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혈귀-1
“이 새끼 봐라.”
김민준이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울릉도로 향한 소환수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정확한 정보는 녀석이 이쪽으로 넘어와야 받을 수 있지만, 상관없다.
현재 울릉도에 문제가 발생한 것.
인간 형태를 한 몬스터가 존재하고 있는 것.
이 정도의 정보만 알아도 충분했다.
“내 소환수를 놓친 걸 보면 그렇게 강한 놈은 아닌가. 아니면 힘을 기르고 있는 건가.”
울릉도의 주민들이 병원에 실려 가던 원인은 몬스터 때문이었다.
“저 정도의 크기라면 레이더망에 안 걸릴 수가 없는데.”
은신 능력이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위험할 터.
“그 뒤로 하루는 지난 것 같은데.”
스스슥.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던 찰나, 소환수가 돌아왔다.
몬스터의 감시를 피해 도망 다니다가 늦었다고 대답했다.
“바로 보여 줘.”
나이트 워커가 수집한 정보를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소환수가 몬스터에게 잡혔을 때.
해당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약간 탈취할 수 있었다.
남자아이의 형상을 한 몬스터는 아포피스에서 첫 번째로 빠져나온 것.
또한 아포피스 안에 있는 대량의 생명체들은 대부분 중급 몬스터들.
기존 헌터군에서 조사했던, 상급 몬스터들이었다는 건 잘못된 정보였다.
이건 그나마 희소식.
문제는,
“…혈귀라고?”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하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럴 것이.
혈귀는 이스가르드에서만 존재하는 인간형 몬스터였으니.
‘다른 몬스터였다면 우연이라고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귀환하고 나서 마주쳤던 하운드.
이스가르드의 다크 하운드와 거의 같았지만, 그 정도는 우연일 수 있다.
이레귤러 몬스터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혈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혈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다.’
미성숙한 악마의 세포와 피를 갈구하는 언데드의 세포를 합친 실험의 결과물.
그것이 바로 혈귀다.
‘특징이 똑같다.’
세포 형태의 혈귀는 생명력이 풍부한 대상의 몸에 들어가 기생한다.
자아를 가질 때까지 피와 영양분을 빨아먹는다.
‘20년이라고 했나. 걸리는 시간까지 비슷하다.’
혈귀 한 마리를 생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과 리스크는 엄청나다.
이스가르드의 거대한 제국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
그 혈귀 한 마리 때문에 제국이 몰락하기까지 했다.
‘한번 만들기만 하면 엄청난 힘을 가진 건 맞다.’
혈귀가 성체로 성장한다는 가정하에, 이스가르드의 웬만한 강자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
혈귀란 그런 몬스터였다.
완전히 힘을 되찾은 자신조차 진지하게 상대해야 했으니.
“20년 전이라.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품고 있는 아포피스.
혈귀에게 있어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부터는 그렇지 않다.
더군다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간형 몬스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겠지.”
일단 혈귀를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스가르드와 관련해서는, 그 뒤로 움직이기로 했다.
“문제는 이 정보를 어떻게 설명하느냐인데….”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걸 밝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놈이 힘을 계속 키워 나갈 것이고.
“쯧. 일단 질러 봐?”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방송이 울려 퍼졌다.
-울릉도 위협 제거 작전에 참가하는 장교들은 전원, 작전 회의실로 모일 수 있도록!
다급한 목소리를 들어 보면, 헌터군 측에서도 놈의 존재를 눈치챈 듯했다.
“타이밍 좋네.”
김민준은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
“다들 정신 차리고 똑바로 듣도록!”
회의실에는 헌터군 장성 한 명과 박격포 대령이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장성은 쉴 새 없이 통화 중이다.
박격포 대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울릉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시민들은, 몬스터의 소행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 화면에 띄워진 것은 5살 남짓한 남자아이.
장교들은 스크린을 보고 의아해했다.
“저것이… 몬스터입니까?”
“그냥 어린아이 아닙니까?”
그럴 것이, 인간형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앞뒤 정황을 파악하고, 몬스터 레이더에 감지된 것까지 감안하면 확실하다. 이건 몬스터다.”
“미친.”
“이게 또 뭔 일이야….”
비상 상황이 터질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체를 모르는 인간형 몬스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수의 연구진들, 그리고 권위 있는 박사들이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활용해 능력을 예측했다.”
혈귀에 대한 연구 자료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뭐야. 잘 맞추는데? 이 정도로 정보력, 수집력이 대단할 줄이야.’
김민준은 연구진들이 예측한 능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놈에 대한 주요 능력들이 상당 부분 들어맞았기에.
세세한 능력들은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헌터군은 혈귀의 주요 능력만 주의해 줘도 충분하다.’
애석하게도, 현재 헌터군의 수준으로는 놈을 처치하는 게 어렵다.
분명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내가 있는 한 그렇겐 안 된다.’
물론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몬스터도 아니고, 이스가르드의 몬스터다.
놈이 인간을 건드리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혈귀의 특징.
혈귀의 능력.
혈귀의 지능 등등.
설명이 길어질수록, 장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그게 몬스터라고?”
“미치겠네.”
“그걸 죽여야 한다 이건가.”
혈귀.
자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터무니없는 몬스터였다.
놈은 피를 이용한 여러 능력을 가진다.
주 능력은 피를 흡수할 때마다, 조금씩 강해진다는 것.
성장하는 몬스터라니.
그런 끔찍한 몬스터가 실제로 존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피를 이용해서 다양한 공격도 한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피를 사용해 여러 변칙적인 공격까지 할 수 있을 것이란다.
원거리 공격까지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예측에,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거기다 인간 수준의 지능까지….”
물론 저 정보들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그럼에도 장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몬스터 연구진들은 해외에서조차 주목받는 뛰어난 인재들 아닌가.
이번에는 박사진들까지 머리를 맞대었으니, 그냥 흘려넘길 수 없었다.
“다들 주목! 해당 정보는 어디까지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한 것뿐이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박격포 대령이 시선을 모았다.
“정보를 맹신하지 말란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숙지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예!”
“다들 20분 내로 해당 내용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도록! 작전은 1시간 뒤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밤 12시.
울릉도 위협 제거 작전이 실시되었다.
**
“울릉도 주민 여러분! 지금 당장 대피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헌터군 소속 군인입니다! 지시에 따라 주셔야 합니다!”
울릉도 주민들이 섬을 비워 주기로 한 날은 20일 뒤.
당연히 작전을 앞당겼기 때문에 다수의 주민들이 남아 있었다.
작전 수행이 있어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최우선.
헌터 본부에서는 위험 부담을 안고도 다수의 헌터군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야! 너 이리와 봐! 일병 주제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해?”
“야 이 새꺄! 내가 해병대 780기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야밤에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대피다 보니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어르신. 이 섬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지금 빨리 대피해 주셔야 합니다.”
“몬스터는 무슨 몬스터! 눈이 달렸으면 보라고! 몬스터가 돌아다니는지!”
이대로면 작전에 차질이 생긴다.
사태가 커지는 듯하자, 여헌터 한 명이 확성기를 들고 언성을 높였다.
“이 상황은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이유나 소위였다.
“저희들의 지시를 따라 주시지 않으면, 공무 집행 방해로 처벌됩니다! 헌터군 특별법에 의해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실제 주민들의 대피를 맡고 있는 병력들은 대부분 일반병들이다.
단시간에 다수의 주민들을 대피시켜야 하다 보니, 일반 헌터의 투입이 불가피했다.
“뭐? 네가 뭐라고….”
“제대로 들으세요!”
그녀는 허리춤에 찬 마나건을 꺼내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본래는 허용되지 않는 행동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위협 사격을 해도 상관없었다.
찰나의 순간으로 수많은 목숨이 날아가는 사례가 있었으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조차 봐주지 않는다.
“두 번 말하지 않습니다. 현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알았다. 알았어!”
“갈 테니까 내 팔 잡지 말어!”
그녀의 강경한 태도와 목소리 덕에 주민들이 목소리를 낮췄다.
총까지 들이대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후우…. 민준이는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예상치 못한 차출.
당황스러웠지만, 상관없었다.
후방에서 일반 병사들과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주 임무니까.
반면, 작전의 선두에 서는 장교들은 그렇지 않다.
지금만 해도 몬스터를 끌어들이기 위해 미끼를 여러 차례 뿌리고 있을 터.
‘여긴 아무런 대비가 안 되어 있잖아.’
분명 뉴스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인지 뭔지 떠들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냥 아무것도 없다.
과연 이대로 일이 잘 해결될지 의문스럽다.
‘민준이 걔가 또 평소처럼 다 부숴 버리겠지. 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신속히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 것.
“30분 간격으로 배가 들어올 겁니다! 충분히 타실 수 있으니 차분하게 기다려 주세요!”
이유나 소위는 소대원들과 함께 임무를 계속 진행해 나갔다.
**
한편.
울릉도에 긴급 투입된 장교들은 역할 군을 나눠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바로 전투에 뛰어드는 건 힘들다.
그들의 첫 번째 임무는 공병들을 호위하는 것.
현재 공병들은 섬 외곽 지역을 몬스터 유도제와 마력 지뢰로 도배하는 중이다.
아포피스에서 상륙하는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면서, 일차적으로 막아내기 위해서다.
“김민준 중위. 정말 이 정도 인원으로 괜찮겠나?”
“예. 충분합니다.”
김민준은 그 사이 미끼 역할을 자처했다.
혈귀를 직접 상대해 봤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처방법을 잘 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후우. 마음 같아서는 1소대 규모 정도로 지원해 주고 싶다만….”
박격포 대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혈귀를 상대로 다수가 달려드는 건 악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기동력이 뛰어난 장교 5명을 선발해 임시 분대를 만들었다.
“자네들의 주 역할은 시간을 끄는 것이다. 본부에서 지시 사항이 전달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예!”
“알겠습니다!”
얼마나 버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버티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혈귀는 겉으로 보면 몬스터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만큼,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대응이 가능했다.
“1분대, 위치로.”
“위치로!”
김민준은 임시 분대의 분대장을 맡았다.
장교들은 그와 지정한 위치로 이동해 미끼를 꺼냈다.
몬스터의 혈액 샘플.
그중에서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오크의 혈액.
“제가 지시하기 전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무조건 방어가 우선입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촤악!
오크의 피를 마구잡이로 뿌리길 수차례.
수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