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중위
“십만, 백만, 천만….”
업로드된 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은 영상의 조회 수가 벌써 3천만 뷰를 돌파한 상황.
인지도가 별로 없다시피 한 채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엄청난 반응이긴 했다.
-저번에 시민들 구해 주신 부사관님이시네요! 벌써 장교라니, 대단해요!
-다른 장교들은 모르겠고 김민준 님 쪽으로만 눈이 가요.
-영상 길이가 왜 5시간밖에 안 되나요? 너무 짧아요….
-다음 영상 올라오죠? 제발! 올라온다고 말해 줘요!
-세금 다 뜯어 가도 좋으니까 김민준 님 영상 좀 올려 줘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댓글들 반응이 대체로 이러했다.
자신에게 흠뻑 빠졌다느니,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느니.
군인인 게 아깝다느니.
“군대 다큐멘터린데 뭔 여자 댓글이 이렇게 많아?”
자신의 혼잣말에, 듣던 헌터들이 그걸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냐며 탄식을 뱉었다.
“아니, 김민준 소위님. 저희 일부러 멕이시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딱 봐도 김민준 소위님 보고 몰려든 사람들 아닙니까.”
“인생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외모에 성격에 실력에 안 가진 게 뭡니까?”
“외모는 무슨. 나 정도면 보통사람이지 뭐. 키는 평균보다는 크긴 하네.”
“그게 185가 넘으시지 않습니까….”
투덜대는 부대원들의 말은 적당히 흘리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폐쇄적이던 헌터군이 이걸 공개 했다라.’
헌터군에 관한 영상은 거의 없다.
얼마 전, 가스형 게이트가 터졌을 때의 영상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고.
‘그걸 이제 와서 허락한다는 건, 위쪽에서 뭔가가 있었다는 말이겠지.’
조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낼 수 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악의적인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헌터군 생활 즐겁게 잘 즐기고 있는데, 이쪽에서 먼저 건드릴 이유도 없었고.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서거나. 군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해서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냥 감이다.
날이 갈수록 몬스터의 출현이 잦아지고, 이런저런 악재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그 악재들을 막기에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 이런 영상을 기획했다는 건, 민심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내 감이다만.’
“야. 비켜 봐. 보고 좀 하고 오게. 왜 이렇게 달라붙냐, 징그럽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부대원들.
놈들을 가볍게 밀어내고, 대대장실로 향했다.
도착하면 꼭 들르라는 대대장의 말이 있었기에.
“충성! 소위 김민준! 장교 양성 교육을 수료하고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하하하하! 김민준 소위. 자네가 부대에 14일이나 없으니 불안해 죽는 줄 알았다.”
대대장실에 들어오자마자 이준범 대령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이전에는 중령이었는데, 그사이 대령으로 진급한 듯했다.
“듣자 하니, 헌터 본부 훈련용 던전에서 게이트가 연달아 터졌다면서?”
“예. 그렇습니다. 3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그래. 거기서 구울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고 들었다. 김민준 소위는 그걸 단독으로 막아내다시피 했고.”
이준범 대령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손수 탄 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김민준 소위. 약속대로 이곳, 104사단 무적 헌터 부대에 남아 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단장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자네 덕을 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
그는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더니, 이곳에서 중대장까지 달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중대장 말입니까?”
“그렇지. 듣자 하니, 별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냥 넘겼겠지만, 자네는 가능성이 보여.”
중대장이라.
그거야 물론 할 생각이긴 했다.
별까지 가려면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쳐, 대대장 직까지 수행을 해야 하니까.
‘응?’
대답을 하기 전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이곳, 무적 헌터 부대에서 소대장 직을 수행한 뒤.
나아가 중대장 직까지 수행하며 실적과 경력을 쌓으면 대대장의 자리에 무조건 올려 주겠다는 제안이.
‘다른 헌터였으면 뒤로 넘어갔겠네.’
물론 일반적인 헌터를 기준으로 파격적인 제안이라는 말이다.
장교라고 해 봐야 소위나 중위에서 못 올라가 전역하는 헌터들이 꽤 되니까.
그러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지금까지처럼만 해도 무난하게 중위를 달고 대위를 달 수 있었기에.
“대답만 하면 바로 중위를 달아 주겠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어진 제안은 제법 구미가 당겼다.
소위로 정식 임관하자마자 다이아를 하나 더 달아 주겠다니.
‘중위는 못 참지.’
어차피 이곳에서 중대장까지는 할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곧바로 중위를 달아 준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크! 역시 김민준 소위, 아니. 지금부터 바로 중위 하자고. 위에서 미리 다 보고하고 하는 거니까 상관없다.”
대대장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수 중위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중위 김민준!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이전에 말했던 대로 2대대 2중대 2소대 맡을 테니까, 이번 주 안으로 김철민 중위한테 인수인계 잘 받고. 부소대장은 김서현 하사라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내가 빨리 처리해 주겠다. 교육받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푹 쉬도록 해.”
“감사합니다! 충성!”
거수경례를 한 뒤 대대장실을 나왔다.
헌터 본부에서 게이트 3개를 처리했기에, 뭐라도 하나 챙겨 주려나 싶긴 했다.
그게 특별 진급일 줄 예상치 못했지만.
‘하사에서 중사 다는 거랑, 소위에서 중위 다는 거랑은 차원이 다를 텐데.’
그만큼 자신을 이 부대에 잡아 두고 싶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야 뭐 계급만 쭉쭉 오르면 좋지.’
이대로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김철민 중위를 찾았다.
“충성!”
“어, 민준이냐? 안 그래도 인수인계 때문에 연락을… 응?’
그는 자신의 계급장을 한 번 들여다보고, 눈을 비볐다.
소위도 아니고 중위 계급장이 붙어 있었기에.
“너 소위로 임관한 거 아니냐?”
“그렇습니다. 대대장님께 보고하는 사이 특별 진급이 되어 중위를 달았습니다.”
“특별 진급? 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네. 나랑 같은 중위라고?”
김철민 중위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다.
‘나를 따라잡을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는데.’
저놈은 이병 때부터 특출났다.
상담할 때 별을 달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별은 몰라도 장교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장교까지 가긴 무슨. 11개월 차에 나랑 같은 계급인데.’
이병이 11개월 만에 중위를 단다라…
소위에서 출발한 장교가 11개월에 중위로 진급에도 빠르다고 축하해 주는 편인데.
‘항상 예상을 깨 버리는 놈이라니까.’
인수인계를 받으러 왔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교육을 마치고 보고를 하자마자 일을 배우러 오다니.
엄청난 성실함에 질투심이 들래야 들 수가 없는 놈이었다.
“너네 분대 애들이 중위 달아서 온 거 보면 많이 놀라겠는데. 김민준이가 대위 달면 내 상관이 되는 거네?”
“그렇습니다만, 일과 시간이 끝나거나 둘이 있을 때는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이놈이 곧 대위 달 것처럼 말하기는. 인수인계 빨리 끝내 줄 테니까, 여기부터 시작하자고.”
“하하. 알겠습니다.”
**
인수인계는 금방 끝났다.
소대장의 기본적인 교육들이야 헌터 본부에서 몇 번이고 배웠다.
지휘 능력 역시 마찬가지.
소대원 관리에 신경만 쓴다면 별로 힘든 점은 없는 정도.
“얘들아. 나 왔다.”
소대장이 바뀌었으니 2소대 생활관을 돌며 간단히 인사를 했다.
이미 아는 얼굴들이니 긴 시간은 필요 없었다.
“충성! 김민준 소위님 오셨습… 어?”
어느새 도착한 2분대원들의 생활관.
분대원들은 김민준의 계급장을 보고 경악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위였는데, 어느새 중위 계급장을 달고 나타났으니.
“미, 미친! 분명 아까 소위셨는데, 그새 중위를 다신 겁니까?”
“아니면 임관하실 때 중위셨는데 저희 놀리려고 소위 계급장 달고 계신 거였습니까?”
“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표정을 짓는 분대원들.
2분대원은 다른 헌터들보다 더욱 충격이 큰 듯했다.
그럴 수밖에.
이병 때부터 같은 생활관을 쓰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자신들을 지휘하는 소대장이 되었으니.
“너네들은 내가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해 준다. 내가 은근히 정에 약하거든.”
“…미친.”
“적당히만 해 주십쇼. 저희가 죽어납니다.”
“강도 조절? 그거야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지.”
피식 웃으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소대장을 맡게 되면서 분대 인원이 부족해, 곧 후임이 들어올 거라는 것.
그리고….
“너네들한테만 미리 알려 주는 거다. 4대대 쪽에 소대장이 새로 오는데, 같이 교육받은 동기다. 나름 친하지.”
장교 양성 교육을 받으며 친해진 이유나 소위가 4대대의 소대장으로 오게 된 것까지.
“헐. 진짭니까?”
“크! 남자 밭인 무적 헌터 부대에 여간부에 이어, 장교까지!”
“김민준 중위님. 이유나 소위는 예쁩니까?”
“사진 있습니까?”
자신의 마지막 말에 분대원들이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남자들 아니랄까 봐 이런 거 하나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볼 때는 손은서랑 비슷하던데? 아. 그런데 걔가 던파를 되게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금방 친해졌지.”
“…던파 말입니까?”
“손은서 병장이랑 비슷한데… 던파를 좋아하는 겁니까?”
“그래. 빵빵한 근육질의 캐릭터가 취향인 것 같더라.”
그 반응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문제의 게임을 좋아한다는 게 영… 찜찜했기 때문.
“전달할 건 다 했고, 나 내일 휴가니까 참고할 수 있도록. 2일 뒤에 보자.”
김민준은 손을 흔들며, 생활관 밖으로 나갔다.
‘하… 그럼 새로 오는 소대장도 뭔가 있는 거냐?’
‘김민준 중위님을 봐라. 그 사람도 정상이 아니잖아.’
‘오우, 미친.’
분대원들의 대화는 한동안 끝나지 않았다.
**
김민준이 향한 곳은 서울의 한 병원이었다.
“병문안에는 역시 치킨이지.”
손은서가 던전에서 고립된 영향으로 인해 입원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몸이 상해 들르기로 한 것.
‘음. 손은서를 산 채로 잠깐 묻은 게 컸나.’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내가 얼마나 신경 써서 묻었는데.
“여봐라!”
“꺄악! 갑자기 뭐야!”
병실 안으로 들어가니, 손은서가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트렸다.
화면에는 얼마 전 업로드 된 헌터군 다큐멘터리가 재생되고 있었다.
“너… 그런 거 보는구나?”
“뭐, 뭐! 이게 뭐 어때서! 너 보려고 보는 게 아니고, 장교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공부하려고 보는 거야! 그것보다 너 미쳤어? 노크도 안 하고 병실에 막 들어와?”
속사포처럼 말을 뱉는 손은서.
“노크했는데? 그래서. 이거 먹기 싫다고? 병원에서 배달 음식 못 시켜 먹지, 아마?”
녀석의 눈앞으로, 막 포장해 온 치킨을 흔들었다.
“…봐줄게.”
“말이 짧다?”
“아! 그만 괴롭히고 그냥 줘!”
“옜다.”
끙끙대며 손을 뻗는 모습이 웃겨, 순순히 치킨을 건네주었다.
“몸은 좀 어떠냐. 꿀 좀 그만 빨고 부대로 와야지.”
“뭐래. 여기 헌터 수도 병원이랑 연계된 병원인 거 몰라? 그리고 네가 괴물인 거야. 보통 던전에서 하루만 고립되어도 2주는 입원해야 한다고.”
닭 다리를 뜯으며, 여기는 심심하다며 한숨을 내쉬는 손은서.
“아, 맞다. 이거 아까 아버지가 주고 가셨는데, 너 보면 고맙다는 말이랑 같이 전해 주라더라고.”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오? 이건?’
주머니에서 나온 하나의 물건.
김민준은 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