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징계
“찾아라 드라곤볼 알지? 처음은 이거부터다.”
“…예?”
“너 오늘 교육 빈 거 확인하고 부른 거야. 중대장한테는 따로 보고해 놨으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고.”
만약 폭력이라도 사용했다면.
김상덕 대위는 그날로 지옥이 뭔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물론 놈이 선을 넘지는 않았기에, 조금 봐주기로 했다.
아주 조금뿐이지만.
“지금부터 나랑 놀자고. 나도 마침 한가하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김상덕 대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사였던 간부가 중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이제는 소령까지 달았다.
사실 김민준이 중위를 달았을 때.
김상덕은 그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잘못 건드렸다가 소령이라도 다는 날에는….
보복을 당할 것 같았기에.
‘망할.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때문에 이전부터 조용히.
그와는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녔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자신을 호출한 것이며.
저렇게 화가 난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구슬 7개 던진다. 너 이거 다 찾기 전에 집 못 간다. 다 찾아도 안 보내 줄 거지만.”
김민준은 연병장을 향해 구슬을 뿌렸다.
“30분 안에 다 찾아.”
“알겠습니다!”
김상덕은 부랴부랴 연병장으로 뛰어가 구슬을 찾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른 채로.
‘넌 24시간 동안 나한테 굴려질 거다.’
김민준은 놈을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뿌린 구슬은 6개.
1개는 주머니 속에 숨겨 뒀다.
‘일단 이걸 10시간 정도 해 볼까. 아니지. 6시간 정도만 할까.’
예전.
병사들끼리 존재했던 악폐습 중 하나.
이곳에서야 거의 없어졌겠지만, 다른 부대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말로 해서 들을 놈이 있고, 듣지 않을 놈이 있지.’
김상덕은 당연히 후자에 해당한다.
말로 주의를 줘서 깊이 반성할 놈이었으면 이러지도 않았다.
얼마나 이유나를 집요하게 괴롭혔으면, 타 대대 소대장이 말을 꺼냈을까.
“김민준 소령님. 6개밖에 찾지 못했습니다만….”
30분이 지났다.
김상덕 대위는 우물쭈물하며 구슬을 건넸다.
딱 봐도 김민준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괜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 다시 찾아.”
재차 연병장으로 뿌려지는 구슬들.
이런 반복적인 작업은 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허억…. 헉….”
어느새 온몸이 흙범벅이 된 김상덕.
“내가 왜 이러는지 이제 알 거 같냐?”
김민준은 그사이, 이유나 소위가 속한 대대에서 정보를 모았다.
정확히는 그녀 주위의 소대장이나 병사들에게서.
“모르겠습니다. 저를 갑자기 왜 괴롭히시는 건지….”
놈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왔다.
역시.
예상은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런 놈일 것 같다는 예상을.
“5월 3일 오후 3시. 이유나 소위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함. 5월 8일 12시. 간부 식당에서 트집을 잡으며 언성을 높임. 5월 12일 오후 4시. 자꾸 이러면 너만 힘들어진다며 밖에서 한 번만 만나자는 발언을 함. 5월 16일….”
“그, 그건….”
무미건조한 말이 이어졌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김상덕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대, 장소까지 언급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라는 것.
“이건 이유나 소위에 대해서만 네가 한 짓거리고. 병사들한테도 헛짓거리 많이 했네?”
이유나뿐만이 아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병사들을 구타했다는 제보까지 들어왔다.
한두 명도 아니고, 30명 가까이 말이다.
“이 새끼 정신 나갔네. 대위 달았다고 네 멋대로 설치고 다녀도 된다 이거냐?”
기합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
훈련의 효율성을 위해.
병사들이 훈련 중 다치지 않도록 다그치기 위해.
하지만, 부대 내의 폭력은 어떤 상황이든지 정당화될 수 없다.
일반군이든 헌터군이든 마찬가지다.
강한 처벌을 받게 되는 건 당연하고.
“김민준 소령님. 오해입니다. 이유나 소위는 제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일 뿐입니다.”
“병사한테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팼고?”
“그, 그것도 오해입니다! 교육 도중에 군기를 잡으려고 한 행동일 뿐이지,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습니다!”
당장 죄송하다며 머리를 박아도 한참 모자란데, 어떻게든 핑계만 대고 있다.
김민준은 놈을 향해 피식 웃었다.
“내가 애들한테 폭력만 안 썼으면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어억! 가,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놈의 멱살을 잡은 뒤, 인적이 드문 폐창고로 끌고 갔다.
이런 놈은 매가 약이다.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그래야 다른 부대에서도 똑같은 짓을 못 할 것 아닌가.
뻐억!
“커억!”
적당히 강도를 조절해, 놈의 복부를 가격했다.
“이병 일병들한테 훈련 제대로 못 받는다고 이렇게 팼다며?”
뻐억!
“못하면 잘하도록 가르쳐야지. 교육관의 의무가 그거 아니냐?”
“그, 그만! 제가 잘못했….”
“병사들이 잘못했다고 말했을 때는 멈췄냐?”
급소를 피하되, 고통은 최대로 느끼게.
김민준은 놈의 애원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끄아아악!”
흑마법사란 직업은 장식이 아니다.
어디를 때리면 아프고.
어디를 찌르면 죽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네가 한국에서 태어난 걸 감사하게 여겨야 될 거다. 헌터군이라는 것도.”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유나 소위랑 병사들한테 사과해. 나한테 사과하지 말고.”
“예…. 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겁에 질린 듯 덜덜 떠는 놈에게 회복 포션을 던져 주었다.
그 뒤 이마에, 피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오늘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길게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대대장님한테 보고드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교육관의 직책을 가진 장교가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을 줄이야.
놈을 일으킨 뒤, 다시 연병장으로 끌고 갔다.
마음 같아서는 죽기 직전까지 패고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는 놈이었다.
“야.”
“대, 대위 최상덕!”
“저기 안에 거울 있지?”
놈에게 보라는 듯 화장실을 가리켰다.
“거울 보고 이길 때까지 가위바위보 실시. 질 때마다 연병장 한 바퀴씩 돌아.”
“시, 실시!”
“이길 때까지다. 1초라도 쉬는 순간 알지?”
“예! 알겠습니다!”
그날.
김상덕 대위는 아침까지 김민준에게 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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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씨팔! 교육관이라는 새끼가 장교를 성희롱하고 병사들을 구타해?”
2대대 대대장실.
이준범 대령은 거친 말을 뱉으며 탁자를 과격하게 내려쳤다.
김상덕 대위는 성희롱 및 가혹 행위로 인해 군 교도소로 넘겨진 상태다.
교육관 직위 해제 및 감봉과 전출이 결정 났으며, 15일의 군기 교육대까지.
무궁화에게 찍힌 이상 헌터군 생활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대대장님이 천사네, 천사.’
저 정도의 일을 저질러도 전역을 안 시키는 걸 보면.
“후우…. 김민준 소령. 신속하게 보고해 줘서 고맙다.”
대대장은 자칫하면 큰일로 번질 뻔했다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피해자인 이유나 소위가 일을 크게 키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며.
김민준 소령이 문제가 더 커지기 전 보고를 해 준 덕분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다른 소대장들의 제보 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한테는 그런 문제가 없어서 괜찮나 보다, 했는데 장교가 그딴 짓거리를 벌였을 줄이야.”
무적 헌터 부대의 부조리는 꽤 사라진 편이다.
김민준이 부대에 온 뒤 나타난 현상이었다.
구타는 이전부터 없기도 했고.
그래서 괜찮겠거니 했는데, 장교가 병사들을 구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관이라는 직책을 이용해서.
“이런 썩을. 별 한번 달아 보려고 했는데. 이 일로 진급에 발목이 잡히겠다.”
해당 사건이 헌터 본부에 보고가 들어갔다.
당연히 진급에 있어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쯧. 장교들 제대로 관리 못 한 내 책임이지 어쩌겠나.”
대대장은 앞으로 그런 놈을 발견하게 되면, 마음껏 패도 좋다고 말해 왔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민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이미 그렇게 했다.
두 번 다시 헛짓거리할 수 없게끔.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충성!”
대대장실을 나서며, 소대장 및 중대장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김상덕 대위 같은 케이스를 발견하면 고민하지 말고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익명을 철저히 보장해 주고, 뒤탈이 없게끔 책임지겠다고.
소령이라는 계급의 힘을 이럴 때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튼 별것 아닌 놈들이 일을 벌인다니까. 응?”
“충성! 김민준 소령님. 잠시 시간 괜찮겠습니까?”
소대장실로 들어오자, 이유나 소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편하게 말 놔라. 일과 시간 끝났을 때는.”
“그럼 그렇게 할게.”
아무 일도 없는 듯 배시시 웃는 그녀.
“얌마. 그것보다 너 왜 지금까지 참고만 있었냐?”
적당히 마실 것을 건네준 뒤, 보라는 듯 자신의 계급장을 가리켰다.
“내 계급이 뭐냐?”
“무궁화 자랑하고 싶어? 김민준 소령님이시죠. 거기다 무려! 충무 무공 훈장까지 받으셨고요.”
“장난하지 말고.”
“그래, 너한테는 말해 줄게.”
자신의 진지한 모습에, 이유나 소위가 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안 참았다가는 김상덕 대위가 큰일 날 거 같아서 그랬지.”
“뭐?”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김상덕이 큰일 날 것 같았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장난으로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사실 아버지가 외교부 장관이셔.”
“오우.”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런데… 아버지가 힘이 좀 세거든.”
“장관급이면 높으신 분이네.”
외교부 장관.
손은서 아버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높은 지위를 가졌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아버지가 날 굉장히 아껴 주시거든. 헌터군 입대하는 것도 얼마나 말리시던지.”
놈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참은 이유가 다름 아닌 아버지였을 줄이야.
“하긴. 그 정도면 뭐, 부대 뒤집혔겠네.”
“그렇지? 당연히 난 다른 부대로 보내실 거고. 그럼 너랑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
“떨어져 있으면 뭐 어때서. 던파에서 만나는데. 다음부터는 참지 마라.”
음료를 마시며, 이유나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정말로 괜찮은 건지 살펴보기 위해.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녀는 괜히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애썼지만.
더운 듯 손으로 부채질까지 하길래, 친절히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보이냐? 소령 달았다고 에어컨까지 달아 주더라고. 네 소대장실에는 이런 거 없지?”
“넌 소령 달아도 애 같다니까.”
서로 간에 밀린 이야기가 오갔다.
이유나는 그동안 너무 바빠 까톡할 시간조차 없었다며 불만을 뱉었다.
소대장의 업무가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면서.
“적어도 군대에서 야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구. 일 적응하는 거랑 소대원들 관리하는 거랑….”
“던전 공략 있는 날이면 정보도 미리 숙지해 놔야 하고.”
“아, 맞아! 진짜 소대장님들 이거 어떻게 다 하나 싶더라니까!”
둘 다 소대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사실 웬만한 업무는 부소대장인 김서현이 처리해 주고 있어 편했지만.
“너한테 할 말이 하나 더 있는데….”
대화 도중,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