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그림자 도약
타락한 대마법사의 유산.
녹색 빛의 반지가 몸에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나타난 스킬은 바로 그림자 도약이었다.
“미친… 이걸 나한테 준다고?”
아무리 김민준이라 하더라도 이번 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것이, 그림자 도약은 마족의 그림자 백작이 사용하던 고유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일정 거리를 이동한다. 스킬 자체는 블링크와 다를 바 없다.’
스킬의 성능은 거의 같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하는 난이도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블링크는 미리 이동할 좌표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전투 중에 블링크를 팍팍 써 대던 마법사는 실제로 없었지.’
사소한 오차가 목숨을 오가게 만든다.
바위에 몸이 끼어 죽는다거나, 지면 밑에 파묻혀서 죽는다거나.
블링크는 그런 스킬이었다.
그 위험성 때문에 블링크를 배우지 않는 마법사들도 꽤 많았다.
‘그에 비하면 그림자 도약은 그냥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느낌이거든.’
그림자 도약은 좌표 계산이 아예 필요 없다.
몸을 감싼 그림자가 알아서 원하는 지점에 데려다준다.
그냥 이동할 지점에 스킬을 사용하면 된다.
제약도 없고, 위험성도 없는 스킬.
연속으로 사용하는 게 어려운 블링크와는 달리, 그림자 도약은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다.
시전자의 능력만 된다면 말이다.
‘그래서 성녀 그 자식이 어떻게든 그림자 백작 좀 죽여 달라고 나한테 매달렸지.’
그림자 도약.
그 스킬이 제국에 있어서 너무나 큰 변수라며 툭하면 무릎을 꿇어 왔다.
뭐든지 할 테니, 그림자 백작을 처리해 달라고 말이다.
‘한국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해서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것보다 가만히 있는 마족은 왜 건드려?’
실제로 그림자 백작이 자신에게 위협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건드릴 이유도 없었다.
“과거 회상은 이쯤 하고. 바로 써 볼까.”
기대감을 가지고 스킬을 사용했다.
반지가 몸에 흡수되어 사라진 순간부터.
이 스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몸 안의 마기가 빠져나가며, 온몸이 검은 그림자로 덮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1초도 채 안 된다.
파앗!
눈 깜빡할 사이.
김민준은 어느새 단련실의 벽 끝부분에 서 있었다.
“크… 역시 그림자 도약. 성능 확실하구만.”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숙련도가 부족함에도 이 정도의 성능일 줄이야.
연습만 한다면 완벽하게 스킬을 다룰 수 있을 터.
“바, 방금 그건… 그림자 도약!”
가만히 지켜보던 김서현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블링크 스킬이 담긴 반지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한데, 블링크를 넘어 그림자 백작의 고유 스킬을 익혀 버릴 줄이야.
‘무서우신 분이야….’
김민준님이 잃어버린 힘을 되찾아 가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힘을 되찾는 속도가 빠르고, 예전보다 강해지고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
‘그렇다고 해서 그림자 도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될 줄은….’
일정 거리를 순간 이동한다.
단순한 스킬이다.
하지만, 그만큼 위협적인 스킬이었다.
‘그 김민준 님조차 마법사들한테 휘둘렸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그림자 도약까지 익혀 버린 김민준 님에게, 과연 적수가 있을까?
‘모든 힘을 되찾은 김민준 님에게 그림자 도약까지 있다면….’
이스가르드를 통 틀어 봐야 한둘 정도가 끝 아닐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파앗!
그녀가 다시 한번 눈을 깜빡였을 때.
김민준이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대단하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김민준 님!”
평소에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 김서현이 요란을 떨 정도.
그림자 도약은 그 정도의 스킬이었다.
“나도 이 정도로 개쩌는 스킬을 얻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보통 이런 스킬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100층짜리 거대한 탑을 올라야 한다든가.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 한다든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나불대던 다트. 그놈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
절망의 세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수지가 잘 맞아떨어졌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좋아. 당분간은 이거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해야겠네.”
“저도 곁에서 단련해도 될까요?”
“나한테 물어볼 필요가 있냐?”
그날.
김민준과 김서현은 날이 밝을 때까지 단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
“어우. 벌써 10일이 지났어?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소대장실 안.
김민준은 천정을 올려보며 하품을 했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던전 공략이나 훈련이 없다 보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림자 도약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 집중할 수 있어 좋긴 했다만.
“이유나는 왜 그렇게 술을 먹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지난 주말.
이유나와의 약속으로 둘이서 술자리를 가졌었다.
술은 맛없어서 싫어한다고 했더니, 그럼 맛있는 술을 마시자며 칵테일 바로 데려갔다.
“칵테일이라. 맛은 좋았지.”
그녀는 거침없이 술을 들이켜도 멀쩡한 자신을 보며, 뭔가 안달 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술에 절은 것은 이유나 쪽이었다.
‘야. 너 술 세다며. 피시방은 안 갈 거야?’
‘가, 가야지…. 우욱! 나 안 취했어! 괜찮아.’
‘엄청 비틀거리는구만 무슨. 택시 불러 줄 테니까 가서 쉬어라. 여기서 전 부치지 말고.’
‘뭔데 너어… 내가 일부러 40도가 넘는 화주를 먹였는데에….’
‘아까 그 불붙던 술? 맛좋더라.’
‘미쳤어… 간이 뭘로 만들어진 거야….’
‘강철.’
어쨌든 싸게 먹혔다.
고작 4시간 어울려 준 게 끝이었으니.
똑똑.
“소대장님.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어. 그래. 들어와.”
오늘의 일정을 체크하던 중.
김광식이 들뜬 표정으로 들어왔다.
“충성!”
“그래. 무슨 일 있냐?”
녀석은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여왔다.
“소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
“제 동생에게 전해 주라며 주셨던 것 말입니다….”
“아. 그거?”
“예. 덕분에 동생의 체력이 많이 돌아왔습니다. 치료를 계속해도 될 정도로 말입니다.”
본래는 동생에게 뭘 먹이려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담당 의사에게 허락받아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을 믿었기에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의사가 무조건 막았을 것이기에.
“다행이네. 너한테 준 그거. 당장은 구하기 힘든데, 나중에라도 생기면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당연히 안전한 거니까 걱정은 말고.”
“아, 아닙니다! 딱 봐도 귀한 것 같은데, 저번에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화들짝 놀라며 이 이상은 민폐라고 대답하는 김광식.
그런 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소대장이 소대원 챙기는 게 민폐는 무슨.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마라.”
“제가 나중에라도 꼭 갚겠습니다.”
“그래? 강남에 아파트 하나 사 주면 딱 맞겠네. 그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거거든.”
“…….”
“농담이야 임마. 곧 일과 시작하니까 준비나 해라.”
“예.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충성!”
김광식을 보내고, 뒤이어 소대장실을 나서려는 순간.
띠리리리.
소대장실 전화가 울렸다.
“충성. 2중대 2소대장 김민준 중위입니다.”
-김민준 중위! 지금 당장 헌터 본부로 갈 준비하게! 설명은 거기 가서 듣고!
누군가 싶었더니 대대장이었다.
대대장은 짧은 용건을 남기자마자 통화를 끊었다.
무슨 일인지, 꽤 다급해 보였다.
“헌터 본부에서 날 부를 정도면 뭔가 있다는 거네.”
냄새가 풍겨 왔다.
달콤한 실적 점수의 냄새가.
안 그래도 요즘 너무 평화로워 심심했는데, 훌륭한 타이밍이었다.
“그럼 바로 가 볼까.”
**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헌터 본부 회의실 안에는 상당수의 장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명은 거뜬히 넘을 정도.
소위부터 중위, 대위.
소령과 중령도 간간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헌터군 특수 부대까지.
‘대규모 공략이라도 준비하나 본데?’
주위를 둘러보던 김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적 헌터 부대에서 자신만 콕 집어 부를 때부터, 감이 오긴 했다.
이곳에 있는 다른 장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름 실력 있는 장교들을 일차적으로 선발한 듯했다.
“다들 편하게 앉아 있어라. 경례할 필요 없다.”
헌터 본부 소속, 박정호 중장이 들어오는 것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창문에 커튼이 쳐지기까지.
그는 손수 빔프로젝터를 켠 뒤, 파일을 하나 띄웠다.
[울릉도 위협 요소 제거 작전]
큼지막한 글자로 적혀 있는 제목.
장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울릉도 위협 요소?’
‘그런 게 있었나?’
‘울릉도에서 발생한 던전 말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아니겠죠. 그럼 병사들을 보내겠지, 장교들만 본부에 부를 이유가 없죠.’
‘저쪽에 특수 부대도 있네. 뭐지. 뭐 들은 거 없어요?’
‘아무것도 못 들었네요.’
어수선해지는 분위기 속.
박정호 중장은 말없이 종이를 돌렸다.
서약서였다.
주 내용은 비밀 유지에 관한 사항.
이를 어길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항목을 보면, 보통 일은 아닌 듯했다.
“강요는 하지 않겠다. 서약서에 사인하지 못하겠다 하는 장교들은 나가도 좋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서약서를 들이밀다니.
보통 같았으면 불만을 품었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장교들은 그러지 않았다.
다들 고민하는 기색 없이 곧바로 사인을 해 나갔다.
‘거대한 실적 점수 왔다!’
그건 김민준 역시 마찬가지.
던전 공략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이런 건 딱 보면 알 수 있다.
스크린에 띄워진 커다란 글씨, 울릉도 위협 요소 제거 작전.
비밀 유지 엄수의 서약서.
이 정도까지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공략해 왔던 던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일 터.
‘이번 기회에 다이아 하나 더 달아서 대위로 가 버려?’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잠시.
서약서를 받아 든 박정호 중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 공략은 그 어떤 공략보다도 위험하고, 신속함을 요구한다.”
대형 스크린에 울릉도의 3D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응?”
“저건….”
“뭐야 저거?”
“미친. 저런 게 있었나?”
영상을 들여다보던 장교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섬의 밑부분에 뭔가 거대한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울릉도에 기생하듯이 붙어 있는 타원형의 덩어리.
그 크기는 최소 30m 이상.
“울릉도에 붙어 있는 이 덩어리는 20년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국가는 저 거대한 덩어리에게 아포피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악의 신이라는 뜻을 담아서.
발견 당시에 뭔지 몰라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고.
아포피스의 정체를 알게 된 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제거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내린 결정이었다. 예의 주시만 하고 있었지.”
지금까지는 관측반이 실시간으로 감시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한 건 12시간 전이다.”
20년 가까이 변화가 없다시피 했던 아포피스가, 최근 들어 급격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만약 그걸 방치하게 될 경우.
울릉도를 시작으로 한국와 일본이 지도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들 마음 단단히 먹고 볼 수 있도록.”
잠시 후.
거대한 덩어리 안이 비춰졌고.
대부분의 장교들이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