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60화 (160/212)

160. 훈련소 소대장-3

“으어어어억!”

채찍은 훈련병을 휘감은 채 돌아왔다.

분명 채찍은 상대방을 때리기 위한 무기일 터.

그런 무기가, 마치 밧줄처럼 사용된 것이다.

“컹?”

“커엉! 컹!”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하운드들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짜악!

이어서 채찍이 지면을 세게 때렸다.

거기서 발생한 충격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몬스터가 순간적으로 겁을 먹은 것이다.

“어우! 순간 귀가 먹은 것 같은데요….”

“김민준 소령님이 때리신 지면. 움푹 파였는데요….”

“헉! 딱 봐도 10㎝는 움푹 파인 것 같은데….”

“채찍으로 저런 게 되나?”

“힘 스텟이 되게 높으신 거 아닐까요?

촬영 팀이 저마다 침을 꿀꺽 삼켰다.

헌터와 일반인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말에 과장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저게 과연 사람인가 싶을 만큼.

‘이럴 때 쇼맨십 한번 보여 줘야지.’

김민준이 피식 웃으며 검은 형태의 채찍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심연을 머금은 어둠의 효과를 사용했다.

스스스스.

채찍에서 흘러나온 수많은 어둠이 하운드를 한 마리씩 속박시켰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검은 뱀을 보는 듯했다.

“빨리! 빨리 저거 클로즈업해!”

“어…. 가까이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해지면 나한테 말해! 넌 저쪽 가서 찍어! 각도 밑쪽으로 해서!”

“아, 알겠습니다!”

촬영 팀들은 직업 정신을 발휘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뒤쪽에만 빠져 있었는데, 어느새 적응된 듯했다.

“1조는 여기까지. 조교들은 나가면서 1조에 대한 평가지 작성하고.”

“예, 예!”

“10분 안으로 2조 훈련 준비시켜.”

“알겠습니다!”

몬스터의 몸을 옭아맨 저것의 정체는 뭘까.

김민준 소령님이 가진 채찍은 어떤 아이템일까.

어떤 몬스터라도 속박할 수 있는 걸까.

얼마나 오래 속박할 수 있는 걸까.

조교들은 당장이라도 질문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물론,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1조는 의무 헌터들에게 체크 한 번 받고 뒤에서 대기한다.”

“예!”

“알겠습니다!”

“몸에 따로 이상이 있거나 하면 망설이지 말고 말해. 알겠냐.”

“예!”

훈련용 던전을 나오자마자 1조를 의무 헌터들에게 보냈다.

본래 이런 절차는 없다.

촬영을 생각해 임시적으로 추가한 매뉴얼이다.

‘전국에 방송되니까, 안전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 줘야겠지.’

이어서 2조, 3조, 4조.

훈련이 계속 진행되었다.

다른 훈련병들도 카메라를 의식하는지,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다들 고생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밤 10시가 지나서야 던전 실습 훈련이 끝났다.

훈련병들의 보호 슈트는 대부분 너덜너덜한 상태.

하급 몬스터인 하운드가 얼마나 무서운지.

또한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했을 터.

“다들 훈련받아서 알겠지만, 하급 몬스터라고 전혀 약한 게 아니다. 알겠냐.”

“예!”

“자대에 가면 하운드는 장난일 정도로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 방심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어.”

소대장으로서의 몇 가지 조언을 해 준 뒤, 훈련병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김민준 소령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순간.

PD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급하게 전할 말이 있다면서.

“네. 무슨 일인가요?”

“드디어 헌터 본부에서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뭐길래 저렇게 기쁜 듯이 말하는 걸까.

이어지는 PD의 말에 훈련병들이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블루 걸즈라고, 아이돌 그룹의 위문 공연을 허락하셨습니다. 헌터 본부에서요.”

“우와아아아아악!”

“미친! 블루 걸즈!”

“미쳤다! 돌았다!”

고된 훈련에 꾸벅꾸벅 졸던 훈련병들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치켜떴다.

“야! 입 닫아!”

“조용히 해!”

조교들이 재빨리 분위기를 잠재우려 했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남자일 뿐.

몇 명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걸 그룹이라. 이곳에 왔으면 좋겠냐?”

“예!!”

훈련 때보다 몇 배는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긴.

헌터군은 보안상의 문제로 인해, 위문 공연은커녕 면회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분명 PD가 방송을 미끼로 딜을 걸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 선례를 몇 번 만들어 놨던 것도 있겠지.’

위문 공연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

그 전에 헌터 장교 양성 교육의 다큐멘터리가 나갔으며.

몬스터와 싸운 동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단단히 걸어 잠갔던 폐쇄성을, 조금이지만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쪽으로 변하는 건 나쁘지 않지.’

그동안 너무 무식하게 문만 닫아 놓았으니까.

보안 역시 중요하지만, 헌터들 역시 중요하다.

자그마치 5년.

5년이나 군대에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자다가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후다닥 뛰쳐나가야 하고.

던전을 공략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일반군도 그렇지만 헌터들도 고생 많이 하는데. 이제라도 허락해 주니 다행이네.’

순간 장난기가 돌아, 굳은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은 너희들 훈련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데….”

“아….”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아아!”

“소대장은 훈련병들 훈련 태도에 실망했다.”

순식간에 축 처지는 분위기.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이고. 남은 훈련 잘해라. 자대 가서는 당연하고. 알겠냐.”

“예!!”

그날.

헌터군 최초로, 훈련소에서 위문 공연이 허가되었다.

**

남은 훈련이 모두 끝나고, 위문 공연의 날.

훈련병들은 엄청난 기세로 훈련을 소화해 나갔다.

3소대뿐만이 아니다.

729기 헌터 훈련병들 모두에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훈련 성적은 당연히 우수.

저 기세가 1년만 유지되어도 웬만한 몬스터들은 다 때려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야. 김민준 소령님 덕분에 일이 술술 풀리네요.”

어느새 PD가 다가와 속사포 랩을 쏘아 댔다.

“헌터군 특집 다큐를 실현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김민준 소령님과 헌터군의 이미지를 잘 섞으니 고민하는 기색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이때가 타이밍이다! 하고 몰아붙였죠! 김민준 소령이 방송에 출현하면 시청률 30%는 거뜬하게 기록될 것….”

“예. 신발 끈 풀리셨어요.”

“어이고! 내 정신이! 하마터면 아이돌 앞에서 넘어질 뻔했네요!”

PD가 말하길, 본래 위문 공연의 실현에는 큰 걸림돌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부대다 보니, 아이돌이 도통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꺼내니 바로 해결됐다나.

“사실 블루 걸즈 말고도 걸 그룹 몇 개가 더 있었죠. 김민준 씨의 얘기를 꺼내니까, 있는 스케줄도 빼면서 오려고 하더라니까요!”

“과장이 너무 심하시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돌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잖아.

더군다나 군인한테.

“하하. 김민준 씨는 본인의 인기를 잘 모르시네요. 혈귀랑 싸운 그 영상 때문에 엄청 유명해지셨는데.”

PD는 아이돌 몇 명이 전화번호를 건네줄지도 모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예. 그것보다 곧 아이돌 올 텐데, 촬영 안 하시네요.”

“어우, 벌써 시간이! 그럼 김민준 씨. 마지막까지 잘 부탁합니다!”

30분쯤 지났을까.

대강당 안으로 훈련병들이 들어왔다.

본래 종교 활동을 위해 쓰이는 시설인데, 그동안 방치 상태나 다름없었다.

훈련 일정이 워낙 빠듯했으니.

“크으! 드디어 오늘이다!”

“와, 씨. 난 헌터군 입대해서 아이돌 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 말이. 거기다 그냥 아이돌이냐? 블루 걸즈잖아.”

“걔네들 최근에 확 뜬 아이돌 아니냐?”

금세 시끌벅적해지는 강당 내부.

본래 같으면 조교들이 조용하라며 고함을 질렀을 것이다.

다만.

오늘만큼은 훈련병들을 마음껏 풀어 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야. 촬영 덕을 이렇게 보네.’

‘촬영 의식해서 더 빡세게 굴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조교들 역시 기대감을 품고 기다렸다.

블루 걸즈가 어떤 아이돌인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걸 그룹 중 하나다.

티켓 예매가 떴다 하면 1초도 안 돼서 매진되어 버리니까.

“모두~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나라를 지켜 줘서 항상 고마워요!”

잠시 후.

강당 단상 위로 조명이 켜지며 아이돌이 등장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안녕하세요!”

“누나아아아! 예뻐요!”

5명의 멤버로 구성된 걸 그룹.

강당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바로 노래부터 한 곡 할게요!”

“훈련받느라 많이 힘들죠? 오늘 하루는 마음껏 놀아 봐요!”

곧 아이돌의 댄스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넌 내 거! 나는 네 거!”

“예이예이예!”

훈련병들은 아이돌을 따라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혼연일체가 된듯한 모습.

가까이 오라는 가수의 말에, 다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기까지.

‘짜식들. 잘들 노네.’

김민준은 정신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훈련병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런 기회가 다른 부대에도 왔으면 좋겠는데.’

병사들의 사기도 올라가고 얼마나 좋아.

“여러분!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분이 누군지 아세요?”

노래가 3곡쯤 끝났을까.

아이돌 멤버 한 명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에 따라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렸다.

“김민준 소령님입니다아아아!!”

뭐야.

나 아닌데.

고개를 돌려 PD를 쳐다보니, 그저 웃기만 한다.

“그 소대장님이 글쎄, 노래를 엄~ 청 잘하신대요! 다들 노래 한 곡 들어 보고 싶죠?”

“예에에에에!”

“듣고 싶습니다아아!!”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야.

다시 한번 PD를 쳐다보니, 말없이 엄지를 척 치켜세워 준다.

‘뭐야. 누가 나보고 노래 잘한다고 했어.’

과열된 분위기.

이런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야 없지.

고개를 긁적이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이놈들아. 발라드랑 락 중에서 골라. 그리고 나 노래 별로 못한다.”

“와아!”

“전 발라드 한 곡 들어 보고 싶네요! 목소리가 중저음이셔서 잘 부르실 거 같아요!”

“저두요! 발라드 해 주세요!”

아이돌 멤버가 호들갑을 떨며 마이크를 넘겨 온다.

꼭 발라드를 들어 보고 싶다나.

…그런데 왜 은근슬쩍 몸을 만져 대는 건지.

“발라드. 알겠습니다.”

최신 인기곡들은 듣지 않아 아는 노래가 없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무반주로 부르겠다고 말했다.

“와…. 직접 노래도 만드셨어요?”

“무반주는 쉽지 않으실 텐데….”

대뜸 무반주로 노래를 부른다니.

얼마나 노래를 잘할까.

아이돌 멤버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사실 내가 작곡한 노래는 아니지.’

정확히는 이스가르드.

동료였던 흑마법사가 만든 노래다.

떠난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노래.

‘그놈이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는데.’

마침 발라드풍이기도 하고, 애초에 반주가 필요 없는 곡이다.

천천히 목을 가다듬으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렸다.

‘그때의 우린 앞날이 어두웠다. 언제 죽을지도 몰라 벌벌 떨었지. 어떻게든 다 같이 살아남자고 다짐했고.’

동료였던 흑마법사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갈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강해지자고.

어디까지고 강해져서 꼭 복수해 주겠다고 말이다.

“…….”

노래가 한 소절씩 이어질수록, 강당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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