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대령
“네 것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김서현이 지급받은 아이템은 선혈의 칼날.
붉은 검신을 가진 단검으로, 몬스터에게 과다 출혈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건 김민준 님이….”
“한 대 맞고 가져갈래, 두 대 맞고 가져갈래.”
어김 없이 단검을 건네려 해 그녀의 이마를 툭 밀었다.
‘몇 번을 말해도 나한테 퍼 주려 하니 원.’
그리고 보란 듯이 국보급 아이템을 보여 주었다.
“이걸로 이미 배가 빵빵해. 아까 테스트해 봤는데 한 발에 반경 300m가 날아가더라.”
“3, 300m나요? 엄청나네요….”
“한국에 돌아가면 사용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네. 워낙 위력이 세서.”
국보급 아이템은 자신의 소유가 되었지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피해를 주는 범위부터가 상당하다.
테스트할 장소도 마땅치 않을 테고.
사용해 봐야 대형 던전 안에서 한 발 쏠 수 있을까?
“너무 강해도 문제긴 하네.”
거기다 그레네이드 런처는 중화기다.
헌터군이라 해도 마나건처럼 들고 다닐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 문제야 신세형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만.
‘러시아 대통령이 준 선물을 뺏기야 하겠냐.’
보통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선물받는다 한들.
이런저런 규제를 붙이며 사용을 막을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계급.
현재까지 해낸 일들.
자신의 힘을 알고 있는 청와대 소속 신세형도 있다.
‘딱 맞는 보관함도 있고.’
이중 던전에서 획득한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
이곳에 넣어 둔 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된다.
‘대형 게이트나 대형 던전 하나 생겨났으면 좋겠네.’
김민준은 화이트 샤크 대원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뒤, 비행기에 탑승했다.
임무 수행을 위한 파병 기간은 30일.
고작 하루 만에 임무를 완수해 29일의 여유가 남았지만….
러시아 내부 상황이 그러니 바로 복귀하기로 했다.
“너도 같이 왔겠다, 러시아 관광이나 즐기면 좋았을 텐데.”
“전 이번 임무를 같이 수행한 것도 신선하고 좋았어요.”
“그러냐.”
김서현과 대화를 나누길 잠시.
“김민준 씨!”
신세형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업무에 시달렸는지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다.
“러시아 대통령에게 국보급 아이템을 받으셨다면서요!”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안톤을 빼낸 것이라든가.
단신으로 아이들을 구출한 것이라든가.
이것들은 그의 힘을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나.
국보급 아이템.
그것도 가장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대통령님이 아주 화끈하시더라고요.”
“하하…. 그렇죠. 보통 화끈하신 게 아니시죠.”
국보급 아이템은 비유하자면, 핵과 같다.
무력을 과시하기에 좋은 도구라는 말이다.
그걸 김민준에게 넘겨줬다는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역시 러시아 대통령. 김민준 씨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투자한 거겠지.’
국보급 아이템의 지급.
마력석의 정기적인 거래.
다른 나라가 보면 미쳤다고 혀를 찰 것이다.
‘그건 나라도 그랬겠지. 김민준 씨의 힘을 몰랐다면.’
신세형은 블라디미르의 과감함에 감탄했다.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걸까.
그가 한 투자는 훨씬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국보급 아이템은 제가 상시 휴대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거야 힘을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지급받으신 국보급 아이템은 중화기라고 들었거든요.”
그런 무시무시한 걸 눈에 띄게 들고 다니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김민준의 다음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저건 또 뭔….”
작은 황금색 주머니에서 중화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신세형 씨만 알고 계세요. 아이템입니다. 게임으로 치면 인벤토리죠. 이러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 하하…. 알겠습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디까지 자신을 놀라게 하는 걸까.
주먹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
[속보! 김민준 소령, 몬스터에게 납치된 청소년 전원 구출!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어.]
[러시아 국방부의 추태! 블라디미르 대통령의 유감 표명]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한국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 내.]
[김민준 소령에게 국보급 아이템을 선물. 마력석의 거래까지 약속받아.]
김민준이 부대에 복귀하기도 전.
한국의 분위기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다.
“미쳤다! 돌았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저 요새. 저거 어떻게 뚫은 거냐?”
“화이트 샤크 대원들이 아무것도 못 했다면서? 드론 날린 거 말고 한 게 없다던데.”
“와 씨. 러시아 대통령이 국보급 아이템을 선물했다고?”
“야. 그게 다가 아니다. 마력석 준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아냐? 저건 그냥 사랑 고백이나 마찬가지라고.”
대중들은 그에게 익숙해졌기에, 더욱 열광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러시아를 도와준 것이 결국 한국을 도와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내가 돌아왔다!”
특별 진급은 당연히 확정.
신세형의 말에 따르면 중령으로 진급은 확정이고.
대령까지 2계급 진급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충성! 소대장님! 오셨습니까!”
“뉴스 다 봤습니다!”
“나 없다고 훈련 소홀히 한 거 아니냐?”
“그럴 리 있겠습니까? 소대장님이 없으셔서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다.”
부대에 복귀하자마자, 생활관을 돌며 소대원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중령이든 대령이든.
이 부대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기에.
‘신세형과는 저번부터 말을 나눴으니까.’
마침 튼튼한 발판이 생겼으니, 특수 부대를 창설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지금이 딱 최고의 타이밍이라면서.
‘여기에서 별 다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성녀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스가르드에서 헛짓거리를 계획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이병부터 복무해 온 부대라 나름 정이 쌓였기도 했고.
“아. 특별 진급을 밥 먹듯이 하는 것도 문제네.”
소대장이 소령인 경우도 굉장히 이례적이다.
그냥 자신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중령이나 대령을 달아 버리게 된다면….
헌터 본부 입장에서도 머리가 아플 것이다.
복무 기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
병사들의 지휘 능력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그 말은, 계급에 맞는 권한을 맡기는 게 까다롭다는 말이다.
‘가기 전에 한 건 하고 가야겠지. 소대원들도 관리해 주고.’
그것보다는 우선 1계급 진급인지 2계급 진급인지가 궁금했다.
“이왕 달아 주는 김에 시원하게 대령 달아 줬으면 좋겠네요.”
-예?
“신세형 씨한테 한 말은 아니고요. 러시아산 마력석이 그렇게 좋다던데요.”
-아…. 노력해 보겠습니다.
“부담 가지라고 한 말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신세형 씨 능력을 잘 알거든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 날.
-김민준 씨! 축하드립니다!
2계급 특진.
대령으로의 진급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역시나 마력석의 거래를 성사시킨 일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국보급 아이템을 선물 받게 된 것도 컸고.
무엇보다 신세형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도 있었다.
“다음에 한번 보죠. 고생하셨습니다.”
김민준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연락을 끊자,
띠리리리.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울려 댔다.
중대장부터 시작해서 대대장, 사단장, 타 부대의 대대장과 사단장 등등….
자신의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 연락해 온 것이다.
“무궁화 하나랑 세 개랑은 차원이 다르네.”
역시.
대령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그 위의 별의 위치에 가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그건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 두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건물을 통째로 빌리네.”
대령 진급식을 치르기 위해서.
**
진급식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소위 계급장을 달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안면식이 없는 대대장들이 앞다투어 인사를 건네온다.
사단장들 역시 마찬가지.
‘어우. 오글거려. 저건 너무 오버하는 거 같은데.’
거의 자신을 찬양하는 듯이 축사를 읊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야지. 좋은 날인데.’
자신이 해낸 성과는 객관적으로 봐도 대령이 전혀 과하지 않았으니까.
“김민준 대령은 이병부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이레귤러 몬스터를 단독으로 처치.
시내에서 열린 게이트를 단독으로 해결.
전 세계 최초로 오우거를 생포.
이중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단독으로 처치.
울릉도에 출현한 혈귀를 단독으로 처치.
이 외에도 자잘한 이력들이 20분 가까이 나열되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참 많이도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 성! 앞으로도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소령 계급장이 떼어지고 대령 계급장이 붙었다.
무궁화 세 개.
별까지 앞으로 한 걸음 남은 셈이다.
“김민준 대령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
거대한 케이크 커팅식을 마지막으로 진급식이 끝났다.
“이리 와서 케이크 먹어라. 나 혼자 못 먹으니까.”
그는 이등병부터 출발해 대령을 달았다.
그러니 병사들과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대령과 병사들이 웃으며 케이크를 나눠 먹는 장면은, 기자들로부터 함박웃음을 짓게 했다.
‘저런 건 99%가 연출한 구도일 텐데.’
대부분의 영관급 장교들이 그럴 것이다.
무궁화만 그러겠는가.
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보여 주기식 연출.
하지만, 김민준 대령에게는 그런 기미가 1도 없었다.
**
“진급 축하드립니다, 김민준 대령님.”
“김서현. 너도 진급 축하한다.”
진급식이 끝났다.
자신이 대령으로 진급한 것처럼, 김서현 역시 중사로 진급했다.
러시아에서 요주의 인물을 신속하게 구속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무적 헌터 부대 대대장실까지 접수하려 했었는데. 세상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네.”
“그 개X 같은 성녀….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김서현은 당장이라도 성녀를 찢어 죽이고 싶다며 으르렁거렸다.
‘그년만 아니었으면 걱정할 게 하나도 없는데! 그냥 곱게 죽어 버리기나 하지.’
마음 같아서는 성녀의 목을 졸라 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김민준 님의 말에 따르면 성녀의 몸에 좌표가 이식되어 있었으니까.
“이곳에서 대략 한두 달 정도 있다가 떠날 것 같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내가 만들려는 팀은 무조건 실력주의다. 알지?”
“네! 물론이죠!”
김민준은 새롭게 창설하려는 소수 정예 부대의 팀장을 맡을 예정이었다.
좀 더 세부적인 사항은 신세형과 의견을 나눠 봐야 했지만.
“기준에 만족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나 혼자 1인 부대 하지, 뭐.”
이스가르드의 침략에 맞서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정확히는, 지키는 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부수고 파괴하는 것쯤이야 혼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수많은 사람을 지키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팀원을 모집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뒤를 서포트해 줄 든든한 팀원들을.
“잘 찾아보면 특수한 스텟이나 스킬을 가진 헌터가 있겠지.”
거기에 철저한 실력 검증을 통해 선발을 실시할 생각이었다.
“응?”
일과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군가 싶었더니 손은서 병장이었다.
“평소에 카톡만 하더니 뭐냐.”
대령 계급장이나 한 번 더 자랑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연락을 받았더니….
“뭐라고?”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