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데스 스웜프
구울.
인간의 형태를 한 좀비 형태의 언데드 몬스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만큼, 놈들에게도 취약한 약점이 있다.
‘하나는 신성력.’
이스가르드의 사제처럼, 신성력이 들어간 스킬을 사용하면 된다.
하급 사제들의 신성 스킬만으로도 구울을 수백 마리 처치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언데드와 신성력은 상성이 극이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한국.
아니, 전 세계에서 스킬이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나처럼 극히 드문 케이스가 아니라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저런 놈들에게 대항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화염 방사기지.’
신성력만큼은 아니더라도 불 또한 구울의 약점이었다.
살 자체를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리니, 끈질긴 생명력의 강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즉.
충분한 수의 화염 방사기만 있다면, 구울은 별 무리 없이 처치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울의 몬스터 등급은 하급이었다.
놈에게 대항할 장비가 있다는 가정하에서지만.
‘그리고 나는 이걸로 저놈들을 쓸어 담아 버릴 거거든.’
김민준이 대량의 마기를 방출해 사용한 스킬, 데스 스웜프.
현재 그의 눈앞에는 자그마한 늪이 만들어져 있었다.
부글부글.
마치 용암이 끓는 듯 부글거리는 검은 늪.
데스 스웜프는 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대상을, 천천히 잡아먹는다.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스킬이었다.
‘어우, 마기를 되게 많이 잡아먹네.’
마기가 모자라, 부족한 마기를 과부하로 보충했다.
이토록 마기가 많이 소모되는 이유는 단 하나.
‘저기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무조건 죽거든. 고위 성기사나 사제 아니고는 다 죽을걸?’
강력한 스킬 효과 때문이었다.
늪에 가라앉는 도중에 신체를 절단해 벗어난다?
어림도 없다.
스스스스.
“구, 구웨에엑!”
저런 식으로, 늪에서 검은 팔이 나타나 탈출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니까.
“구에엑!”
“궈어억!”
구울들이 주춤거리며 데스 스웜프에서 멀어졌다.
강한 본능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아는 것이다.
저 늪에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물론 평범하고 강력한 죽음의 늪이라면 내가 이렇게 좋아했겠냐.”
그렇다.
단지 발에 들이는 순간 죽는, 함정형 스킬의 파훼법은 간단하다.
그냥 저 늪에서 멀어지면 된다.
그럼에도 데스 스웜프는 흑마법 중에서도, 상위 스킬에 속한다.
흑마법사 중 데스 스웜프를 사용할 수 있는 흑마법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
“이게 왜 상위 스킬이나면….”
김민준이 전방을 보고 씨익 웃었다.
부글부글.
데스 스웜프가 먹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추가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구? 구억?”
“구에에에에!”
늪에서 보랏빛의 꽃이 피어올랐다.
너무 아름다워, 보는 사람을 절로 현혹시켜 버리는 그런 종류의 꽃.
데스 스웜프는 이처럼 먹이로 인식한 대상들을 강력하게 현혹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구에에에엑!”
현혹된 구울들이 늪으로 다이빙하듯 뛰어들기 시작했다.
본능으로 움직이는 구울조차, 강력한 스킬 효과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야야. 이왕 죽을 거 멋있게 가라고! 공중제비 돌면서 들어가 봐! 아니면 백 텀블링이나!”
이런 효과를 가진 스킬이다 보니, 그냥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 마기가 들어왔다.
마기뿐이랴.
아주 미미하지만, 스텟 경험치까지 쌓이고 있을 것이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아. 이게 꿀 빠는 거지. 달달하다 달달해.”
게임의 자동 사냥 시스템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지원 병력이 늦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네.”
교육관이 지원을 요청하러 간 지 8분이 지났다.
이제 슬슬 지원 병력이 이곳에 도착할 터.
지금부터 연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꿀럭. 꿀럭.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듯 출렁이는 데스 스웜프를 치워 버린 뒤, 팔다리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적어도 여기 있는 놈들까지는 내가 다 먹어야지.”
게이트가 세 개나 되다 보니 구울들이 금방 리필된다.
좀 더 많이, 그리고 짧은 주기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후우….”
마력검을 꺼낸 뒤 욕망의 마기를 사용했다.
일시적으로 올라간 모든 능력.
심호흡을 하고 집중력을 높일수록, 마력검의 오러가 진해지며 크기를 키웠다.
콰콰콰콰콰.
엄청난 내구도와 강도를 지녔다는 2세대 마력검이 진동하듯 덜덜 떨린다.
그만큼 마력검에 담긴 오러가 강대하다는 뜻이었다.
“좋아. 지난번보다 더 늘었네. 역시 사람은 발전이 있어야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구울들을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단 한 번의 검격.
그 여파는 상당했다.
구울들이 잘리는 것을 넘어서서, 살점이 폭탄 터지듯 터져 버린 것이다.
강대한 오러의 영향이었다.
“김민준 소위님! 당장 뒤로 물러…. 응?”
그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지원 병력이 도착했다.
화염 방사기를 장비한 채 두꺼운 보호 슈트를 착용한 헌터들.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게… 도대체 뭐야?”
“안에서 폭탄이라도 터졌나?”
던전 내부에 구울은 한 마리도 없고, 시꺼먼 살점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성! 기, 김민준 소위님?”
“어어. 왜.”
분대원들 중, 병장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한 행동이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그것보다. 이 구울들은… 김민준 소위님이 처리하신 겁니까?”
“그렇지. 다른 소위들은 혹시라도 빠져나오는 구울을 막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내가 이 안의 구울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있었고.”
태연하게 마력검을 흔들어 보이는 김민준.
그 모습에, 헌터들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허…. 그걸 혼자서 말입니까?”
“게이트가 세 개나 되는데….”
“도대체 마력검을 어떻게 사용하셨으면… 구울이 형체도 안 남습니까?”
고작 마력검 하나를 가지고 구울에 맞설 생각을 한다니.
정신이 나갔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또 온다. 대열 정비하고 화염 방사기 사용할 준비해!”
“예, 예!”
그 잠깐의 사이.
3개의 게이트에서 구울들이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김민준의 지시에 따라 재빨리 대열을 형성했다.
“발사!”
1열로 쭉 늘어선 대열.
등 뒤로 커다란 연료통을 메고 있는 병사들이 신호에 맞춰 화염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오. 화력 죽이는데.’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구울들이 눈 녹듯이 녹아내려 간다.
분사구에서 터질 듯이 뿜어져 나오는 저 푸른 불꽃.
저것 역시, 마력석을 가공해 만든 군용무기였다.
‘그렇지. 아무리 구울의 약점이 불이라 해도, 일반 화염 방사기로는 어림도 없다.’
장비에 의존하는 헌터군인 만큼, 몬스터에 대항하는 장비들의 성능은 확실했다.
‘스텟 경험치는 자라나는 병사들한테 양보하지 뭐. 마기는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
병사들이 거대한 연료통을 등에 메고 온 만큼, 화염 방사기의 사용 시간은 길었다.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사용해도 넉넉할 정도.
“구에에에엑!”
“이놈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어억!”
그러나, 겨우 1개 분대의 지원 병력으로는 구울의 전진을 막지 못했다.
놈들의 압도적인 공세에 대열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가 너무 많긴 하네.’
뒤에서 지켜보던 김민준이 마력검을 꺼내 들고, 공격 중지 지시를 내렸다.
“너네들 뒤로 빠져 있어라. 보니까 1개 분대로는 안 되겠네.”
“김민준 소위님! 아무리 그래도 혼자 저 규모의 구울에 맞서는 건 무립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대열을 뒤로 물리면서 시간을 버는 게….”
김민준은 대답 대신 마력 검에 오러를 둘렀다.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구울들을 한 번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오러였다.
덜덜덜덜.
강력한 오러의 여파에 진동하는 마력검의 손잡이.
그대로,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이전처럼 몸이 터진다든가 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몸을 동강 낸 거로 기동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으니.
“와…. 미쳤다.”
“아니, 저게 마력검 오러라고?”
“지금까지 저희가 본 건 뭡니까? 그냥 애들 장난이었습니까?”
“수백 마리를 한 번에 베어 버리는 건 처음 봅니다….”
뒤에서 안달 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분대원들.
그들은 방금 일어난 현상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수준이다.
그냥 다른 무기의 성능을 보는 것 같았다.
예를 들자면, 100년 뒤의 미래 무기라든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뒤로 빠져라. 이 뒤에 나오는 놈들도 그렇게 해. 나 믿고. 알겠냐?”
“예, 예!”
“알겠습니다!”
분대원들은 후딱 정신을 바로잡고 구울을 마무리했다.
이 뒤도 마찬가지였다.
김민준이 구울들을 베어 넘기면, 뒤에 빠져 있던 분대원들이 화염 방사기로 마무리했다.
이 연계 덕분에 별 힘들이지 않고 놈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제 끝났네. 다들 장비 챙기고 나갈 준비해!”
[특별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임시로 해제된 스킬이 영구적으로 해제됩니다.]
[데스 스웜프(D)가 생성됩니다!]
남은 시간이 끝나자마자, 게이트가 하나씩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눈앞으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마기 스텟이 1 상승합니다.]
[기본 검술 스킬이 B등급으로 상승하였습니다.]
마기 스텟과 함께, 검술 스킬이 상승하기까지.
얼마나 구울을 많이 베어 넘겼으면 스킬 등급이 오를까.
‘좋네.’
별로 힘들이지 않고 퀘스트를 완료했다.
자신의 뒤로 마무리 역을 맡은 지원 분대 덕에, 거저먹는 느낌이 들 정도.
본래 마기 스텟 10은 되찾아야 생성될까 말까 하는 스킬을 보상으로 받기까지 했다.
[가장 많은 구울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마기 스텟이 3 상승합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인데, 시스템이 추가로 퍼 주기까지 한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나이스!’
흥이 안 날 수가 없다.
14일의 장교 양성 교육 기간.
지루하던 찰나에 이렇게 좋은 일이 연속으로 발생할 줄이야.
‘아. 부대로 돌아가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 너무 무섭다.’
들뜬 마음을 품은 채 상황을 마저 마무리한 뒤, 분대원들과 던전 밖으로 나왔다.
“빨리빨리 장비 착용하고 들어갈 준비 해! 게이트가 세 개나 터졌다고! 왜 이렇게 굼뜨냐!”
“예, 예!”
“알겠습니다!”
던전 밖에서는 어느새 추가 지원 병력이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게이트 3개에서 나오는 구울이다 보니, 혹시 화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지원 온 병력이었다.
“충성! 소위 김민준! 상황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뭐라고?”
해당 소대의 소대장이 병사들을 재촉하기도 잠시.
김민준이 지원 분대와 함께 던전 밖으로 나왔다.
“잠깐만. 지원 보낸 분대는 다른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용도로 보낸 건데… 그걸 다 처리했다고?”
지금쯤이면 구울이 던전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태까지 생각했다.
그것을 감안해서 1소대 전원에게 화염 방사기를 쥐여 준 거고.
대체 어떻게 했냐는 소대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 질문에, 김민준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