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혈귀-4
-자, 잠깐! 저 소멸합니다! 저 소멸합니다! 김민준 님!
푸른 오러가 넘실거리는 마력검.
다크사이더는 기겁하며 도망치려 했다.
‘걱정 마라. 내가 힘 조절 하나는 확실하니까. 다음에 부르면 뭐라도 챙겨 줄게.’
-느와아아아악!
다크사이더의 몸이 꿰뚫리며 사라졌다.
녀석을 보낸 건 어디까지나 보험이었다.
혈귀가 인간들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 보낸 보험.
자신이 도착했으니 녀석은 할 역할을 다한 것뿐.
그냥 보내면 섭섭하니 성과 점수까지 챙기기로 했다.
‘한 방울이라도 더.’
그사이, 자세를 회복한 혈귀가 지면에 손바닥을 올렸다.
‘방금 공격은 저 인간이 한 거야. 확실해!’
무형의 기운이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싶었을 때는 날아가고 있었고.
‘여기서 인간을 노리는 건 최악이야. 전이 능력은 연속해서 사용할 수도 없어.’
일부러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전이했다.
전이 한지 기껏 해 봐야 2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도대체 저 인간은 무슨 수로 이곳에 온 걸까.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이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은 버리자. 어차피 남은 방법은 이거 하나뿐이야.’
자신에게 남겨진 방법은 단 하나.
몬스터의 피를 최대한 흡수해 진화를 노리는 것이다.
스르르르.
곳곳에 널브러진 리자드맨들의 사체.
지면을 적시던 피들이 혈귀를 향해 흘러들어 갔다.
“이것 봐라. 그사이 피를 빨고 있었네?”
다른 헌터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김민준의 눈길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재빨리 놈을 날려 버리려는 순간,
-잠깐! 김민준 중위! 멈춰라!
무전기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은 또 뭐냐.’
누군가 했더니 헌터 본부 소속의 장혁철 중장이었다.
-혈귀라고 말한 인간형 몬스터. 되도록 생포할 수 있도록.
장혁철 중장은 혈귀를 처치하기 전, 생포 시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 상황이 힘들겠지만, 리자드맨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하다고 알고 있다. 자네들이라면….
이어지는 터무니없는 무전.
병사나 장교나 할 것 없이 얼굴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당장 울릉도에 와서 상황을 겪어 보면, 생포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똥별 새끼들. 진짜 제정신인가?”
“아오! 저 새끼들은 꿀 빨면서 별 쉽게 단 세대들이라고! 몬스터 수천 마리가 몰려드는 와중에, 혈귀를 생포해?”
“도대체 어떤 놈한테서 나온 생각이야?”
무전이 꺼지자마자 헌터들이 쌍욕을 남발했다.
눈앞에 마주한 몬스터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다.
겉보기엔 인간이라 구분조차 쉽지 않다.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강한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경계 대상 1순위라는 말이다.
한데, 위에서 지시만 내리는 장군들은 어떻게든 이득을 볼 생각만 했다.
장병들의 안전은 생각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크윽! 야! 빨리 정비하고 포병들은 임시 대피소로 뛰어라!”
“여긴 우리가 막을 테니까 위협 사격하면서 뒤로 물러나!”
“아, 알겠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리자드맨들이 재차 몰려들었다.
장교들은 마력검을 꺼내 들고 놈들을 막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김민준 중위님! 이놈들은 저희가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혈귀는 그냥 죽여 버리십쇼!”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생포한다는 건 죽겠다는 거랑 마찬가집니다!”
유리한 지점에서 발포한 마력포와 마력탄 덕분에, 초반 전투는 유리하게 가져간 편이다.
그럼에도 전투는 불리했다.
장교들의 스펙을 단기간에 끌어올렸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일 뿐.
길게 끌면 끌수록 체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별을 장식으로 단 놈들이 문제다.’
김민준은 인상을 구겼다.
약화된 리자드맨은 일반 헌터들을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마력탄으로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윗선에서는 추가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있다.
‘헌터군 이미지 때문이겠지. 정신 나간 놈들.’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수록 헌터군 측에서는 손해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리라.
‘전쟁으로 생각하고 대처해야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지금이야 어찌어찌 버틸 수 있겠지만, 길어 봐야 1시간이다.
그 이후부터는 쭉쭉 밀릴 것이다.
-김민준 중위! 반드시 혈귀를 생포….
파삭!
김민준은 재차 울리는 무전기를 손으로 잡고 터트렸다.
생포할 생각? 당연히 없다.
다른 몬스터라면 모르겠지만 혈귀는 안 된다.
한국은 놈을 완벽히 잡아 둘 수 없다.
더군다나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진 혈귀 아닌가.
놈이 성체가 되는 순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고맙다고 전해 줘.”
그사이.
몬스터의 피를 잔뜩 빨아들인 혈귀가 활짝 웃었다.
“아무래도 형한테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아.”
말이 끝난 순간.
거대한 핏방울이 나타나 혈귀의 몸을 감쌌다.
“지랄 났네. 갑자기 진화를 한다고?”
김민준은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별 하나가 개입을 한 탓에 일이 꼬여 버린 것이다.
“내 쪽에서 먼저 건드리지도 못하고.”
저 거대한 핏방울.
저건 혈귀가 진화를 할 때 거치는 과정이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순간 주위 반경 1㎞는 그냥 날아간다.
“만화에서나 변신하는 거 기다려 주지. 현실은 절대 안 기다려 주는데.”
혈귀가 성체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충분한 시간과 양질의 피가 필수적이다.
당연히 저 혈귀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진화를 감행하는 걸 테고.
“넌 나오는 순간 공포의 쓴맛이 뭔지 보여 준다.”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다.
전력을 다해 죽일 생각이었다.
스르르르.
20분쯤 지났을까.
핏방울이 작아지며 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는 10살짜리 어린아이였다면, 지금은 20살 정도의 성인 느낌.
자신의 예상대로 놈이 급속 진화한 것이다.
뻐억!
“넌 저쪽에서 나랑 뜨자고.”
혈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얼굴을 가격당했다.
얼마나 강력한 충격이었으면, 주먹질 한 번에 안면의 형태가 사라질 정도였다.
‘마기의 손아귀.’
김민준은 날아가던 놈을 잡아 더욱 세게 던졌다.
울릉도 섬 외곽이 아닌, 중앙을 향해서.
“크아악!”
성체가 된 혈귀는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했다.
이전과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
그럼에도, 저 인간의 공격이 눈에 잡히지 않았다.
쉬익!
‘원거리 공격까지?’
정신없는 와중, 화살 형태의 원거리 공격이 쏟아졌다.
자그마치 수백 발에 달하는 검은 형태의 화살.
“아아아아!”
혈귀는 몸 안의 피를 압축한 뒤 방출했다.
그러자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해 마기 화살을 날려 버렸다.
“좀 치네.”
김민준은 놈이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마기 화살을 막아낸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른 스킬을 연발했다.
“너,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사각에서 달려드는 박쥐 형태의 몬스터.
신체 능력이 대폭 성장했음에도 눈에 잡히지 않는 인간의 움직임.
분명 물리적인 공격이라면 흘려 낼 수 있어야 하는데, 흘려지지 않는 주먹질.
혈귀는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자신의 진화에 의구심을 품을 정도였다.
‘몸이. 몸이 반응을 하지 않는다!’
피를 이용한 다양한 능력들.
진화를 통해 한층 더 강력한 발전을 이루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이면 그 능력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인간은, 그 짧은 시간조차 허용해 주지 않았다.
“우쭐대지 마라! 인가안! 난 진화를 마친 존재다!”
이성을 가진 혈귀라 하더라도, 태생은 악마와 몬스터다.
혈귀는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극도로 분노했다.
이성을 잃을 정도의 분노.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널 죽이겠다!”
스스스.
혈귀의 몸에서 대량의 피가 빠져나왔다.
그 피는 정육면체의 형태를 갖추어 김민준을 가뒀다.
“죽어라!”
퍼엉! 펑!
안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혈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입에서 피를 압축했다.
수십 번의 압축을 거친 피가 일직선상으로 쏘아졌다.
마치 붉은 레이저를 연상케 했다.
“허억… 헉….”
폭발의 여파로 지면에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확실하다.
무리한 진화를 감행하긴 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힘은 강력해졌다.
이 정도면 저 인간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야! 미쳤냐? 깜빡이 켜고 들어와라, 좀! 보디 캠 부서질 뻔했잖아!”
긁힌 상처가 전부였다.
“마, 말도 안 된다. 저 충격을 버텨 낼 수 있을 리가….”
“이래서 혈귀는 살려 두면 안 된다니까.”
김민준은 혈귀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대처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방금 놈이 사용했던 능력.
그건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맨몸으로 막아내기엔 부담이 컸다.
그래서 욕망의 마기를 사용해 일시적으로 마기를 증폭시켰다.
“마기가 30% 가까이 날아갔네. 힘껏 방어했는데도.”
그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마력검을 꺼냈다.
이 정도로 스릴 있는 전투를 가져다준 몬스터가 또 있을까.
단언할 수 있다.
한국에 와서는 이놈이 처음이다.
“케엑! 켁!”
“얌마.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버릇없게 피를 뱉어?”
혈귀는 능력의 반동으로 인해 축 늘어진 상태였다.
무리한 진화와 주제넘는 능력을 남발했는데, 당연한 결과였다.
“인간. 네놈의 정체가 뭐냐. 알고 싶다.”
죽음을 예감한 듯 눈을 지그시 감는 혈귀.
김민준을 놈을 향해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대한민국 군인이다, 이 새끼야.”
혈귀는 목이 잘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
-적들을 포착했다. 해당 지점을 밀어내기 위해 미사일을 발사할 예정이다.
-도착 예정 시간은 앞으로 30초.
-미사일 발사 뒤, 한번 선회하겠다. 그 뒤 마력 기관포로 2차 공격을 가하겠다.
한편.
울릉도 상공에 다수의 전투기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헌터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공중 지원이 도착한 것이다.
“이 새끼들 모조리 죽여!”
“죽어라! 다 뒤져 버려!”
임시 대피소로 물러난 헌터들은 전투기들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쿠와아아앙!
잠시 후.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과 함께 폭격이 가해졌다.
자그마치 20대의 전투기.
1개의 대대에 달하는 수였다.
몬스터 소멸을 확인했다. 지상에 남아 있는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우와아아아아!”
“대한민국 군대를 얕보지 마라! 병신들아!”
2차 사격을 마지막으로 섬 안에 남은 몬스터들이 제거되었다.
헌터들이 전투를 치르며 줄인 리자드맨은 대략 800마리.
10분 남짓한 시간에 그 많은 수의 몬스터가 소멸한 것이다.
“아직 기뻐하기에는 이르다! 장교들 중 경상자까지는 혈귀를 처치하기 위해 움직인다! 병사들은 추가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박격포 대령의 지시에 장교들이 재빨리 대열을 이뤘다.
김민준 중위가 혈귀를 붙잡아 두고 있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안다.
‘그 경황없던 순간에 몬스터를 섬 안쪽으로 붙들고 갈 줄이야.’
리자드맨과 혈귀를 분리시킨 건 최고의 한 수였다.
혈귀가 몬스터의 피를 흡수해 팔을 재생시켰으니까.
때문에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혈귀와 몬스터 간의 분리였다.
‘김민준 중위. 도대체 신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면… 그 짧은 순간에…..’
고작 5분 남짓한 시간에 혈귀를 울릉도 중앙으로 끌고 가다니.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이었다.
“김민준 중위와 무전이 되지 않는다! 섬 중앙을 중심으로 수색을….”
박격포 대령이 지시를 내리던 도중,
“충성.”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