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장교 양성 교육-2
마석두가 착각하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헌터로서의 신체 능력만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림도 없다 이놈아.’
물론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쪽이긴 하다.
그쪽이 훨씬 편하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굴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었을 뿐이지.
삐익!
교육관의 신호와 함께 대전이 시작됐다.
장소는 어두운 조명이 일렁거리는 폐창고를 본뜬 장소.
분대원의 역할을 수행할 로봇들이 투입되었다.
‘이걸 마이크에다가 대고 말하면 말하는 대로 움직인다 이거지.’
분대장 역할을 맡은 교육생들은 고지대에서 분대원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상대방의 움직임은 볼 수 없지만.
“지금부터 대열을 만든다.”
빨리 끝내려면 5분 안에도 끝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는 건,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였다.
자신만만한 마석두를 완벽하게 이겨 버리면, 어떤 표정을 보여 줄까.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병장들은 이쪽에서 대기한다. 위협 사격만 하고, 회피에 중점을 둔다. 이병들은 가장 뒤로 빠져 있어.”
놈을 이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저, 놈의 생각을 역이용하면 될 뿐.
“민준이가 이길 수 있을까요?”
“음. 김민준 씨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어렵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상대가 마석두니까요. 저놈, 보기에는 저래 보여도 의대 출신이거든요. 장교 양성 교육도 당연히 받았겠고.”
“보란 듯이 김민준 씨를 저격한 것도 그 이유겠죠. 저쪽에 기자들이 촬영하고 있겠다, 어떻게든 꼽을 주려고요.”
김민이 패배할 것 같다는 대다수의 의견.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말이다.
“그대로 일제 사격.”
대전이 시작되고 단 10분.
김민준의 말을 마지막으로, 마석두가 패배했다.
그것도 아주 압도적으로.
마석두쪽 분대원들은 모두 전멸했지만, 김민준 쪽 분대원들은 전원이 생존했다.
‘좋아. 잘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
나이트 워커를 놈에게 붙여 생각을 읽어 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석두는 큰 빈틈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참담한 패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와… 씨. 방금 봤어요? 대열을 어떻게 변경할지 미리 예측하고 사격 지시 내린 것 같은데요?”
“움직임이… 애초에 상대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저기 봐요. 로봇들이 미리 사격 자세 취하고 있는 거요.”
“무데뽀 같아 보이는데, 다 노린 건가 보네요. 계급별로 로봇을 배치한 것도 그렇고요.”
교육생들은 의외의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마석두를 이긴 것도 그렇지만, 김민준 쪽의 분대원이 전원 생존했기 때문.
“훌륭하다. 각 분대원의 계급에 따라 역할을 잘 나눴다.”
“소위 김민준!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오며 마석두를 향해 대놓고 웃어 주었다.
이것으로는 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시시하다는 말까지 중얼거렸다.
“아. 너무 시시해서 죽고 싶다.”
놈에게 들릴 정도로.
‘다른 소위였으면 정정당당하게 했겠지만, 너한테는 그러기 싫거든.’
마석두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지만, 그럴수록 만족감이 높아질 뿐이었다.
그러게 날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오늘 교육은 이것으로 마친다.”
김민준의 압도적인 무패 행진으로 교육이 끝났다.
소위들은 교육이 끝나자마자 독서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아오… 수능 앞둔 고3도 아니고. 뭐냐 이게.”
“다음 주까지만 버티자….”
일과 시간이 끝나면 그 뒤는 뭘 하든 자유다.
그러나, 일정 주기마다 행해지는 이론 시험에서 기준 미달이 나오면 재교육 대상이 된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필기시험 때문에 재교육을 받기라도 했다가는, 그대로 놀림감이 될 터.
“소위 다는 게 쉽지는 않네.”
김민준이 교육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나이트 워커 덕분에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소환수가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었기에.
“민준아. 야식으로 치킨 어때?”
몸이 근질근질해 단련실이라도 찾을까 싶던 찰나.
이유나가 치킨을 먹자며 권유해 왔다.
눈치 없는 소위 몇 명이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녀의 냉담한 눈빛에 금방 물러났다.
“치킨이라. 좋지.”
치킨이야 교육 1일 차부터 꾸준히 시켜 먹고 있긴 했다.
부대의 병사 생활관을 쓸 때는 제약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밤 10시 전까지 웬만한 자유는 보장되었기에.
“2시간 뒤에 개인 단련 끝나고 불러라. 그 뒤에 먹어야 더 맛있거든.”
“단련실 가는 거야? 그럼 나도 같이하자. 그냥 단련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내기하는 거 어때?”
그녀가 사격 훈련실을 가리켰다.
무적 헌터 부대에는 없는 사격 시뮬레이션 훈련장이었다.
“오. 그거 좋지.”
김민준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격 훈련장은 혼자 이용할 수 없어서 가끔 구경만 했었는데.
이 기회에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와. 나도 사진으로만 봤었는데, 여기 시설 대박이다.”
전문 사격 훈련장 역시 몬스터 시뮬레이션 훈련과 유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효율적인 사격 능력 강화를 위해 총기의 반동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준다는 점.
“이야. 죽이는데. 실제 마나건 잡는 거랑 별 차이도 없네.”
마나건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총이 즐비해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MX16과 마나건부터 해서, 마력경 기관총과 마력 저격 소총까지.
헌터 본부가 이 많은 총을 언제부터 개발해 왔는지 궁금할 정도.
‘아쉽네. 이것들을 병사들한테 마음껏 장비시키면 몬스터는 별걱정 안 해도 될 텐데.’
군인이 총알을 아껴야 한다니.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랬다.
괜히 헌터 본부에서 마력검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아니다.
‘MX16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마력 기관총 한 번 사용하면 세금 그냥 녹아 버리겠는데.’
마력석을 가공해야만 만들 수 있는 마력탄.
이 마력탄의 가격은 어마무시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 어쩔 수 없었다.
매년 엄청난 국방비를 투자하는 미국조차 감당이 버거울 정도라고 하니, 말 다 했지.
“에이. 저격 소총은 모조리 잠겨 있네.”
“아. 그건 반동이 너무 심해서 그래. 실전에서 사용되려면 10년은 더 걸린다던데?”
안전상 몇몇 총기들은 잠겨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10가지가 넘는 총기들을 가지고 놀 수 있었으니까.
“이유나. 나한테 사격 모의 훈련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준다.”
이유나의 사격 실력은 수준급이다.
영관급은 모르겠지만, 같은 장교 수준에서 그녀의 사격을 따라올 수 있는 헌터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지켜볼 정도였으니 확신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진심을 다한다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이 일었다.
“뭐? 소원? 뭐든지 해 줄 거야?”
소원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이 의욕적으로 빛났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뭐든지. 어차피 내가 이기니까 하는 말이지.”
“와. 자신감 미쳤네. 그대로 딱 기다려.”
그녀가 그 말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는지 팔을 빙빙 돌린다.
그대로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마친 뒤.
전방을 향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좋아. 저래야 내가 할 맛 나지.’
피식 웃으며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사격을 시작합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출현하기 시작하는 몬스터들.
일반 전투 시뮬레이션과는 달리, 총기로 약점을 적중시켜야 처치할 수 있다.
하급 몬스터인 하운드부터 시작해서 괴물쥐, 고블린, 등등….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타앙! 탕!
‘오. 잘 쫓아오는데.’
이유나의 사격 실력은 훌륭했다.
처음부터 봐줄 생각은 없었는데,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체력도 괜찮고. 마력검도 나쁘지 않게 다루고. 사격 실력은 월등히 좋다라.’
역시.
던파를 진정으로 즐기는 헌터는 우수한 헌터밖에 없는 건가.
손은서도 계급에 비해 실력이 좋다고 생각하곤 있었는데, 이유나는 그보다 잠재 능력이 훨씬 높다.
무난하게 대위까지는 가지 않을까.
“응?”
그렇게 사격을 이어 가던 도중.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유나의 사격 실력이 갑작스럽게 상승한 것이다.
자신이 진심을 다해야 따라잡을 정도의 실력.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뭔가 있는데.’
확실히 다르다.
사격의 정확도와 목표물을 포착하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일반인이라면 전혀 모를 것이다.
자신조차, 5분 가까이 들여다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으니.
‘일단 이기고 보자.’
이대로면 진다.
시선을 돌려, 전방을 향해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아… 씨. 이걸 지네.”
10분 동안 이어진 가상 훈련의 결과는… 김민준의 승리였다.
근소한 차이로 결정 난 승패.
이유나는 꽤 아쉬운지 발을 동동 굴렀다.
“민준아… 난 사격은 누구한테도 안 질 자신이 있었거든? 그런데 네가 사격까지 잘해 버리면 내가 박탈감이 들잖아.”
“적당히 봐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봐줄 수가 없더라. 그래도 내긴데 내가 이겨야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유나. 너, 스킬 가지고 있냐?”
“…뭐?”
스킬이라는 말에 이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모습이다.
“아.”
아니라고 둘러대려 했지만, 방금 보인 모습이 아차 싶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안 거야? 아니. 애초에 스킬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어?”
지금까지 자신의 사격 실력에 의문을 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왜냐.
애초에 티가 안 나니까.
스킬을 사용했다고 해도, 헌터들은 스킬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대부분의 헌터는 말이다.
“특정 구간에서 사격 정확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지더라고. 그것만이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동체 시력까지 좋아진 것 같아서 한번 떠본 거지.”
정답이었다.
이전, 새로운 스텟 영구 기관을 얻었을 때.
분명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같은 아이템이 하나가 아니라는 보장을 할 수도 없고.
자신 말고도 다른 헌터가 스킬을 가지고 있겠거니 했는데, 그게 이유나였을 줄이야.
“…설마. 너도 스킬 가지고 있어?”
“아니. 그럴 리가. 나야 워낙 소문을 많이 들어서. 최전방에 있으면 이런저런 얘기 다 듣거든.”
그녀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스킬이야 두 자릿수는 가뿐하게 넘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굳이 가르쳐 줄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알려 줘도 안 믿겠지. 암흑 화살이라든가, 지옥귀 폭발이라든가.’
말하는 쪽이 부끄러운 정도의 스킬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에.
그것보다 현재 김민준의 관심은 하나.
이유나가 가진 스킬 이름과 효과가 뭔지.
그리고, 그 스킬은 어떠한 방법으로 얻게 되었는지다.
“이젠 아주 대놓고 물어보네.”
이어진 질문에, 그녀가 졌다는 듯 웃었다.
“그래서. 맨입으로 알려 달라고?”
“철저한 비밀 보장과 함께,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 들어줄게. 한 가지만.”
“원하는 것…. 좋아. 약속 꼭 지켜야 한다?”
의외로 순순히 승낙했다.
거기다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
일이 예상보다 잘 흘러갔다.
‘오. 꽤 괜찮은 스킬인데?’
이어진 이유나의 스킬 설명.
들어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