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신념의 지휘봉-2
[충분한 경험치가 누적되었습니다.]
[신념의 지휘봉이 LV.2로 성장합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들.
아이템을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뭔지 알겠네.’
그 이유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예전, 장군들이 신념의 지휘봉을 사용한 뒤 의식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템의 경험치가 꾸준히 누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레벨 2란 말이지.’
김민준은 악어 수달을 한 마리씩 걷어찼다.
일부러 강도를 조절해, 거리를 멀리 떨어트렸다.
“다시 온다. 진열 다듬고 준비해. 너네들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예!”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신념의 지휘봉 효과가 적용됩니다.]
[최대 15명의 병사가 해당 효과를 받습니다.]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소량 상승합니다.]
[해당 병사들의 체력 회복 속도가 소량 상승합니다.]
[29분의 유지 시간이 남았습니다.]
빛이 병사들의 몸을 다시 한번 휘감았다.
레벨1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체력 회복 옵션이 추가로 붙었다는 것.
“소대장님이 버프 주셨다!”
“으아아아아아!”
“몇 마리 안 남았다!”
“이 악물고 조져 버려!”
소량의 버프라도 효과는 있었다.
헌터들의 굼뜬 움직임이 사라진 것이다.
스스스.
거기다 옅어지던 마력검의 오러까지 진해졌다.
사기와 능력치, 체력 회복 속도 모두가 올라간 영향 때문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허, 허억….”
“아. 죽겠다.”
“후욱….”
아이템의 효과 덕분에, 헌터들은 2개의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한 개의 분대치고 과한 던전 공략 일정들.
그럼에도 김민준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몬스터를 처치한 것이다.
“여기서 20분간 휴식. 눈치 볼 필요 없다. 눕고 싶은 사람은 누워서 쉬어라.”
“가, 감사합니다.”
“어훅…. 토할 것 같습니다….”
다른 분대나 소대 같은 경우는 달랐다.
헌터들의 체력이 버티지 못해, 소대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야간에 행해지는 던전 공략에 야행성 몬스터들.
갑작스럽게 허들을 높이다 보니 발생한 현상이었다.
‘급한 건 알겠는데. 그럴 거면 장군들부터 모범을 보여야지.’
새로운 타입의 보스 몬스터와 인간형 몬스터인 혈귀의 출현.
본부에서 부랴부랴 대비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무식해서 그렇지.
세월이 지나도 군대는 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후. 그나저나 이거 가성비가 안 좋긴 하네.”
김민준도 병사들 사이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고작 2번의 아이템 사용에, 80%의 체력을 소모한 것이다.
이건 아무리 자신이라도 해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괴랄한 스텟을 가졌음에도 이 정도의 반동이라니.
‘확실히. 지금 효과에 비해서 드는 비용이 크네.’
시험 삼아 몇 번 사용해 봤지만 실전에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연료를 많이 소모한다면, 그만큼 연료통 크기를 키우면 될 뿐.
‘체력 스텟 200 정도 찍으면 실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려나.’
어쨌거나 성장형 아이템이다.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완벽하게 다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이거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자로 뻗어 있는 헌터들.
자신의 지시를 잘 따라와 주고, 알아서 개인 단련까지 하고 있다.
소대장으로서 뭐라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했다.
“너희들에게 마술 하나 보여 준다.”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콜라를 한 캔씩 꺼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며 날름한 보상.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이 아이템을….
김민준은 고작 냉장고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
주머니에서 쏟아져 나오는 콜라.
분대원들의 눈이 조금씩 커졌다.
“바, 방금 뭡니까?”
“주머니에서 콜라가 어떻게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그러니까 말했잖아. 마술이라고. 얼른 마시기나 해라.”
“우와아악!”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힘든 던전 공략을 마치고 마시는 탄산.
그 청량감은 평소 마시던 콜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헌터들은 고작 콜라에 호들갑을 떨며 행복해했다.
“얌마! 애들같이 싸우지 말고 한 사람당 2개씩 마셔!”
“예!”
“10분 뒤에 갈 준비하고.”
“알겠습니다!”
2분대의 야간 던전 공략은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
같은 시각.
헌터 본부 회의실.
장성들은 새롭게 개편한 몬스터 등급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연구원들과 교수진들까지 동원해 만든 이 등급표는, 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몬스터의 등급을 1등급에서 10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등급이 높을수록 강한 순서로.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구만.”
“예. 축적된 데이터에 외부의 전문 인력까지 동원했으니까요. 신뢰해도 좋다고 봅니다.”
이 등급표는 병사들의 실력을 측정하기에도 유용할 것이며.
던전 공략이나 상황 판단 등등.
많은 부분에 활용될 것이었다.
“이왕 하는 김에 아이템까지 작업해 두면 좋을 것 같은데.”
“아이템은 워낙 표본 수도 적고 데이터 수집하는 것도 난감해서 말입니다.”
“좋아. 어쨌든 하나씩 해 나가면 되는 거지. 그것보다 주목할 점은 이거다.”
구학철 대장이 10등급의 몬스터를 가리켰다.
등급을 개편하며 새롭게 추가된 10등급 몬스터, ‘혈귀’.
울릉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작성된 등급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그렇고. 이걸 단신으로 처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단 말이지.”
대한민국에서 10등급으로 지정된 몬스터는 단 세 마리.
1970년대에 출현한 거대한 뱀의 형태를 한 바실리스크.
1990년대에 출현한 머리 10개 달린 거체의 괴물, 히드라.
그리고 2021년에 출현한 인간형 몬스터 혈귀였다.
앞에 언급한 두 마리의 몬스터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나라가 망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헌터들 수천 명은 우습게 죽어 나갔으며.
온갖 화기를 동원해도 쉽사리 처치할 수 없었다.
혈귀 역시 동일한 선상의 몬스터라고, 헌터 본부는 판단했다.
10등급을 받는 것에는 누구나가 동의했다.
다만.
문제는, 이 몬스터를 단신으로 처치한 김민준이었다.
“미국의 한 전문가가 말하더군. 김민준 역시 혈귀와 같은 인간형 몬스터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고.”
사상자 0명의 대규모 작전.
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 준 것은 단언컨대, 김민준 소령 덕분이었다.
‘저 미친놈이 밑밥을 깔아?’
‘이런 씨팔. 또 어떤 지랄을 하려고.’
그는 나라를 위해 몸을 던졌다.
10등급 몬스터.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혈귀를 상대로 맞서 싸웠다.
그런 헌터에게 어떻게 의구심을 품는다는 말인가.
다른 장성들에게 있어 이 같은 발언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이, 구학철은 이전에도 문제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뱉었기 때문이다.
연구 대상으로 혈액 샘플을 확보해야 한다느니 뭐니.
장군이나 되는 작자가, 병사를 소모품 취급하고 있다.
“물론 그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네.”
조용해진 분위기 속.
구학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물론 김민준 소령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청와대 소속의 안보실장께서 자네들한테 연락 돌린 건 알고 있겠지?”
다름 아닌 청와대에서 그와 접촉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둘 사이 무슨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뜻.
별 4개 장군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예.”
“3일 전에 연락받았습니다.”
그 말이 나오자, 다른 장성들의 표정이 풀렸다.
구학철 대장이 헛짓거리를 할 명분이 사라졌기에.
청와대 국가 안보실장이 가지는 힘이 그러했다.
무려 1970년대에 출현한 바질리스크.
놈을 처리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게, 청와대의 국가 안보실이었다.
“김민준 소령이 부대를 떠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 부분은 항상 생각하고 있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구학철 대장은 몬스터 등급표를 들여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이었다.
**
다음 날.
헌터군에게 새롭게 개편된 몬스터 등급표가 지급되었다.
“오…. 이거 그럴듯한데?”
“그럴듯한 수준이 아니고, 정확한 거 같습니다.”
총 10개의 등급으로 분류된 몬스터.
헌터들은 객관적이며 정확한 분류에 감탄사를 뱉었다.
지금까지 하급이니 중급이니 상급이니.
그다지 와 닿지도 않았으니까.
“평가 방식도 이걸 이제부터 이걸 기준으로 한다더라.”
“오우 미친. 몇 등급 상대할 수 있어야 간부로 넘어갈 수 있냐?”
“간부 노리려면 4등급 몬스터는 혼자 때려잡아야지.”
“지랄하네. 오크를 혼자서 때려잡아?”
덕분에 생활관 내부는 오전부터 소란스러웠다.
“야. 이거 봐라. 혈귀 몬스터 등급 10등급 받았다.”
“끝판왕 등급이네.”
“아니. 소대장님은 이거 혈귀 혼자서 조졌잖아.”
“허…. 10등급 몬스터를 단신으로 패는 헌터가 있다?”
“바실리스크랑 히드라랑 동급이잖아. 돌았네.”
“바실리스크랑 소대장님이랑 붙으면 누가 이기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놈은 좀….”
“왜. 내가 볼 때 바실리스크도 두들겨 팰 것 같은데.”
투닥거리며 열띤 토론을 나누는 헌터들.
“신났네, 신났어.”
다른 소대장 같았으면 조용하라며 들이닥쳤겠지만, 김민준은 그러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유치한 토론을 하는 것도 다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충성! 안녕하십니까, 김민준 소령님.”
“충성.”
마주치는 소대장들마다 거수경례를 해 온다.
새삼스럽지만, 소령이라는 계급이 얼마나 큰지 체감된다.
하긴.
소대장 직책에 무궁화 달고 있는 헌터는 자신 말고 없을 것이다.
“저. 소대장님.”
“왜. 무슨 일 있냐?”
밖으로 향하던 중.
젊은 소위 한 명이 머뭇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뭔가 싶었더니,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 김상덕 대위가 선을 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자신이 중사였을 때도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한 장교였다.
직접 어떤 놈인지 겪어 봐서 알기도 했고.
그런 놈이, 최근에 소대장 한 명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단다.
“누구를?”
“얼마 전 새로 배치된 소대장, 이유나 소위입니다.”
처음에는 호감을 받아 보려고 식사 권유와 술 권유 등을 했다고 한다.
좋게 다가갔지만, 매번 거절을 해 대니 이제는 괴롭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놈, 그거 악질이네.”
말 그대로다.
병사든, 장교든.
가혹 행위는 악폐습이다.
기합을 주는 것과 가혹 행위를 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나한테 잘 말해 줬다.”
군대라는 시스템을 확 뜯어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기에, 눈앞의 소대장도 자신에게 말한 것이다.
굳이 위쪽에 알리지 않고 말이다.
“내가 잘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김민준은 곧바로 김상덕 대위를 호출했다.
5분 안으로 튀어오지 않으면 각오하라는 연락과 함께.
‘진짜 괴롭히는 게 뭔지 보여 주지.’
김상덕.
놈에 대해서야 당연히 염두해 두고 있었다.
앞으로 하는 걸 봐서 가만히 놔두거나.
지옥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중사였을 때도 시비를 걸던 놈이었으니까.
“충성!”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김상덕 대위가 거친 숨을 뱉으며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
소령이라는 계급장의 힘 덕분이었다.
“야. 내 말 잘 들어라.”
김민준은 활짝 웃으며, 놈에게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