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45화 (145/212)

145. 혈귀-2

“여기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겉보기에 10살 남짓한 어린아이, 혈귀였다.

‘저게 혈귀라고?’

‘미친. 그냥 애잖아.’

‘눈동자가 붉은 걸 보면 혈귀일 확률이 높습니다. 최대한 경계하세요.’

장교들은 주춤하면서도 김민준의 지시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와도 회피할 수 있는 자세로.

“이거, 아저씨들이 가져온 거야? 아깝게 땅에다가 뿌리네.”

혈귀는 코를 킁킁대며 아쉽다는 듯 툴툴거렸다.

겉보기에는 전혀 전투 의사가 없는 것 같지만, 그게 놈의 무서운 점이다.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도 공격을 할 수 있었으니.

“뭐. 내가 가져온 거 내가 버리겠다는데. 불만 있냐?”

김민준이 혈귀를 향해 걸어갔다.

원래 같았으면 시작부터 얼굴을 걷어찼을 것이다.

하나, 지금 상황에서 놈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악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나라에 기생한 게 너한텐 천운이다. 운 좋은 놈.’

혈귀가 능력을 쓰지 않는 이상.

눈앞의 남자아이가 몬스터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대 기술로는 밝히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혈귀의 신체 구조는 인간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성수를 지닌 사제 정도는 되어야 구분이 가능하겠지.’

이런 이유 때문에 김민준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심증이 아닌, 물증이 필요했다.

이대로 저 혈귀를 죽이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는 곧바로 살인자로 몰릴 것이다.

지금까지 쌓은 인지도와 명성을 잃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만 있으면 몰라도, 이곳의 주민들도 생각해야겠지.’

주민들이 대피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섬 밑에 붙어 있는 아포피스는 열리지도 않았고.

다른 몬스터라면 모르겠지만, 혈귀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보통 몬스터들은 본능대로 움직인다.

지능이 평균적으로 낮다는 말이다.

반면 혈귀는 지능이 높다.

아포피스 안에서 기간을 다 채우고 나온 혈귀.

추정하건대 성인 남성 수준의 지능을 가졌을 것이다.

특히나 저놈은 다른 혈귀보다 지능이 더욱 높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저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놈이 학습을 한 덕분일 것이다.

‘내가 여기서 선빵을 치면 주민부터 죽이려고 하겠지. 그게 아니면 외곽에 있는 공병들을 노린다든가. 그게 아니면 그냥 인간인 척하고 죽어 버리든가.’

그것 말고도, 저놈을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하나는 성장 속도.

놈은 아포피스 안에서 나왔던 만큼, 다른 혈귀에 비해 성장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혈귀가 저 정도의 성장을 하려면 최소 1년은 더 필요하다.

하나, 눈앞의 혈귀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급성장을 했다.

다른 하나는 지능.

보통 혈귀는 먹이로 인식한 대상을 살려 두지 않는다.

가차없이 피를 빨아먹는다는 말이다.

한데, 눈앞의 혈귀는 울릉도 주민들의 피를 조금씩 가져가고 있었다.

생명의 지장이 없는 선에서 조금씩 말이다.

‘천천히 피를 빼내는 게 효율적이라는 걸 아는 거다. 이놈은.’

일부러 허약하게 생긴 남자아이의 모습을 한 것도 그렇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좋으니까.

놈은 이미 인간의 습성을 알고 있다.

“이상한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혈귀 치고 잔머리를 너무 잘 굴리는데.”

“칭찬해 주는 거야?”

혈귀는 비아냥대는 자신의 말에도 즐겁다는 듯 웃었다.

“형은 되게 강해 보이네. 싸우면 질지도 몰라.”

“그냥 맞아 줄 테니까 능력 한번 시원하게 써 보는 건 어떠냐?”

“그게 형이 노리는 거지?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혈귀가 어깨 쪽에 달려 있는 보디 캠을 가리켰다.

이번 사안은 사안인 만큼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다.

몬스터로 지목된 남자아이가 혈귀라는 증거가 말이다.

때문에, 작전에 투입된 모든 장교들은 보디 캠을 장착하고 있었다.

“형들은 시간이 필요하지? 여기 있는 주민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거든.”

혈귀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제안을 했다.

“형들이 대신 피를 줄 것 같지는 않고. 사실 나도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어때? 나랑 얘기만 해 주면 얌전히 있을게.”

“미치겠군.”

“김민준 중위님. 얘 진짜 몬스터 맞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습니다.”

“헌터 본부에서도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저희 몸에 보디 캠을 장착시킨 것 아닙니까?”

가만히 대화를 듣던 장교들은 갈팡질팡했다.

말을 하는 내용을 들어 보면 몬스터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겨우 대화 내용 하나 가지고 단정 짓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더군다나 어린아이 아닌가.

어린아이가 판타지스러운 상상을 하는 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저희의 주 임무는 이놈 상대로 시간을 버는 겁니다. 저렇게 나오면 저희도 이득이죠. 가만히 따라갑시다.”

“음….”

“알겠습니다. 마땅히 방법이 없긴 하네요.”

다들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혈귀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거기 형만 날 따라와. 다른 형들은 필요 없거든.”

“아니, 꼬마야. 우린 장난으로 여기 온 게 아니다.”

“괜찮습니다. 박격포 대령님에게 보고해 주시고 다른 소대로 합류해 주세요. 혈귀를 섣불리 자극하는 건 위험합니다.”

“…후. 알겠습니다.”

임시로 편성된 분대의 분대장은 김민준이다.

장교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형. 드디어 둘만 남았네. 아니지. 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느새 둘만 남게 된 한적한 숲속.

혈귀는 코를 킁킁대며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야. 어린아이인 척 그만해라. 역겨워 죽겠으니까.”

“이미 학습해 버려서 몸에 배인 걸 버릴 수는 없어. 그것보다 괜찮아? 거기 그거. 목소리 다 저장될 텐데?”

“어쩌라는 거냐? 넌 어차피 몬스터고, 오늘 안에 정체가 까발려진 뒤에 죽을 텐데. 음성 저장 기능이야 적당히 망가뜨리면 아무도 몰라.”

스스스스.

김민준의 등 위에서 검은 형체가 솟아났다.

소환수, 나이트 워커였다.

“아…. 왠지 익숙하더라니. 그거 형 거였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는데. 요리조리 잘 도망쳐서 포기했어.”

스스슥! 스슥!

놈의 말에 소환수가 화났는지 격렬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야. 너는 시간을 끌수록 손핸데, 굳이 그러는 이유가 뭐냐?”

혈귀에 대해선 진작에 파악하고 있다.

섬에 붙어 있는 아포피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지금 상황에서 혈귀가 시간을 끄는 건 불리하다.

놈이 뭘 노리고 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섬 밑에 붙어 있는 주머니. 거기 몬스터들 일제히 풀어내려고 그러냐?”

“와. 날카롭네. 맞아. 내가 노리는 게 그거야.”

혈귀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박수를 쳤다.

눈앞의 인간.

과연 저걸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까?

혈귀의 눈에는 김민준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처럼 인간을 먹이로 삼는다든가, 적대한다든가 하면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되겠네. 나한테 너무 적대적이야. 인간들 편인 것 같고.’

지금 당장 눈앞의 군인과 싸운다면 승산은 6 대 4 정도일까.

물론 자신이 4다.

성체가 된다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지금은 어렵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 의외네.’

대화를 몇 마디 나눠 본 걸로 판단해 보면, 눈앞의 인간은 자신이 혈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은 대처법 또한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다는 뜻일 터.

‘그래도 이거까지는 모를걸?’

몬스터들에게서 흡수한 대량의 영양분.

이 영양분은 혈귀에게 특별한 능력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난 표식을 남겨 둔 장소로 전이가 가능하거든.’

표식이야 진작에 남겨 뒀다.

섬 자체가 자신의 공간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섬 안의 인간들은 빠져나갔지만, 상관없었다.

그보다 많은 수의 인간이 섬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앞으로 3시간 정도 남았으려나.’

섬 밑의 주머니가 열리면 안에 든 몬스터들이 육지로 상륙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된다.

당장 눈앞의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

본능이 가르쳐 주고 있다.

하지만.

싱싱한 피가 저만큼이나 있으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

‘여기 인간들 피를 다 빨아 먹으면 섬 밖으로 나가야겠어.’

혈귀가 이런 계획을 세워 두고 있을 때.

김민준 역시 주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야. 마력 지뢰 쭉쭉 깔고 있는데, 가만히 있어도 괜찮겠냐? 추가로 들어오는 장비들은 2시간 안에 도착할 건데.”

일부러 혈귀의 반응을 떠보려고 입 밖으로 말을 뱉었다.

“우와. 그것참 무섭네.”

그 말을 끝으로, 혈귀는 입을 닫았다.

불필요한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귀찮네. 하필이면 애새끼 모습을 하고 있어가지고.”

“그게 10살한테 할 말이야? 형?”

“형형 하지 마라. 어차피 넌 오늘 안에 정체 까발려진 다음 뒤져.”

눈앞의 혈귀는 어린 개체치고 지능이 높다.

그래서 놈을 향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어떠한 돌발 상황이 일어나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아포피스 안의 몬스터들이야 잘 대처해 주겠지. 그걸 위해서 영약을 퍼붓고 훈련을 해 왔으니까.’

각종 무기들과 우수한 장교들이 있다면, 몬스터들은 충분히 막아낼 것이다.

자신은 혈귀만 상대하면 된다.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오히려 좋았다.

“야. 심심한데 말 좀 해 봐라. 너 특별한 능력 같은 거 가진 건 없냐? 몬스터 영양분 쭉쭉 빨아먹었을 텐데.”

“…….”

김민준은 혈귀의 정신력을 흩트리기 위해,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

-1조 마력 지뢰 매설 작업 끝났습니다!

-2조 마력 지뢰 매설 작업 끝났습니다!

-3조 마력 지뢰 매설 작업 끝났습니다!

2시간이 지났다.

박격포 대령은 공병의 보고를 받으며 추가 지시를 내렸다.

“마력포 도착은 아직도 멀었나!”

“11분가량 지연된다고 합니다!”

“도착하면 내가 지시한 대로 배치할 수 있도록!”

“예!”

“포병들은 철수 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 무조건 자리를 지킨다. 지금 상황은 실전이라고 생각해라.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현장은 긴장감이 가득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잠잠하던 아포피스.

그 거대한 덩어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 대피는 모두 완료했다. 마력포 배치는 살짝 늦어졌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몬스터를 섬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미끼는 충분히 뿌렸다.

상황이 악화될 것을 대비해 미사일 지원까지 요청해 둔 상태다.

상황실에 지원 요청을 보내면, 전투기가 30분 안으로 울릉도에 도착한다.

‘망할. 예상 시기보다 이렇게 빨라질 줄은.’

그럼에도 불안했다.

긴급 상황에 대처를 한 만큼, 완벽한 대비를 할 수 없었으니.

‘김민준 중위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맡겼어.’

지금 시점에서 가장 위험한 헌터는 김민준 중위다.

임시 분대원들의 보고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결국엔 김민준 중위를 혼자 남겨 둘 수밖에 없었지만.

‘혈귀로 지목한 남자아이가 정말 몬스터라면….’

설명한 대로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졌다면.

아무리 그라도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다.

“박격포 대령님!”

그가 잠시 근심에 빠져 있던 사이,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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