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코볼트 설인-1
‘김광식의 가족 중 한 명이 혈액 암을 앓고 있다라.’
최근 들어 가족의 병세가 악화되었으니,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10살짜리 남동생이 이런 병을 앓고 있단 말이지.’
병사 때는 전혀 몰랐다.
항상 웃는 얼굴로 후임들을 챙겨 주고, 생활관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준 놈이었으니까.
‘애초에 말을 한마디도 안 꺼냈는데 알 리가 있겠냐마는.’
말을 못 꺼낼 만하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털어놓고 싶을까.
소대장에게조차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최근 한 달 동안 잦은 실수가 이어짐. 던전 공략 때는 큰 사고로 번질 뻔한 실수가 자주 발생.’
한달이라면 자신이 장교 승격 시험 및 장교 양성 교육으로 헌터 본부에 가 있을 때다.
이러니 못 알아차릴 수밖에.
‘이놈의 평가가 나빠진 직접적인 원인이 가족 때문이겠지. 시기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김광식 같은 병사가 또 있을까 싶어 다른 병사들의 인적 사항도 살펴봤다.
‘다행히 다른 애들은 다 괜찮네.’
김민준은 팔짱을 낀 채로 생각에 잠겼다.
소아 암.
그중에서도 혈액 암.
의료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 한들, 현대의 의학 기술로는 치료가 힘든 게 현실이다.
‘아이템을 구해서 사용하면 저런 병도 치료할 수 있긴 하지.’
어떤 병이든 부상이든 치료할 수 있는 아이템.
그런 아이템은 실제로 존재한다.
구하는 건 말도 안 되게 어렵지만, 구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병이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그 정도의 병을 아이템을 써서 치유하면, 큰 반작용이 온다.’
강인한 신체를 가진 헌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일반인을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 대기업의 사장이 암을 치료하겠다고 아이템을 구한 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암을 치료하긴 했지만, 아이템의 반작용으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성인임에도 이 정도인데 그 대상이 어린아이라면 훨씬 큰 반작용이 올 것이다.
‘일반인에게 아이템을 사용한다는 건 그런 의미지.’
소설이나 게임처럼 사용하는 순간에 뚝딱하고 치유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럴 때 사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모든 힘을 완벽하게 되찾는다면 다르겠지만, 현재로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 일은 잠시 미뤄 두고 개인 면담을 진행했다.
“충성! 김민준 중위님. 벌써 소대장 다시고 대단하십니다.”
개인 면담을 이어 나가길 1시간째.
김광식 상병이 소대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별까지 가야 되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진짜 별까지 가실 것 같아 무섭습니다.”
“콜라 마실래, 사이다 마실래?”
“오렌지 주스는 없습니까?”
“없어. 그냥 콜라 마셔.”
“알겠습니다.”
실실 웃으며 콜라를 받아 드는 김광식.
“요즘 군생활은 어떠냐. 할 만하냐?”
그런 녀석에게 조금씩 말을 건넸다.
무턱대고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든지 부담스러워한다.
그렇기에, 천천히.
명주실에서 실타래를 뽑아내듯이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요즘 던전 공략이나 훈련하는 데 실수가 잦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냐.”
“제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주의하겠습니다.”
“그러냐.”
지금이 타이밍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듯 웃는 녀석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개인 면담 전에 인적 사항을 살펴봤거든. 뭔가 개인정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미안한데, 소대장이 해야 할 일이라서. 가족 중에 남동생이 많이 아프지?”
“…예. 그렇습니다.”
김광식은 긴 침묵 뒤에 천천히 말을 뱉었다.
밝은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 이상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된다. 억지로 묻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너무 힘들다 싶으면 참지 말고 나한테 말해라. 뭐든지. 이제 난 2소대 소대장이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말한 부분만 주의해 주면 된다. 그리고 이거 가져가라.”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에게 영혼석을 건네주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영혼석 하나를 남겨 두고 있었는데, 당분간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주기로 한 것이다.
병 자체를 치료하는 효과는 없지만, 병을 이겨 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터.
“…소대장님? 이건 뭡니까?”
“체력하고 면역력을 높여 주는 영양제 같은 거지 뭐. 그거 참고로 말하는데 구하기 엄청 힘든 거다. 찝찝하면 안 써도 된다. 날 믿고 동생한테 먹여 봐. 꽤 도움이 될 거니까.”
“소대장님. 감사하지만 이걸 그냥 받기에는….”
“괜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네가 이병 때 나한테 잘해 줬잖냐. 시도 때도 없이 갈구는 선임이었으면 이런 걸 줬겠냐?”
머뭇거리는 녀석에게 바쁘니까 빨리 나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좋아. 이걸로 당분간은 괜찮겠지.”
나이트 워커에게 이따금 김광식의 동생을 지켜보라는 지시를 추가로 내렸다.
자신이 소대장이 되었다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같은 사례를 겪고 있었다면,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기에.
소대원이니까.
그리고 김광식이니까 도와주는 것뿐이다.
‘난 구원자나 영웅이 아니거든.’
몬스터에게 습격당하거나, 던전에 갇히거나.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움직일 것이다.
헌터군이 그러라고 있는 조직이니까.
그러나.
타인의 질병에 관한 것은 하나하나 신경 써 줄 여유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병을 앓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야 하니까.
“힘을 완전히 되찾으면 해야 할 일이 하나 늘었네.”
**
오전이 지나고, 오후.
2중대 2소대가 던전 공략을 위해 연병장 앞으로 집합했다.
“다들 주목!”
“주목!”
김민준이 단상 위로 올라가 소대원들의 시선을 모았다.
“오늘 2소대가 공략할 던전의 환경은 열악하다! 방한 장비들은 제대로 챙겼냐!”
“예!”
소대장이 되고 나서의 첫 던전 공략이다.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중요한 만큼, 소대원들의 장비를 꼼꼼하게 점검했다.
“지금부터 변화형 던전으로 입장할 건데, 우리가 처리해야 할 몬스터는 코볼트 설인이다. 거기 너!”
“상병 이동진!”
“코볼트 설인이 일반 코볼트와 다른 점은 뭐냐.”
“추위에 강하고 일반 코볼트보다 힘과 체력 및 지능이 뛰어나며, 영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놈들은 던전의 환경을 잘 이용한다. 거기다 사람이 쓰는 무기까지 잘 다루지. 우리는 지금부터 그놈들의 홈그라운드로 들어가게 된다.”
던전 앞에서 일차적으로 브리핑을 거치면, 부소대장인 김서현이 주의사항과 함께 2차 브리핑을 거친다.
“지금부터 대열을 맞춰서 입장하는데, 1열은 군용방패 장착한 채로 입장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김민준의 지시에 맞춰 대열을 만드는 소대원들.
보통 이 정도까지는 하지 않지만, 이번 공략 던전은 변수가 많다.
‘코볼트 설인은 중급 몬스터에, 던전 내부환경까지 생각하면 그렇게 쉬운 편은 아니지.’
코볼트 설인 한 마리의 힘은 약하다.
기껏해야 고블린을 겨우 이길 정도.
그러나, 놈들은 지능이 뛰어난 데다가 인간들의 무기까지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렇다면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조심해야겠지.’
놈들의 특기는 기습 공격이다.
그렇다면, 던전에 입장해 대열을 이루기 전에 공격을 퍼부을 터.
일차적인 공격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소대장님.”
“어. 왜.”
던전 공략을 시작하기 5분 전.
김서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면 걱정스럽다기보다는, 살짝 불만인 표정이었다.
“이번에 2소대가 맡은 변화형 던전. 2소대원들의 기량에 비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악한 던전 환경에 중급 몬스터들의 무리.
이 정도면 최소 상병 이상의 병사들로만 소대를 편성하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2소대원은 이병부터 병장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김서현이 불만을 품은 건 이 부분인 듯했다.
“부족한 병력들을 이끌고 공략 난도가 높은 던전을 클리어하라고 지시하다니. 위쪽에서 김민준 중위님을 써먹기 좋은 말로 보는 것 같습니다.”
“써먹기 좋다라. 그렇다기보다는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해야지.”
김서현의 의도는 진작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던전 공략을 맡게 된 건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애들 경험을 쌓게 해 주는 것. 다른 하나는 내 실적을 쌓는 거지.’
계급이 낮거나 경험이 없는 병사들은 중급 몬스터를 상대할 기회가 거의 없다.
보통은 하급 몬스터나 최하급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경험을 쌓는다.
그래야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실력을 기를 수 있었으니까.
‘그 방법이 제일 안전하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속도에 못 맞춘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은 강해진다.
허나, 던전과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
얼마 전 보스 몬스터라는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소대장인 이상, 아무도 안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
자신이 2소대를 맡은 이상 그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다소 거친 방법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경험을 쌓아 놔야 부상의 위험이 오히려 줄어든다.
“오늘 자대에 배치받은 신병들! 이병이라고 뒤로 빠지거나 쫄지 마라! 몬스터가 이병은 봐주고 병장만 공격한다는 보장이 있냐?”
“아, 아닙니다!”
“너희들과 안전하게 던전을 클리어하고, 부대에 복귀시키는 게 소대장의 역할이다!”
위험 상황에는 지켜줄 테니, 부상 걱정은 하지 말라는 김민준의 말.
그 말에 이병들의 눈이 의욕적으로 물들었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자신을 선두로, 소대원들이 차례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뭔 날씨가….”
“영하 20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바뀐 환경.
혹독한 추위와 함께 몰아치는 눈보라가 병사들을 괴롭혔다.
병사들이 눈보라에 적응하던 사이.
김민준이 앞서 주위를 살펴보며 지형을 파악했다.
“다들 군용 방패 장착해!”
그러던 중.
김민준이 병사들 전원에게 방패를 장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예, 예!”
“군용방패 장착!”
“자세 낮춰라! 더 낮춰!”
갑작스러운 지시였지만, 이곳은 던전 안이다.
소대장의 지시를 최우선적으로 따라야 한다.
소대원들은 재빨리 등에 멘 군용방패를 앞으로 들었다.
“저건….”
“화살이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큭….”
“뭔 놈의 화살이 이렇게 많아?”
“머리 숙여! 그러다 머리 뚫린다!”
수백 개의 화살이 쏘아지다 보니,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다.
“소대장님!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김민준의 신속한 대처 덕분에 부상당한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다만, 사나운 눈보라 때문에 몬스터의 색적이 어려워 보였다.
‘뭐냐. 내가 보고받은 던전보다 훨씬 어려운 거 같은데?’
사전에 조사했던 내용보다 더욱 혹독해진 환경.
거기다,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공격을 퍼부어 버린 코볼트까지.
‘이 던전. 공략 난도가 예상보다 꽤 높잖아.’
코볼트 설인 무리들이 1차 공격이 막힌 것을 알아차리고,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놈들의 화살 비에 한 번 더 노출되게 된다.
“일단 한 번 정리하고 가야겠네. 우리 애들 두들겨 맞게 둘 수는 없지.”
김민준은 심연을 머금은 어둠을 꺼냈다.
‘과부하 전이.’
그와 동시에 놈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채찍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