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했는데 입대 전날이다-128화 (128/212)

128. 임관식

“게이트가 사라질 때까지 마력검을 사용해 계속 베어 넘겼습니다. 뒤의 분대원들과 연계해서.”

“…마력검으로 그 많은 놈들을? 그럼, 여기 있는 소위들은 입구만 지켰다는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임시로 그렇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다른 소위들은 제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음…. 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겠다.”

소대장은 소대원들을 이끌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화염 방사기의 점검 및 장비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나, 눈으로 직접 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교적 빨리 장비를 장착한 병력이 고작 1분대일 정도.

그 정도의 화력으로 놈들을 막는 건 버겁다.

‘제대로 된 지원 소대가 도착할 때까지, 거의 30분이 걸렸다. 아무리 김민준 소위가 괴물이라고 해도 그렇지.’

거기다 저건 1세대 마력검이 아니다.

한창 개발 과정을 거치고 있는 2세대 마력검이다.

듣기로는 체력 소모가 몇 배는 극심해,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2세대 마력검을 쉬지 않고 30분 동안 휘두른다고?’

보고를 해도 과장되게 하면 어떡하냐고 생각했지만.

‘정말 한 마리도 없잖아.’

김민준의 보고대로 던전 안은 깔끔했다.

새까맣게 타들어 간 구울들의 시체만 빼면.

“중위 신성광입니다! 훈련용 던전에 발생한 3개의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던전을 한 번 더 점검한 뒤 복귀하겠습니다.”

소대장의 보고를 끝으로, 해당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

다음 날 아침.

임관식을 앞두고 교육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당연히 김민준.

구울이 쏟아지는 게이트 3개를 단독으로 막아내다시피 했다.

그렇다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와… 난 구울들 어떻게 밀어내야 하나 쫄고 있었거든? 마력방패도 아니고 군용방패면 이거 10분은 버틸 수 있으려나? 그렇게 조마조마했단 말이지. 그런데 구울이 한 마리도 안 나오더라고.”

“제 말이요! 안에 있던 병사들 말 들어 보니까, 민준이가 휘두른 마력검 한 번에 구울 수백 마리가 반 토막이 났대요!”

“지원 온 분대원들은 사실상 마무리만 한 거고. 김민준 씨가 다 잡은 거라 봐야죠.”

“크… 저런 일을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는 해내야 훈장을 받을 수 있다는 거잖아. 난 전역 때까지 절대 못 받겠네.”

당사자가 근처에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칭찬을 늘어놓는 소위들.

특히 이유나는 눈을 반짝이며 별것 아닌 걸 과장해서 말하기까지 했다.

“야. 팩트만 말해 팩트만. 2세대 마력검이 못 버틸 정도의 오러를 둘렀다는 건 뭐냐.”

“뭐 어때. 그 정도의 일을 해냈는데. 그런데… 저 자식들은 잘도 여기서 숨 쉰다?”

김민준에게 활짝 웃으며 대답하던 이유나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

그곳에는 상황이 터졌을 때.

자신의 지시를 못 따르겠다며 부대로 복귀한 소위들이 앉아 있었다.

“누구는 앞뒤 안 가리고 피해부터 막으려고 하는데, 누구는 당장 죽을까 무서워서 도망치기나 하고. 실제로 몬스터가 침공이라도 하면 국민들 놔두고 튀겠다?”

“아니, 우린 매뉴얼대로 물러난 것뿐인데 말이 너무 심하….”

“FM 좋죠. 그런데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해야죠. 대규모의 몬스터가 감당 못 할 정도로 들이닥치면, 기지 버리고 후퇴할 거예요? 버티면서 지원 기다린다는 생각은 못 해요?”

“…….”

“어제 게이트 터진 그 던전. 민준이가 혼자서 들어갔어요.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 혼자 들어가서 버텼다고요. 우린 몬스터가 빠져나오는 걸 막으려고 입구를 막았고요.”

이유나는 해당 소위들을 향해 매섭게 쏘아붙였다.

거기다 팩트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아. 저런 놈들이랑 같이 임관한다는 게 수치스럽네. 내가 먼저 꺼져야지.”

그녀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다른 소위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후우….”

“무슨 성격이….”

남게 된 건 문제의 소위들과, 김민준이었다.

“어우. 헌터 본부가 좋긴 좋아. 시원한 콜라를 아무리 뽑아 먹어도 넘치잖아? 철원은 항상 부족해서 병사들 먹으라고 양보해 주는데.”

그는 여유롭게 콜라를 들이켜며 놈들을 바라보았다.

찔리는 게 있는지 시선을 회피하는 소위들.

당연히 찔릴 수밖에.

어제 같은 상황에서는 이유나 말대로, 절대 도망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대처가 불가능한 거랑, 대처가 어려운 거랑은 다르거든.’

예를 들어, 어제의 던전에서 오우거가 나왔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한들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건 죽자고 달려드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구울 같은 하급 몬스터 같은 경우에는 말이 달라진다.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말이다.

‘소위 하나가 그걸 마주쳤으면 몰라도, 30명이 넘는 소위였지. 거기서 먼저 빠진다는 건 정상이 아니지.’

물론 그걸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어제 상황은 혼자 여유롭게 막을 수 있었고.

둘째로, 마석두를 포함한 소위들이 엿 되는 걸 기대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무궁화한테 호출당해서 겁나 터졌다는데.’

그냥 터지기만 했다면 다행일 것이다.

부대로 돌아가면 무슨 불이익을 받게 될까.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 구울한테 쫄아서 튀는 애들이 소대장 맡을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네.”

놈들이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해 준 뒤, 밖으로 나갔다.

곧 시작될 임관식을 위해서.

**

헌터군 소위들의 임관식은 건물 하나를 째로 빌려서 진행한다.

민간인을 부대 안으로 들일 수는 없고, 장교 임관식을 설렁설렁 진행하기엔 계급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와…. 이거 유명 가수 콘서트홀인데 완전?”

김민준은 웅장한 광경에 감탄사를 뱉었다.

그야말로 화려한 내부.

객석만 해도 3층까지 있는 데다가, 직계 가족들을 위한 VIP 객석까지 마련되어 있다.

“크…. 중앙에 걸린 헌터군 마크와 태극기라.”

보기만 해도 시원한 사이다를 들이켠 느낌이다.

이것이 바로 국뽕인가.

“너 되게 어린애 같다? 이런 거로 하나하나 놀라고.”

그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 이유나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런 말 하는 것치고는 본인도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이다.

“길었어…. 21살에 입대해서 이제야 소위를 다는 게… 이번 승격 시험 떨어졌으면….”

“26살에 소위 달았겠네요. 누나.”

“아, 진짜! 하지 말라고!”

“왜. 나보다 누나 맞잖아.”

친해지고 나니 손은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놀리는 맛이 있다.

자신과 같은 근무지인 강원도 철원을 썼다니, 앞으로 이따금 마주칠 테고.

“김민준 소위님!”

“응? 뭐야. 너 여기 어떻게 왔냐? 오늘 평일인데.”

“휴가 사용해서 왔습니다. 오늘 같은 날 당연히 휴가를 써야죠.”

이유나와 대화를 나누길 10분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김서현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 걸까.

한 마리의 강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휴간데 그냥 쉬지 그랬냐?”

“전 이게 쉬는 것보다 좋아요. 그런데 이봉구… 그 자식은 이 좋은 날에 연락을 받지도 않고… 제가 나중에 반쯤 죽여 놓을게요.”

“죽여 놓기는 무슨. 내버려 둬. 넌 저기 VIP석에 가면 되겠네. 내가 직원한테 말해 놓을게.”

“네! 감사합니다!”

환한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김서현.

이유나는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대화 중에 죄송한데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여자친구분이신가요?”

“김민준 소위님의 동기신가요? 아뇨. 전 먼 친적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녀는 김서현의 대답을 듣자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김민준 본인은 건물 내부를 구경하느라 관심도 없었지만.

“김서현. 곧 임관식 시작하니까, 이제 슬슬 자리에 가 있어.”

“네!”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며 VIP석으로 향하는 김서현.

언제 꺼낸 건지 손에는 카메라까지 들고 있다.

대충 봐도 수백만 원은 될 것 같은데.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 하사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헌터군 하사 월급은 400만 원이 넘어갔지만, 뭐라도 하나 더 챙겨 주고 싶었다.

김서현이나 이봉구나.

과거에 그만큼 고생을 했던 녀석들이니.

“지금부터 2020년 헌터군 장교 임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를 위해, 현재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은….”

잠시 후.

장교 임관식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소위를 다는구나.’

미리 연습한 대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14일의 시간이란 결코 짧지 않았다.

물론 일반군의 장교 교육이랑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게 짧은 편이긴 하지만, 벌써 부대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역시 최전방이 짱이라니까. 몬스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재미를 보려면 역시 철원이지.’

자신을 선두로, 정식으로 임관될 소위들이 하나둘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응? 뭐야. 머릿수가 모자라는데?’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다.

거기다 자리에 없는 인원은 바로 어제, 무궁화에게 털린 소위들이었다.

‘그 자식들 전부 재교육에 군기 교육대래. 방금 본부 소속 간부한테 전해 들었어.’

‘풉. 꼴 좋다.’

미침 옆자리에 서 있던 이유나가 귓속말로 설명해 주었다.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소위의 자질이 심히 의심된다면서 재교육을 명했다고.

‘재교육 정도로 끝나다니. 누군진 몰라도 천사네, 천사.’

물론 부대로 돌아가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당일에 대해서는 진작에 전달이 끝났을 테고.

‘그럼 마석두는 장교 양성 교육만 세 번째 받는 건가?’

이거 완전….

병신도 개병신이 따로 없는 수준이네.

‘아. 오늘 콜라는 그만 마셔도 되겠다.’

시스템이 선물해 준 아이템이 이런 효과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속이 절로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충성!”

1시간에 걸친 임관식이 끝났다.

각종 인사말이 90% 이상이라 기다리는 게 지루하긴 했지만, 드디어 정식으로 소위를 달았다.

짝짝짝짝짝.

‘얘들 다 긴장했네.’

쏟아지는 박수와 카메라 플래시.

자신이야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다만.

다른 소위들은 뻣뻣한 움직임으로 단상을 내려갔다.

“다음에 보면 술이라도 한잔하죠.”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각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본래 복무하던 부대에 복귀할 시간.

“야. 넌 휴가면서 왜 나를 따라와. 부대 가는 차량인데. 집에 가서 쉬어.”

“악!”

김서현에게 따라오지 말라며 장난스럽게 딱밤을 날린 뒤, 부대로 향했다.

**

부대로 복귀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김민준 소위님! 임관 축하드립니다!”

“그것보다 보셨습니까? 요즘 뉴스부터 시작해서 김민준 소위님 이야기로 장난 아닙니다!”

자신이 부대에 복귀하기 전.

유튜브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무편집본과, 간단히 컷 편집만 마친 영상 두 개.

언론사 채널과 국방부 채널에 업로드한 영상인데, 반응이 엄청나게 뜨겁다나.

“아. 기자들이 본부 안으로 들어와서 촬영한 게 그런 거였나.”

얘네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까.

반응이 뜨거워 봤자 얼마나 뜨겁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을 확인했는데….

“어?”

예상 밖으로 너무 뜨거웠다.

손이 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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