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뒈질라고
[말썽쟁이 다트]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다트입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가상의 다트 판이 나타납니다.
선택한 점수를 완벽하게 차감하면 주어진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사용 후, 아이템의 효과는 사라집니다.
“오호. 이건 전에 나온 것들보다는 다른 느낌의 보상이잖아.”
영구 기관의 스텟을 뽑아 준 룰렛.
던전 안에서 게이트를 3개나 만들어낸 쉐도우 다이스.
둘 다 운에 의존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이번 보상도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앞의 둘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써 보면 알겠지 뭐.”
기대감에 히히 웃으며 숙소로 뛰어갔다.
띠링.
아이템을 사용하자 눈앞으로 가상의 다트 판이 나타났다.
흔히들 알고 있는 다트 판.
그 위로, 점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301] - 러시안 룰렛
[501] - 세계수의 잎
[701] - 고대용의 눈물
[901] - 제사장의 성물
[1101] - 타락한 대마법사의 유산
[초보자는 301이나 501을 추천합니다!]
“제로 원 게임이잖아 이거.”
다트 룰 중에서도 제로 원 게임.
주어진 점수를 0점으로 만들면 끝나는 게임이다.
주어진 기회와 점수를 완벽히 차감해야 이기는 룰이었다.
“다트도 가끔씩 하곤 했지. 생각보다 금방 질려서 별로 안 했지만.”
원하는 위치에 다트를 꽂아 넣는 건 너무 쉬웠다.
그냥 각도를 조절하고 힘을 조절해 던지면 끝.
이스가르드의 신도들이 3일 동안 만든 다트 판이 고작 30분 만에 창고행이 될 정도.
그 정도로 단순하고 시시한 게임이었다.
“제로 원 게임은 점수가 높을수록 난이도가 높지.”
해당 점수별로 적혀 있는 것들.
저것들은 분명 아이템일 터.
“딱 봐도 1101점짜리가 젤 좋아 보이네. 타락한 대마법사의 유산이라.”
원래 같으면 이 자리에서 바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회는 단 한 번뿐.
거기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설명까지 있다.
평범한 다트로 생각하고 사용했다가는 확실히 후회할 터.
“좋아. 이번 건 대비를 단단히 해야지.”
301점짜리는 모르겠고, 501점부터는 확실히 좋아 보인다.
당연히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템이었고.
이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릴 순 없었다.
“저걸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다트 게임의 룰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다트.
아무리 잘 던진다 해도 의미가 없다.
“꼼수는 허용이 안 될 텐데.”
이전에 시스템이 건네준 두 개의 보상, 확률형 아이템.
그 아이템들은 아주 정직하게 사용했다.
순수한 운으로 정직하게 승부를 본 셈이다.
쉐도우 다이스는 소환수를 시켜 던지게 했으니 스킬을 사용한 것은 맞다.
하나, 던지는 과정 자체는 정직하게 했다.
“아. 걔가 있었지.”
다트를 한참 들여다보던 김민준이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스마트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내길 잠시 후.
“김민준 님. 부탁하실 일이 뭔가요?”
김서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에다가 변덕쟁이 마안 한번 사용해 줄 수 있냐? 이게 좀 귀한 거라서.”
“아이템인가요? 물론이죠.”
그녀는 곧바로 마안을 사용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김민준 님이 날 필요로 하시다니…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그저, 김민준 님이 자신을 필요로 해 주신다는 것.
그거 하나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음….”
눈을 날카롭게 뜨고 아이템을 노려보길 10여 분.
김서현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난 예언들을 정리해 나갔다.
“김민준 님. 이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좋은 결과가 하나도 안 나타나요….”
나타난 예언은 총 10가지.
모두 나쁜 결과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의 마안은 절반 이상이 거짓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예언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적은 드물었다.
“그러냐. 그럼 몸으로 부딪쳐 보는 거 밖에 안 남았네.”
김민준은 예언을 전달해 듣자마자 아이템을 사용했다.
할 만한 것은 다 했다.
띠링.
[던질 수 있는 다트 횟수는 총 30회입니다.]
메시지와 함께 가상의 다트 판이 나타났다.
흔히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상이 들어간 다트 판.
“제 눈에도 보이네요.”
신기한 것은, 다트 판이 김서현에게도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 거 되게 뜸 들이네!
그리고 동시에, 말썽쟁이 다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던지면 될 것을 너네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고 결과가 바뀔 거 같아?
날카로운 목소리가 김민준의 머릿속을 울렸다.
“다트가 말을 하네.”
-말하는 다트 처음 봐? 어?
“말투 봐라. 확 부숴 버릴까.”
-해 봐! 그럼 너 아이템 평생 못 얻어! 야! 해 보라고!
겁이라고는 모르는 말썽쟁이 다트가 깐죽거렸다.
-네가 뭔데 날 부순다고 해? 짜증 나니까 기회 차감!
[던질 수 있는 다트 횟수는 총 15회입니다.]
거기서 모자라 자기 멋대로 룰까지 바꿔 버렸다.
과연.
이래서 말썽쟁이 다트인 건가.
-어어? 미안하다고 머리 박아도 모자랄 판에 날 노려봐? 기회 또 차감!
[던질 수 있는 다트 횟수는 총 10회입니다.]
-히히! 고작 10번으로 1101점을 까겠다고? 절~ 대 안 되지!
주제 파악과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말썽쟁이 다트의 거침없는 악담.
김민준의 성질을 긁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지금이라도 입 닫으면 반갈죽 정도로 용서해 준다.”
-모르긴 뭘 몰라? 짬 냄새가 몸에 배어 있는데. 윽! 짬 냄새!
“넌 뒤졌다.”
김민준은 생전 처음으로 아이템을 대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절망의 세계.
강대한 힘을 가진 이세계의 대마법사조차 굴복시켰던 스킬을.
“…김민준 님?”
순식간에 홀로 남게 된 김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화나신 것 같았는데.’
강력한 스킬을 사용할 정도라니.
뭐 때문에 화나신 걸까.
‘잠시 기다려 보자.’
남자 간부 숙소에 여헌터가 출입하는 건 당연히 금지다.
하나 ,자신은 김민준님의 부소대장.
누군가 마주친다면 중요한 자료를 잊어버려 전달하러 왔다고 말해 주면 될 뿐이다.
**
검게 말라 가는 대지와 검은 하늘.
김민준이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공간.
-뭐야! 여긴 어딘데? 너 뭐 하는 놈이야?
“일단 점수 얻고 부숴 버릴거니까 닥치고 있어.”
모 아니면 도로 스킬을 사용했는데, 딱히 페널티는 없었다.
-뭔지 몰라도, 네가 뭔 짓을 하던 1101점은 절대 못 맞출….
쉭!
김민준이 재잘대는 놈을 들어 올린 뒤, 아무렇게나 던졌다.
[1101점을 획득하였습니다!]
[던질 수 있는 횟수는 0회입니다.]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동시에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뭐야? 뭔데! 너 뭐 하는 놈이야!
한 번 던지고 1101점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방금 저놈이 맞춘 곳은 정중앙일 뿐이다.
한데, 무슨 이유인지 게임이 끝나 버렸다.
놈이 자신을 던지고 단 3초 만에.
-어, 어차피 조건을 만족한 순간 난 사라져!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은 자아가 깃든 아이템일 뿐.
효력이 다하면 사라질 뿐이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상이 지급되면 사라져야 할 다트 판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공간 안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누구 마음대로 튈려고?”
손가락을 까딱이자, 땅에 떨어져 있던 말썽쟁이 다트가 위로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내가 왕이야. 내 말이 곧 법이거든.”
-…….
덜덜 떠는 다트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거 말고도 다른 아이템 다 뱉어. 그럼 반갈죽으로 봐줄 테니까.”
**
김민준이 스킬을 해체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이리저리 찌그러진 다트 하나와 반지 하나.
“김민준 님. 괜찮으세요?”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던 김서현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놈 나불대는 게 열 받아서 홧김에 스킬 써 버렸는데, 좋은 정보를 얻었어.”
진한 녹색을 띠는 반지를 보여 주며 피식 웃었다.
절망의 세계는 강력한 효과를 가졌지만,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 스킬이다.
정확히 몇 번 사용할 수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아껴 두고 싶은 스킬이었고, 실험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아까웠다.
하지만 이번만은 만족스럽게 사용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아이템과 연결된 시스템한테까지 관여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다트를 한 번 던져 점수를 한 번에 취득한 것이 그렇다.
스킬 효과를 사용해 아이템의 조건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 버린 것이다.
사실상 이 방법이 아니면 답이 없다고 판단해 그랬던 거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하긴. 이 스킬을 누가 아이템한테 쓰겠냐. 한 번 한 번이 중요한 스킬인데.’
이세계에서는 ‘아. 이러다 진짜 죽겠다.’ 싶을 때만 사용했다.
강한 적은 많았고, 그때의 자신은 약했으니까.
‘그렇다고 완전히 시스템을 주무를 수 없는 건 아쉽네.’
그랬다면 아이템의 모든 보상을 가지고 왔을 텐데.
“김서현. 지금 시간 있냐?”
김민준은 지금 당장 이 아이템을 사용해 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
단련실은 당직 사관에게 허락받으면 밤12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건 병사에 해당할 때의 말이다.
중위인 김민준은 당직병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김민준 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아이템의 효과가 뭔가요?”
단련실 안.
김서현은 들뜬 표정의 김민준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마치 물어봐 달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내가 이스가르드에서 마법사 놈들이 짜증 난다고 했던 거 기억나냐?”
“네. 멀리서 마법 쏘고 치고 빠지고만 해서 엿 같다고 하셨죠.”
“그렇지. 화력도 별것 없는 마법 쓰면서, 근엄한 척 으스대며 도망치기만 했지. 얼마나 뚝배기를 깨고 싶던지.”
현재 들고 있는 이 반지.
타락한 대마법사의 유산에는 자신을 귀찮게 한 마법이 담겨 있었다.
[타락한 대마법사의 유산]
블링크 스킬이 담긴 반지.
마기를 지닌 자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시 영구적으로 스킬을 획득합니다.
“그걸 사용하면… 김민준 님도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김서현은 아이템 설명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으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럴 수밖에.
블링크는 오직 마법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스킬이었으니까.
“그렇지. 나도 이런 걸 얻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블링크.
일정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스킬.
이 스킬 하나 때문에 마법사 부대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냥 팍 사라지는데, 흑마법사 스킬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지.’
흑마법사도 이동 속도를 순간적으로 올려 주는 스킬 정도는 있다.
하나, 그건 다른 직업들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스킬이다.
때문에 마법사들의 기동력은 타 직업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블링크는 마나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데. 마기로는 되려나 모르겠네.’
마기를 지닌 자가 사용할 수 있다니, 뭐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반지를 착용했다.
화아악!
탁한 빛이 일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예상외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건?”
블링크 스킬이 아닌, 다른 스킬을 얻게 된 것이다.
블링크 스킬보다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위에 있는 스킬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