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선발전-2
김민준 중위.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건방진 병사 출신의 장교.
남혁오는 그를 흠씬 두들겨 팬 뒤, 목에 초크를 걸어 천천히 기절시키려고 했다.
‘무, 무슨 일이….’
김민준 중위.
복무 1년 차에 이병에서 중위까지 올라간 이례적인 군인.
그 피지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각종 소문과 언론 매체들을 접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자신이 벽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커억!”
오크가 주먹으로 등을 내려찍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몸 안의 내장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장담하건대, 자신이 특수 부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오. 뭐야. 터프하잖아?”
재빨리 몸을 가눈 뒤 자세를 잡는 남혁오.
김민준이 의외라는 듯 웃었다.
“방금… 방금 어떻게 한 겁니까!”
“뭘 어떻게 해요. 그냥 빨리 달린 것밖에 없는데요.”
사실 그림자 도약을 사용한 결과였다.
다른 헌터들도 그렇고, 눈앞의 헌터도 그렇고.
알아챌 리는 없겠지만.
‘익숙해지니까 더더욱 알겠네. 이거 개사기다.’
스킬에 대한 감을 잡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
이쯤 되니 자신이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지.
몇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 대강 윤곽이 잡혔다.
한 달 사이에 말이다.
‘당연히 대처가 안 되겠지. 이걸 어떻게 대처하냐?’
스킬을 사용하고 남혁오의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초도 안 된다.
기껏해야 0.5초 남짓.
심지어 스킬 숙련도가 완벽하지 않은데도 이 정도 성능이다.
‘그만큼 마기를 잡아먹긴 하네.’
그림자 도약은 강력한 스킬인 만큼 많은 마기를 요구했다.
흑마법사들 중 가장 진하고 많은 마기를 가지고 있는 자신조차, 5번 연속해서 사용하면 동날 정도.
‘그거야 시간 들여서 늘려 가면 되는 거고.’
이세계에 있을 때와는 다르다.
힘을 되찾아 가는 속도.
새롭게 생긴 스텟.
새롭게 생긴 스킬까지.
그림자 도약을 손에 넣은 지금,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이세계에서 정점을 찍었을 때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다고.
“크악!”
남혁오 대위가 주먹을 휘둘러 왔다.
특수 부대 장교 출신이라고 했나.
확실히 날카롭고 빠르다.
휘익!
‘자세 전환도 빠르고. 격투기를 몇 개나 배운 거야 이놈은?’
주먹으로 턱을 노리다가도, 발차기로 머리나 옆구리를 노려 왔다.
그 공격들이 안 먹히는 걸 알자마자, 이번엔 자세를 낮추고 태클을 걸어오기까지.
‘이야. 이 정도면 격투기로 몬스터 두들겨 잡겠는데?’
그 공격을 피하고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격투기 같은 건 배워 본 적도 없다.
가끔씩 TV를 보며 복싱 선수 흉내 낸 적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남혁오 대위의 맹공을 받아 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압도적인 스텟의 격차.
오우거도 한 손으로 농락하는 힘 스텟 86.
총알을 눈으로 보고 피할 정도의 민첩 스텟 73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
“뭐… 뭐냐 도대체!”
공격을 퍼붓던 남혁오 대위가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기를 쓰고, 악을 쓰고 놈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한 번.
단 한 번의 공격조차 먹히질 않았다.
“너 뭐 하는 새끼야?”
견제하려고 내지른 오른손의 잽조차 가볍게 흘리거나 피해 버린다.
그제야 그는 김민준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갑자기 욕에 반말을 하시네. 정신 교육 다시 받으셔야 되겠는데요.”
퍼억! 퍽!
김민준은 놈의 품으로 파고들어 복부를 두 번 강타했다.
당연히 진심으로 때렸으면 주먹이 배를 뚫고 나왔을 것이다.
적당히 강도를 조절해 두들겨 주었다.
“커억!”
총 세 대의 보디 블로우에 남혁오 대위가 위액을 토하며 뒤로 넘어갔다.
기절한 것이다.
“거기까지! 대련은 김민준 중위의 승리다.”
몸이 축 늘어진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남혁오 대위.
그동안 대련을 지켜본 장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쳤네….”
“뭐가 저렇게 빠르지? 봤습니까? 김민준 중위가 처음에 확 사라진 거.”
“아예 안 보였습니다. 갑자기 확 사라졌다가 어느 순간 남혁오 대위가 날아가고 있더군요.”
“도대체 민첩 스텟이 얼마나 되길래 눈에도 안 잡히는 건지.”
헌터군 특수 부대, 88 특전 여단의 대위면 상당한 실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헌터군 전군을 통틀어 상위 8% 안에 든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괜히 남혁오 대위가 깝죽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음… 김민준 중위.”
“중위 김민준.”
“민첩 스텟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겠나?”
박격포 대령은 호기심이 일어, 평소라면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말을 꺼냈다.
병사든 간부든.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스텟을 묻는 건 무례한 행동이었기에.
“정확한 수치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100은 넘습니다.”
민첩 스텟 100.
그 말에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
스텟 50만 넘겨도 영관급은 기본으로 갈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다짜고짜 민첩 스텟 100?
믿기 어려운 수치다.
방금 김민준이 보여 준 장면이 없었으면 당당하게 욕을 박았을 정도였다.
‘이러면 그림자 도약을 대놓고 사용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지.’
김민준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주위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지만, 믿지 못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알려진 기록상’으로 전 세계를 통틀어 민첩 스텟 100을 넘긴 헌터는 없다.
100은 무슨.
60을 넘긴 헌터조차 한 자릿수에서 그칠 정도였으니.
물론 지구는 넓고 사람은 많다.
자신처럼 은둔 고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그것보다, 이런 스킬은 적당히 둘러대면 알아차릴 수가 없거든.’
그림자 도약이라는 스킬을 획득했을 때부터 생각해 둔 변명이었다.
사용하면 대놓고 티가 나는 흑마법사 스킬과는 다르다.
그림자 도약은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하다.
물론 스킬을 사용할 때 그림자가 자신의 몸을 둘러싸긴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순식간일 뿐이었다.
“다들 조용! 선발전을 계속 진행할 테니, 준비할 수 있도록!”
“예!”
박격포 대령이 어수선해지는 분위기를 정리했다.
그럼에도 장교들의 시선은 김민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김민준 중위님. 민첩 스텟 100 달성하신 거, 정말입니까?”
“그 정도면 총알을 눈으로 보고도 피할 수 있다는데, 가능합니까?”
“어떤 훈련을 거치면 민첩 스텟을 효율적으로 올릴 수 있나요?”
특히 헌터군 장교들.
그들은 특수 부대 장교를 대신 박살 내 준 김민준에게 경외심을 가졌다.
특수 부대 출신의 헌터들은 대체적으로 성격이 더럽고 남을 깔본다.
조금 전에도, 남혁오 대위가 김민준 중위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왔었으니까.
“이건 제가 잘난 게 커서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교분들 무시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크… 알고 말고요.”
“88 여단 놈들 두들겨 패 주신 것만으로도 사이다 한 사발 들이킨 것 같습니다.”
“그놈들이 자기들 훈련할 때만 되면 얼마나 갑질을 하는지… 제가 소속된 여단에서도 저놈들 때문에 진땀을 뺐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장교들이 저마다 고맙고 말해 왔다.
88 헌터 특전 여단 놈들을 패 줘서 고맙다며.
얼마나 시달렸으면 저런 말을 할까 싶었다.
‘어쭈. 이놈들 봐라. 눈빛으로 사람 죽이겠다?’
이런 반응과는 달리 88 특전 여단 장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를 가는 장교까지 있을 정도.
‘지들이 먼저 건드려 놓고 왜 지들이 화를 내냐? 사람 팬 뒤에 자기 주먹 다쳤다고 병원에서 진단서 끊을 놈들이네.’
이 장소에 박격포 대령이 없었다면, 다짜고짜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방금 그 모습을 보고도 저럴 정도면.’
김민준은 특전 여단 장교들에게 윙크를 한 번 날려 준 뒤, 시선을 돌렸다.
“저 미친….”
뒤에서 이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 역시 일차적으로 선발한 장교들이라 그런가. 장난 아니네.”
어느새 진행되고 있는 선발전.
장교들이 서로 매서운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다들 실전 경험이 풍부한지 치고 빠질 때를 귀신같이 안다.
‘무적 헌터 부대도 꿀리는 편은 아닌데, 여기 장교들 스펙이 높긴 해.’
이런 우수한 장교들을 모아 놓고 다시 정예들을 선발한다라.
그 이유야 뻔하다.
‘헌터 본부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는 거다.’
최소 중상급 몬스터.
최악의 경우에는 상급 이상의 몬스터에, 보스 몬스터까지 들이닥칠 걸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포피스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리라.
‘저게 맞지. 정보가 부족할 때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물량 공세가 통하는 것도 중급 정도의 몬스터까지다.
그 이상부터는 아무리 많은 병력을 퍼부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밖에 안 된다.
당장 오우거만 하더라도 상급 바로 밑에 위치한 몬스터다.
그 오우거를 잡는 데만 해도 최소 1중대 이상의 병력에 마력포가 동원되어야 했으니.
‘운 나쁘면 엄청나게 죽어 나가겠는데.’
물론 자신이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이상 그렇게 놔둘 생각은 없었지만.
“오늘 1차 선발전 일정은 이것으로 마친다. 다음 날 바로 2차 선발전을 진행할 테니,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선발전은 하루 내내 진행되었다.
1사람당 3번의 대련.
오늘 하루 만에 80명 가까이 되는 장교들이 탈락했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기술이 좋아서 그런가.’
김민준은 첫 대련 말고는 그림자 도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이야 시비 걸어오는 헌터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뒤로 빠져서 내 반응을 떠보고.’
당연히 3번의 대련 모두 승리를 가져갔다.
이기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급이 다르다.
격투기로 치면 플라이급 아마추어 선수가 헤비급 프로선수와 맞붙는 격이었다.
의외였던 점은 장교들의 기술이었다.
물론 압도적인 힘 앞에서 기술은 의미가 없다.
‘하긴. 오우거랑 헌터랑 맨몸으로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
자신이 진심으로 임했다면 1분은 무슨.
10초 안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에 여유를 뒀던 것은, 장교들의 실전에서 묻어 나오는 대처 능력.
그 능력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역시 헌터 본부. 시설 하나는 죽여 주네.”
선발전이 끝나고, 임시 숙소 안.
김민준은 화려한 내부를 감상하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내일까지 선발전 치르고, 바로 중대 편성 들어간다고 했지. 그래도 주말에 자유 시간은 주네.”
역시.
장교들이 이 작전에 참가하려는 이유가 다 있었다.
투입되는 돈의 규모부터가 다르다.
최종 선발된 장교에게는 각종 영약을 미친 듯이 퍼부어 준다.
훈련하는 데 드는 비용과 장비.
작전에 투입되는 장비, 탄약 등등.
듣기로는 국방부 한 해 예산의 3분의 1 가까이가 투입된다고 한다.
이번 작전 하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만큼 실적도 어마어마하게 쌓을 수 있겠지.’
아.
이러다 대위 금방 달아 버리겠는데.
소대장 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대위라니.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을 찰나,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김민준 중위님! 잠시 시간 되십니까!”
화난 듯한 목소리와 거친 노크.
김민준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나의 해피 타임을 방해하다니.’
누군가 싶어 문을 열어 주니 의외의 인물들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