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지휘봉
그럴 수밖에.
그의 눈앞에 보인 장면은, 이빨 달린 수많은 촉수와 용 대가리다.
거기다 용 머리는 김민준의 등 뒤에 있었고.
제아무리 특수 부대원이라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극히 정상이었다.
“뭐긴 뭐야. 내가 주먹으로 몬스터 때려잡았지. 헛것이라도 봤냐?”
김민준은 시치미를 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상황 마무리됐으니까, 정신 차리고 조사반 불러.”
“예, 예! 알겠습니다!”
특임단 중사는 재빨리 무전기를 꺼내 상황실로 보고했다.
‘분명 생생한 장면이었는데… 수면 부족인가?’
하긴.
용 대가리가 뿜어내는 브레스를 맞고 형체가 사라지는 몬스터.
거기에, 김민준 소령님이 그 용을 다룬다니.
다른 팀원들에게 말해 봐야 정신 나갔냐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신세형 씨. 마무리까지 다 끝났습니다. 보존한 샘플은 따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사이.
김민준은 신세형을 호출했다.
**
김민준이 몬스터를 처리한 지 30분이 지났다.
해당 장소에는 조사반이 들어왔다. 그들은 매뉴얼대로 샘플을 채취하고, 현장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어 나갔다.
“…도대체 무슨 몬스터랑 싸운 거냐?”
그사이.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던 특임단 장교들은 현장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감도 안 잡힙니다.”
“밑에서부터 선로를 뜯어 먹으면서 올라온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이런 식으로 훼손될 수가 없습니다.”
“철을 뜯어 먹는 몬스터가 있긴 있냐?”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저희가 모르는 이레귤러 몬스터라면…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까다로운 몬스터부터 이레귤러 몬스터까지.
그들이 처리한 몬스터만 해도 천 마리는 가뿐하게 넘을 것이다.
현장만 봐도 어떤 몬스터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김민준 소령이 상대한 몬스터는….
어떤 놈인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최 중사. 확실해?”
“장비 없이 맨주먹으로 몬스터를 처리했다고?”
장교들의 시선이 특임단 중사에게로 향했다.
그는 일순간이지만, 김민준 소령의 전투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반쯤 썩은 용머리가 브레스를 쐈다….
여전히 눈앞에 아른거릴 만큼 생생하다.
하나, 다시 생각해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놈 최소 오우거급인데.”
“가루가 된 사체 규모만 봐도 엄청나잖아.”
“허. 오우거를 장비 없이 맨손으로 잡아?”
“쩝….”
방금 전까지 김민준에게 불평만 쏟던 대원들이다.
그들은 무안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현장을 지켰다.
**
같은 시각.
김민준은 청와대의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헌터군 소령이라는 계급.
그리고 국가 안보 실장인 신세형이 옆에 있으니, 그냥 프리 패스.
“이상하네요. 청와대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그들이 향한 곳은 많은 회의실 중, 구석진 곳에 떨어진 회의실이었다.
쓰레기장을 연상케 하는 내부 공간.
일부러 연출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조성했나 보네요. 아이템이라도 숨기셨나 봐요?”
자신의 말에 신세형이 피식 웃었다.
“보통 사람은 거부감 때문에 안까지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통찰력이 뛰어나시군요.”
“냄새가 강렬하긴 하네요.”
“이것도 익숙해지면 나쁘지 않습니다.”
신세형은 쓰레기를 걷어 낸 뒤 바닥을 가리켰다.
듣자 하니, 이 안에 아이템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귀한 아이템들만 골라서 말이다.
“이번 일을 도와주셨으니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이 안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하나 가져가도 좋다고 말해 왔다.
다만, 지정해 주는 아이템 중에서 골라야 한단다.
너무 강력한 아이템은 후폭풍이 크다나.
“그 전에, 김민준 씨가 상대하셨던 몬스터. 놈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시는 게 먼저입니다.”
본래는 아이템을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고.
김민준이 그 정도의 일을 해낸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놈에 대한 정보를 기록해 저장했다고 말했다.’
거기다 필요하다면 이스가르드에 대한 정보도 조금씩 건네줄 수 있단다.
‘정보의 선점은 중요하다.’
현재로선 선점이라기보다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 이 정보의 선점으로 얻게 되는 이익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할 만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김민준.
그의 호감을 사서 나쁠 것이 없었다.
“그거야 물론이죠.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셔서 좋네요.”
김민준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스스스스.
그러자, 바닥에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림자는 살아 있는 듯 움직이며 신세형의 몸을 휘감았다.
“허, 허억!”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소환수거든요.”
“그, 그걸로 무엇을….”
“정보 전달해 주려고요. 유출될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아요.”
나이트 워커가 붉은 갈귀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놈의 습성.
능력.
대처법.
단시간에 제거하지 못할 시 발생하게 될 피해 등등.
꿀꺽.
시간이 지날수록, 신세형의 입술이 떨렸다.
“이건 도대체….”
그럴 것이.
방금 김민준이 상대한 몬스터는 터무니없는 개체였다.
주위에 있는 어떤 것이라도 먹으면서 덩치를 불리는 몬스터.
트롤보다 강한 재생력에, 어중간하게 제거하면 더욱 빠르게 증식하는 성질까지.
“이런 몬스터를 작은 씨앗에 담아낼 수 있다니….”
그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은 정답이었다.
붉은 갈귀.
한국의 헌터군 능력으로도 제거할 수는 있다.
하나, 엄청난 피해가 동반될 것이 분명했다.
“고작 2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정도로 성장했다니… 끔찍하군요.”
만일, 빠르게 대처를 하지 못했다면….
그 지하철역에 있던 시민들은 놈에게 먹혔을 것이다.
‘역시. 그의 힘은 진짜다.’
직접 겪고도 이해할 수 없는 힘.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그렇고.
“김민준 씨. 예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만… 입대하신 이유가 뭡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으면서 군대에 입대한 이유가 뭘까.
요즘 군대는 옛날 군대와 다르다.
복무 기간부터 배로 늘었다.
건장한 남자라면 5년 동안 군대에 복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끊임없이 생겨나는 던전과 몬스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듣기로는 다른 차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날이 입대일이었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슨 계략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질문의 의도는 순수하게 궁금함 반.
불안감 반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불안감은, 금방 해소되었다.
“전 던파를 좋아합니다. 국방의 의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의무고요. 이왕 가야 하는 김에, 별 달고 전역하려고 입대했습니다.”
터무니없는 대답으로 인해서.
“하… 하하.”
하긴.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땅덩어리가 좁은 한국 정도는 말이다.
“제가 생각 없이 말을 뱉었군요. 죄송합니다.”
신세형은 정중하게 사과한 뒤 바닥을 툭툭 밟았다.
그러자 두 뼘 크기의 바닥이 열리며 잠금장치가 드러났다.
“이 안은 절차가 꽤 까다롭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윽고 드러난 계단.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철제로 된 잠금장치가 버티고 있었다.
포탄을 맞아도 견딜 듯한 두께의 문이었다.
-기러기.
“명란젓.”
끼익.
-고라니.
“메밀 전병.”
문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오고 가는 수차례의 암구호.
“자. 이제 됐습니다.”
“…와우.”
여러 절차를 거치고 펼쳐진 광경.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이템 전시회라도 해도 믿겠네요.”
강화 유리 안에 하나씩 들어 있는 아이템들.
아이템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천정에는 수십 대의 카메라와, 입구에는 경비를 서는 정예 헌터들까지.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미쳤네.”
김민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지금까지 지급받은 무기들은 애들 장난일 정도였다.
“여기 3개 중 하나를 고르시면 됩니다.”
아이템의 성능에 대해서는 알려 줄 수 없단다.
높으신 분들이 삐지기라도 한 걸까.
“이거로 하죠.”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이템을 고르는 데에 1분의 시간만 있어도 충분했다.
[신념의 지휘봉 Lv.1]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사기와 능력치가 소량 상승합니다.
유지 시간은 30분입니다.
많은 기력을 소모합니다.
성장형 아이템입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지휘할 수 있는 병사들 수도 증가합니다.
현재 지휘할 수 있는 병사들 수는 10명입니다.
시스템이 자신을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시스템이 고맙다니까.’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한 뒤, 가장 쓸모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첫 번째는 지휘봉이라서.’
중령이 되면 따로 지급이 되겠지만 그것과 이건 비교할 수가 없다.
디자인 측면에서부터 신념의 지휘봉이 100수는 앞선다.
은색으로 빛나는 지휘봉.
마치 연주 지휘자가 사용할 법한 고급스러운 외양이었다.
이걸 들고 이리저리 휘두른다고 상상하니,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두 번째는 이 아이템이 성장형이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아이템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성장형 아이템이 존재한다고는 알고 있었다.
워낙 귀해 구하는 게 힘들어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세 번째는 이 아이템이 내 고질적인 문제를 보완해 준다는 거다.’
흑마법사는 파괴에 특화된 직업이다.
누군가를 지키거나 강해지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사제나 성기사 같은 특정 직업군만 가능한 영역.
그것을, 이 지휘봉 하나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는 써 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지휘봉을 집길 잠시.
“그건 다루기 어려우실 겁니다.”
신세형이 작은 목소리로 말해 왔다.
높은 장군들조차 포기한 아이템이라나.
“소장 한 분이 저 지휘봉을 휘둘렀다가 쓰러졌습니다. 3일 동안 의식불명이었고요.”
고작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 큰 후폭풍이 발생했다며,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군요. 마무리는 제가 해 두겠습니다. 가지고 나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환자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쓰레기장으로 위장한 회의실로 돌아오자마자, 신세형이 쪽지를 하나 건넸다.
“피를 토하면서도 쓰시길래 극구 말렸지만… 고집이 세시더군요.”
의식이 없는 중태 상태.
식물인간에 가깝다고 대답했다.
전문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언제 회복할지 장담할 수 없단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연락해 주세요.”
김민준은 성녀를 죽지 않게 관리해 달라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떠났다.
“이봉구. 주기적으로 성녀 몸 상태 관찰해라. 이상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성녀가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100살까지는 살아야지.
노예로.
-신에 맹세하며 이 사실을 알립니다. 제국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되고….
“뭐 이렇게 서두가 길어.”
혀를 차며 빠르게 넘겼다.
쪽지에 적힌 언어는 이스가르드인이 사용하는 고유 언어다.
당연히 보통 사람은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저에게 남은 시간은 약 1,300일입니다. 노바 제국은 매우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이어지는 내용에, 김민준이 인상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