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접촉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혈귀의 심장은 매우 귀하다.
자신조차 이스가르드에서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고.
“어우. 마기 스텟이 10은 오르겠는데.”
뜨거운 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진급 점수도 왕창 따고.
귀한 아이템까지 챙기고.
일석이조였다.
띠링.
“이거지.”
뒤이어 떠오른 메시지.
김민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죽음의 숨결이 개방되었습니다.]
[부패 스킬이 강화됩니다.]
[마기의 손아귀 스킬이 강화됩니다.]
[마기 채찍 스킬이 강화됩니다.]
[암흑 화살 스킬이 강화됩니다.]
이스가르드에서 즐겨 쓰던 스킬 중 하나가 개방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스킬 등급의 상승까지.
“마기가 얼마나 올랐길래.”
힘: 90 민첩: 90 체력: 95 마기: 67 영구 기관: 40
스텟 창을 열어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워우. 마기가 12나 올랐어? 성능 확실한데.”
단번에 12나 상승한 마기 스텟.
그 외에도 힘, 민첩, 체력 등등 자잘한 스텟까지 올라갔다.
이대로면 세 자릿수를 구경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전성기 때도 마기를 제외하고 100을 넘긴 스텟은 없었으니.
“와. 이거… 다른 애들이었으면 몸이 터져 나갔겠는데.”
이 정도의 스텟을 올려 주고도 기운이 남아돌았다.
여분의 기운은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크…. 독하긴 하네.”
입에서 피가 살짝 흘러나왔다.
확신할 수 있다.
웬만한 인간들은 이 반동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틈틈이 신체를 단련해 둔 자신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대가로 이런 성과를 얻었으면 거저먹는 거지.”
최근 마기 스텟을 어떻게 올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마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발견한다 하더라도, 질적으로 좋지도 않고.
스텟을 상승시키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혈귀의 심장은 그런 고민을 깔끔하게 날려 주었다.
“살맛 나는데.”
대략 50 정도의 마기 스텟.
이 정도의 스텟만 더 되찾는다면, 전성기의 힘을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위협이 발생하더라도 막아낼 수 있을 터.
한층 더 진해진 마기를 만끽하며, 잠시 여운을 즐겼다.
“그것보다 이걸 쓸 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방금 전 개방된 스킬, 죽음의 숨결.
즐겨 쓰던 스킬인 만큼 강력한 효과를 자랑했다.
저 스킬을 사용하면 등 뒤로 역병의 용이 소환된다.
정확히는 용 대가리만 나타난다.
소환된 용 머리는 강력한 브레스를 뱉은 뒤 사라지는데, 그 효과는 막강했다.
강력한 넉백과 함께 발생하는 충격파.
그건 오우거조차 가볍게 날려 버릴 정도였으니.
같이 따라오는 역병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스킬도 그렇고. 이 스킬도 그렇고. 대놓고 쓰는 건 무리겠지.”
죽음의 숨결을 좋아했던 건 무엇보다 멋있어서였다.
등 뒤로 나타나는 검은 용의 머리.
거기서 발사되는 브레스.
힘을 과시하는 데 있어서도 적격인 스킬이었다.
“그것보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야겠네.”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건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힘을 되찾으면 되찾을수록.
스킬이 강해질수록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스가르드에서 헛짓거리를 해 온다는 걸 확정 짓고 대비해야 한다.’
때문에 정체를 밝히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물론 지금 당장 ‘전 사실 흑마법사입니다.’라고 밝힐 생각은 없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반감이 클 수밖에 없을 터.
‘높은 직위를 가진 사람들을 포섭해 놓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주위에서 서포트해 주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두는 것도 필수고.’
이미지 메이킹은 예상 이상으로 순조롭다.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한 것만 해도 몇 번인가.
지금 뉴스만 들여다봐도, 자신에 대한 영웅담이 쉴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영상이 잘 찍히긴 했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영화 뺨치는 연출과 몰입감.
화려한 액션까지.
외국인들조차 칭찬 일색이다.
‘이런게 하나둘씩 쌓이면 나한테 큰 방패가 되는 거지.’
만족스럽게 웃으며 영상을 감상하길 잠시.
똑똑.
“김민준 중위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소대장실 밖으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했더니, 청와대 소속 직원이라고 한다.
“예. 들어오셔도 됩니다.”
군부대에 청와대 소속의 인물이 찾아왔다라.
뭔가가 있구나 생각하며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청와대 국가 안보 실장을 맡고 있는 신세현입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직각으로 인사해 왔다.
말끔한 정장.
가슴팍에 달려 있는 청와대 배지.
“예. 반갑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거기다 높은 직책을 가진 인물이 접촉해 올 줄은 몰랐다.
“김민준 중위님에게 제안을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신세현은 말을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청와대 99 특수 임무단. 그곳의 팀장을 맡아 줬으면 한다는 제안이었다.
“99 특수 임무단이면… 얼마 전 새로 창설한 직할 부댄가. 그거 맞죠?”
“예. 그렇습니다.”
99 특수 임무단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대응하게 위해 창설한 조직이다.
물론 겉으로만 그렇다는 얘기다.
속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등.
높으신 분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부대다.
“별로 내키진 않네요.”
당연히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자신을 입맛대로 휘두르겠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높으신 분들을 위해서 말이다.
‘휘둘렀으면 휘둘렀지, 휘둘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지.’
자신의 단호한 대답에 신세현이 조건을 입 밖으로 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김민준 중위님은 별을 다시는 게 목표라고 하셨죠? 99 특수 임무단의 팀장을 맡게 되시면, 3년 안으로 대령을 달아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금 혜택.
각종 수당.
아이템 수당 등등.
중위에게 제안하는 것치곤 파격적인 제안이 뒤따랐다.
‘음.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아이템 수당은 좀 끌리는데.’
3년 안에 대령을 달아 준다라.
전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지금처럼만 하면 2년 안에도 대령은 달 수 있을 터였기에.
다만, 청와대에서 독자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아이템.
그것에 관해서는 관심이 있었다.
‘좋은 아이템 골라서 짱 박아 두고 있겠지, 뭐.’
물론 마음만 먹으면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휩쓸 수 있다.
보안이 강해 봤자 얼마나 강하겠는가.
스킬 몇 번이면 증거조차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서는 안 그러지.’
굳이 그러지 않는 건 이곳이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행패를 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청와대 소속 국가 안보 실장이란 말이지.’
이 사람을 포섭한다면 앞으로의 일이 수월해질 터.
가만히 있는데 기회가 알아서 굴러들어 오다니.
김민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신세현에게 역제안을 했다.
“그곳에 소속되는 건 그렇고. 차출되는 형식으로 도와 드릴 순 있습니다.”
특수 임무단에 소속되기는 싫다.
다만, 도움을 바란다면 도와줄 수 있다는 말.
“…진지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 당황스럽네요.”
이게 무슨 개소리냐 싶었지만, 신세현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눈앞의 헌터군, 김민준 중위.
그를 끌어들임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은 그야말로 막대했으니.
“그러니까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을 하시겠다, 이 말씀이신데….”
다른 곳도 아니고 99 특수 임무단이다.
당연히 그 어떤 부대보다 높은 보안을 자랑했고.
방금 제안은 김민준 중위가 설령 대통령 아들이라 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오늘은 안 되겠군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제 힘의 비밀에 대해서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김민준이 미끼를 던졌다.
그냥 미끼도 아닌, 아주 고급스러운 미끼를.
“힘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청와대 소속이시니 저에 대해서 조사하시고 오셨겠죠.”
“…….”
신세형은 조용히 웃는 그의 모습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의문점이 많다.’
아무리 타고났다고 해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위기 대처 능력.
김민준 중위는 그걸 혼자서 대처해 냈다.
아무 부상도 없이 말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대략적으로 세어 본 것만 해도 10개는 넘는다.
거기다 최근 혈귀를 단신으로 처치한 것까지.
‘단순히 스텟만 높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장성들도 눈치채고 있다.
김민준 중위에게는 뭔가가 있다고 말이다.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을 뿐.
“그 비밀을 듣는 것에 조건이 있겠죠.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신세형은 재빨리 계산을 마쳤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와 연결점을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했다.
내용에 따라서는 그가 제안했던 터무니없는 조건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은 그 정도의 권한을 가진 안보 실장이니까.
“제가 말한 비밀에 대한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 이게 첫 번째입니다.”
“그거야 물론입니다. 비밀 유지 계약서라도 쓸까요?”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전 확실한 걸 좋아해서.”
김민준이 손을 휘젓자, 그의 주위로 마기 화살이 나타났다.
스스스스.
스킬 등급 상승으로 인해 더욱 진해지고, 크기가 커진 마기 화살.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허, 허억!”
거대한 팔 하나가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고,
“끼이익!”
천정에서 박쥐 형태의 몬스터까지 나타났다.
“자, 잠깐! 전 오늘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목숨은….”
신세형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문 쪽을 향해 뒷걸음질을 치기까지.
“일부러 겁주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하네요. 정보 유출을 막으려면 신세형 씨가 극도의 공포를 느껴야 하거든요.”
김민준은 덜덜 떠는 신세형의 이마에 피를 한 방울 떨어트렸다.
“아픈 거 아닙니다. 간단한 언약이에요. 입에 튼튼한 자물쇠 하나 다는 것뿐입니다.”
그 뒤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공간을 가득 채운 스킬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허억… 헉…. 이게 도대체 무슨….”
신세형은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까지 흐르고 있다.
무슨 상황인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걸 보면 별 4개짜리 장군이라도 놀랄 것이다.
“물 한잔하시고, 진정하세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들어 주세요. 저도 아무나한테 이러진 않거든요.”
김민준은 그를 향해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혈귀는 이스가르드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것.
이스가르드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것.
자신은 그 차원에서 힘을 얻었다는 것까지.
‘혈귀를 발견한 이상, 언젠가 알려야 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밑 작업을 해야지.’
눈앞의 남자는 청와대 소속 국가 안보 정책 실장이다.
여러모로 이득을 볼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괜히 이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이건… 충격적이군요….”
설명이 이어질수록, 신세형의 입이 벌어졌다.
다른 차원에 사는 인간들.
이것만 해도 놀랍다.
한데, 그 인간들은 마법도 쓰고.
김민준처럼 흑마법도 쓴단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세계.
그런 세계가 실존하고 있을 줄이야.
“제가 이 정보를 알려 드린 건, 앞으로 대한민국. 아니, 전 인류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민준의 이어지는 말.
그 말에, 신세형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