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돌발 상황
이번 훈련에서 위험한 스킬은 사용할 수 없다.
잭슨 병장이 보유한 스킬, 플레임 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사용하는 건 과하다.’
플레임 볼은 축구공만 한 크기의 불덩이를 만들어 내는 스킬이다.
하급 몬스터 정도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다.
다만.
제어가 어려워 위급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았다.
‘다른 소대원 한 명이 여헌터한테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도를 넘는 도발을 하는 것도 놈들이고.’
위력을 조절해 겁만 좀 주면 되지 않겠냐는 동기의 말.
잭슨 병장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 훈련에 한국 헌터가 기세등등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다.
허무하게 기지를 털렸다 보니, 미군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고.
‘좋다. 우리가 공격이니 이걸로 살짝만 흔드는 걸로 하지.’
‘그래. 그 정도는 해도 괜찮다니까! 어차피 스킬 측정기가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까지는 모르니까.’
두 명의 헌터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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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토벌 훈련이 재개된 지 1시간이 지났다.
“기지 입구 쪽에서 사망자가 10명 발생했습니다! 4중대장님이 지원을 요청하셨습니다!”
“4소대! 바로 지원 가라!”
“예!”
“3소대랑 2소대에서 7명씩 나와서 4소대 자리 채워 넣고!”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지시에 부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적들의 공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거셌다.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전략이 필요 없다는 것처럼 입구 쪽으로 무작정 돌진해 온 것이다.
‘5시간 만에 기지가 털렸으니까 자존심이 용납 못 하나 본데.’
몬스터 토벌 훈련은 방어하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
기지 내에서 방어하기 좋은 지점에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안쪽에 배치된 3대의 마력 기관총이 엄청난 화력을 발휘한다.
‘3대 중 1대는 기지 외곽까지 사거리가 닿지. 2대는 기지 내부에서 방어할 때 유용하고.’
이 때문에 몬스터 역할을 맡은 쪽은 시간을 끈다.
2일의 제한 시간.
그 시간 동안 이리저리 견제하며 간을 본다.
수비 측의 체력을 고갈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절차를 다 무시하고 들어온다 이거지.’
이번에는 스킬 허용이라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보니, 저런 대담한 전략을 펼치는 것이다.
사실 전략이기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중대장님! 기지 입구 뚫렸답니다!”
“1소대. 5명씩 나눠서 B랑 C 지점에 지원 가라! 마력 기관총 사수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예!”
스텟의 우위.
그리고 스킬의 우위.
미국 헌터가 여러모로 스펙이 높은 덕분에, 기지가 돌파당했다.
-이대로 소모전으로 간다면 저희가 이길 것 같습니다!
다만.
부대원들이 기를 쓰고 마력 기관총을 지킨 덕분에, 적들의 피해 또한 만만치 않았다.
무리하게 돌파해 온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뭐지. 너무 시시한데.”
무전을 들어 보면 자신이 굳이 나설 필요까지 없었다.
이대로 몬스터 토벌 훈련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하품이 나올 지경.
“응?”
“주, 중대장님! 이거 보십쇼!”
그렇게 하품을 하는 사이, 기지 밖을 경계하는 헌터가 망원경을 건네왔다.
화들짝 놀란 표정.
무슨 일인가 싶어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을 들여다보았다.
“뭐냐 저거?”
허공에 떠올라 있는 구체 하나.
축구공만 한 구체는 불씨를 튀며 점점 상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스킬인가 보네.”
구체 밑에 기절한 듯 축 늘어져 있는 미국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근처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동료가 있었고.
“딱 봐도 사용이 금지된 스킬 같은데.”
저 불덩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재빨리 보고부터 했다.
“대대장님. 기지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상공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미군이 사용한 스킬로 추정됩니다.”
-이상 현상? 확인해 보겠다.
그로부터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군 장교에게 답변이 왔다.
-저건 미군 측의 잭슨 병장이 보유한 스킬로 확인되었습니다. 즉시 훈련을 중단한 뒤, 병사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다급한 목소리.
장교는 즉시 훈련장 밖으로 벗어나라며 소리를 질렀다.
왜에에에에엥!
-현재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모든 헌터들은 훈련을 중단한 뒤, 즉시 기지 밖으로 대피하십시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현재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사이렌과 함께 즉시 훈련이 중단되는 걸 보면, 저 스킬은 보통 스킬이 아닌 듯했다.
“기절했는데도 스킬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거지. 이상하긴 하네.”
어느새 건물 철거용 철구 크기로 부풀어 오른 구체.
현장에 도착하고 나니,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폭발하기라도 했다가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 틀림없었기에.
“야! 일어나!”
축 늘어진 미군 병사를 깨워 보려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 스킬이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을 텐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병사들 대피시키는 데 정신없을 테고.”
우선 병사들의 대피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우. 더워라. 저거 온도가 몇 도냐?”
구체의 크기가 점점 커질수록 주위 일대가 뜨거워졌다.
근처 숲에 불이 붙기 시작하기까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저걸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은 참아야 할 때.
“기지 밖 20㎞ 밖으로 병사들 대피시키세요. 제가 처리합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설마, 김민준 대령님. 아직 대피 안 하셨습니까?”
자신의 말에 미군 장교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저 스킬은 플레임 볼입니다. 저 현상은 시전자의 제어권을 벗어나게 되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드물게요.
미군 장교는 저렇게 크기가 불어나는 건 처음 본다며, 제발 대피해 달라고 애원했다.
초기에 진압하지 못하는 이상, 멀리 벗어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게다가 저 정도 크기로 커진 구체는 민가에까지 피해를 미칠 수 있다고 한다.
그 답변을 듣고 나서 확신했다.
흑마법사 스킬을 사용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김민준 대령님이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저희는 진짜 죽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 걱정은 마시고 대피하세요. 제가 막을 수 있습니다.”
주르륵.
무전은 거기까지였다.
무전기가 뜨거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린 것이다.
“이놈 이름 뭐야. 잭슨 병장? 태평하게 잘도 자네.”
마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다른 헌터였다면 진작에 온몸이 익어 버렸을 것이다.
“넌 군복 벗어야겠다. 그리고 피해 보상도 네가 해, 임마. 평생 벌어서라도 갚아라.”
20분이 지나고 나서야, 병사들의 대피가 완료되었다.
김민준은 나이트 워커의 보고를 받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화르르르!
커질 대로 커진 구체는 주위 일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 불이 숲에도 옮겨붙어 산불이 일어났다.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대형 악재.
“아. 이럴 때 마법사가 부럽다니까. 커다란 얼음 덩어리 몇 개 소환하면 저거 막을 수 있을 텐데.”
자신이 하려는 행동은 불을 더 큰불로 잡는 것.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당분간 사용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니까.”
스스스스.
손바닥을 펼치며 마기를 응축했다.
부풀린 마기를 모아 압축하고, 그 위에 마기를 다시 덧씌웠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고도의 작업.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행동.
김민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작업을 수십 번씩 반복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손바닥 위로 회오리치는 마기를 마지막으로 꾹 움켜쥔 뒤, 위로 던졌다.
“아. 이놈 잊을 뻔했네.”
옆에 기절해 있는 병사를 든 순간,
콰콰콰콰콰콰!
광역 흑마법 마기 폭풍이 시전되었다.
마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토네이도는 열기를 내뿜는 구체를 아무렇지 않게 삼켰다.
“좋아. 그대로 산불부터 커트하자고.”
손가락을 까딱이자, 검은 토네이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생각보다 제어가 쉽네. 예전엔 버거웠는데.”
새롭게 얻은 스텟인 영구 기관 때문일까.
아니면 힘을 되찾으면서 스킬에 대한 숙련도가 더욱 올라간 것일까.
어느 쪽이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에 잘된 일이었다.
콰콰콰콰콰!
“나무야. 미안하다.”
마기 폭풍은 주위에 있는 것들을 뭐든지 집어삼킨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건 스킬의 이동 경로뿐.
스킬에 대한 강도를 제어할 수는 없었기에, 나무가 뽑혀 나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어억! 뭐, 뭐냐! 뭐야 저건!”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 옆구리에 들려 있던 잭슨 병장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주위 일대를 갈아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퍼석!
저 토네이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썩어 문드러졌다.
“도망! 도망가야 한다!”
그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길 잠시.
잭슨 병장이 발버둥을 쳤다.
토네이도가 이쪽 방향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뒈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김민준은 스킬을 해제하자마자, 미군 병사를 내동댕이쳤다.
“야. 네가 한 짓 때문에 여기 있는 애들 다 죽을 뻔했다. 그건 아냐?”
그리고 놈의 따귀를 때렸다.
뺨이 부어오르고 코피가 터질 때까지.
“어억!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이 훈련에 참가 안 했으면, 못해도 수백 명은 죽어 나갔을 거다.”
미군 병사라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선을 세게 넘었다.
대대장이 훈련을 권유하지 않았더라면.
권유했더라도 자신이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네가 한 짓을 봐라. 플레임 볼인지 뭔지 네 스킬이라며. 그건 기억나냐?”
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초토화된 훈련장.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숲 일대.
“저, 저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잭슨 병장은 기겁하며,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설명했다.
“네 변명 들을 생각 없다. 나 말고 네 상관한테 변명하든지 해라.”
“예…. 알겠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스킬이 설마 통제를 벗어나겠나 싶었는데….
이 정도로 크게 벗어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김민준 대령님! 괜찮으십니까!”
“잭슨 병장은 어디 있나!”
사태를 수습하고 잠시 후.
장교들이 차량을 타고 후다닥 달려왔다.
“이건….”
“미치겠군.”
한국군이나 미군이나 할 것 없이, 초토화된 훈련장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냥 훈련장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넓은 부지가 단시간에 사라진 것이다.
“방금 일어난 거대한 토네이도 말입니다. 김민준 대령님이 하신 것, 맞습니까?”
다들 벙쪄 있을 때, 제이슨 대위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군사용 특수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저걸 말한다는 건, 내가 스킬 쓰는 거 다 봤다는 말이겠네.’
과학 기술이 무섭긴 무섭다니까.
이어진 김민준의 대답에, 장교들의 입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