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소령
“…그렇게 된다면 확실히 큰일이겠군요.”
이스가르드가 한국을 침략해 올 수 있다니.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저런 걸 눈앞에서 보면 믿을 수밖에 없다.’
방금 김민준이 보여 준 특이한 힘.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압도적인 성과들.
앞뒤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스가르드에도 저런 능력자들이 바글거린다라….
만약, 이스가르드인들이 한국으로 넘어온다면….
한국 입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후우.”
신세형이 심호흡을 하며 물을 들이켰다.
김민준은 그사이 추가 설명을 해 주었다.
“제가 이제 와서 이 말을 꺼내는 건, 전 세계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혈귀가 나타난 게 전조 현상이고요.”
“이스가르드의 군대와 한국이 싸우면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한국과 이스가르드면 100 대 0으로 한국이 집니다. 미·한·일 3국이 연합해도 80 대 20 정도로 질 겁니다.”
“이거 참… 희망이 없는 수치네요.”
“단.”
김민준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모든 힘을 되찾는다면, 저 혼자서도 놈들한테 맞설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지금까지 되찾은 힘은 대략 60% 정도.
나머지 힘을 되찾으면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단다.
그 자신감 있는 말에 신세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허풍이 아니다.’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안보 실장 자리는 결코 장식이 아니다.
‘혈귀를 단신으로 가지고 놀았다. 정부에서 최상급 몬스터로 지정할 예정인 놈을 말이다.’
최상급 몬스터가 출현한 적은 역사적으로 거의 없다.
기껏 해 봐야 두 번이나 세 번 정도다.
그만큼 혈귀의 등장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을 만한 것이었다.
지능과 힘을 겸비한 인간형 몬스터라니.
겉모습으로 구별하는 방법도 어려운 만큼, 최상급 몬스터의 지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전 신세형 씨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네요.”
“물론입니다, 김민준 중위님. 이런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법조차 소용이 없다.
눈앞의 김민준은 그 말에 적격인 인물이었다.
‘그 힘. 마음만 먹으면 한국은 무슨. 세계를 주물럭거릴 수 있다.’
거기다 앞서 말한 대로, 이스가르드가 침략해 온다면….
그의 협조를 얻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했다.
세밀한 조사가 더 필요하겠지만, 그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건 선택이 아니다.
필수였다.
“김민준 중위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선물이라고 하기도 뭐하네요. 당연한 일이라.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신세형은 다음 날을 기대하면 좋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저 친구는 머리가 잘 돌아가네. 역시 높은 지위 괜히 얻어 낸 게 아니라니까.”
김민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이제 씨앗을 뿌린 정도라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출발이 좋다.
“그것보다 선물이라. 선물이 뭘까.”
**
다음 날 아침.
대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민준 중위! 2계급 특진이 확정됐다! 2시간 뒤에 진급식 할 테니까, 알고 있어라!
정신이 없는지 부랴부랴 말만 남긴 뒤 통화가 끊겼다.
“2계급 특진? 지금 나 중윈데.”
2계급 특진이면…
소령이다.
중위에서 소령이라니.
단숨에 영관급 장교가 되는 것이다.
“이야. 신세형 씨가 말한 작은 선물이란 게 이런 거였어?”
이번 일로 인해 대위 정도는 달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의 일을 해냈으니까.
그래도 단숨에 중위에서 소령으로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헌터 본부가 진급 쪽으로는 워낙 까다로웠기에.
“소령이라… 소령. 무궁화.”
입이 절로 귀에 걸린다.
헌터군에 입대한 지 1년이 살짝 넘은 시점에 영관급 장교라니.
행복한 꿈을 꾸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좋아. 멋있게 무궁화 달 준비해야지.”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병사들이 연병장에 집합했다.
“아니. 이거 실화냐?”
“말이 되냐?”
“소령이라고?”
“중위에서 소령까지 진급한 케이스가 있기는 있냐?”
“있겠냐? 헌터군 무궁화는 일반군에 비해서 10배는 달기 어렵다던데.”
김민준의 진급 소식을 들은 병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중위에서 소령으로 단번에 넘어가는 건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거의 불가능했다.
소령을 달려면, 소대장직과 중대장직을 일정 기간 수행하는 게 기본이다.
어디 그뿐이랴.
까다로운 평가와 함께, 그동안의 성과도 증명해야 한다.
승격 시험도 말도 안 되게 어렵고.
괜히 대위에서 전역하는 장교가 수두룩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와 씨. 진짜 존나 멋있네.”
“남자 중의 남자다.”
“야. 혈귀 일대일로 두들겨 패는 영상 봐라. 본부에서 소령 괜히 달아 주겠냐?”
“하긴. 그 정도면 승격 시험 칠 필요도 없겠네.”
“병사에서 소령까지 1년 컷!”
“이러다 레알 별까지 가시는 거 아니냐?”
더군다나 이병부터 군 생활을 시작한 김민준이다.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소령….”
손은서조차 이번 진급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 정도의 실력과 성과가 있는데, 소령을 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헌터군이 최근에 수행한 울릉도 위협 요소 제거 작전.
김민준 덕분에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어.”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고. 이제는 김민준 소령님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반말하면 큰일 나겠습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군대 짬을 어떻게 무시하겠습니까.”
진급식을 기다리던 사이.
아버지뻘 되는 간부들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대부분 상사나 원사들.
저래 보여도 군 생활만 20년, 30년 가까이 한 간부들이다.
“김민준 소령님이 소대장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소령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아. 김철민 중위님까지 왜 이러십니까. 부담스럽게.”
“하하하! 이럴 때 한번 장난쳐 보는 거죠!”
소령을 달았다고 해서 기고만장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실력주의인 헌터군이라 해도, 군대는 군대였기에.
“원래는 건물을 하나 잡아 놓고 하는데, 일정 조율 문제로 여기서 하는 것 같네요.”
“그래도 소령인데 연병장에서 하는 건 좀 그렇긴 하네.”
“그러게요. 소령부터는 대통령한테 임명장도 받는데.”
간부들은 자기들이 다 아쉽다며 투덜거렸다.
소령 진급식은 인생에 단 한 번 아닌가.
“전 괜찮습니다. 소령을 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어서요.”
정작 김민준은 아무 상관없었지만.
“지금부터 2021년 소령 진급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잠시 후.
진급식이 시작되었다.
소령 진급식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국민의례가 끝나자, 사단장이 진급을 축하한다며 손수 축사를 읊어 주었다.
계급장 부착식과 함께 진급을 축하하는 축가와 작은 공연까지.
“영관 장교로 진급한 만큼, 더욱 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 성!”
대통령 이름이 적힌 임명장을 받는 걸 마지막으로, 소령 진급식은 짧고 굵게 끝났다.
“와아아아아!”
“축하드립니다! 김민준 소령님!”
사단장과 대대장이 떠나자마자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야. 옷에 주름 생긴다. 얌마! 그렇게 잡으면 옷 찢어져!”
이어지는 축하의 헹가래.
하여간 헌터들 아니랄까 봐, 힘도 좋다.
공중으로 5m 가까이 띄워지는 것 같다.
모처럼 좋은 날이니 가만히 응해 주기로 했다.
“회식 안 합니까, 회식?”
“대대 회식 또 했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회식은 당분간 힘들다. 나중에 대대장님께 말씀드려 볼게.”
“약속하신 겁니다?”
본래 같으면 대대 회식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혈귀라는 몬스터가 등장한 만큼 당분간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아마 헌터 본부에서 부랴부랴 훈련 강도를 높이든지 할 것이다.
“그것보다 김민준 소령님. 그럼 소대장 직은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아. 그거? 나 계속 소대장 하라는데?”
“헐.”
“계속 소대장 하시는 겁니까?”
“왜. 내가 다른 곳으로 갔으면 좋겠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놀라서 그런 겁니다!”
“저희가 소대장님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구라 치기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의외였다.
진급 전 전달받은 사항에서는 소령을 달되, 소대장과 중대장 직.
나아가서 대대장 직까지 차례대로 수행하라고 했으니까.
‘이런 부분까지는 못 봐주겠다 이거지.’
영관급부터는 책임감이 막중해지는 만큼, 경험을 중요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불만은 없다.
계급이 높을수록 권한이 많아진다.
권한이 많아질수록, 책임감 또한 커진다.
보직을 순차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건 자신 또한 찬성하는 편이었다.
‘소령이 소대장이라니.’
거기다 승격 시험 패스.
따로 받아야 하는 교육까지 패스라.
지금까지 이런 이례적인 경우가 있었던가.
‘이러다가 중대장에 중령 다는 거 아닌가 몰라.’
중령 달 때쯤 되면 지휘봉 준다던데.
중대장에 지휘봉을 휘두르면 어떤 느낌일까.
‘크으. 무궁화. 보면 볼수록 멋있네.’
영관급 장교의 상징인 계급장을 보며, 소대장실로 향했다.
당연히 이걸로 만족할 리가 없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밑 준비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신세형 씨한테 바로 연락해 봐야겠는데.’
**
밤 12시, 단련실.
“후우….”
손은서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냈다.
5시간가량의 개인 단련을 한 지 약 3달.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력검과 체력을 위주로 단련했다.
“좋아. 이제 1시간은 가뿐하고. 무리하면 2시간까지도 노려 볼 만하겠어.”
김민준은 그녀가 마력검 쪽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다.
마력검 적응 능력 하나는 탁월하다고.
그래서 이쪽을 작정하고 파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3세대 마력검과 4세대 마력검까지 보급될 터.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마력검 자체의 위력은 검증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아. 진짜. 난 매일 죽도록 단련해도 쥐꼬리만큼 느는데. 김민준 그 자식은 대체 뭐야?”
손은서는 물을 들이켜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축복받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신체 능력.
최소 상급 이상의 몬스터를 두들겨 패는 전투 능력.
마력검은 주 무기도 아닌데, 말도 안 되는 오러와 숙련도를 자랑했다.
“그 자식한테 적어도 하나는 이기고 싶은데….”
그녀는 투덜거리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내가 이걸 먹어도 될까….”
주머니에서 나온 작은 돌멩이.
얼마 전 아버지가 가져다준 룬석이었다.
휴가까지 나와서 개인 단련에 매진하는 걸 보고, 뭐라도 챙겨 주고 싶었다나.
“아. 민준이도 받아먹었잖아. 나도 먹지 말란 법 있어?”
괜히 양심의 가책에 느껴 복용을 미루고 있었다.
일반 병사는 구경도 못 해 보는 게 룬석 아닌가.
다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김민준이 소령을 달고 미친 듯이 앞서 나가는 걸 보니, 괜히 조바심이 났다.
“어욱. 이걸 어떻게 삼키라는 거야….”
물과 함께 삼키는 데에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고통에 켁켁거리기도 잠시.
띠링.
“어? 뭐야?”
그녀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거 진짜야? 이게 나한테 생긴다고?”
지금껏 구경한 적 없는 메시지.
손은서는 뺨을 세게 꼬집었다.
“악!”
설마 꿈인가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