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강화 훈련
“저건 뭐지?”
“타이어인가?”
겉으로 보면 방공포 차량에 사용되는 타이어 같다.
밧줄이 묶여 있는 걸 보면, 저걸 허리에 매고 훈련을 진행하는 듯했다.
‘저거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데?’
병사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배로 무거운 파워 슈트와 타이어.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강도 높은 훈련이라는 느낌이다.
‘저거까지 더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장교들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방독면.
김민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방독면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회복 포션이 일정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과연.
죽기 직전까지 굴리겠다 이건가.
‘지금 이곳에 있는 장교들은 마력검을 2시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다.’
실전에서 여유롭게 2시간.
이것만 해도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수준이다.
일반 장교들은 실전에서 1시간 유지하는 게 고작일 정도니까.
그 마력검의 사용 시간을 더욱 늘리겠다는 뜻이다.
‘상급 몬스터만 해도 마력탄이 안 통하는 몬스터가 수두룩하니까.’
하지만 마력검은 다르다.
최근에 나온 무기인 만큼, 강한 절삭력을 자랑한다.
어떤 몬스터든 마력검의 오러에는 당해 낼 수 없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군인이 총보다 검을 들어야 하는 시대라니. 아이러니하네.’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이상.
마력검의 오러를 최소 4시간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최소치.
넉넉히 잡으면 6시간은 여유롭게 유지해야 한다.
‘나야 뭐 하루 종일 켜 놔도 문제없다만.’
현재 자신의 체력 스텟은 79.
일주일 동안 마력검의 오러를 둘러도 멀쩡한 수준이다.
이세계에 있을 때도 체력 하나는 좋았다.
귀환하고 나서 꾸준한 단련과 훈련.
나아가 각종 영약까지 더해진 덕분에 저런 성과가 나오게 된 것이지만.
“어우… 뭔 무게가….”
“이걸 주렁주렁 달고 어떻게 움직이라는 건지….”
방독면과 훈련용 특수 타이어.
파워 슈트까지 장착한 장교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특수 부대에서조차 이렇게 무식하게는 하지 않는다.
“일어나!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박격포 대령이 주저앉는 장교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이게 말도 안 되는 무식한 훈련인 건 본인도 안다.
하나, 해내야 한다.
해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신중한 선발을 거쳐 200명을 뽑은 것 아닌가.
“우리는 아포피스에 중급 몬스터가 천 마리 이상 들었다고 가정하고 훈련에 임해야 한다! 안되면 될 때까지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대로 연병장 50㎞ 왕복 오래달리기, 실시! 끝나기 전에는 쉴 생각 하지 말도록.”
“시, 실시!”
장교들이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발을 떼는 것도 버거운데, 얼굴에는 방독면까지 쓰고 있다.
이게 과연 훈련인지 고문인지 헷갈릴 정도의 훈련 강도.
“박격포 대령님. 무게 더 달아도 되겠습니까?”
다들 쩔쩔매며 달리고 있을 때.
김민준이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다며 말해 왔다.
“당연히 상관없다! 다만, 신체에 지장이 있는 것 같으면 즉시 개입하도록 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김민준은 곧바로 훈련용 타이어를 2개, 아니.
3개 더 매달았다.
타앗!
그리고 빠른 속도로 연병장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장교들이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다른 헌터를 신경 쓸 여유가 1도 없었다.
다들 정면만을 바라보며 다리를 움직였다.
‘좋아. 자극이 오고 있다.’
평소 훈련을 즐기던 눈빛이 아닌, 진지한 눈빛.
이번 훈련 기간 동안 스텟을 최대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보통 같으면 이렇게 해 봐야 1이나 2 정도 기대할 수 있겠지.’
이미 자신의 스텟은 상당히 높다.
웬만한 훈련으로는 꿈쩍도 안 할 수치.
하나, 노리는 건 스텟이 아니라 스킬 쪽이었다.
‘체력 강화와 민첩 강화의 스킬 등급이 E.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하지.’
꾸준한 훈련을 통해 스트렝스의 스킬 등급을 B로 올렸다.
민첩 강화와 체력 강화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올릴 수 있을 터.
‘지금까지 저 스킬들이 꿈쩍도 안 했다는 건, 내가 별로 안 힘들어서 그렇겠지.’
아포피스 안에 중급 몬스터가 수천 마리 이상 들어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흑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완벽히 막아낼 수 없다.
‘그 누구도 죽지 않고 완벽하게 막아내려면, 여기서 스펙 업을 해야 한다.’
이번 훈련을 통해 신체 능력을 더욱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으아아아아!”
다른 장교들이 의무 헌터의 부축을 받아 회복 포션을 들이켜고 있을 때.
김민준은 50㎞를 왕복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
장교들에게 첫 일주일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말도 안 되는 훈련 강도에 훈련 도중 기절하는 헌터들이 4분의 1 가까이 될 정도.
“체력 스텟이 더 올랐습니다.”
“저도 3이나 올랐습니다.”
수시로 지급되는 회복 포션이나 각종 영약들이 없었다면….
훈련에 참가한 장교 80% 가까이가 중도 포기 선언을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지독한 훈련 강도였다.
지나가던 특수 부대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확실히 회복 포션을 물 마시듯이 마실 수 있는 건 큰 이득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리 장교라 해도 회복 포션은 부담스럽죠. 몇 개만 마셔도 차 한 대 값인데….”
“거기다 매 끼니 영약까지 챙겨 주니까 스텟이 안 오를 수가 없네요.”
힘든 만큼 성과는 금방 나타났다.
회복 포션과 각종 영약들로 서포트해 주니, 스텟의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와…. 그런데 김민준 중위 저분은 진짜 사람 맞아요?”
대화를 나누던 중, 장교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요일.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다.
그 귀한 시간에… 여전히 체력 단련을 하고 있을 줄이야.
장교들은 김민준의 지독함에 고개를 저었다.
“첫날부터 왕복 오래달리기 100㎞를 하는 헌터는 살면서 처음 봅니다.”
“듣자 하니 하루에 10시간 가까이 훈련에 매진한다고 합니다.”
“허…. 저런 노력 덕분에 진급이 빠른가 봅니다.”
마음 같아서는 주말에도 훈련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들은 회복 포션을 들이켜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좋아. 드디어 떴다!”
한편.
김민준은 오전이 지나고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개인 단련을 멈췄다.
각종 영약을 지원받으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한 결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체력 강화 스킬이 D등급으로 상승합니다.]
[민첩 강화 스킬이 D등급으로 상승합니다.]
“템빨이 좋긴 좋다니까.”
회복 포션.
그것도 상급에 해당하는 포션 덕을 많이 봤다.
지칠 때까지 굴러도 포션 몇 개만 마시면 원래대로 회복할 정도였으니.
“물론 이것도 내가 박격포 대령님한테 잘 보인 덕분이지.”
상급 회복 포션을 지급받은 장교는 자신뿐이다.
다른 장교들에게 지급된 건 일반 회복 포션뿐.
박격포 대령이 밤새도록 훈련에 매진하는 자신을 보고, 감탄했다며 포션을 왕창 건네준 것이다.
“작전 투입되기 전까지 C 등급을 노려 볼까.”
이것으로 자신의 체력 스텟은 85.
이론상 마력검의 오러를 2주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수치다.
스텟이 높을수록 올리기 어렵지만, 그만큼 효율이 뛰어나다.
이대로 수치를 좀 더 올린다면 체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좋아. 은서 면회 온다니까 빨랑 샤워해야지.”
계획대로 척척 올라가는 스텟에 뿌듯함을 느끼며, 재빨리 샤워를 마쳤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고 나서 방침이 바뀌었다.
원래대로라면 주말에는 각자 부대로 복귀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나.
위쪽의 별들 몇 명이 크게 반발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일인데, 쉴 대로 쉬어서 되겠느냐고 말이다.
결국 결정 난 것이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하되, 부대에 그대로 잔류하는 것.
특별히 일요일에 면회까지는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별들이 이미지를 되게 신경 쓰는구만.”
헌터 본부가 기자들에게 떡밥을 뿌리며 밑 작업에 들어갔다.
뉴스를 보면 온통 아포피스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아포피스가 20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건 거짓이며, 최근 6개월 내에 발생한 것이라는 기사들.
당연히 저 내용은 거짓이다.
“하긴. 20년 전부터 저 거대한 덩어리를 방치해 뒀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질 않겠지.”
사실 그대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팬데믹이 일어나 버린다.
그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건 당연했고.
아포피스는 그 정도의 안건이었다.
“이대로 좋은 아이템 쭉쭉 빨아먹고 스펙 업 왕창해야지.”
휘파람을 불며 면회소로 향했다.
굳이 일요일에 손은서를 불러낸 이유는 하나.
치킨과 피자를 먹고 싶어서였다.
“어떻게 특수 부대 근처에 음식점이 하나도 없냐. 얘네들 무슨 낙으로 살아?”
PX조차 구멍가게 수준이라 일정 주기로 황금마차가 온다니.
어우, 강원도 철원도 요새는 안 이러는데.
“야! 여기!”
부대에서 3㎞ 떨어진 면회소에 도착하자, 사복 차림의 손은서가 손을 흔들어 왔다.
“웬일로 사복이냐?”
“군복 입고 너한테 반말하는 건 눈치 보여서 그렇지 뭐.”
“치킨은. 피자는?”
“어휴, 호들갑은. 충분히 가져왔어.”
그녀는 무슨 부대가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있냐며 툴툴댔다.
그러면서도 피자와 치킨, 족발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야. 그냥 해 본 말인데 진짜로 와 줄 줄은 몰랐다. 고맙다.”
“너 그냥 아무나 막 오라고 하는 거 아니야? 김서현 하사는 업무만 안 밀렸어도 오늘 왔을 거라던데.”
“아무나는 무슨. 친한 애들한테만 그러는 거지.”
“...그래. 진급에 미친 네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겠니.”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턱을 괴는 손은서.
그녀는 정신없이 음식을 해치우는 김민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기하다니까.’
자신은 남자에 흥미가 없었다.
정확히는, 진작에 질렸었다.
외모만 보고 들이대는 장교나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내가 왜 얘한테 끌리는 거지?’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민준에게 끌리고 있었다.
매너는 개나 줘 버린 놈.
심심하면 자신을 놀려 먹는 놈.
가끔 보면 어린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치한 놈.
‘얼굴이야 뭐… 잘생긴 편이긴 한데.’
차 타고 2시간 거리.
이 먼 곳까지 오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거기 훈련 되게 힘들다던데. 할 만해?”
“할 만하지. 방독면 쓰고 파워 슈트 입고 무게 주렁주렁 매단 뒤에 달리고 있다. 기절하는 장교들도 은근 있고.”
“…뭐야 그게. 훈련 맞아?”
훈련받는 장소가 88 헌터 특전 여단이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의 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대비하길래 저런 독한 훈련을 하는 건지.
‘나도 열심히 해야겠어.’
손은서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다졌다.
지난번 승격 시험 때는 부상 때문에 응시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 번에 통과하겠다고 다짐했다.
‘응? 뭐라고?’
이어지는 잡담 도중.
김민준의 머릿속으로 의외의 인물이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