이 기사를 쏟아 냈다.
다만, 김민준에 대한 사실은 쏙 빼놓은 채였다.
헌터 본부에서 인위적으로 빼라고 지시한 것이다.
“중대장님. 진짜 몸 괜찮으십니까?”
“병원 안 가셔도 됩니까?”
“검사라도 받아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다 보니 부대원들이 진실을 알 리 없었다.
“그만 좀 물어봐. 나 멀쩡하다.”
시도 때도 없이 같은 질문을 해 대는 부대원들.
김민준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휙휙 내저었다.
현재 그는 병사들과 함께 피해 복구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허…. 진짜 중대장님 몸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나?”
“강철도 더럽게 뜨거우면 녹아 멍청아.”
“이래서 문과는 안 된다니까. 강철의 녹는점은 최소 1,400도다. 미국 국방부에서 발표한 온도는 250도에서 400도 사이라고.”
“저놈 또 잘난 척하네. 지잡대 공대 주제에.”
“뭐 새꺄? 문과는 좋은 대학 나와 봐야 뭐 있냐?”
별것 아닌 걸로 투닥거리는 병사들이 있나 하면,
“와…. 어떻게 마지막까지 남으실 생각을 했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 말이. 병사들 먼저 대피시키라고 하고, 중대장님은 마지막 1명까지 구한다고 남으셨잖아.”
“진짜 영웅이다, 영웅.”
“그것보다 잭슨 병장이라고 했나? 그놈 감옥에 집어넣어야 되는 거 아니냐? 사람 다 태워 죽일 뻔했는데.”
김민준을 극찬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어느 병사든 간에, 현재 대화 주제는 김민준이었다.
“대령이 열심히 삽질하는데 자꾸 잡담할래. 여기서 나랑 체력 훈련 한번 할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훈련이라는 말에 재빨리 작업을 재개하는 병사들.
“김민준 대령님. 잠시 괜찮으십니까?”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인 와중 미군 장교가 다가왔다.
제이슨 대위였다.
“네. 그러죠.”
미군 병사의 잘못이 100%라, 피해 복구 작업은 첫날만 한국군이 거들기로 되어 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삽을 내려 두었다.
“너희들도 적당히 쉬다가 복귀해라. 나머지는 미군들이 알아서 한다니까.”
“예!”
“감사합니다!”
“복귀하면서 김서현 중사한테 콜라 사 달라고 말해. 선탑 간부로 온다니까. 돈은 내가 나중에 준다고 전하고.”
“헉!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오예! 자판기에 콜라 다 떨어졌는데, 나이스다!”
환호성을 지르며 휴식을 취하는 중대원들.
녀석들을 뒤로한 채 제이슨 대위를 따라갔다.
제이슨 대위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피며, 천천히 이동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전달 사항이길래.’
뇌물이라도 쥐여 주고 미국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해 올까?
아니면 대참사를 막고 미군을 구했으니, 비밀리에 훈장이라도 주려는 걸까?
김민준의 예측은 둘 다 빗나갔다.
“…이걸 준다고요?”
“그렇습니다.”
한미 연합 훈련에서 VIP 헌터에게 지급 예정이었던 아이템을 건네온 것이다.
‘뭔진 모르겠지만 1명한테만 주는 거니 좋은 거겠지.’
입꼬리가 절로 실룩거렸지만, 예의상 한 번 거절해 주기로 했다.
“훈련은 중간에 중지되었습니다. 전 정당하게 아이템을 전달받고 싶습니다.”
“정당하게 지급하는 겁니다. 김민준 대령님.”
제이슨 대위는 김민준의 인간미에 속으로 감탄했다.
저 사람의 입에서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는 이 아이템은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하기로 했다.
“VIP 헌터는 훈련 중지 직전까지의 점수를 평가해 선정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공정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씨익 웃으면서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제이슨 대위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아. 잠깐.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김민준에게 아이템을 건네려다가 멈췄다.
노골적으로 뜸을 들이는 모습.
“뭔가요?”
기분도 좋겠다,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주기로 했다.
“이건 본래 지급되려던 아이템이 아닙니다. 훨씬 좋은 아이템이죠.”
무려 미국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인해 바뀐 아이템이라고 했다.
“당연히 피해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도 전액 미국 국방부 측이 부담할 예정입니다.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이고요.”
거기다 그치지 않고, 훈련 성적이 우수한 부대에게 지급할 영약까지 분배한다고 한다.
역시 미국.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사용하는 만큼 화끈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제가 미국에 악감정을 가질 일은 없을 겁니다.”
자신의 말이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제이슨 대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든지 말씀하셔도 됩니다, 김민준 대령님.”
“잭슨 병장인가 뭔가. 그놈은 어떻게 됐죠?”
“피해 금액의 30%를 부담하게 한 뒤 군사 재판을 받을 겁니다. 물론 그를 꼬드긴 병사도 확인되어 같이 넘겨진 상태고요.”
둘 다 군복을 벗을 것이라는 말에, 김민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 처리가 마음에 드네요.”
**
“김민준 대령님! 괜찮으십니까?”
중대장실.
부대로 복귀하기 무섭게 이유나 소위가 달려왔다.
그녀는 김민준의 얼굴을 붙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미 연합 훈련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나.
“괜찮으니까 얼굴 좀 그만 주물럭거려. 그리고 둘만 있을 때는 말 놓으라니까.”
“휴우…. 다행이다. 멀쩡하네.”
이유나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야, 안도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고의 원인이 미군 병사라고 했지? 내가 있었으면 토할 때까지 패는 건데.”
그녀는 본래 이번 훈련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하필이면 훈련 전날 소대장이 급성 맹장염에 걸려 부대에 잔류해야 했지만.
“듣기로는 이번 훈련부터 스킬 사용이 허가됐다면서? 내가 갔으면 미군들 정신 못 차렸을 텐데.”
“미국 헌터들 수준 꽤 높던데. 나름 활약이야 했을 것 같다만.”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너 왜 나한테는 스킬 숨겼어?”
대화 도중 이유나가 팔짱을 낀 채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스킬 26개를 보유해, 측정기를 20개나 달았다는 말이 안 퍼질 수가 없었기에.
“내가 스킬 26개 가지고 있다고 했으면 믿었겠냐?”
“당연히 안 믿기야 하겠지. 그런데 넌 아예 스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잖아?”
“그래서 열 받는다고?”
실실 웃으면서 대답하자, 그녀가 졌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열은 안 받아. 그냥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얼얼할 뿐이지.”
“스킬에 대해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나중에 정리하면 발표할 생각이다.”
김민준은 그 대신 비밀로 하려고 했던 아이템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아무한테도 안 보여 준 거야. 너한테 처음 보여 주는 거지.”
자신에게만 처음 보여 준다라.
그 말에, 이유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빛냈다.
“뭐? VIP 아이템? 그걸 네가 받았어?”
“오해하지는 말고. 훈련 중단 전까지 내가 훈련 점수 1위였다는데?”
김민준이 보라는 듯 검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본래 지급 예정인 아이템보다 더 좋은 걸 넣었다고 했나?’
그래 봤자 뭐 큰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하며 상자를 열었는데….
“뭐냐 이거?”
“뭐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안에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