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맞후임
‘악마의 자기 계발서잖아.’
왠 책을 건네주나 했더니, 그 책의 정체는 아이템이었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 같은 시꺼먼 표지의 책.
사용자의 잠재 능력을 성장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끔찍한 환각이 동반된다.
그게 너무 리얼해 장교들조차 거품 물고 기절할 수준이라나.
때문에 헌터군이라면 헌터 본부의 허락을 정식으로 받아야 사용이 가능했다.
‘이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사용 금지됐었던 걸로 아는데. 나한테 이걸 선물해 줬단 말이지?’
잠재 능력을 성장시킨다.
이 효과는 단순히 스텟을 몇 개 올려 주고 끝인 게 아니다.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다 나 같은 경우에는 스텟도 있고, 스킬도 있고.’
손은서를 구해 준 것은 크다.
다른 던전도 아니고, 게이트가 발생한 던전.
그 게이트에서 이레귤러 몬스터가 나왔다면 더욱이.
그 일로 뭐라도 주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아이템을 선물 받게 될 줄이야.
“역시. 내가 친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사귄다니까.”
히죽 웃으며 아이템을 챙겼다.
그 말에 손은서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맹세할 수 있다.
‘절대 대가를 바라고 구하지 않았지. 암. 그렇고말고.’
친구 이전에 같은 군인이다.
전우를 구하는데 대가를 바라다니, 가당치도 않지.
“아. 그리고 나, 2대대 2중대 2소대장 맡은 거 알지? 여기 보이냐? 계급장.”
“지겹게 들었거든? 너 잘났어, 아주. 소위 다는 게 무슨 애들 장난….”
훈장 옆에 위치한 계급장.
손은서는 소위가 아닌, 중위 계급장이 달린 것을 보고 헛기침을 했다.
“주, 중위? 너 소위로 임관한 거 아니었어?”
사레가 들렸는지 켁켁대기까지 한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럴 수밖에.
임관되자마자 특별 진급하는 장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훈장을 받은 덕분에 이런저런 점수가 붙은 것도 있다.
하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진급 속도였다.
“아니, 뭔… 이제 1년 다 되어 가는데 중위라고? 위에서 조사해 봐야 되는 거 아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아이템을 도로 내놓으라는 손은서.
“치킨이나 마저 드시죠. 그럼 이건 잘 먹겠습니다.”
그런 녀석을 향해 웃어 준 뒤 병실 밖으로 나갔다.
원래 좀 더 머물며 적당히 놀려 주려 했지만, 선물 받은 아이템을 보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바로 써먹어 주지.’
**
그 뒤, 김민준이 향한 곳은 간부 전용 숙소인 BOQ.
지금까지는 병사들과 함께 생활관에서 지냈지만, 이제부터는 그게 불가능해 미리 짐을 옮겨 두었다.
그래 봤자 간단한 짐이 전부였지만.
“워. 뭐냐. 뭔 방이 이렇게 넓어?”
예전, 부사관 전용 숙소를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원룸 느낌의 방 하나.
이런 느낌이었다면…
장교 전용 숙소는 마치 호텔을 연상케 했다.
“뭔 바닥에 카펫까지 깔려 있냐? 안 어울리게.”
그것도 싸구려 호텔이 아닌 비싼 호텔이 말이다.
헌터군 부사관도 대우는 나쁘지 않지만, 장교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고는 듣긴 했었다.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음. 초고속 인터넷까지. 이게 다 공짜란 말이지.”
매년 헌터군 사관학교의 경쟁률이 치솟은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게 간단히 감상을 마친 뒤.
황금 가고일의 주머니에 넣어 둔 악마의 자기 계발서를 꺼냈다.
겉보기로 보면 평범한 복주머니다 보니 이런 게 편리했다.
논란이 될 만한 아이템을 완벽하게 숨겨서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으니.
띠링. 띠링.
[주의! 끔찍한 환각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악마의 자기 계발서를 사용하겠습니까?]
책을 펼치자 지금까지 사용한 아이템과는 달리,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메시지만 골라서.
“환각이라. 네가 얼마나 센 놈인지 확인해 줄 테니까, 어디 한번 들어와 봐.”
당연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환각은 이세계에서 구르던 시절 시도 때도 없이 많이 겪었다.
엿 같은 주술사들한테 툭하면 노려질 때가 있었기에.
오히려 시스템이 경고해 줄 정도면, 얼마나 강력한 환각인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드루와!”
거침없이 책의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자 환한 빛이 터지며 주위가 순식간에 변했다.
환각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흠… 이 정도면 금지할 만했네.”
수시로 바뀌는 환각들을 느긋이 감상하길 30분.
김민준은 강도 높은 아이템의 부작용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는 높이에서 맨몸으로 떨어지는 장면이나.
몬스터들이 산 채로 자신의 몸을 뜯어 먹는 장면.
또는 독가스에 중독되어 피를 토하는 장면 등등.
일반 헌터라면 못 버티고 정신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실제와 거의 똑같은 강도의 통증까지 느껴졌으니까.
“손은서 아버지도 참 화끈하신 분이라니까. 이래서 별은 아무나 다는 게 아닌 건가.”
자신이 이런 리스크를 견뎌 낼 것을 알았기에, 이 아이템을 넘겨줬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템을 건네준 본인도 위험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띠링.
[끔찍한 환각을 완벽하게 견뎌 냈습니다.]
[한 단계 높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영구 기관의 잠재된 능력이 상승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환각이 멈췄다.
거기다 부작용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 낸 덕분인지, 메시지가 연달아 출력되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생산 효율이 증가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이게 다 몇 개야.”
귀가 시끄러울 정도로 울리는 알림 소리.
얼마나 자신에게 이로운 효과를 퍼 주려는 걸까.
메시지가 멎자마자,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김민준]
‘세리아 누나는 내 최애캐’ 교의 창시자.
힘: 86 민첩: 72 체력: 78 마기: 55 영구 기관: 30
보유 스킬: 부패(B), 나이트 워커(B), 암흑 화살(B), 마기의 특이점, 마기의 손아귀(C), 마기 채찍(C) 기본 둔기술(E), 기본 검술(B), 스트렝스(B), 민첩 강화(E), 고통의 채찍질(C), 부패의 비(C), 지옥귀 폭발(D), 악독한 돌진(C), 욕망의 마기(D), 체력 강화(E), 절망의 세계(D), 다크사이더(D), 역병의 저주(D), 과부하, 데스 스웜프(D)
“미쳤네.”
아이템 하나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구 기관의 스텟이 무려 10이나 올랐다.
한 번에 이 정도로 스텟이 올라간 적이 있었던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다 이거지.’
위험한 아이템인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마기가 차오르는 속도가 최소 10%는 빨라진 것이다.
10%라 하면 적은 수치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은 다른 흑마법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기를 품을 수 있었기에.
[과부하 전이가 생성되었습니다.]
[과부하 스킬이 강화됩니다.]
[과부하 스킬을 사용한 뒤, 영구 기관이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급상승한 덕분에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다.
안 그래도 많아지는 스킬 때문에 좋아 죽겠는데, 영구 기관 전용 스킬까지 추가되다니.
“아. 어디까지 강해질지 모르겠네. 나 자신이 너무 두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헌터군으로 복무한 지 이제 11개월 차로 넘어가는 중인데, 어느새 23개의 스킬이 생겼다.
자신이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더욱 강하게 힘을 되찾아 나가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
히히 웃으며 스킬 창을 띄웠다.
[과부하 전이: 무기를 대상으로 과부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과부화된 무기는 기존 능력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효과가 끝나면 성능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과부화된 무기는 전기 속성을 가집니다.]
“오… 이건 그거네. 이걸 사용하면 무기를 강화할 수 있다 이거잖아?”
거기다 전기 속성까지 부여된다라.
지금 당장 사용해 보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휴가 복귀하고 던전 공략이 잡혀 있었지. 2중대 2소대가… 3개 정도 있었나.”
이제는 병사들을 지휘해야 할 입장이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의 계급이 높아지면서 권한 또한 많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다 먹는 건 그렇고. 한 절반 정도만 먹어 버릴까.”
보통 소대장이 되면 굳이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소대장은 맡은 소대를 지휘하는 역할이고, 몬스터를 처리하는 건 병사들이 주로 하니까.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체력을 굳이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
‘소대장이 이것저것 할 게 많긴 하지.’
중대장 보좌, 소대 관리, 훈련 준비, 당직 근무, 훈련 담당 교관, 그 외의 잡무 처리 등등….
일과만 끝나면 자유가 보장되는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소대장이 처리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그래 봐야 나한텐 아무것도 아니지. 김서현도 있고.’
녀석은 자신의 부소대장이 된 만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줄 것이다.
너무 열심히 해 버리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만.
“복귀하는 날에 내 맞후임이 들어오고. 그 뒤에 개인 면담이 있고. 개인 면담 끝나면 바로 던전 공략 들어가면 되겠네.”
**
“지금쯤이면 신병 도착했겠네.”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생활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예정대로 오전에는 소대원 개인 면담, 오후에는 던전 공략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충! 성!”
2분대 생활관 문을 열자, 등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던 이병이 거수경례를 해 왔다.
11개월 차가 되고 나서야 들어온 자신의 맞후임이었다.
“그래. 오늘 온 신병이지?”
“예! 그렇습니다!”
훈련소를 막 마치고 온 터라 기합이 바짝 들어 있다.
맞후임이라고 하니 괜히 반갑다.
피식 웃으며 맞선임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자, 잘 못 들었습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신병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군번이 꼬여도 그렇지.
맞선임이 같은 병사도 아니고 장교라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기수제로 네가 내 맞후임 맞다. 내가 특별 진급을 밥 먹는 듯이 해서 그런 것뿐이지. 내가 헌터군 복무한 지 이제 11개월 차로 접어들었거든.”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무슨.”
“아. 소대장님. 맞후임 기죽이면 어떻게 합니까.”
“신병이라고 벌써부터 군기 잡으시는 겁니까?”
분대원들이 장난스럽게 깐죽거린다.
시끄럽다고 말해 준 뒤, 오늘의 일과에 대해 전달해주었다.
“오후에 던전 공략 잡혀 있으니까, 신병 잘 챙겨 주고. 지금부터 개인 면담 실시할 거니까, 생활관에 대기하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소대장실로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생활 지도 기록부가 놓여 있었다.
새로 온 신병부터 시작해서 기존에 있던 소대원들 것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보면 김서현이 한 번 다녀간 듯했다.
“얘는 뭐 이렇게 병적으로 정리해 놨어?”
자리에 앉자마자 자료들을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소대원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으로서 병력 관리는 가장 중요하다.
소대원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고 케어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전투력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만큼 소대원들을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다.
‘몇몇 소대장들은 귀찮아서 형식적으로 대충하고 끝낸다고 하지만,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소대원 관리도 제대로 안 하는 장교가 중대장, 나아가 대대장까지 갈 자격이 있을까.
시간을 들여 한 명 한 명 세세히 신상 정보를 파악해 나갔다.
“응? 이놈은?”
그러던 중.
익숙한 소대원에게서 의외의 특이 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