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저건
“저, 저건!”
“게이트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다!”
“다들 나가! 빨리!”
“게, 게이트!”
“침착하게 대열을 유지해서 후퇴한다! 던전 입구가 폐쇄되지는 않고 있으니까, 침착해!”
던전 중에서도 별 볼 일 없는 던전.
하운드가 나오는 던전 끝부분에서, 게이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다.
하나만 해도 긴급 상황인데, 세 개라니.
교육관들은 뒤처지는 병사들을 이끌고 던전 밖으로 이끌었다.
보고 이전에 병사들부터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게 먼저였다.
‘음. 이거, 나 때문이겠지?’
그 순간.
김민준은 허공의 메시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쉐도우 다이스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좋은 일이 발생합니다.]
[쉐도우 다이스의 효과로 특별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특별 퀘스트: 30분 동안 구울이 끊임없이 출현합니다. 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스킬 1개가 임시로 해제됩니다.
보상: 해당 스킬의 영구 해제
아이템의 효과가 발생하며 퀘스트가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분명 쉐도우 다이스의 효과일 터.
‘좋은 일이라. 언데드 몬스터가 들이닥치는 게 좋은 일인가?’
일단 생각은 나중이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병들을 던전 밖으로 대피시켰다.
“아니, 저건?”
“저거 구울이잖아!”
상황이 무난하게 정리되나 싶었더니,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게이트 하나도 아니고 세 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이다.
놈들이 불어나는 속도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
이대로 가만히 방치하면 3분 안에 던전을 뚫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뭐냐. 좋은 일이라는 게 그런 뜻이었어?’
김민준의 입꼬리가 그제야 올라갔다.
꽝을 뽑은 줄 알았는데, 당첨이었다.
구울.
놈들의 몸 안에는, 미약하지만 마기가 들어 있었다.
‘저게 1시간 동안 계속 나온다는 거잖아.’
일반인은 알아차리지도 못하며, 인체에 무해하다시피 할 만큼의 양이다.
한 마리 한 마리로 따지자면 먼지 같은 수준.
하지만, 저렇게 많은 구울이 끊임없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육관님! 이거 가만히 놔두면 큰일 납니다! 던전 밖으로 뚫고 나올 겁니다!”
김민준은 짧은 시간에 생각을 마치고, 교육관에게 지금 당장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1시간 동안 저놈들을 막아내는 것?
자신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껌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굳이 혼자 나서겠다는 건 이류, 아니.
삼류다.
‘이 기회를 활용해, 1이 아닌 10의 이득을 취해야지.’
그래서 교육관에게 부탁했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지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막을 테니, 지휘 권한을 달라고.
“아니, 김민준 소위! 이건 교육이 아니고 실전 상황이다! 저 몬스터가 뭔지 몰라? 구울이라고, 구울! 저 규모에 맞서는 건 그냥 죽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란 말이다!”
교육관은 허락 못 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당장 후퇴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시간을 끌겠다니.
“저놈들은 특수 장비가 없으면 처치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걸 알고 말하는 거냐!”
구울의 생명력은 트롤과는 다른 의미로 질기다.
트롤은 엄청난 재생력으로 인해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면, 구울은 팔다리 및 머리를 부숴도 움직이는 끈질김을 자랑했다.
완전 잘게 조각내는 수준이 아니면 어떻게든 움직이는 놈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교육관님. 원래 매뉴얼대로라면 이 규모, 후퇴해야 합니다. 다른 헌터들이었다면 그랬을 겁니다.”
김민준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충무 무공 훈장이 걸려 있었다.
“전 지금까지 후퇴해야 하는 상황에 오히려 전진했습니다.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후퇴하면 당장의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뒤에 발생하는 여파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말.
“음….”
그 말에 교육관이 고민에 빠졌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헌터가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 도망쳤다.
그걸 곱게 볼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경찰이 쫓아야 할 범인을 눈앞에 두고 물러나는 꼴이다.
더군다나 저 멀리서 기자들이 촬영까지 하고 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그야말로 국가 망신이며 헌터군의 이미지와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몬스터의 위험에서 국민을 지키는 것. 그것이 헌터군의 존재 이유입니다.”
“…네가 분명히 책임진다고 했다.”
교육관이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더할 나위 없는 정론이였다.
하나, 정론이라고 한들 막상 저 상황에서 맞설 수 있는 헌터가 몇이나 될까.
‘헌터도 같은 사람이다. 목숨이 하나라는 말이다. 그런데 저놈은 그걸 알고서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차적으로 후퇴한 뒤, 장비와 병력을 갖추어 대응하는 게 상식이다.
물론 잘못되면 뒤에 발생하는 피해가 걷잡을 수 없게 커지지만, 이곳은 헌터 본부 근처다.
인명 피해만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건 너무 낙관론적이다.’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저 많은 구울들이 부대 밖으로 빠져나와,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칠 확률은 결코 낮지 않다.
김민준은 그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헌터라면 몰라도 저놈이라면….’
김민준에 대한 무용담이야 귀가 닳도록 들었다.
장성들이 눈독 들이고 있는 헌터라든가.
말도 안 되는 실적을 연달아 내 의무 복무 기간마저도 무시하고 특별 진급을 수차례 한 헌터라든가.
실제 그 성과는 그의 가슴에 달린 훈장이 증명해 주고 있었고.
“좋다! 나를 포함한 교육관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헌터 본부에 복귀한다! 그리고 바로 현재 상황을 보고한 뒤, 장비를 갖추고 지원 병력과 함께 합류하겠다! 그동안 김민준 소위는 병사들을 차출해 임시로 소대를 편성해라!”
“소위 김민준! 알겠습니다!”
본래 대위에겐 그런 권한이 없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신까지 먹통이다.
역할을 나누어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 계획대로다.’
오글거리는 대사부터, 임시로 소대를 편성할 권한을 요구한 것까지.
전부 자신이 의도했던 일이었다.
‘좋아. 카메라는 잘 돌아가고 있네.’
일부러 기자들을 의식해 훈장을 강조하고, 더욱 느끼한 대사를 쳤다.
‘병사… 아니지. 소위들을 이끌고 저놈들을 막아낸다면, 그건 몇 배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김민준은 교육생 신분의 소위들을 모아 임시로 소대를 편성했다.
혼자 해도 되는데 굳이 그런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소대를 이끌며 저 구울 무리를 완벽하게 막아낸다면, 소대장으로서의 능력까지 검증이 되는 셈이었기에.
‘퀘스트도 깨고. 보상도 얻고. 다른 보상도 얻고. 기자들이 열심히 뉴스를 퍼 나를 테니 헌터군의 이미지는 더욱 올라가겠고.’
퀘스트 말고도 떨어지는 이득이 대체 몇 개일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왔다.
“다들, 들었죠? 제가 임시로 편성된 소대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군용방패를 들어 달라는 말에, 소위 몇 명이 제멋대로 뭐 하는 짓이냐고 항의했다.
“아니. 김민준 씨. 죽을 거면 너 혼자 죽어. 왜 우리까지 끼게 해?”
“상대는 구울 한 마리도 아니고, 무리라고 무리! 미쳤어? 저거 딱 봐도 수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거기다 게이트가 세 개라고!”
“화염 방사기 없이 저것들 상대한다는 건, 그냥 죽겠다는 거라고! 알아?”
이런 상황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적은 화려하더라도 계급은 소위이며, 무엇보다 짬이 낮다.
소대를 지휘해 본 경력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맡기는 것에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입씨름할 시간 없고요. 하기 싫으면 빠져요. 저 혼자서도 저놈들 다 막을 수 있습니다.”
“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야. 이거 잘못되면 훈장 도로 뺏기겠네. 뭔 자신감으로 일을 저지르는지.”
그 말에, 소위 여러 명이 방패를 내던지고 본부로 향했다.
마석두는 슬쩍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알아서 나락으로 가는구나. 고맙다?’
굳이 저들을 제지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저 멀리서 카메라 렌즈가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이전부터 밑밥을 엄청나게 깔았는데, 저렇게 내뺀다라.
‘이야. 저게 바로 기자 정신이라는 건가.’
기자들이 저놈들보다 낫네.
도망가지 않고 계속 촬영하는 걸 보면.
슥.
시선을 돌려 남은 소위들을 훑어보았다.
기껏해야 10명 남짓한 인원.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이 한 번에 빠지게 되니, 소대는 무슨.
분대 수준이 되어 버렸다.
“제 말대로만 하시면 절대 안 다친다고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놈들을 토벌하는 게 아닙니다.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다 먹어 버릴 거지만.
“이야. 그 전설의 김민준 소위랑 같이 싸우게 될 줄이야. 목숨 한번 걸 만하지 않나요?”
“장교 달아 놓고 구울 같은 몬스터에 쫄면 헌터군 왜 하겠습니까?”
“맞습니다!”
남은 인원들은 모두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소위들이었다.
“어떤 명령이든 따를게. 무조건 널 믿어!”
왠지 모르게, 이유나는 그 이상으로 자신을 신뢰하는 것 같았지만.
“여러분은 군용방패로 던전 입구를 막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놈들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네. 그리고 뭘 하면 될까요?”
“그것만 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저 단순히 막는 방식으로는 저놈들을 막을 수 없을 텐데….”
“아. 그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김민준이 던전 안으로 발을 한 발자국 내디뎠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저 혼자서 저놈들 다 막을 자신 있다고요.”
**
“아. 너무나도 완벽한 연기에 설계였다.”
소위들을 입구에 배치해 둔 뒤, 혼자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군인이 단독 행동이라니.
다른 헌터였으면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온갖 실적과 함께 충무 무공 훈장으로 무장한 자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결국엔 결과가 중요한 거거든.”
인명 피해 제로에, 부상자 제로.
모든 몬스터 퇴치.
여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 설명까지 더해지면 끝이다.
“워. 그런데 이놈들 뭐가 이렇게 많이 불어났냐?”
그 잠시의 시간.
5분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던전 안은 몬스터로 바글거렸다.
게이트가 하나도 아니고 세 개라서 그런 걸까.
구울들이 어느새 던전 중반부까지 가득 찼다.
“이야. 이놈들 다 때려잡으면 마기랑 스텟 경험치가 얼마야.”
다른 헌터들이었다면 기겁했겠지만, 오히려 군침이 돌 정도였다.
“아. 시스템이 임시로 스킬 하나 해제시켜 줬었지.”
어차피 구울에게는 별 효과가 없겠지 뭐.
흑마법사랑 언데드랑은 상성이 너무 안 좋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스킬을 확인했다.
[데스 스웜프(D)]
“오?”
임시로 해제된 스킬은 데스 스웜프였다.
의외로 쓸 만한.
아니, 이 상황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줄 스킬이 해제될 줄이야.
“이런 스킬을 줬다 이거지? 이래서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 거야?”
그냥 구울들이 떼거리로 들이닥쳐도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다.
놈들이 마기를 품고 있으니, 미친 듯이 두들겨 패서 흡수하면 그대로 힘의 상승으로 이어지니까.
그러나, 저 스킬이 있다면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다.
“이거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도 되겠는데.”
데스 스웜프란 그런 스킬이었으니까.
“지원 병력 오기 전에 확 쓸어 버려야지.”
김민준의 양손에서 마기가 방출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