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혈귀-3
쿠구구궁!
섬이 위아래로 들썩거리는 듯한 진동과 동시에 들어온 관측반의 다급한 보고.
올 것이 왔다.
“다들 전투 준비해!”
박격포 대령이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장교들은 마력포를 최우선으로 보호하며 싸울 수 있도록 한다!”
“예!”
“포병들은 탄약이 떨어지는 즉시 임시 대피소로 물러난다!”
“알겠습니다!”
“임시 대피소에 마력 기관총은 몇 대나 있나?”
“다섯 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울릉도 외곽 쪽으로 배치된 마력포는 대략 30대.
중급 몬스터 수천 마리가 들이닥친다고 가정해 보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숫자다.
‘망할. 2시간. 아니, 1시간 정도만 더 있었어도!’
뒤에 마력포의 탄약을 실은 해군들이 부랴부랴 오고 있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 멀리서 몬스터가 수십 마리씩 상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족 보행을 하는 도마뱀, 리자드맨이었다.
“장교들은 위치를 사수하라! 몬스터는 상급 몬스터도 아닌, 고작 중급 몬스터 리자드맨이다!”
리자드맨이면 그나마 다행인 편이었다.
오크 수천 마리가 상륙했다고 하면 절망할 뻔했다.
리자드맨 정도면 충분히 버텨 볼 만하다.
놈들은 적어도 오크처럼 생명력이 질기지는 않았으니까.
“샤아아악!”
상륙을 끝낸 리자드맨들이 인간들을 향해 위협적인 목소리를 냈다.
“마력포 사격 준비 끝!”
“마력포 사격 준비!”
“준비!”
“쏴라!”
쿠와아아앙!
마력포의 발포를 시작으로, 인간과 몬스터의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었다.
**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포성과 몬스터의 울음소리.
“몸이 근질근질하지?”
김민준은 혈귀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던 혈귀가, 당황하고 있다.
그 많던 중급 몬스터들이 아무 힘도 못 써 보고 갈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인간들은 생각보다 강하구나.”
“강하지. 여기 있는 장교들은 중급 몬스터들은 그냥 썰어 버릴 수 있지. 그런데 나도 이건 예상외네.”
현재 압도적인 우위를 쥐고 있는 건 헌터군 쪽이다.
미리 매설해 둔 마력 지뢰.
거기다 원거리에서 갈겨대는 마력포와 마력탄 덕분일 것이다.
물론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마력포의 탄약이 떨어지기 시작할수록, 점점 뒤로 밀리는 구도가 나올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신의 예상대로였다.
“리자드맨들이 저렇게 허약해서 쓰겠냐?”
변수가 있었다면, 헌터군 쪽이 아닌 몬스터 쪽이었다.
아포피스에서 나온 리자드맨은 허약했다.
사람으로 치자면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은 느낌.
놈들은 조금만 달려도 지친 듯이 헥헥거렸다.
단단해야 할 외피는 마력탄을 제대로 견디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중급 몬스터들인 데도 말이다.
“뻔하지. 네가 몬스터한테서 영양분을 쭉쭉 빨아먹었는데, 쟤들한테 힘이 남아나겠냐?”
“…….”
혈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포피스 안의 몬스터들에 관해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한데, 이 정도로 약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들이 가진 무기들이 이만큼 강할 거라는 것도 예상치 못했다.
섬이라는 한정된 영역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구멍이었다.
“야. 날 여기에 묶어 놓는다고 해서 이득이라도 볼 줄 알았냐?”
김민준은 놈을 향해 실실 웃었다.
상황은 나이트 워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있다.
위급한 상황이 온다면, 흑마법을 사용하면 될 일이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텐데. 시간 끌면 나야 좋다만.”
그는 놈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툭툭 건드렸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밀고, 볼을 툭툭 쳤다.
기분 나쁘라는 듯이.
“형 말대로, 시간 끌면 불리한 건 나네.”
혈귀가 활짝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죽을 확률이 올라갈 뿐.
우선 눈앞의 인간의 역량을 파악하기로 했다.
쉬익!
허공에서 붉은 피가 나타났다.
정면도 아닌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피였다.
피는 날카로운 송곳의 형태를 갖춘 뒤, 김민준을 향해 쇄도했다.
“이거 봐라. 생각보다 시전 속도가 빠른데?”
한 달 남짓 된 혈귀치고 확실히 강하다.
다른 장교들이었으면 꼼짝 못 하고 즉사했을 것이다.
사각에서 소리 없이 달려드는 수십 개의 송곳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부패.”
김민준은 지체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눈앞의 혈귀는 맨몸으로 제압하기에는 쉽지 않다.
흑마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어깨에 장착된 보디 캠은 어디까지나 녹화용이다. 적당한 타이밍에 껐다 켰다 하면 상관없겠지.’
물론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때는 격렬한 전투 때문에, 보디 캠이 온전히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면 될 뿐.
파사삭!
보랏빛 연기에 닿은 혈액이 풍화라도 하듯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무슨….”
보랏빛 연기가 닿자 일어난 현상이다.
혈귀는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수백 개에 달하는 송곳을 만들어 냈다.
파사삭!
그래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순간.
단 한 순간에 그 많던 송곳들이 무력화되었다.
“증거 잡혔네?”
김민준은 어깨의 보디 캠을 툭툭 두드렸다.
‘저 연기에 닿으면 안 된다!’
혈귀는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다.
저런 강력한 효과를 가진 능력이면, 분명히 제약이 있을 것이다.
무적일 리가 없다.
반면, 자신이 혈액을 사용해 만들어 내는 송곳들은 앞으로 수백 번은 사용할 수 있다.
‘소모전으로 간 뒤에 접근하면 될 거야!”
혈귀는 다양한 형태로 공격을 가했다.
혈액을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작은 알갱이 형태로도 흩뿌려 보고.
크기를 키워서 던져 보고.
무리까지 해 가며 다량의 혈액을 방출해 몸을 감싸 보고.
“너 뭘 처먹길래 피에서 냄새가 나냐? 어후.”
그럼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저 인간의 몸이 내뿜는 연기.
저 연기에만 닿으면 자신의 피가 힘을 쓰지 못했다.
‘상성이 최악이야.’
저 인간의 몸에 닿을 수만 있다면 피를 빨아들일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신만 집중할 수 있다면 원거리에서도 피를 뽑아낼 수 있다.
힘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자신이 거리를 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6 대 4가 아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9 대 1이야.’
혈귀는 자신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저 인간의 눈을 보면, 힘을 다한 게 아니다.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이 정도면 녹화 분량 든든하게 챙겼네. 이제 나한테 죽자.”
김민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을 때.
‘저, 전이!’
혈귀는 재빨리 특수 능력을 사용했다.
“……!”
놈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김민준은 재빨리 마력검을 꺼내 놈에게 휘둘렀다.
툭.
혈귀는 팔 한쪽을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혈귀한테 순간 이동 능력이 있다고?”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진 혈귀라니,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이거 성체까지 컸으면 장난 아니었겠는데.”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보디 캠을 몸에서 떼어 낸 뒤, 전원을 껐다.
“다크사이더, 나와라.”
흑마법사의 스킬은 아끼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증거 영상 확보 및 자료 확보 때문에 봐줬다.
지금부터는 아니다.
-어떤 미천한 인간이 나를 불러….
“나다.”
-허억! 기, 김민준 님! 죄, 죄송합니다!
근엄하게 등장한 다크사이더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다크사이더. 놈을 철저하게 방해해라. 그리고 마지막에 연기 한번 해 줘라.”
김민준은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씨익 웃었다.
-여, 연기 말입니까?
“그래. 시간 없으니까 그렇게 알고 빨랑 가라.”
이 인간이 또 무슨 짓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궁금함 이전에 두려움부터 들었지만,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다크사이더는 재빨리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좋아. 나도 후딱 가야겠지.”
혈귀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섬의 끝자락이다.
지능이 있는 놈인 만큼, 이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이한 것이다.
“네 의도야 뻔하지.”
시간을 끌며 힘을 흡수할 생각이다.
“그런데 어떡하냐. 우리 장교들이 만만하지는 않을 텐데.”
놈은 힘을 꽤 소모한 상태다.
팔 한쪽도 떨어진 상태고.
헌터들에겐 충분히 주의를 주었으니, 놈에 대해선 경계할 터.
“너한테 남은 시간은 1분도 없을 거다.”
김민준은 공명을 사용했다.
스스스스스.
몸 안의 톱니바퀴 두 개가 맞물리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림자 도약.”
**
혈귀는 울릉도의 외곽, 가두봉 쪽으로 전이했다.
“이놈들 생각보다 약하다! 쫄지 말고 달려들어!”
“으아아아!”
“키이익!”
혈귀가 전이한 곳은 이미 격렬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강렬한 포성과 탄환이 이리저리 튀고 있다.
바닥에는 리자드맨의 시체 수백 구가 널브러져 있고.
인간들 쪽은 비교적 멀쩡했다.
‘이럴 시간이 없어.’
인간들이 사용하는 저 정체 모를 무기.
몬스터들은 저기에서 쏘아지는 물체에 이렇다 할 힘을 못 쓰고 있다.
원래 같으면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나, 그럴 시간조차 없다고 판단했다.
본능이 알려 주고 있었다.
‘김민준. 분명 이곳으로 오고 있을 거야.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혈귀는 살아 있는 리자드맨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어? 어어! 잠깐!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해!”
“저 애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헌터들은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사격을 중지했다.
한쪽 팔이 없고, 붉은 눈동자를 띤 아이.
김민준이 전달해 준 정보와 일치했다.
장교들이었다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건 포병 헌터뿐이었다.
본래 투입 예정에는 없는 헌터들 말이다.
그들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꼬마야! 거기 위험하다 이리와! 빨리!”
“야! 미쳤냐! 가까이 가지 마! 거리 뒤로 벌리라고!”
“하, 하지만!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구해야 합니다!”
이러는 사이.
혈귀는 몬스터의 피를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피를 흡수할수록 잘렸던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혈귀의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던 리자드맨은 말라비틀어졌다.
“어, 어어?”
“쟤 지금… 팔이 재생하고 있는데?”
“야! 갈겨!”
뒤늦게 해당 장소에 나타난 장교가 외쳤다.
저건 몬스터가 확실하다.
리자드맨이 저 아이의 손에 죽었다.
게다가 어린아이의 팔이 저렇게 자라날 리가 없지 않은가.
“갈기라고 병신아! 저거 몬스터라고!”
“알겠습니다!”
곧 혈귀를 향해 마력탄이 쏘아졌다.
“하하. 저거 맞으면 아프겠는데.”
그사이 힘을 회복한 혈귀는 별 힘들이지 않고 탄환들을 피해 냈다.
그러면서도 살아 있는 리자드맨의 피를 흡수해 나갔다.
“어? 어어? 저, 저기 위! 위를 보십쇼!”
갑자기 나타난 혈귀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이다.
상공에는 언제 나타난 건지, 검을 천을 뒤집어쓴 몬스터가 떠 있었다.
마치 사신을 연상케 하는 모습.
“이런 씨팔…. 저건 또 뭔데! 혈귀만 해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헌터들은 난생처음 보는 몬스터에 우왕좌왕했다.
“건드리지 마! 거리만 둬라! 저게 뭔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자극하지 마라!”
장교는 재빨리 박격포 대령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렸다.
-보기 흉하다. 하찮은 놈아.
그러는 사이.
다크사이더는 혈귀에게 날아갔다.
그대로 놈의 생명력을 빨아들일 생각이었다.
“다들 물러나십쇼!”
-음?
그 순간.
퍼억!
혈귀가 무언가의 힘에 의해 튕겨 나갔다.
-기, 김민준 님?
‘야. 알지? 연기 잘해라.’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김민준.
그는 다크사이더를 향해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