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코볼트 설인-2
‘무기가 강화된다는 건 이런 느낌인가.’
과부하 전이.
멀리 떨어져 있는 놈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려면 이 방법이 좋을 것 같아 사용해 봤는데….
예상 이상의 성능이었다.
‘단순히 공격력이 올라간다. 이런 느낌의 강화가 아니다.’
코볼트 설인이 숨어 있는 곳을 향해 적당히 휘두른 채찍.
이 채찍이 향하는 방향이 정확하게 변경된 것이다.
놈들에게 효과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각도로 말이다.
파지지지지직!
“끼에에에에!”
“끄에에에에!”
채찍이 눈밭에 닿자마자 강력한 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 안으로 파고들어 숨어 있던 코볼트 설인이 하나둘씩 눈 밖으로 빠져나왔다.
피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 말이다.
대부분 미동이 없거나 움찔거리고 있다.
최소 전투 불능이거나 죽어 버린 듯했다.
“…….”
“내가 뭘 본거지?”
“미친….”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
소대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검은 형태의 채찍에서 튀기 시작한 스파크.
채찍을 직접 맞지 않은 코볼트들이 피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체 모를 오러가 나타나 놈들을 속박시키기까지.
“제가 지금 뭘 보는 겁니까?”
“저거 전기 아닙니까? 아니, 무슨 검은 스파크가 튑니까?”
“전 저런 무기가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할 현상이었다.
김민준 중위님의 역량은 엄청나다.
이런 환경에서 몬스터의 기척을 잡아내 공격을 가한 것.
그 정도야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가 병사 때도 해냈던 일이었으니까.
정체불명의 검은 전기.
저것도 김민준 중위님의 전용 무기에 달린 기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저, 저 검은 오러는 도대체 뭡니까?”
“으아! 저거 막 살아 있는 것같이 꿈틀거립니다!”
“소대장님! 설마 저거 몬스터 아닙니까?”
보기만 해도 섬뜩한 기분이 드는 시꺼먼 오러.
저것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이거? 아이템이다. 그냥 아이템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잡담은 그만하고, 놈들이 매복했던 지점까지 움직인다!”
“예, 예!”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장비와 대열을 정비했다.
혹독한 환경의 던전은 병사들의 체력을 배로 깎아 먹는다.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하나. 둘. 셋… 죽인 놈들은 40마리쯤 되네.”
가파른 언덕을 타고 이동하길 30여 분.
몬스터가 화살을 퍼부은 장소에 도달했다.
“지금부터 1분대와 2분대는 이 지점에 구덩이를 파라.”
“예!”
“3분대 4분대는 흩어진 몬스터의 시체를 한곳에 모으고.”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지시에 소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놈은 얼굴만 빼면 그냥 덩치 크고 털 많은 침팬지랑 똑같다니까.’
일반 코볼트와 달리, 코볼트 설인은 침팬지와 흡사한 신체를 가졌다.
그 덕분에 힘도 좋고 체력도 월등히 뛰어나다.
무기를 다루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방금 화살 비를 퍼부은 놈들의 활 사격 실력을 보면 알 수 있다.
활시위에 화살을 3개나 4개를 걸고 미친 듯이 쏘아 댔으니.
“소대장님! 작업 다 완료했습니다!”
“그래. 빠트린 놈 없나 한번 확인 더 해 봐. 공략은 바로 속행한다.”
“예!”
병사들이 코볼트 시체를 모아 화학 약품 처리를 끝냈다.
던전 안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작업이다.
그러나, 코볼트 설인.
이놈들에 한해서는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놈들은 무리 간의 연대가 깊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놈들은 같은 무리의 사체를 보게 되면 극도로 분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능이야 살짝 떨어지겠지만, 체력과 힘, 민첩성이 급격히 올라가게 되고.
현재 소대원들의 스펙으로는 상대하기 버거워진다는 말이다.
소대장으로서 소대를 지휘하게 된 현재.
사소한 실수 하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던전에서는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지게 되니까.
“이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최소 4시간은 잡아야 된다. 부상당한 병사나, 몸에 문제가 있다 싶은 병사는 바로 나한테 보고할 수 있도록. 알겠냐.”
“예!”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병사들을 몰아붙이는 건 이류.
아니, 삼류 소대장이다.
병사들의 체력까지 감안해서 소대를 움직여야 한다.
소대원들의 컨디션 상시 체크는 필수였다.
“너. 안 괜찮잖아. 이리 와 봐.”
“이병! 박동규!”
아니나 다를까.
발목에 경비한 부상을 입은 병사를 발견했다.
누군가 싶었더니 오늘 자대로 배치받은 자신의 맞후임이었다.
“빠른 속도로 언덕을 오르다가 살짝 접질린 것 같은데. 맞지?”
“…예. 죄송합니다.”
박동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냥 걷다가 부상을 당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중급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랑 환경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칭찬하는 건 아니니까 긴장 바짝 하고.”
“예! 알겠습니다!”
“다른 던전은 몰라도, 이런 식으로 열악한 던전은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분대장이나 부소대장한테 보고해. 꾹 참다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
“예!”
박동규 이병의 발을 살펴본 뒤, 치유 물약을 사용해 응급 처치를 해 주었다.
이 정도면 던전 클리어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터.
‘속도 좀 낮춰야겠는데.’
새로 배치된 이병들이 6명 정도 있는 걸 생각하면,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었다.
‘이번 건 어쩔 수 없지. 애들 경험이나 쌓게 해 주려고 했더니.’
행군 속도를 늦추게 되면 던전 공략 속도가 느려진다.
그렇게 되면 병사들이 던전 안에 오래 머물게 되니, 체력이 더욱 고갈될 테고.
천천히 눈을 감고, 코볼트 설인의 기척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2차 공격을 위해서 유지한 지점을 잡고 있는 놈들이 20마리. 3차 공격을 대비해 함정을 파고 있는 놈들이 20마리라’
스스스스.
그사이 나이트 워커가 조사를 했는지,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래. 이놈들이 왜 이렇게 많나 했다.’
던전의 안쪽.
끝부분에 위치한 장소.
그곳에 놈들이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다르다.
사전에 받은 보고서의 내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코볼트 설인의 군락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3일 사이에 군락이 생긴 건가?’
코볼트 설인 뿐만이 아니다.
던전 중에서 몬스터들이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그럴 경우에는 던전 공략 난도가 확 올라간다.
왜냐.
군락이 생겼다는 건, 놈들에게 우두머리가 있다는 뜻이니까.
‘몬스터에게 지도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지.’
원래라면 이대로 던전 밖으로 나가, 지원 병력을 요청해아 한다.
군락이 생긴 이상, 최소 중대 1개의 병력을 투입하는 게 권장되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지.’
군락이 있다는 건 자신의 흑마법사 스킬로 알게 된 것이다.
어떻게 발견했냐는 상황실의 물음에 ‘아. 제가 흑마법산데, 제 소환수가 발견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방법은 하나지 뭐.’
군락에 있는 놈들은 내가 다 꿀꺽해야지.
스텟 경험치를 얼마나 줄까.
군락의 우두머리는 얼마나 강할까.
입맛을 다시며, 다시 소대원들을 이끌었다.
**
“11시 방향! 놈들이 화살을 퍼부으려 합니다!”
“방패 들어 올려!”
“자리에 서서 대열 유지해!”
코볼트 설인이 한 번 몰살당하고 난 뒤.
놈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저놈들 또 도망갑니다!”
“뭐 저런 놈들이….”
놈들은 소대원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몬스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도의 정확한 거리 유지.
“후우….”
“어우… 이렇게 추운데 땀이 다 나네.”
그 때문에 소대원들의 체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이놈들이 머리를 쓴다 이거지?’
김민준이 전방을 응시하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곳으로부터 약 2㎞ 떨어진 지점.
놈들이 함정을 설치하고 있었기에.
‘뻔하지. 인간들이 던전에서 활동 제한이 있는걸 잘 알고 있는 거다.’
놈들은 철저하게 체력을 깎기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다.
지능이 좋은 코볼트 설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정도까지는 못 한다.
놈들의 우두머리.
그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자. 이대로 체력을 보존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강행 돌파할 테니까, 날 믿고 따라와라.”
“예?”
“강행 돌파 말입니까?”
그 말에 소대원들이 의아한 듯 대답했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강행 돌파라니.
여기서 던전 공략 속도를 더 높이겠다는 걸까.
“…미친.”
“와.”
그렇게 생각했던 소대원들은, 현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행군 속도는 그대로였다.
대열 유지하는 것도 그대로고, 방패를 사용해 방어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도 그대로였다.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민준 중위님이 직접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점이었다.
쉬익!
그가 마력검에 오러를 씌워 크게 휘두를 때마다, 화살 비가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강대하고 두꺼운 오러를 두른 것도 엄청난데, 그 많은 화살을 모조리 쳐 냈다.
서걱!
“키에에에엑!”
“케켁!”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지대에 자리를 잡은 몬스터에게 검격을 날리기까지.
놈들은 원거리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워… 이승호 병장님. 저게 됩니까? 검에 오러를 실어서 날리는 거 말입니다.”
“될 거 같냐? 애초에 저렇게 오러를 날릴 수 있는 헌터는 최소 영관급일 거다. 그것도 특정 자리에서 퍼포먼스 식으로만 하지, 실전에서는 체력 소모가 심해서 엄두도 못 낸다고 들었다.”
“그거 보는 것 같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소드 마스터 말입니다. 거기에서는 주인공들이 두꺼운 검기 같은 거 쉭쉭 날리지 않습니까?”
“전 소대장님이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2시간 가까이 놈들에게 휘둘려서일까.
소대원들은 시원한 사이다를 마신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장 늦추지 말고 계속 진행한다!”
“예!”
“보고받은 것보다 공략 난도가 높으니까, 사주 경계 확실히 해라.”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활약 덕분에 소대원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다들 의욕적으로 대열을 유지하며, 던전의 안쪽으로 향했다.
“시간 끌어 봐야 소용없다.”
그 사이 코볼트 설인들이 집요하게 방해해 왔다.
원거리 공격을 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니, 집요하게 함정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앙!
김민준은 오러를 두른 마력검을 치켜들고, 강하게 내려쳤다.
힘 스텟 86.
오우거조차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완력.
기본 검술 B등급의 스킬.
이것이 뒷받침해 주니, 놈들이 설치한 함정이 수 초도 지나지 않아 박살 나 버렸다.
‘이 정도로 하면 나오겠지.’
이토록 강하게 나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코볼트 설인들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되면, 숨어 있는 우두머리가 움직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기에.
“여긴….”
“소, 소대장님! 군락입니다! 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던전의 끝부분에 다다르자, 조잡하게 지은 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코볼트 설인이 만든 건물이었다.
“알아. 다들 뒤로 빠져 있어라. 지금부터는 내가 처리한다.”
팔을 걷어붙이고 지시를 내리는 사이.
쿵!
굉음과 함께 지면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