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선발전-1
그 덩어리 안에는 몬스터로 추정되는 것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검은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확대해 보면… 그 무수한 점들이 몬스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꿀꺽.
장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우수한 헌터군 소속 장교라 한들, 사람이다.
충격이 클 수밖에.
“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지만, 다들 팔이나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다.
20년.
무려 20년의 세월 동안, 저 거대한 폭탄을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헌터군이 말이다.
회의실에서 침묵이 감돌았다.
“이어서 설명하겠다.”
박정호 중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장교들의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이 방법밖에 없다고?’
‘돌아 버리겠군.’
‘그냥 죽자고 달려드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그럴 것이.
저것을 해결할 방법이 너무 극단적이었고, 구식적이었다.
아포피스 안에 가득 들어찬, 몬스터로 추정되는 생물들.
저것들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소탕하는 방법.
그 방법이 유일했다.
‘이야. 울릉도에 저런 게 붙어 있었단 말이지?’
대부분의 장교들이 끙끙대고 있을 때.
김민준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긴. 저런 게 울릉도 밑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나이트 워커.
정보를 수집하고 탐색하는 소환수가 발견 못 할 만도 했다.
현재 소환수의 성능은 기껏해야 지면을 훑는 수준.
애초에 나이트 워커는 사람을 대상으로 정보를 뽑아 먹는 소환수다.
이런 쪽으로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건 확실히 어렵겠는데.’
최전방 강원도 철원에서 복무하게 되면서 비상 상황은 자주 겪었다.
시내에서 게이트가 터지고, 던전 안에서 게이트가 터지고.
시내 게이트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고, 툭하면 던전에서 이레귤러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이런 상황들은 정리하는 건 자신의 입장에서 아주 쉬웠다.
힘.
압도적인 힘만 있으면 대부분 가볍게 처리할 수 있었다.
혼자서도 충분했다.
시민을 보호하는 것?
그것 또한 쉬웠다.
앞서 말한 저런 단순한 상황들이라면 말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건드릴 수 없다라….’
그러나.
방금 들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아포피스를 공략하는 건 협동이 필수였다.
결코 쉽지 않다.
아포피스를 외부에서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게 된다.
그 폭발의 영향은 대륙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
말하자면, 울릉도 밑에는 거대한 핵폭탄이 달려 있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혹여 폭발하게 되면 아포피스 내부에 있는 물질이 수면 밖으로 새어 나오게 된다.
그 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해당 물질이 공기 중으로 잘 전파된다는 것.
‘하나씩 정리해 보면….’
아포피스를 헌터군 측에서 먼저 건드리는 건 불가능하다.
내부에 있는 내용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든 내용물을 뱉게 되면, 아포피스는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병사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건 어렵겠지.’
저 주머니 안에 어떤 등급의 몬스터가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저 주머니 안에 최소 중상급이나 상급 몬스터들이 들어 있다면?
병사들은 이렇다 할 대처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갈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쥐여 줘도 말이다.
헌터와 몬스터에게는 그 정도의 격차가 존재했다.
‘나 혼자서 저놈들 쓸어 버릴 수 있기는 하지. 있기는 한데….’
그러려면 흑마법사의 스킬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저 정도 규모를 보면, 스킬 한두 개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
주력 스킬을 공들여 설치하고 퍼부어야 대처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내가 흑마법사라는 걸 밝히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 타이밍은 아니지.’
헌터군의 정예가 몬스터를 끌여들여 처리한다.
해군은 2차 피해의 확산을 방지하며 주변 해양을 소독한다.
우선 그려지는 밑그림은 이러했다.
‘이번 작전. 얼마나 버거울까.’
지금까지 군생활을 즐겨 왔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그 사실 만으로도, 열정이 끓어올랐다.
“자네들의 작전 참가를 강요하지는 않겠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50일이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박정호 중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작전은 그만큼 위험하다.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몬스터의 등급과 정체조차 모른다. 이번에는 최소의 정보를 가지고 최악의 적을 가정해 맞서야 한다.”
그렇기에 최정예 대원으로만 이루어진 중대를 꾸려 맞서겠다고 말했다.
“이 작전에 참가 못 하겠다 하는 장교는 지금 일어나서 나가면 된다. 아무도 이 일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약속한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장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처음에야 다들 당황했고, 경악했다.
20년의 세월 동안 한국.
더 나아가 세계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는 건 그만큼 충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자신들은 군인이다.
헌터군 중에서도 최전선에 맞서는 군인 말이다.
자신들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는가.
장교들은 표정을 다잡고 정면을 응시했다.
박정호 중장은 그런 장교들을 훑은 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자세한 일정은 내일부터 바로 알려 줄 테니, 우선 임시로 배정받은 숙소로 가도록.”
**
“응? 뭐라고?”
“소대장님이 차출되셨다고? 헌터 본부에?”
김민준이 차출되었다는 소식은 무적 헌터 부대에 금방 전달되었다.
2소대원들은 이게 갑자기 뭐냐며 투덜거렸다.
“언제 돌아오신다냐?”
“몰라. 들리는 말로는 최소 두 달이라던데.”
“두 달이나?”
“아니. 뭘 한다고 두 달이나 잡아 두는 건데?”
“중대장님도 아예 모르시는 눈치던데. 주말마다 돌아오신다고 듣기는 했다.”
김민준은 병사 출신이다.
병사 생활을 거쳐 장교 위치에 올라간 만큼, 병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그만큼 병사들을 배려해 준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당직 근무를 할 때 스마트폰 사용 연장 신청을 하면, 무조건 프리 패스다.
순찰을 돌지도 않는다.
일과에 영향을 주지만 않는다면 병사들을 잘 풀어 주는 편이었다.
그 외에도 잡다한 편의를 많이 봐준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병사들을 부르지 않는다.
자잘한 건 본인이 다 처리하는 편이었다.
이러니 병사들 입장에서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는 소대장이었다.
반면에 다른 소대장들은 어떤가.
불을 켜고 순찰을 돈다.
야간 연장 신청 시, 스마트폰이 교육 목적으로 제대로 사용되는가 확인하기 위해서.
FM이 심한 소대장이 당직이라도 서는 날. 병사들이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정도였다.
‘…뭐야.’
그 소식은 막 퇴원하고 자대에 복귀한 손은서에게도 전해졌다.
‘두 달? 거기다 헌터 본부에서 차출?’
아쉬운 표정을 짓던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뺨을 때렸다.
‘미쳤나 봐. 걔가 없는 게 나랑 뭔 상관이라고.’
평소처럼 자신을 놀려 대는 그 기고만장한 표정을 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좋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놈 돌아오기 전까지 나도 열심히 해야지.’
손은서는 복귀 신고를 하자마자 단련실로 향했다.
**
다음 날 오전.
장교들은 실내 훈련실에 집합해 있었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치러질 선발전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은 200명이다. 최정예를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취하게 됐다는 점을 양해했으면 한다.”
이번에 임시로 편성될 중대의 이름은 맹호 중대.
해당 중대의 중대장을 맡은 박격포 대령의 설명이 이어졌다.
추가로 온 장교들까지 합하면 대략 400여 명의 인원.
이 중에서 우수한 인재만을 추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선발전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내 눈에 미흡하다고 보이면 제외될 수 있다. 이점 참고할 수 있도록.”
박격포 대령은 곰 같은 덩치와 근육을 자랑하며 대진표를 나눠 주었다.
‘오.’
김민준은 대진표를 보고 눈을 빛냈다.
계급이랑 상관없이 무작위로 매칭되어 있었다.
소위와 대위. 소위와 소령.
심하면 소위와 중령이 매칭된 대진표도 보였다.
‘이게 맞지.’
전투 인원은 무조건 실력 위주로 선발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계급은 당연히 배제해야 했다.
“이야. 김민준 중위님이라고 하셨나요?”
옆쪽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전투복과 계급장을 보면 특수 부대에 소속된 장교였다.
“저랑 매칭되셨는데… 이거 참. 운이 없으시네요.”
이름은 남혁오 대위.
위험한 던전만 골라서 클리어한다는 악명높은 88헌터 특전여단 출신이었다.
“특수 임무단에서 하사를 쥐어 패셨다면서요? 그것도 병사 시절에.”
“쥐어 팼다니요. 그냥 가볍게 대련한 건데요.”
“아. 그렇죠. 대련이었죠. 저희 부대에 들리는 말로는… 김민준 중위님이 너무 건방지다고 하더라고요.”
남혁오 대위는 이죽거리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특진을 여러 번 하시고 훈장까지 받으셨는데… 그게 본인 실력이라고 착각하다간 뒤지는 수가 있습니다. 보니까 운이 상당히 좋으셨던 것 같던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거침없는 악담을 퍼붓는다.
뻔하다.
‘특수 부대 입장에서도 내가 눈엣가시라는 거냐?’
눈에 너무 띈다.
그 말을 군대식으로 해석하면,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는 말과 비슷했다.
‘군생활 잘하고 있구만. 특수 부대 장교가 질투하는 걸 보면.’
앞으로 더욱 나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민준은 이죽거리는 남혁오 대위를 향해 마주 웃어 주었다.
“저한테 얻어맞고 질질 짜지나 마세요. 특수 부대가 뭐가 대단하다고.”
“…주제 모르고 나대다간 진짜 큰일 납니다.”
“그래요? 그럼 저랑 내기하실래요? 서로 가진 전 재산 걸고 한판 어때요?”
남혁오 대위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는 대꾸하지 않고, 몸을 풀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뭐. 니들이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내가 죽기라도 하냐?’
다른 특전여단 장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물론 그걸 신경 쓸 김민준이 아니었다.
“2차 선발전 때는 상대 지목할 수 있는 거 알죠? 다 덤벼 주세요. 박살 낼 자신 있거든요.”
오히려 그들을 향해 웃으며 도발했다.
‘어우. 저 사람은 무슨 깡으로 저런다냐?’
‘아무리 그래도 88 특전 여단인데….’
‘걔들 맨손으로 하급 몬스터 목 뽑는 애들이잖아. 잘못 건드렸다가 어쩌려고….’
다른 장교들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88 헌터 특전 여단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장교들까지 잔혹하기로 소문이 난 곳이었기에.
“남혁오 대위. 김민준 중위. 앞으로.”
잠시 후.
선발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신호를 기다리며 가만히 몸을 풀었다.
1차 선발전은 서로 맨몸으로 임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
“굴욕이 뭔지 보여 드릴게요. 제가 천천히 괴롭히면서 기절시키는 거 잘하거든요.”
남혁오 대위는 자신이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자세를 잡았다.
“전 한 방에 보내 드릴게요. 쪽팔리지 않으시라고.”
김민준은 보란 듯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남혁오 대위의 성질을 긁었다.
‘미친놈인가. 넌 죽었다.’
남혁오 대위가 이를 갈았다.
곱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마자 김민준의 모습이 사라졌다.
뻐억!
거대한 둔탁음과 함께 남혁오 대위가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