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선발전-4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박범준 대위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김민준이 흉내 낸 로우킥에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당장 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빨리 들것 들고 와!”
남혁오 대위를 시작으로 박범준 대위까지.
몬스터가 두려워한다는 88 헌터 특임단 소속 장교 5명 전원이 패배했다.
일반 헌터 군부대인 무적 헌터 부대 소속의 장교 한 명에게, 압도적으로.
“죄송합니다. 나름 살살 때린다고 힘 조절을 했는데….”
들려 나가는 박범준 대위에게 짐짓 미안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본인은 아파 죽겠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지만.
“다들 선발전을 치르느라 고생 많았다. 최종 선발 인원을 발표하겠다.”
오후 6시.
2일 동안 치러진 선발전이 끝났다.
박격포 대령은 총 200명의 선발 인원을 발표했다.
의외였던 점은, 88 헌터 특전 여단 장교들 전원이 탈락한 것.
그들이 김민준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전원이 선발되었을 것이다.
실제 다른 특수 부대원들은 모두 합격했으니까.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덤비냐 이 말이야. 쟤들 봐라. 바로 눈치 까고 조용히 있잖아.’
물론 특전 여단 장교들이 그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혹독한 훈련과 목숨을 건 전투를 치러 왔는데, 일반 헌터한테 별 힘도 못 써 보고 두들겨 맞았으니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번 주말 푹 쉴 수 있도록 하고. 월요일부터 바로 훈련 들어갈 테니 준비 단단히 해 오도록.”
“고생하셨습니다!”
“예!”’
장교들이 각자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김민준 중위. 잠시 시간 괜찮나?”
김민준이 건물 밖을 나가려 하자, 누군가가 멈춰 세웠다.
박격포 대령이었다.
“중위 김민준. 예. 괜찮습니다.”
“선발전 치를 동안 자네 실력을 유심히 봤다.”
뭔가 싶었더니, 자신과 대련을 한번 해 보고 싶단다.
특수 부대원들조차 당해 내지 못하는 그 실력이 궁금하다면서.
“예. 물론 괜찮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환영이었다.
영관급 장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도 궁금했고.
“크하하하! 쿨해서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호탕하게 웃던 박격포 대령이 대뜸 상의를 훌렁 벗었다.
우락부락한 근육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디 빌더들조차 압도하는 두꺼운 근육들.
‘옷은 갑자기 왜 벗는 거야?’
김민준은 굳이 무기를 고르지 않았다.
박격포 대령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전투 센스는 얼마나 뛰어난지 가늠해 보고 싶었기에.
“무기는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겠나?”
“예. 괜찮습니다.”
“그래. 피곤할 텐데 오래 잡아 둘 수는 없지.”
박격포 대령이 거리를 좁혀 왔다.
무턱대고 공격해 오지 않는다.
거리를 재며 이리저리 간을 본다.
그러길 몇 차례.
양 손바닥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면 시간만 갈 것 같은데. 나랑 힘 대결이나 해 보는 게 어떻겠나?”
“알겠습니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구대로 따라 주기로 했다.
“으아아!”
박격포 대령이 기합을 넣으며 손바닥을 부딪쳐 왔다.
몸이 순식간에 뒤로 쭉쭉 밀린다.
과연.
저 근육들은 단순히 부푼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힘으로만 따지면 오크는 가볍게 이기겠는데.’
단순한 힘만으로도 이 정도다.
무궁화는 아무나 다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몸에 힘을 넣었다.
“어이고. 김민준 중위가 힘이 세긴 세구만. 장교들이 그렇게 나가떨어진 이유가 있었잖아.”
재밌다는 듯이 웃는 박격포 대령.
그의 그런 표정도 얼마 가지 못 했다.
“어후… 무슨 힘이!”
처음에야 봐준 감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대령이고, 눈앞의 장교는 중위 아닌가.
한데.
지금은 온 힘을 다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뒤로 밀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아….”
박격포 대령은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온 힘을 쥐어짜 냈다.
힘 싸움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다.
몬스터도 힘으로 찍어 눌렀는데, 여기서 지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힘에서 밀렸다고….”
그래 봐야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박격포 대령은 결국 대련장 끝까지 밀려 나갔다.
“먼저 가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 그래. 수고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충성!”
김민준은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털며 밖으로 나갔다.
‘내 힘 스텟이 60이 넘는데, 내가 힘으로 밀렸다고?’
박격포 대령은 충격을 받았는지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소대장님! 특수 부대 장교들 두들겨 팼다는데 정말입니까?”
부대로 복귀하고 신고를 마치자마자, 소대원들이 달라붙어 왔다.
그새 소문이 퍼진 듯했다.
“뭐냐. 너네 뭐 들었냐?”
“특수 부대 장교들이 소대장님에게 시비를 걸어서, 참교육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얌마. 그런 이유로 팼으면 내가 영창 갔겠지.”
상세한 내용은 뒤에 있을 작전 때문에 말할 수 없다.
간단한 대련을 하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둘러댔다.
“그것보다 나 대대장님한테 보고하러 가야 된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소대원들이 왜 이렇게 달라붙는지.
곧바로 대대장실로 향했다.
“충성!”
“어. 김 중위!”
대대장이 반갑게 맞아 주며 음료를 한 잔 건네주었다.
“듣자 하니 헌터 본부에서 88 특전 여단 애들 쥐어팼다면서? 한 놈은 다리가 부러졌다던데.”
“예. 그렇습니다. 과했다면 죄송합니다.”
“과하긴 무슨. 오히려 잘했지. 내가 걔네들 성격 더러운 거 잘 알거든.”
대대장은 전화를 가리키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항의 전화가 왔다고 실실 웃었다.
“지들 실력이 부족한 걸 가지고 괜히 나한테 화풀이를 하더라고. 그렇다고 다리를 부러뜨리면 어떻게 하냐면서. 근데 내가 알 바냐?”
“그건 그렇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때린 건 아닌데, 뼈가 부러진 건 본인 책임이지 않습니까.”
“크하하하! 김 중위의 시원스러운 성격이 마음에 든다니까!”
유쾌한 듯이 웃는 대대장.
그는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켜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김 중위. 자네가 복귀하는 도중에 자세히 들었다. 아포피슨지 뭔지에 대해서.”
“그렇습니까?”
“그래.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도 들었지.”
울릉도 밑에 붙어 있는 거대한 덩어리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처음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었다.
‘그 안에 어떤 몬스터가, 몇 마리나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작 200명을 선발한다니.’
물론 단 200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전투 병력이 200명이라는 말이다.
뒤에서 지원하는 병력들이나 해군들까지 포함하면 몇 배는 될 터.
“김 중위. 자네가 우수한 것도 알고, 많은 실적을 낸 것도 안다. 그런데… 이번 건 느낌이 너무 안 좋아.”
불확실한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는 것이라곤 그 거대한 주머니에 몬스터로 추정되는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는 것뿐.
만약, 그 주머니 안에 상급 몬스터가 수천 마리 들어있다고 하면….
정예라 한들 10분도 못 버틸 것이다.
‘뭐? 도저히 감당 안 될 상황이면 바로 철수하고 미사일을 퍼붓는다고? 이런 대안을 내놓은 놈은 도대체 누구야?’
철수하기도 전에 다 몰살당할 것이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는 재앙 그 자체다.
상급 몬스터 한 마리를 공략하는 데만 1대대급 병력이 투입되는 정도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작전이었다.
‘미치겠군. 그렇다고 해서 아포피스를 가만히 놔둘 수도 없고.’
이러나저러나 병력의 투입은 피할 수 없는 상황.
대대장은 이런 위험한 작전에 김민준을 투입하기 꺼려 했다.
김민준이 어떤 헌터인가.
100년에 한 번.
아니, 장담하건대 1,000년에 한 번 나올만한 인재다.
이런 인재를 잃는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단장님조차 이 작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셨으니….’
본인이 거절하면 작전에서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김민준의 눈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대대장님. 헌터가 도망치면 민간인들은, 힘없는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울릉도를 지키기 위해.
나아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가는 것이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김 중위. 자네를 보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흔들리지 않는 올곧은 눈동자.
대대장은 감동을 받았는지, 탄식을 뱉었다.
그는 더 이상 김민준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작전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사단장님께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상급 몬스터도 무난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다니까. 고생 많았을 텐데 들어가서 푹 쉬도록.”
“예!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충성!”
김민준은 대대장실을 나서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완벽한 대답이었다.
‘이미지 메이킹까지 신경 쓰는 이 철저함. 나 자신의 치밀함이 무섭다.’
물론 앞서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다.
뒤에 따라오는 보상을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뿐.
‘이번 작전으로 다이아 하나는 더 달아 줘야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하지 않는다.
남은 기간 동안 단련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훈련은 두말할 것도 없고.
“흠. 이 이상 강해지려면 마기가 더 필요한데. 마기야 뭐 구하기 힘드니까 일단 이대로 두고.”
곧바로 단련실로 향해 상태창을 열었다.
[김민준]
‘세리아 누나는 내 최애캐’ 교의 창시자.
힘: 86 민첩: 73 체력: 79 마기: 55 영구 기관: 30
보유 스킬: 부패(B), 나이트 워커(B), 암흑 화살(B), 마기의 특이점, 마기의 손아귀(C), 마기 채찍(C) 기본 둔기술(E), 기본 검술(B), 스트렝스(B), 민첩 강화(E), 고통의 채찍질(C), 부패의 비(C), 지옥귀 폭발(D), 악독한 돌진(C), 욕망의 마기(D), 체력 강화(E), 절망의 세계(D), 다크사이더(D), 역병의 저주(D), 과부하, 데스 스웜프(D), 과부하 전이, 그림자 도약
힘을 되찾는 속도는 순조롭다.
오히려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어우. 스킬 빵빵하게 들어찬 거 봐. 상태 창 뚫고 튀어나올 기세네.”
마기를 되찾는 속도 또한 마찬가지.
거기다 새롭게 얻은 스킬 덕분에 엄청난 기동력까지 얻었다.
“마음 같아선 흑마법사 스킬 펑펑 써 버리고 싶은데… 아껴야겠지.”
지구가 마기만 풍부했어도 이런 고생 안 해도 됐었을 텐데.
살짝 불만감을 가지던 중 피식 웃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니까. 그 대신 좋은 스킬들도 많이 얻었는데.”
얼마 전, 그림자 도약이라는 사기 스킬을 얻었음에도…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놈의 영구 기관 스텟은 대체 언제 오르는 거냐?”
그것은 바로 영구 기관이었다.
최근에는 수면 시간까지 최소한으로 두고 스텟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텟이 좀처럼 오를 기미가 안 보였다.
“아니지. 내가 하는 방법이 맞다. 이거 말고는 없어.”
영구 기관의 스텟을 올리는 방법은 직관적이다.
영구 기관을 끊임없이 운용하고, 자극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
확신할 수 있다.
단지 벽에 막힌 것뿐이다.
“막혔으면 우직하게 뚫어 내야지.”
눈을 감고 영구 기관에 모든 집중력을 쏟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58일.
스텟을 발전시키는 데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다.
“이 기세를 몰아 오늘은 밤새 집중해 볼까.”
6시간이 지나고.
10시간이 지나도록, 김민준은 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무식하고 우직한 게 답이라니까.”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은 오전 6시가 지나서야 사그라들었다.
현재 그의 눈앞에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