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혈귀의 심장
“혈귀는 제가 처치했습니다. 생포는 무리였습니다.”
김민준이었다.
전투복은 거의 해졌고, 몸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다.
거기다 그가 들고 있는 혈귀의 사체.
손상이 심해 과연 연구 가치가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
격렬한 전투가 오갔으리라.
“혈귀를 단신으로 말입니까?”
“허. 리자드맨이 그놈 손에서 수초 만에 죽던데, 어떻게….”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장교들은 저마다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민준 중위다.
오우거를 생포할 정도로 강한 힘을 자랑하는 장교 말이다.
도대체 어떤 전투가 있었길래, 그조차 부상을 입었을까.
“김민준 중위! 다친 곳은!”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박격포 대령이 호들갑을 떨며 자신을 부축하려 했다.
괜찮다고 대답한 뒤 몸에 달려 있던 보디 캠을 건네주었다.
“혈귀는 강했습니다. 장혁철 중장님이 생포에 집착하시던데… 이걸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전투 도중, 흑마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원을 껐다 켰다 하며 영상을 녹화했다.
물론 혈귀의 능력은 대부분 담겼다.
놈의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도 마찬가지.
‘헌터 본부에서 이걸 보면 꽤 충격을 받겠지.’
혈귀를 단신으로 붙잡아 두고, 처치했다.
이건 진급을 안 할 수가 없는 성과일 것이다.
일부러 보디 캠을 신경 쓴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말로 강하다 해 봤자 별로 안 와 닿을 거거든. 눈으로 보는 게 최고지.’
혹시 알아?
이 녹화 영상 덕분에 1계급 진급할 걸 2계급 진급할지.
“김민준 중위. 정말 고생 많았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줬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좋아. 다들 주목! 이대로 울릉도를 점검한 뒤 부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 작전은 종료되었다!”
작전 종료라는 말에 장교들이 함성을 질렀다.
육지에 올라온 리자드맨들은 어찌어찌 다 처리했지만 혈귀가 남아 있었다.
잘못하면 몇 명 죽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김민준 중위가 단신으로 처리해 준 것이다.
당연히 기쁠 수밖에.
“이번 울릉도 위협 요소 제거 작전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들 열심히 해 줘서 고맙다.”
주목할 점은 이번 작전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포피스가 예상보다 빨리 열려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육지로 상륙했고, 혈귀라는 인간형 몬스터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물론 리자드맨들이 약했던 영향이 컸다. 공중 지원의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고.’
거기에 김민준 중위가 단독으로 혈귀를 상대하기까지.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다.’
그사이 전투복만 갈아입고 나가는 김민준.
휴식을 취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앞서 대열에 합류했다.
박격포 대령은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응시했다.
**
[단독 보도! 울릉도 위협 제거 작전 ‘성공적’. 사상자 0명]
[울릉도에 최초로 출현한 인간형 몬스터. 겉모습은 10살 남짓한 남자아이?]
[헌터군 소속 김민준 중위, 혈귀와 단독으로 맞서 싸워. 보디 캠에 기록된 치열한 전투]
[헌터 본부에서 보디 캠에 대한 영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해. ‘겉보기에는 인간과 다름없기 때문. 국민들의 안전 예방을 위한 목적.’]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기사를 냈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육지에 상륙했고.
겨우 수백 명 남짓한 헌터들이 몬스터와 맞서 싸웠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울릉도를 훌륭하게 지켜 냈다.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기자들에게 있어 이것보다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있을까.
“이 영상이 공개된다면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겠지. 아니, 정확히는 김민준 중위를 주목하겠지.”
영상을 공개하기 전.
장성들이 앞다퉈 김민준 중위의 보디 캠을 분석했다.
오직 그의 보디 캠에만 혈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처음 등장한 인간형 몬스터인 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장혁철 중장님은 반성 좀 하셔야겠습니다. 이걸 보고도 생포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샘플 확보도 중요하지만, 헌터들도 생각하시지요. 장교들을 선발해 양성하는 건 특히 어렵습니다.”
“끄응…. 미안하네.”
별 세 개짜리 장군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머리만 벅벅 긁었다.
“혈귀가 저런 놈인 걸 알았다면, 당연히 생포하라는 말은 안 했을 거다….”
몬스터가 사람의 지능을 가진 것도 충격이다.
혈귀의 능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수복한다.
일정 거리 이상을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능력도 확인했다.
“영악합니다. 공격하는 패턴이.”
장성 한 명이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사각에서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들.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의 무시무시한 화력.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입에서 압축한 핏줄기까지 뿜는다.
장담하건대, 김민준 중위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장교들이 죽었을 것이다.
“피가 형태를 이루어 사람을 안에 가두다니. 뭐 저런 놈이 다 있는 건지.”
“김민준 중위의 힘 스텟은 상당히 높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면, 말 다 했죠.”
“아니. 그것보다 김민준 중위는 정체가 뭔가?”
“저런 괴물을 단신으로 죽인 것도 놀라운데, 부상이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장성들이 흥분한 기색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 작전의 일등 공신은 당연히 김민준 중위다.
“거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까지 처치했더군요.”
“아. 영상에 잡힌 날아다니는 몬스터 말인가요? 그건 워낙 순식간이라….”
“그것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에 대해 어떤 포상을 내려야 할지.
저런 인재를 일반 부대에 그대로 둬야 하는지 등등.
짧은 시간에 많은 논의가 오갔다.
“이 안건은 재차 논의하도록 하고, 우선 급한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갑시다.”
이번 회의에서, 김민준 중위의 특별 진급이 결정되었다.
**
“와, 씨. 돌았다.”
“미쳤다.”
“이런 놈을 어떻게 이기신 겁니까?”
“그냥 말이 안 나옵니다.”
부대에 복귀한 김민준은 그야말로 영웅이 되어 있었다.
복귀하던 사이 보디 캠의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사람들의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격렬하게 오가는 혈귀와의 전투.
1인칭으로 촬영된 보디 캠 영상이라,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네놈의 정체가 뭐냐. 알고 싶다.
-대한민국 군인이다, 이 새끼야.
특히 김민준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혈귀의 목이 날아가는 장면.
그 장면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온갖 유튜버나 기자들.
댓글을 다는 사람들까지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안 그래도 유명했는데, 이번 작전으로 더욱 유명해졌다는 말이다.
폐쇄적인 헌터군이 아니었다면 세계적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혈귀라니. 이놈 마주치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은 척하면 됩니까?”
“죽은 척하면 피 빨려 죽겠지, 미친놈아.”
부대원들은 그 영웅담을 듣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다녔다.
“평소에 면담하지도 않는 것들이 뭐 이렇게 신청해 대냐? 얌마. 넌 4소대잖아. 4소대 소대장님한테 가서 받아.”
“4 소대장님보다 2 소대장님이 편합니다!”
“구라 치지 말고 빨랑 나가. 나중에 얘기해 줄 테니까.”
복귀하니 오히려 정신이 없다.
적당히 녀석들을 밖으로 내보낸 뒤 김서현을 호출했다.
“김민준 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공개된 영상을 보고 어디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걱정한 것이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죄송합니다. 김민준 님. 제 마안이 그걸 알았더라면….”
“네 마안이 만능 열쇠냐? 또 네 탓 하려 그러지? 마음대로 능력 남발하거나 그러면 알지?”
“네에….”
그녀가 딱밤 포즈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김민준의 말대로, 무리를 해서라도 혈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생각이었다.
혈귀는 이스가르드에서 만들어진 생명체니까.
“일단 마기 받아라. 남은 마기 다 건네줄 테니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안 사용해.”
“전부 다 말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래 봤자 얼마 안 남았다. 여기에다가 많이 퍼부었거든.”
그는 대답 대신 주머니를 뒤적였다.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살아 있는 듯이 뛰고 있는 심장이었다.
“혈귀의 심장!”
“그래. 혈귀를 죽였으면 당연히 전리품이 뒤따라야지.”
혈귀의 심장은 매우 귀하다.
혈귀 한 마리 육성하는 데 제국 하나가 망할 정도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박동을 멈추지 않는 심장은 성체에서만 추출할 수 있었다.
“이걸 얻자마자 안에 마기를 집어넣었지. 지금쯤 숙성이 다 됐을 거다.”
진한 보랏빛을 띠고 있는 심장.
숙성이라고 표현하니 뭔가 이상하지만, 혈귀의 심장이 가진 특성이 그러했다.
심장을 마나에 접촉시킨 뒤 흡수하면 마법사의 마나의 질이 대폭 상승한다.
마기에 접촉시킨 뒤 흡수하면 흑마법사의 마기의 질이 대폭 상승하고.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혈귀의 심장은 무한한 활용도를 자랑했다.
무기로 가공해 사용할 수도 있고, 힘을 흡수할 수도 있었다.
“놈이 성체로 급속 진화해 준 게 이런 이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지.”
“아아….”
김서현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흑마법사들이 하던 특유의 행동이었다.
“김민준 님. 이대로 가면 반드시 모든 힘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딱밤 한 대 맞을래, 당장 일어나서 마기 받을래.”
“…….”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마기를 받았다.
“그럼 지시하신 대로, 이스가르드와의 접접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김민준은 박동하는 심장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혈귀가 우연히 이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이야 있긴 하지.’
그러나, 자연 발생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울릉도 밑에 붙어 있던 아포피스.
혈귀의 세포가 귀신같이 그곳에서 성장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이스가르드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전제로 생각해야겠어.’
천천히 혈귀의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이대로 힘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군생활 즐기려고 했는데,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되겠네.’
꿀럭꿀럭.
진한 액체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 온다.
혈귀의 심장은 순식간에 탁구공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이로운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
띠링. 띠링.
쉴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들.
예상했던 대로, 혈귀의 심장이 지닌 효과는 강력했다.
[이로운 효과가 모든 스텟에 영향을 줍니다.]
[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
“응? 뭐냐?”
효과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힘.
마기를 되찾으려고 숙성한 심장인데, 다른 스텟들까지 상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