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한미 연합 훈련-2
“기운이 넘치는 것 같은데, 훈련 전에 가볍게 한판 어떠냐. 말로만 나불대지 말고.”
“대령님. 저희를 이겨서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저흰 병사들입니다.”
“아. 그래서 한국 헌터 손가락 하나 이길 자신이 없다 이건가? 그럼 뭐 어쩔 수 없고.”
그렇게 겁먹어서 고블린 하나 잡을 수 있겠냐며 도발을 시전했다.
“…장교라고 하셔도 적당히 할 수 없습니다.”
“말이 많다. 할 거냐? 아니면 쫄보처럼 도망칠 거냐? 선택해라.”
김민준이 미국 헌터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놈들이 몸을 풀며 한 명씩 다가왔다.
대령이나 되는 사람이 병사에게 이러는 걸 보면, 유치하다고 말할 것이다.
열이면 열 모두가.
‘그럼 가만히 있을까? 우리 애들 건드리는데?’
곧 부대를 떠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부대원들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한국군과 미군이 얼굴을 보자마자 으르렁대는 걸 보면, 이런 일은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
어느 정도 기강을 잡아 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자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일 뿐이다.
실적을 내고 실력을 키우는 건 병사들 본인의 몫이다.
“거기 장교. 너도 안 나오고 뭐 하냐.”
김민준은 뒤에서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장교도 지목했다.
미국 헌터들도 물론 문제다.
하지만 그들을 통솔해야 할 장교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병사보다 훨씬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군과 미군이 연합해 시너지를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뭐 하는 짓이냐.”
부족하면 서로 끌어 주고 메워 주면 된다.
그것이 연합이고, 동맹이다.
서로 의미 없는 감정 소모만 할 거면 없는 게 낫지.
“저희를 무시하시나 본데, 아무리 대령님이셔도 손가락 하나로는…. 어억?”
병장 한 명이 그의 손가락을 잡은 뒤 넘기려 했다.
그러나 넘어가는 건 미국 헌터 쪽이었다.
황소 같은 덩치를 자랑하던 병장은 꼴사납게 뒤로 넘어졌다.
“뭐냐? 고작 이 정도로 잘난 척한 거냐?”
“뭐, 뭐 저런 무식한 힘이….”
“마일스 병장님은 힘 스텟이 60이 넘는데!”
“김민준 대령님! 아무리 그래도 장난이 심하십니다!”
“이게 심하다고? 손가락 하나로 살짝 민 것뿐인데?”
그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장교를 지목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병사들은 더 해 봐야 소용없고. 거기 대위. 들어와 봐.”
“김민준 대령님. 장난은 이쯤까지 하시죠. 곧 훈련이 시작됩니다.”
“쫄았다고? 그래, 알았다.”
“대령이라는 사람이 이 정도로 화를 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단순한 장난일 뿐입니다.”
대위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쪽으로 빠졌다.
병사들을 이끌고.
“쫄았네! 븅신들!”
“야! 나대지 마라!”
“이번에는 우리가 발라 준다!”
부대원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너희들. 저놈들이랑 훈련할 때마다 저러냐?”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4회차 훈련부터 저놈들의 장난질이 심해졌습니다.”
병사 한 명에게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미국 헌터들의 행패는 상상 이상이었다.
훈련 도중 실수인 척 부대원의 슈트를 박살 내는 건 흔한 수준.
몬스터 토벌 훈련에는 과할 정도로 부대원들을 공격해 부상을 입혔다.
그 외에도 자잘한 반칙 같은 것을 당연한 듯이 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놈들아. 진작에 말을 하지 그랬냐.”
급하게 잡힌 일정이라 병사들의 고충을 알 리가 없었다.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을 것을.
“그게… 증거가 없어서 말입니다.”
“저놈들 끝까지 고의가 아니었다고 우깁니다.”
“부대에 보고해 봤었는데… 저희가 잘하면 될 일이라고 하셔서….”
병사들도 답답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매번 같은 결과가 나왔으니까.
미국 헌터들이 받는 지원은 상상을 초월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스펙 차이부터가 크니까. 위쪽에서도 의심을 안 하는 거겠지.’
사실 의심이 들어도 문제 삼지 않으려 할 확률이 높았다.
한국 측은 훈련 장소만 제공할 뿐이다.
거기서 발생하는 비용은 모조리 미국 측이 부담했으니까.
결국 미국이 갑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너희들 이번에도 또 질 거냐?”
“아닙니다!”
“무조건 이기겠습니다!”
울려 퍼지는 함성.
얼마나 당한 게 많았으면 건물이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 댄다.
‘단순히 힘이 세다고 100% 이기는 건 아니지. 나처럼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모를까.’
병사들을 격려하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이번 훈련이 끝나면, 부대원들이 무시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미국 헌터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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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주목해 주십시오! 훈련에 시작하기에 앞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이 슈트를 착용하고 훈련 준비를 끝냈다.
제이슨 대위가 단상 위로 올라가, 보란 듯이 뭔가를 들어 올렸다.
“이건 미국 국방부가 최근에 개발을 마친 스킬 측정기입니다!”
그는 이번 훈련부터 몇 가지 변경 사항이 적용되었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스킬 측정기.
겉보기에는 작은 모니터처럼 생겼지만, 헌터들에게 있어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스킬 측정기를 통해 착용자가 스킬을 보유했는지, 보유하지 않았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측정기를 착용한 상태로 스킬을 사용하면, 즉시 모니터가 붉게 물들며 알람이 울린다.
육안으로만 구분할 수 있었던 단점을 미국 국방부가 해결한 것이다.
물론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몇 개의 스킬을 보유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 미국 기술력은 장난 아니라고 듣기는 했는데. 대단하긴 하네.’
김민준이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상용화된 것만 해도 이 정도라니.
시간만 있다면 더욱 발전한 측정기가 개발될 터.
“이번 한미 연합 훈련부터는 스킬의 사용이 허용됩니다! 다만, 큰 부상의 위험이 있는 스킬은 금지됩니다!”
병사들이 감탄하던 사이 충격적인 발표가 나왔다.
스킬 사용이 허용된다는 것.
그 말은 미국 헌터들에게는 호재였고, 한국 헌터들에게는 악재였다.
“아니 뭔….”
“스킬 가진 놈들이 뭐 저렇게 많냐?”
“이러려고 저거 개발한 거냐 설마?”
적게 잡아도 30% 이상.
미국 헌터가 착용한 스킬 측정기에 O 표시가 떠올랐다.
저건 스킬을 보유한 헌터라는 뜻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 헌터들은 10% 정도만 O 표시가 떠올랐다.
저 정도 차이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체적인 스텟도 밀리는데 스킬까지 압도적이라니.
좋게 봐 줘도 아마추어 축구 선수와 프로 축구 선수급 차이가 아닐까.
“장교분들도 빠짐없이 착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병사들의 측정이 끝나고, 장교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삐이이이이이이!
“끄어어!”
“무슨 소리야!”
“어우, 고막이 울린다.”
김민준이 측정기를 착용하자, 모니터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거기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까지.
“이거 왜 이러는 건가요?”
“저도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이슨 대위는 개발자에게 연락해 해당 현상을 설명했다.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길 잠시, 그가 측정기를 하나 더 꺼내 왔다.
“보유한 스킬의 개수가 많으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추가로 착용하시면 괜찮을 겁니다.”
삐이이이이이!
“…응?”
2개의 측정기를 달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소음이 심해지기만 했다.
“김민준 대령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개의 스킬을 보유했는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이슨 대위가 정중하게 질문해 왔다.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26개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26…. 예?”
김민준의 대답에 훈련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한 개나 두 개도 아니고, 26개라니.
그런 헌터가 존재할 리 없었으니까.
헌터마다 스킬 생성량에 한계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고 해도 10개에는 미치지 못한다… 라는 것이 저명한 연구자들의 결론이었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시간을 끌어 봐야 훈련에 지장만 생기지 않겠습니까. 26개 맞습니다.”
“허….”
이어지는 단호한 대답.
제이슨 대위는 그가 보유한 스킬에 맞춰 측정기를 달았다.
총 20개의 측정기를 달고 나서야, 시끄럽게 울리던 소음이 잠잠해졌다.
삐이이이이!
“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혹시 몰라서 하나를 떼어 내 봤는데….
떼어 내자마자 19개의 측정기가 미친 듯이 울렸다.
“이봐! 샘! 20개의 측정기를 달고 나서야 경고음이 멈췄는데… 장난질하지 말라고? 지금 훈련 중이다. 그것보다 이거 고장 난 거 아닌가? 뭐? 에러에 관해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제이슨 대위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개발자에게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 스킬이 밝혀지는 거야 시간 문제니까 뭐.’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신세형이 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 중이다.
여기서까지 숨길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어차피 무슨 스킬인지는 모를 테니.
“와…. 중대장님. 스킬을 26개나 가지고 계셨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강한 거였습니까?”
“아…. 현타 옵니다. 태생이 다르단 걸 느끼긴 했는데….”
측정기를 주렁주렁 달고 돌아오자, 부대원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감탄사를 뱉기도 하고.
탄식을 뱉기도 하고.
어떤 헌터는 ‘이번 훈련은 우리가 이겼다!’라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대부분의 헌터가 충격받은 모습이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거 아무나 못 하는 거 알지? 너희들에게 숨긴 건 말해 봤자 안 믿어 주니까 그런 거야.”
“그건 그렇습니다.”
“26개는 둘째 치고, 5개 보유한 헌터도 손에 꼽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킬이 많은 게 무슨 상관인가.
그가 구한 목숨만 해도 몇 명이고, 해결한 위기만 해도 몇 개인가.
병사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또 어떻고.
이렇다 보니 오히려 헌터들의 의욕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훈련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점검이 끝나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7일간 진행되는 훈련은 몬스터 토벌과 야외 기동 훈련 2가지.
헌터들은 몬스터 토벌 훈련을 위해 각자 맡은 위치로 이동했다.
“우리가 선공이네. 2중대는 북쪽에서 자리를 잡는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훈련에 참가하는 대대는 2대대와 4대대.
그는 2중대의 중대장을 맡았다.
‘2대대는 남쪽. 4대대는 북쪽. 거기서 적의 화력을 가늠하고 추가 지시라.’
몬스터 토벌 훈련은 각 헌터군이 몬스터와 헌터의 역할을 맡아 진행한다.
몬스터 역할은 공격 지점의 헌터를 몰살하는 것이 목표다.
헌터 역할은 몬스터를 처치하며 기지를 방어하는 것이 목표고.
어느 쪽이든, 이번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각 대대장의 지휘 능력이었다.
중대장인 자신은 어디까지나 대대장의 명령을 전달하고, 수행하는 위치였으니.
왜에에에엥!
10분 뒤, 사이렌이 울렸다.
훈련이 시작되었다는 신호.
독수리 2는 잠시 대기할 수 있도록 한다. 독수리 1, 3, 4는 그대로 북쪽으로 향할 수 있도록.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는 도중, 의외의 무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