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러시아-3
“으게게게겍!”
자비 없이 머릿속을 휘젓는 소환수.
괴한은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거품을 물며 축 늘어졌다.
“뭐, 뭐냐!”
“몬스터! 몬스터다!”
“당장 이거 풀어! 지금이라도 풀어 주면 못 본 척할 테니까, 풀라고!”
“이놈들은 학습 효과가 없나? 한 놈 더 뽑아내.”
스스슥.
김민준의 손짓에, 나이트 워커가 다른 괴한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끄어어어어….”
똑같은 모양새로 쓰러지는 괴한.
단시간에 2명의 동료가 의식을 잃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저희는 그저 돈에 고용된 용병입니다!”
놈들은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는지 몸부림을 멈췄다.
“벙커 밑에 있는 놈. 그놈과 몬스터가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는 건 아냐?”
“그, 그건….”
대부분이 말문을 흐리고 시선을 피한다.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뜻이다.
“더는 물어볼 가치도 없다. 똑같이 처리해.”
“자, 잠깐! 저는 우리 아들이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되지도 않는 변명하지 말고. 네 아들을 살릴 수 있으면 다른 아이를 희생시켜도 된다 이거냐?”
“끄아아아아아!”
나이트 워커의 자비 없는 정보 추출.
36명의 괴한은 단시간에 의식을 잃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보를 뽑아내면 인체에 무해하다.
하나, 이런 범죄자 놈들한테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오. 그래도 하나 건졌네.”
말단 용병들이라 별것 없을 줄 알았는데, 정보를 획득한 것이다.
스스스.
안톤이 놈들에게 비약을 만들고 있다며 자랑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말이 많은 놈이네.”
피식 웃으며 지하 벙커로 향했다.
저런 놈의 입을 열게 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기에.
**
“다 말하겠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지하 벙커.
안톤은 의자에 손발이 묶인 채로, 심문을 받고 있었다.
“김민준 님. 오셨어요?”
김서현이 활짝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녀의 손에는 불에 달궈진 송곳이 들려 있었다.
“그래. 얼마나 했냐?”
“아직 1단계 시작도 안 했습니다.”
“뭐야.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저렇게 겁먹었어?”
송곳, 톱, 망치, 칼.
그저 안톤의 눈앞에 늘어놓는 것만으로,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한 것이다.
“고작 손톱 두 개 떼어 냈다고 질질 짜는 거냐? 손톱 정도야 기다리면 다시 자라나.”
김서현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이스가르드에서 한창 전쟁할 때.
적군을 포로로 잡아 심문하는 건 흑마법사의 일이었다.
즉, 이런 일에는 도가 텄다는 말이다.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가 안톤의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히익! 그만! 맹세하겠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알려 주겠다!”
그러자 놈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실만을 말하겠다며 빌었다.
“이러면 너무 재미없는데.”
김민준이 손을 건네자, 김서현이 기다렸다는 듯 대못을 전달해 주었다.
“일단 왼손부터 하자고.”
그 뒤 놈의 왼쪽 손등을 향해 못을 조준했다.
“그만!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안톤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의 놈들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다.
군복과 계급장을 보면 군인이 맞기는 한데… 적어도 러시아 출신은 아니었다.
“타국의 군인이 왜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하는 거냐!”
중세 시대도 아니고, 이런 구시대적인 방법으로 심문을 하다니.
대체 어느 나라의 군인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쿠웅!
“내가 다 알고 있다! 나 말고 러시아 국방부의 장군들 2명이…. 끄아아아아아!”
못이 박히는 소리와 함께, 안톤이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뭐 하냐?”
못은 정확히 안톤이 앉아 있는 의자에 박혔다.
처음부터 겁만 줄 목적이었다.
예상 이상으로 놈의 입이 무거웠다면… 방법을 바꿨겠지만.
“러시아 국방부의 장군 2명이라. 거짓말이면 다음엔 이걸 써야겠는데.”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 제발 내 말을 믿어다오!”
톱을 집어 들자, 안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놈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저건 결코 연기가 아니다.
진심이었다.
“좋아. 읊어 봐. 참고로 위에 있는 36명의 용병은 이놈한테 머리가 뽑혔거든? 넌 쓸 만해서 살려 두는 거야.”
스스스스.
나이트 워커가 놈의 몸을 조금씩 옥죄인다.
그러자 놈이 정보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혀, 현재 다크 머메이드와 내통하고 있는 인간은 나와 국방부의 장군까지 총 3명이다.”
놈에게 스스로 정보를 불게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넘겨줘야 더 후한 보상을 받지.’
소환수가 강제로 인간의 정보를 뽑아내 버리면 부작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심하면 식물인간까지도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놈을 활용할 방법은 많고.’
게다가, 안톤을 이용해 국방부의 장군을 꾀어낼 수도 있고.
내통하고 있는 다크 머메이드를 꾀어낼 수도 있다.
굴릴 수 있는 패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나는… 살기 위해 다크 머메이드에게 복종했다.”
안톤이 처음 몬스터를 마주쳤을 때.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고 도망치려고 했었다.
다만, 몬스터가 인간의 말을 하는 걸 알고 순간의 기지를 발휘했다.
“나를 살려 주면 수많은 인간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다크 머메이드가 안톤의 결심을 바꿔 버렸다.
젊고 싱싱한 인간들을 바치는 대가로, 젊음을 되찾는 비약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 것이다.
“내 나이는 벌써 60이 넘었다. 그 신체가 4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해서 몬스터가 포섭한 인간은 총 3명.
고위 관료 직인 안톤과 2명의 국방부 장군들이었다.
“어이가 없어가지고. 넌 그 말을 믿냐?”
김민준은 놈의 뺨을 한 대 갈겼다.
몬스터의 말을 무슨 근거로 믿는 건지.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을 납치해 넘긴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젊음을 되찾는 비약이 상자째로 있다.”
“뭐, 뭐라고?”
“몬스터가 한 말이나, 내가 한 말이나 똑같다는 말이다. 구라라고.”
짜악!
“크악!”
놈의 뺨을 한 번 더 갈긴 뒤, 밧줄을 풀어 주었다.
젊음을 되찾는 비약?
고위 마법사, 고위 사제.
고위 흑마법사나 주술사도 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그걸 고작 몬스터가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짜악!
“큭! 왜 자꾸 뺨을 때리는….”
“그냥 네놈 얼굴 보니까 짜증 나서.”
김민준은 놈을 뺨을 몇 대 더 후려친 뒤, 고개를 까딱였다.
다른 내통자에게 연락하라는 제스처였다.
“순순히 협조하면, 네가 받게 될 벌 최소화시켜 준다. 이거 보이냐? 무궁화. 소령이라는 뜻이다.”
“…알겠다.”
사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안톤.
놈은 죗값을 최대로 치를 것이다.
**
“어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한편.
러시아 헌터군들은 다크 머메이드의 은신처를 탐색하고 있었다.
“고작 드론이나 조종하면서 심장이 떨어지기는 무슨.”
“이봐. 우린 저기에 들어갔다가 나왔었다고.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면 토악질이 나올걸.”
다크 머메이드는 생명체의 기척을 탐지할 수 있다.
러시아 헌터는 몇 번의 시도로 얻어 낸 이 귀중한 정보를 유용하게 사용했다.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을 통해 내부 지형을 파악한 것이다.
“30명 가까이 찾았어. 1시간은 더 필요할 거야.”
“쯧. 몬스터 새끼. 꼴에 머리 굴리기는.”
몬스터의 은신처.
그 내부 구조는 꽤 복잡했다.
놈이 납치한 아이들은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2~3명씩 다른 공간에 분리되어 있었다.
“애들을 던전 안에 들여놓으면 죽는 걸 아는 거다, 이놈은.”
헌터들조차 던전에서 하루를 버티기 힘들다.
다크 머메이드는 그것을 알고 은신처를 만들었다.
헌터들이 아이들을 쉽게 구출하지 못하도록 깊고, 복잡하게 말이다.
“이런 망할. 저번에 왔던 때보다 구조가 더욱 엿 같아졌잖아.”
“이거 단시간에 구출해 내는 건 어렵겠는데.”
“약한 소리 할 때냐? 엉?”
헌터들이 투덜대자, 옆에서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미샤 소령이였다.
“어억!”
“아이들이 구조를 바라면서 숨죽이고 있는데, 뭣들 하는 거냐! 30분 내로 파악 끝내!”
“예!”
“드론 한 대 더 투입해!”
“알겠습니다!”
그녀는 입에 문 담배를 질겅질겅 씹기만 했다.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데, 구하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한다니.
몬스터에게 휘둘리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 어?”
“미샤 소령님! 저, 저기 보십쇼!”
“은신처 탐색이나 할 것이지 정신을 어디에 팔…. 응?”
상공을 가리키는 헌터.
미샤 소령은 상공을 슥 쳐다보고,
“…저건 또 뭐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상공에 김민준이 떠 있었다.
정확히는,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양 옆구리에 김서현 하사와 안톤을 낀 채로.
“안톤을 끌어낸 건가!”
“그놈을 거기에서 끌어냈다고?”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놈을? 고작 두 명이서 어떻게….”
러시아 헌터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수정된 작전은 그야말로 터무니없었다.
본거지를 지키는 수많은 민간 헌터들.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안톤을 벙커에서 빼내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작 두 명의 헌터가 그 일을 해내겠다고 나섰을 때는….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인 줄 알았다.
“기, 김민준 소령! 방금 날아서 온 건가? 이곳은 배를 타고 와야 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안톤을 어떻게 빼낸 거지?”
두 명의 한국 헌터가 보란 듯이 해낸 것이다.
냉정하고 독하기로 유명한 미샤 소령조차 당황해서 말을 더듬을 정도.
“본거지를 지키는 36명의 용병들 무력화. 그다음 안톤을 심문했지.”
김민준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안톤을 땅에 내팽개쳤다.
놈의 얼굴은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불어 있었다.
“내 예상대로 내통하고 있는 인간이 더 있었다. 국방부의 장군 2명.”
“증거는?”
그가 안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안톤이 후다닥 달려와 스마트폰과 USB를 내밀었다.
“여기에 관련 자료들 다 들어 있다. 당연히 확인해 봤고.”
“…이놈 반 정도 죽여 놔도 되냐?”
미샤 소령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안톤을 물어뜯을 기세다.
“이놈을 미끼로 써야 하거든. 그 뒤에 마음껏 패라.”
“…좋아.”
그녀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헌터들 또한,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놈을 미끼로 사용한다는 김민준의 말에 이를 갈며 참았지만.
“우린 안톤을 앞세워 몬스터의 은신처에 들어간다.”
그는 러시아 헌터들에게 신호를 주면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몬스터가 아이들에게 헛짓거리를 했을 확률이 높다.
우선 안톤을 앞세워, 내부의 상황부터 파악할 생각이었다.
“김민준 소령. 안톤을 잡아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머지는 우리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몬스터가 아이들한테 주술을 걸어 놨을 확률이 높아. 주술을 푸는 게 먼저다.”
“큭…. 신호만 주면 바로 들어가겠다.”
미샤 소령은 입술을 깨물며 무전기를 던져 주었다.
“좋아. 그럼 가 볼까, 안톤.”
“예, 예….”
다크 머메이드.
딱 기다려라.
내가 기발한 작전을 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