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러시아-2
“나랑 한판 할래? 네가 그렇게 세다던데.”
상황을 중재하러 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즐기러 온 듯한 말투.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
“농담 두 번 했다가는 얻어맞겠어. 아하하하!”
별 반응이 없자 대뜸 손을 내민다.
화이트 샤크의 팀장, 미샤 소령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 애들은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어서 얻어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내가 이놈들의 팀장을 맡고 있다. 편하게 말 놓도록.”
“104사단 소속 무적 헌터 부대 김민준 소령이다. 옆은 부소대장을 맡고 있는 김서현 하사.”
“흐음. 옆의 부소대장은 작전 투입을 허락할 수 없겠는데.”
“김서현 하사가 네 대원들보다 강하다. 난 오히려 네 대원들의 작접 투입을 허락할 수 없겠는데.”
“호오…. 성격 한번 화끈한데 그래.”
전혀 물러서지 않는 두 명의 소령.
서로 날카로운 눈빛이 오가는 와중, 미샤 소령이 피식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그래. 도움을 요청한 건 우리니까. 결과만 내줄 수 있다면 상관없어.”
그녀는 바로 임무 브리핑을 하겠다며 공항 밖으로 향했다.
‘확실히 러시아 헌터는 다르긴 하네.’
미샤 소령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곰이 할퀸 것 같은 얼굴의 흉터.
꾹꾹 눌러 압축한 듯한 실전 근육들.
러시아 헌터군에서 소령을 달 정도면, 한국에서 대령은 그냥 단다던데.
“언제까지 거기서 흐느적거릴 거냐!”
“우워억!”
그녀는 주머니에서 보드카를 꺼내, 병째로 부하들의 머리를 가격했다.
자신에게 딱밤을 맞은 헌터 2명에게 말이다.
“네놈들이 좋아 죽는 보드카다! 이걸로 소독하고 후딱 따라와!”
“예!”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
러시아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상이었다.
“재밌는 놈들이네.”
“제가 볼 땐 그냥 야만인들이네요.”
김서현이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뒤를 따랐다.
**
“요점만 짚고 신속하게 작전 투입!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러시아의 군 기지, 작전 상황실.
커다란 나무판에 사진 2장이 붙어 있었다.
보고서에서 언급된 이레귤러 몬스터.
그리고 놈과 내통하고 있는 고위 관료, 안톤.
“주도권은 저놈들한테 있지. 우린 앞서 구출 작전을 3번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미샤 소령이 앞으로 남은 기회는 단 한 번이라고 말했다.
“이놈의 이름은…. 쯧. 국방부에서 다크 머메이드라고 붙였더군. 리자드맨의 이레귤러다.”
다크 머메이드는 다음에도 이러면, 인질을 죽여 버리겠다는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때문에 압도적인 기동력과 채찍 숙련도를 가진 자신을 찾은 것이고.
“다크 머메이드라.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 입에서 독을 뿜는 것 정도는 건졌지. 최근에는 스마트폰까지 사용할 수 있다던데.”
미샤 소령이 불현듯 박수를 한 번 쳤다.
“아. 그래. 그놈이 그랬지. 자신은 마기를 다룰 줄 알며,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라고 했다.”
“마기에 주술?”
“그래. 마긴지 주술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이게 무슨 판타지 게임도 아니고.”
“그게 진짠지는 검증해 봤고?”
“저기 저놈 보이냐?”
그녀가 화이트 샤크 대원 한 명을 가리켰다.
구석진 곳에서 머리를 툭툭 박고 있는 남성.
마치 자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크 머메이드를 마주친 뒤 저렇게 변했다고 한다.
“한번 볼까.”
“뭐냐? 너, 놈에 대해 알고 있는 거냐?”
“모르지. 그래도 마기나 주술에 대해서는 나름 알고 있다.”
다크 머메이드.
처음 듣는 몬스터다.
물론 그래 봐야 아무 상관 없다.
놈이 마기를 다룰 수 있다는 부분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니까.
“흐어…. 흐어어…. 난 왜 사는 걸까…. 난 죽어야 해….”
“무력화 저주네. 비교적 간단한 주술이다.”
“뭐? 그걸 눈으로 보는 거로 알 수 있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못 믿겠습니다….”
“의무 헌터랑 장교, 유명 의사들까지 달라붙었는데 원인 불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고작 10초 만에 끝난 진단.
러시아 헌터들는 전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마기가 뭔지도 모르는 헌터들이니까.
주술은 당연하고.
‘증명은 쉽지.’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저 헌터를, 멀쩡하게 돌려놓으면 될 일이다.
스스스스.
손을 뻗어 해당 남성에게 마기를 불어넣었다.
“으억! 으어어억!”
“군인이면 이 악물고 참아.”
자신의 마기를 이용해, 다크 머메이드의 주술과 잔여 마기를 중화시키는 작업.
매우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술을 이런 방식으로 제거할 수 있는 건 상위 흑마법사들뿐이었으니.
“어, 어어? 그 자식은! 그 못생긴 인어는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후.
러시아 헌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을 일으켰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동료들에게 총을 건네 달라고 소리친다.
“마력 개틀링 어디 갔어! 빨랑 가져와! 그 새끼 대가리에 구멍을….”
“정신 안 차리냐!”
뻐억!
미샤 소령의 거친 발길질에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이, 이게 어떻게 된 일….”
“야! 아무나 이 자식 데리고 가서 눕혀!”
“예!”
“의무 헌터나 장교도 빨랑 부르고!”
“예!”
“보드카도 한 병 욱여넣어! 푹 재워!”
“알겠습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정리되길 잠시.
러시아 헌터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냐?”
짧은 침묵이 흐른 뒤, 미샤 소령이 입을 열었다.
“주술을 해제한 거지. 알려 달라고는 하지 마라. 이런 건 타고나야 하는 거라.”
“하… 하하하하! 이 자식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니까! 그 말은, 몬스터가 가진 마기와 주술에 완벽히 대처할 수 있다. 이 말이냐?”
“물론. 나 혼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좋아. 그거면 된다. 네 힘은 확인했으니 더는 묻지 않도록 하지.”
방금 저 대원은 2일 동안이나 벽에 머리를 박던 놈이었다.
의무 장교들조차 약물로 재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 걸….
고작 수 분 만에 해결한 것이다.
저런 걸 본 이상 믿을 수밖에.
“기본적으로 인질 구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지. 공교롭게도, 우린 그 시간이 많아.”
현재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주도권은 몬스터가 꽉 쥐고 있다.
놈과 내통하고 있는 관료는 건드리지도 못 한다.
‘김민준. 저놈이 우리 작전의 열쇠다.’
김민준 소령.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고평가를 받고 있는 헌터.
그가 작전에 투입된다면… 어떻게든 길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확신했다.
“현재 다크 머메이드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이놈, 안톤. 이 개자식이 엿 같은 제안을 해 왔어.”
안톤은 인질을 교환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자신들은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
그러니 가정이 불우한 청소년이나, 불치병에 걸린 청소년을 데려와도 좋다.
3일의 시간을 주겠다라면서.
“정상인이 할 생각은 아니네.”
마치 선심 쓰는 듯 말하는 것이 역겨울 정도다.
사람의 목숨을 뭐로 생각하는 건지.
‘일부러 애들은 콕 집어 인질로 잡는다 이거지.’
마기를 다룰 수 있고,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몬스터.
인질로 잡힌 청소년들.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고작 하려는 게 어중간한 주술사랑 흑마법사 흉내나 낸다 이거냐.’
몬스터와 인간의 내통.
몬스터가 하려는 개짓거리.
스케일이 결코 적지 않다.
분명 엮인 인간이 더 있을 터.
“내가 제안한다. 이대로 움직이면 작전은 실패하고 인질은 다 죽어.”
작전을 새로 제안했다.
러시아 측 헌터는 던전 구조를 파악하는 역할.
한국 측 헌터는 몬스터와 내통하는 인간의 정보를 빼내는 역할로.
“이봐. 네 말이 정답인 거는 나도 알아. 저기 멀뚱하게 서 있는 멍청한 소위도 안다고.”
미샤 소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답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정보를 빼내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럴 것이, 안톤에게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 놓은 화려한 건물 한 채.
안톤은 그 밑에 벙커를 추가로 건설했다고 한다.
“그 주위로 아무것도 없어. 모래밖에 없다고. 입구는 하나밖에 없고. 감시망을 피해서 접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두더지라면 모를까.”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리고 너도 알고 있잖아. 여기에 엮인 인간이 과연 한 명일까?”
“후우….”
그녀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고, 질겅질겅 씹기만 했다.
그러길 대략 10여 분.
“좋아. 이왕 뽑는 거 뿌리까지 싹 뽑아야지. 이번 작전에 네 목이랑 내 목, 둘 다 걸자고.”
미샤 소령의 결정으로 작전이 새롭게 짜였다.
**
“돈이 얼마나 넘쳐 흐르길래 저런 곳에 집을 지어 놨냐?”
“확실히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건 어렵겠네요.”
새로운 작전이 개시되었다.
김민준은 김서현과 함께 안톤의 거주지를 찾았다.
도심에서 50㎞ 떨어진 지역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집 한 채.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루라고 착각하겠어.”
건물 곳곳에는 복면을 쓴 괴한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옥상에는 기관총까지 배치되어 있고.
“하나둘셋. 이야…. 많기도 많네.”
경비를 서는 인원만 36명.
죄다 무장한 상태다.
“일반적인 헌터는 무리긴 하겠네.”
저 괴한들은 전원 헌터였다.
당연히 일반인들에 비해 신체 능력이 뛰어날 테고.
“넌 안톤한테 가라. 놈이랑 엮인 인간들 찾아보고.”
“네.”
“내가 먼저 흔들 테니까, 틈이 생기는 대로 들어가.”
“맡겨 주세요.”
잠입은 김서현이 가진 특기 중 하나다.
단신으로 교회의 성유물을 빼돌릴 실력.
이런 것 정도야 껌이라는 말이다.
“좋아. 그럼 오랜만에 놀아 볼까.”
스스스스.
김민준의 손바닥에서 마기가 새어 나왔다.
새어 나온 마기는 공중으로 올라가 검은 구름을 만들었다.
마기의 비.
이전보다 강해진 스킬의 위력.
헌터들의 혼을 빼놓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뭐야?”
“갑자기 웬 비냐?”
“어? 어어?”
치이이이이이.
“끄아아아아!”
“이, 이거 뭐냐! 몸이 녹는다!”
“당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
헌터의 신체는 물론이고, 건물까지 녹여 버리는 위력의 스킬.
“사장이 직원을 제대로 안 뽑았네. 보고도 안 하고 튀는 거 봐라.”
허둥대며 우왕좌왕하는 괴한들. 입꼬리를 올리며 지옥귀들을 소환했다.
“지금.”
“네. 맡겨 주세요.”
그사이 건물에 접근한 김서현이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난 이놈들부터 하나씩 캐 볼까.”
5㎞ 이상 떨어진 거리지만, 상관없다.
각력만으로도 순식간에 좁힐 수 있다.
그동안 올린 괴랄한 스텟들 덕분에.
뻐억!
“커허억!”
놈들을 제압하는 건 매우 쉬웠다.
스킬의 피해로 인해 절반 이상이 기절한 상태였기에.
물론 정보를 빼내는 것이 우선이라, 죽지 않을 정도로 피해를 조절했다.
“36명. 다 모였구만.”
“네, 네놈은 뭐냐?”
“이곳이 어딘지는 알고 그러는 거냐?”
“넌 이제 뒤진 목숨이라고 생각해라. 넌 우릴 잘못 건드린 거다.”
의식을 되찾은 괴한들.
놈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험한 말을 쏟기 시작했다.
“잘못 건드린다는 건 이런 건가?”
스스스스.
자신의 손짓에, 나이트 워커가 괴한의 머리에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