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한미 연합 훈련-4
“라, 라이언 대령님?”
라이언 대령.
이번 훈련에서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대대장 격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쟤는 뭘 먹길래 몸이 저러냐?’
김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박격포 대령도 나름 큰 덩치와 근육을 자랑했다만….
눈앞에 있는 라이언 대령은 몬스터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엄청난 덩치와 부푼 근육 때문에, 뒤의 헌터들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
“당장 라이언 대령님 주위로 대열 만들어라!”
“예!”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대열 만들어!”
“죄송합니다!”
적들조차 의외였는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몬스터 토벌 훈련에서 대대장의 죽음은 곧 패배였으니까.
대대장은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곤 했다.
지금처럼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네가 김민준 대령인가? 예상대로 화끈한 일을 벌여 주는구나.”
라이언 대령은 한마디 툭 뱉은 뒤, 지면을 박차고 돌진했다.
우직!
지면이 움푹 파였다.
과연.
근육 사이즈는 장식이 아니었다.
퍼엉!
서로의 주먹이 부딪쳤다.
분명 그랬을 뿐인데,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발생했다.
“힘이 좀 세시네요. 무슨 스킬인가요?”
힘과 힘의 대결.
김민준은 라이언 대령을 향해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
라이언 대령의 스킬 측정기에 불이 들어와 있다.
그 말은, 현재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일 터.
“멈출 수 없는 힘이라고 하지. 힘 스텟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상승한다. 최대 15까지.”
대놓고 하는 도발.
라이언 대령은 순순히 그 도발에 응해 주었다.
자신은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데, 눈앞의 헌터는 스킬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26개의 스킬을 보유해, 온몸에 측정기를 붙여 놓았는데도 말이다.
“나를 우습게 보다가는 크게 다칠 텐데.”
실제 그는 김민준 대령이 기지 내부로 잠입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중대장에게 역할을 다 넘기고, 김민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당연히 대부분의 간부들은 반대했다.
굳이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가 있냐면서 말이다.
‘저걸 가만히 놔뒀다가는 바로 우리 패배다.’
그는 김민준 대령과 주먹을 맞대고 느꼈다.
강하다.
강한 것도 보통 강한 게 아니다.
힘은 누구한테도 밀리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눈앞의 헌터에게 오히려 밀린 것이다.
‘내가 어떻게든 마크해야 한다.’
김민준 대령을 저지하지 못하면 마력 기관총이 순식간에 무력화된다.
그리고 승패가 뒤집힐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쉬익! 쉭!
힘뿐만이 아니다.
속도는 자신이 압도적으로 밀렸다.
내지르는 주먹과 발은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까다롭군.’
중간에 무기를 사용하려 했다가 그만뒀다.
그렇게 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았으며….
무기를 꺼내면 뭔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워우. 저항이 거세네.”
김민준은 적들의 연계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라이언 대령은 생각보다 강했다.
스킬을 몇 개 사용하며 달려들다가도, 불리함을 느끼는 순간 몸을 뒤로 뺀다.
덩치에 맞지 않게 유연한 움직임이었다.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 적들의 탄환이 쏟아지고.
“연계가 훌륭한데.”
엄폐물 뒤로 숨어 적들의 동향을 살폈다.
물론 스킬을 사용한다면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미군들에게 치욕을 느끼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훈련할 때마다 우리 애들 괴롭혔는데 곱게 끝내 줄 생각이 없거든.’
움직이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측정기들.
이게 하나도 울리지 않고 승리를 가져간다면, 미군들이 치욕감을 느낄 터.
‘중대장님.’
‘그래. 지원 병력이 계속 오고 있다. 어떠냐. 한번 해 볼래?’
김민준이 눈짓으로 위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한 명씩 올려 줄 테니,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라는 뜻.
‘해 보겠습니다!’
‘맡겨 주십쇼!’
‘저놈들한테 한 방 먹이고 싶습니다!’
중대원들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그게 뭐 어떤가.
이미 기지 내에 잠입한 순간 죽을 각오는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미군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엄호 시작해!’
‘예!’
김민준이 헌터들을 한 명씩 건물 위로 띄워 올리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저것들 당장 막아!”
그 터무니없는 광경을 본 적들이 기겁하며 총구를 돌리려 했지만….
“큭! 저항이 거셉니다!”
“죽더라도 갈기라고! 저놈들 고지대 잡으면 골치 아파진다!”
한국 헌터의 엄호 사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대략 10명의 헌터가 건물 위로 올라갈 때쯤, 라이언 대령이 다시 움직였다.
“라이언 대령은 저랑 놉시다.”
물론 그걸 가만히 놔둘 김민준이 아니었다.
집요하게 그의 움직임을 억압했다.
“미, 밀린다!”
“라이언 대령님!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고지대를 잡은 헌터들 덕분에 큰 이득을 봤다.
적들이 덩달아 위쪽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그걸 가만히 놔둘 중대원들이 아니었다.
적들은 결국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했다.
거기다 어중간하게 지원 병력이 몰린 덕분에, 마력 기관총 하나가 더 무력화되기까지.
‘그렇지. 너네들도 하려면 할 수 있다니까.’
불리하던 상황이 역전되었다.
김민준은 중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밀어 버리면 쉽게 끝내 버릴 수 있다.
하나, 그렇게 해 버리면 다음 한미 연합 훈련은?
이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어쩌면 스킬 허용 때문에 더 심할 수도 있고.
‘다음 훈련에는 내가 이 부대에 없겠지.’
저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것.
분명 큰 효과를 볼 것이다.
-알립니다. 헌터 측의 마력 기관총 3대가 무력화 및 대대장이 사망하였습니다.
몬스터 토벌 훈련이 시작한 지 5시간.
한국군 측이 첫 승리를 가져갔다.
“이겼다!”
“키야! 이게 되네!”
“미국 헌터도 스킬 많아 봤자네!”
부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길게는 하루도 넘게 걸리는 훈련인데, 고작 5시간 만에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김민준과 그가 이끄는 중대원 덕분이었다.
“어차피 끝났다 싶어서 김 대령 자네한테 맡긴 건데… 역시 대단하구만.”
대대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스킬 사용이 허용된다는 규정 때문에 압도적으로 질 줄 알았다.
눈앞에서 빛이 번쩍인다든가.
탄환이 이상한 방향으로 휜다든가.
이런 건 겪어 보지 않고서는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병사들이 당한 것들이기도 했고.
그래서 이번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서는, 병사들을 나무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김 대령 자네가 스킬을 그 정도로 많이 보유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니까. 좋은 건 같이 좀 나눠 먹지 그래.”
이준범 대령은 평소에 하지 않는 농담까지 던지며, 팔꿈치로 김민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만큼 기분이 좋은 것이다.
“하하. 훈련하다 보니 하나씩 생성되었을 뿐입니다.”
“훈련하다가? 훈련으로 26개나 생성이 되는 건가? 거참 부럽구만. 값비싼 영약을 먹어도 얻을까 말까 하는 게 스킬인데.”
스킬이 생성되는 원리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헌터 본부에서 굳이 건드리지 않고 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불명확한 힘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이다.
아마 손은서 병장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묻고 가지 않았을까.
“하여튼 미국도 과감하다니까. 헌터 본부가 스킬에 대해 발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인 걸 보면.”
한국에 이어 미국 역시 스킬이 존재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 뒤에 중국, 일본, 러시아 등등.
수많은 나라 역시 같은 발표를 했고.
“스킬 측정기까지 개발된 걸 보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날지 무섭다니까.”
이준범 대령이 찝찝한 듯 표정을 구겼다.
스킬이라는 걸 직접 마주해 보니, 확신한 것이다.
머지않아 군대의 체계가 변화하리라는 것을.
“중대장님! 이놈들이랑 10m 기지 벽을 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이놈들과 기지에 잠입해서 뒤흔들었다는데 정말입니까?”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헌터들이 궁금함을 못 참고 질문해 왔다.
김민준이야 그렇다 쳐도, 중대원들이 그만한 일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그래. 전부 사실이지. 6명 정도 사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야! 거봐라! 우리 말 맞잖아!”
“미친… 그건 그렇다 치고, 라이언 대령을 스킬 없이 압도하신 것도 정말입니까?”
“라이언 대령? 몬스터처럼 커다란 장교? 그것도 그렇지.”
“와….”
녀석들은 중대원들의 말에 심드렁하다가도, 라이언 대령이라는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저게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중대장님! 라이언 대령 모르십니까? 미국에서 되게 유명한 헌터입니다!”
“스킬을 무려 4개나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맨몸으로 오크 수십 마리를 때려잡은 기사가 올라왔지 말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장교를 스킬 하나 없이 밀어냈다.
스킬을 26개나 보유한 중대장님이 말이다.
그 말은….
‘중대장님은 도대체….’
김민준 대령님이 얼마나 괴물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아직 훈련 다 끝난 거 아니니까 안심하지는 마라.”
“예!”
이놈들이 괜한 호들갑은.
김서현까지 훈련에 참가했으면 놀라서 기절했겠네.
‘잠입이랑 암살은 김서현 특기니까. 아마 3시간 안에 끝났을 것 같은데. 훈련 대상이 아니라 제외됐지만.’
김민준은 열띤 토론을 하는 헌터들을 내버려 둔 채, 2 대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팔은 좀 괜찮냐?”
구석진 곳에서 파스를 뿌려 대는 손은서를 발견했기 때문.
“충성! 병장 손은서! 괜찮습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창설하는 부대로 전출이 예정되어 있다.
확정은 아니지만 자신의 강도 높은 단련 매뉴얼을 소화해 내고 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정도?
어쨌거나.
굳이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미군 중에 점박이 새… 병장이 있는데 그놈한테 갚아 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손은서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지난번 훈련, 그녀는 이병이었다.
그때 언급한 병사도 고작 일병이었지만, 어떻게 해도 당해 낼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더러운 인성질까지 해서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나.
“그래서 갚아 줬냐?”
“코피가 터질 때까지 따귀를 때린 뒤에 하이 킥까지 먹여 주었습니다.”
손은서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검기라는 스킬이 위험하다 보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 병사가 가진 스킬은 뭐였냐?”
“이름은 모르겠는데, 갑자기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그런 효과를 가진 스킬이라고 합니다.”
“별 스킬이 다 있네. 어쨌든 잘했다.”
그럼에도 상대를 압도했다라.
확실히, 장군의 딸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토벌 훈련을 속행하겠습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공수 교대가 이루어졌다.
미국 헌터들은 표정을 구긴 채 훈련을 준비했다.
한국 헌터에게 진 게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이봐. 잭슨.’
‘왜.’
‘저놈들 기세등등한 게 열받아 죽겠는데, 그거 사용하는 거 어떠냐?’
‘그거?’
‘네가 가진 스킬 말이야.’
훈련 재개 5분 전.
미국 헌터 두 명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너… 그 말 진심이냐?”
이어지는 병사의 말에, 잭슨의 표정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