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대규모 게이트-5
“뭐, 뭐야? 너… 아니, 김민준 대령님? 여긴 어떻게….”
손은서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순간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으려 했었다.
상황이 발생한 지 고작 수 분 만에 지원을 왔으니까.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저놈은 진짜….’
감염체가 득실거리는 대규모 게이트.
그곳에서 대령이 단독 행동을 할 줄이야.
보통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뒤 없는 행동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중대장! 중대원들 데리고 후퇴해라!”
김민준은 학살자의 도끼를 막아내며, 재빨리 퇴각 지시를 내렸다.
‘힘이 나랑 비슷…. 아니네. 조금 더 센 거 같은데.’
현재 마주하고 있는 거구의 몬스터.
놈의 완력은 자신을 살짝 상회하고 있었다.
팔이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보스 몬스터라 어느 정도 강하다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김민준 대령님! 신속하게 지원병력을 편성해 보내겠습니다!”
“아니. 절대 오지 마라. 내가 이놈 처리할 테니까, 반경 300m 안으로 들어오지 마! 지휘관님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하, 하지만!”
“명령이다. 지금 병력으로는 오히려 피해만 발생할 거다.”
“…알겠습니다!”
그의 단호한 지시에, 중대장은 입술을 깨물며 뒤로 빠졌다.
“좋아. 대부분 빠졌네.”
병력들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뒤, 팔에 힘을 실어 학살자를 뒤로 밀쳐 냈다.
“그워어어어어!”
10m쯤 뒤로 밀려난 몬스터.
놈은 그동안 자신에게 묶여 있어서 그런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네가 열받아서 뭐 어쩔 건데?”
김민준은 윗입술을 핥으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지금까지 처치한 몬스터들 중, 자신의 힘을 상회한 개체는 없었다.
그나마 강했다고 생각했던 놈이 혈귀.
그마저도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와 봐. 돼지야.”
그러나.
현재 눈앞에 있는 학살자.
놈만은 자신보다 완력이 강했다.
힘 스텟 91을 웃돌 정도라니.
과연 얼마나 강한 놈일까.
저놈을 잡으면 시스템이 어떤 보상을 줄까.
그런 호기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워어어어!”
치잉! 칭!
학살자가 거대한 도끼 두 개를 교차하며 포효했다.
쿠웅!
그리고 짧은 도움닫기를 하더니,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거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날렵함.
“어쭈.”
낙하하는 두 개의 도끼.
김민준은 재빨리 마력검을 꺼내 오러를 둘렀다.
쩌엉!
마력검과 거대한 도끼의 충돌.
귀가 터져 나갈 정도의 충격음과 함께, 지면이 움푹 파였다.
“그아아아아아!”
학살자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우렁차게 포효하며 도끼를 마구 휘둘렀다.
“터프한 놈이네.”
놈의 완력이 우위에 있는 이상,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줄 이유는 없었다.
검을 이용해 놈의 도끼를 흘렸다.
그러면서 사이사이에 발생한 작은 틈 안으로, 검을 쑤셔 넣었다.
“꽤 깊게 박아 넣었는데, 7초 만에 회복한다 이거지.”
방금 찔러 넣은 공격들은 장난으로 한 게 아니다.
오러를 둘러 본격적으로 깊게 찔렀다.
오우거 같았으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한데, 학살자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보통 학살자보다 3배는 강하다고 생각해야겠는데.”
놈을 실제로 상대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데이터가 존재하기에 얼마나 강한지 예측은 할 수 있다.
현재 눈앞에 있는 학살자는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
그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강한 것이리라.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지.”
놈이 아무리 질겨 봐야 생명력에는 한계가 있다.
저 정도 수준으로는, 자신의 흑마법에 당해 낼 수 없다.
“이거 참 오랜만에 쓰네. 영광으로 알아, 인마.”
스킬, 절망의 세계를 사용해 놈을 지정했다.
이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게 끝낼 수 있었기에.
띠링.
[지정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보스 몬스터에게 왜곡 효과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까다로운 놈이긴 하네.”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다.
몬스터의 왜곡 효과 때문에 스킬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럼 플랜 b로 가는 거지 뭐.”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흑마법을 난사했겠지만, 예전의 자신이 아니다.
철컥!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에서 기가쇼크 그레네이드 런처를 꺼냈다.
탄약을 한 발 장전한 뒤, 놈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거, 몇 발이나 쏠 수 있게?”
혈액이나 기력을 사용해 만든 탄약은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그마저도 한두 발 사용하는 것이 한계다.
하지만, 마기를 사용해 만든 탄약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무한으로 즐겨 보자고.”
세 발에서 네 발.
마기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탄약의 개수다.
하지만.
스킬, 공명을 사용함으로써 그 제약은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스스스스스.
영구 기관이 격렬하게 움직인다.
쿠와아아아앙!
김민준은 학살자의 가슴팍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아아아아아!”
마기의 탄약이 폭발하며 놈의 신체를 급속도로 갉아먹기 시작했다.
온몸이 썩어들어 가는 몬스터.
“역시. 그걸로 부족할 것 같았다.”
한 발로는 놈을 처리하기에 화력이 부족했다.
놈의 몸이 썩는가 싶더니,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김민준은 기관총을 연사하는 것처럼,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겼다.
단시간에 발사된 탄약은 무려 10발에 달했다.
“그… 아….”
“징글징글하네. 좀 죽어, 인마.”
대량의 마기에 노출된 몬스터.
놈의 몸이 순식간에 썩어들어 갔다.
재생 능력이 마기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 발 더 먹어라.”
총 11발의 탄약을 사용하고 나서야, 학살자가 죽음을 맞이했다.
“까불기는.”
총구에 피어오르는 새하얀 연기.
김민준은 연기를 입으로 불며, 등을 올렸다.
“이게 바로 러시아산 국보급 아이템이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였습니다.]
[조각상이 회수된 상태입니다.]
[조건을 모두 만족하였습니다.]
[대규모 게이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감염체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눈앞에 연달아 떠오르는 메시지들.
대규모 게이트의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와 동시에,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돔이 걷히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발생하고 클리어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 4시간 살짝 안 되네.”
이 정도면 매우 여유롭다고 할 수 있다.
감염체에게 물린 사람들의 치료를 다 하고도 남을 터.
“흠. 좀 심했나?”
주위를 둘러보면, 반경 300M가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
살짝 과했나 싶어 볼을 긁적였다.
보스 몬스터를 절망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 처리할 수 있었다면….
세금까지 절약할 수 있는 건데.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지.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헌터들이 오기 전에 빨리 보상을 날름해야 하는데….”
설마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두들겨 잡았는데 아무것도 안 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메시지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1. 김민준(98%의 기여도). 2. 그 외(2%)]
[가장 높은 기여도를 달성한 자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클리어에 기여를 한 모든 헌터의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아니. 이런 미친놈이?”
이걸 대놓고 알려 주면 어떻게 하냐?
나 혼자 먹으려고 했는데 아주 광고를 해라.
그렇게 툴툴거리며 불평을 하던 사이, 허공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금으로 만들어진 열쇠였다.
[콜롬비아의 열쇠]
30일 뒤, 특별한 일이 발생합니다!
“이건 또 어디다 쓰는 거냐?”
아무래도 30일이 지나야 사용처를 알 수 있는 듯했다.
“기, 기, 김… 민준 대령님.”
열쇠를 집어넣고 무기를 점검할 때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너네 언제 왔어?”
거대한 충격음과 폭음을 듣고, 부랴부랴 지원 온 병사들이었다.
“다들 메시지 봤지? 대규모 게이트 클리어했으니까, 감염체에게 물린 환자 파악하고 치료제 요청할 준비해.”
“예? 예! 알겠습니다.”
“표정이 왜들 그러냐? 못 볼 거라도 봤냐?”
“그… 아닙니다.”
김민준은 병사들의 어깨를 다독인 뒤, 현장을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민준 대령님은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봤다.”
“학살자랑 같이 죽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 폭발에서 태연하게 걸어 나오시더라.”
병사들은 폐허가 된 현장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와 씨. 그럼 대규모 게이트를 겨우 4시간 만에 클리어한 거네?”
“그렇지. 클리어 조건도 2개였거든? 무슨 조각상 찾는 거랑 보스 몬스터 처치하는 거. 그걸 김민준 대령님 혼자서 다 하신 거지.”
“야. 보스 몬스터가 뭐였는지 아냐? 학살자였단다, 학살자. 중대장님 말로는 우리가 알던 그 학살자가 아니라던데.”
대규모 게이트를 클리어한 지 3시간이 지났다.
민간 의료진들과 의무 헌터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치료했다.
“야! 방금 듣고 왔는데, 사상자가 0명이란다. 이게 말이 되나?”
“미친… 진짜냐?”
“경상자가 대부분이고, 학살자랑 마주친 중대원들은 중상이라는데, 생명에 지장은 없대.”
후방에만 빠져 있던 의무 헌터들은, 이어지는 소식에 입을 쩍 벌렸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전, 대규모 게이트가 발생했을 때의 사상자만 몇 명인가.
최소 100명은 넘어갔었다.
사상자만 말이다.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마저도 클리어하는 데 5일이나 걸렸고.
“거기다 지금도 쉬지 않고 치료제 운반 도와주고 있다더라.”
“와…. 대령이면 밑에 병사들 부려 먹으면 될 텐데. 그거까지 한다고?”
의무 헌터들의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벅차올랐다.
영관급 장교들 중에 김민준 대령님 같은 분이 있을까.
“나라도 열심히 해야지.”
“나도.”
의무 헌터들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
속보! 서울시에 발생한 돔 형태의 대규모 게이트, 4시간 만에 클리어!
역대 최고의 클리어 속도. 사상자 피해는 0명! 김민준 대령의 대활약!
김민준 대령, 보스 몬스터를 단독으로 처치. 병사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대규모 게이트를 클리어한 지 6시간이 지났다.
의료진과 국방부의 신속한 대처 덕에, 감염체에 의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물린 사람은 하루 정도 안정을 취하면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김민준 대령! 야 이 새끼야!”
상황이 마무리될 때쯤, 두석용 소장이 소리를 지르며 김민준에게 다가갔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의 입이 귀에 걸려 있었으니까.
“하하하하! 들었냐? 사상자 0명이랜다, 0명! 울릉도 혈귀 때도 0명이었지 아마?”
보스 몬스터를 보면 도망갈 생각부터 해야 한다.
다른 몬스터도 아닌, 7급 몬스터인 학살자라면 더더욱.
한데, 김민준은 병사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보란 듯이 몬스터를 처치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자네가 다 한 거야.”
이런 완벽한 결과를 냈으니, 지휘관 입장에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령 김민준! 저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헌터들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어디까지 겸손해지려고 하냐. 이럴 때는 가슴 쫙 펴고 자랑해도 된다!”
보스 몬스터의 정체를 보고받았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으니까.
7급 이상의 보스 몬스터를 그렇게 쉽게 처치할 줄은 몰랐지만.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밝은 분위기 속, 김민준이 진지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슥.
주위에 있는 다른 장교들을 쳐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