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훈장
“너 이 자식아! 훈장 받는다고 훈장! 그것도 충무 무공 훈장말이다!”
소위로 진급함과 동시에 훈장까지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승격 시험 결과는 3일 뒤에 나오지만 소위로의 진급은 확정된 상태.
형식적으로 시험을 치르긴 했지만, 훈장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표창장 하나 주는 거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의외네.’
훈장이라.
그만큼의 일을 하긴 했다.
이병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꾸준히 말이다.
이곳.
무적 헌터 부대에 자신이 없었다면, 큰 사고로 번졌을 일만 해도 몇 가진가.
그럼에도 훈장에 대한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훈장을 받는 건 쉽지 않구나 같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의외였다.
‘내 나이대에 훈장을 받은 헌터는 없는 거로 아는데.’
자신의 나이는 20대다.
그것도 20대 초반인, 21살.
반면, 훈장을 받은 헌터는 대부분 50대를 넘긴 장성들이다.
영관급도 몇 명 있다고 듣긴 했는데,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그만큼 우수한 실적을 쌓아도 받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 까다롭다는 훈장을 받게 될 줄이야.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훈장 종류는 몇 가지나 있습니까?”
“왜. 모든 훈장 다 따고 싶어서 그러냐?”
“예. 이왕 스타트 끊어 버린 거, 모조리 받고 싶습니다.”
“으하하하하! 그래! 김민준이! 남자라면 꿈을 크게 가져야지!”
어깨를 두드리며 기분 좋게 웃는 소대장.
농담처럼 들렸겠지만, 자신은 진심이었다.
‘훈장 개수가… 헌터군이 만든 것까지 총 12개라고 했나?’
그 멋있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충무 무공 훈장 수여가 확정된 지금.
김민준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별을 달면서, 훈장이란 훈장을 모조리 쓸어 버리겠다는 터무니없는 목표가.
**
김민준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3일 뒤에야 알려졌다.
“김민준 중… 아니, 소위님! 훈장을 받으시는 겁니까?”
“승격 시험은 당연히 합격하실 줄 알았는데, 훈장까지 받게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다 훈장도 충무 무공 훈장 아닙니까? 그거, 헌터군은 순수 금으로 만든 걸 준답니다.”
“와… 무슨 훈장이 표창장도 아니고. 그걸 복무 1년 차도 안 돼서 받으신 겁니까? 말이 안 나옵니다….”
그날 아침.
부대는 그야말로 난리였다.
생활관에서부터, 연병장으로 향하는 길까지 헌터들이 달라붙어 왔다.
“김민준 소위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훈장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대박이십니다!”
“부대 전체 회식 한번 시켜 주십쇼!”
중사에서 소위로의 2계급 특진.
이것만 해도 헌터군의 새로운 역사를 쓴 수준이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훈장까지 받게 될 줄이야.
같은 부대원들인 헌터들이 뿌듯함을 느낄 정도였다.
“부대 차렷!”
“사단장님을 향하여! 경례!”
“충! 성!”
소란스러운 한순간이 지나가고, 진급식 및 훈장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은 당연히 김민준.
‘뭐야. 카메라들이 왜 저렇게 많아?’
지난번 진급식과 다르게 뭔가 호화롭다.
줄줄이 늘어진 카메라들.
거기에, 뭔가 높으신 것 같은 분들까지 눈에 들어온다.
겉으로 티는 안 나지만 신경을 쓴 것 같은, 그럼 느낌?
훈장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나라를 위해, 그리고 국민을 위해 힘내 주는 헌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한다.”
이어진 두석용 소장의 짧은 훈화.
특별한 자리인 만큼, 사단장이 직접 훈장 수여를 하게 되었다.
“충! 성!”
“충성.”
절제된 동작과 발걸음으로 단상 앞에 가서 섰다.
본래는 별 감흥이 없었을 테지만, 김민준의 눈은 흥미로 빛나고 있었다.
‘충무 무공 훈장. 과연 얼마나 멋있을까.’
포상금이니, 휴가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껏 모아 둔 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고, 쌓아 둔 휴가도 많다.
“본 헌터는 그동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던전 공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각종 위기 상황을 훌륭하게 극복해 냈다. 특히, 전우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느릿느릿한 사단장의 말이 이어진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훈장부터 줘요, 훈장!’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김민준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이에, 김민준 소위에게는 충무 무공 훈장을 수여한다.”
소위 계급장이 먼저 달리고, 이어서 충무 무공 훈장이 가슴팍에 달렸다.
짝짝짝짝짝.
동시에 커다란 박수 소리가 연병장을 가득 채웠다.
‘소위 계급장에, 사단장이 직접 달아 주는 충무 무공 훈장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눈을 멀게 할 정도로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지지만, 오늘만큼은 상관없었다.
그만큼 기분 좋은 날이었다.
“김민준 소위.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 주기 바란다.”
“소위 김민준! 예! 알겠습니다!”
사단장과 악수를 나누고, 단상 위에서 내려왔다.
일부러,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이 멋있는 훈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 반.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 반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어우. 넌 왜 그렇게 멋있냐?’
가슴에 달린 훈장.
실적 점수니 진급 점수나 이런 것들을 다 제쳐 두고, 훈장을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다.
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받지는 못하는, 명예로운 일이었으니까.
“와아아아아아!”
“축하드립니다!”
“김민준 소위님! 축하드립니다!”
수여식이 끝나고 사단장이 부대 밖으로 나가자마자, 헌터들이 미친 듯이 달라붙었다.
그것도 대대 단위로.
마치 몬스터 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야. 내 훈장 건들지 마라. 손모가지 날아간다!”
“에이, 뭐 어떠십니까. 구경만 하겠습니다.”
“만지지 말고 보기만 해라. 죽는다.”
“와 씨. 훈장 멋있는 거 봐라.”
이후에 일과 시간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달라붙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오늘 김민준이 받은 훈장의 여파는 대단했다.
소위로 특별 진급한 게 덤인 수준이었다.
“김민준 소위님. 특별 진급 및, 훈장 받으신 것 축하드립니다. 부대원들은 제가 나중에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부대원이 떨어지고 나서야 김서현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얘는 또 울었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걸 보면, 뻔하지.
내가 훈장 받는 거 보고 울었겠지.
얘도 은근 울보라니까.
“이렇게 좋은 날 애들을 혼내겠다고? 그건 안 되지. 너 나한테 먼저 혼나야겠다.”
“네, 네?”
김민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헤집었다.
장난기를 가득 담아서.
기분이 좋은 날, 가끔씩 보여 주곤 했던 행동이었다.
“별다른 일은 없고?”
“네? 네….”
“그래. 너도 내 옆에서 일하려면 열심히 계급 올려야겠네.”
우우웅.
피식 웃던 사이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누군가 싶어 확인해 보니, 이유나였다.
진급을 축하한다는 말과, 자신 역시 승격 시험에 합격에 소위를 달게 되었다는 말까지.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유독 김민준의 까톡에만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김민준 소위님? 그건….”
“아, 얘? 이유나라고, 승격 시험 칠 때 친해졌지. 얘가 던파를 되게 좋아하더라고.”
“그, 그렇습니까?”
“그래. 장교 양성 교육 끝나고는 내가 있는 부대로 오려 하더라고. 나야 게임 같이할 사람 늘어서 좋지만.”
이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며 멀어지는 김민준.
조금 전까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던 김서현은, 이유나라는 말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이면 저게….’
걸핏하면 거짓된 예언을 보여 주는 변덕쟁이 마안의 예언이, 딱 맞아떨어졌기에.
**
자신이 소위로 특별 진급한 것과 동시에, 충무 무공 훈장까지 받았다.
같은 부대원들이 이 일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마셔라!”
“오늘은 마시고 죽자!”
“부어! 더 부어! 제일 비싼 술만 추가로 시켜!”
“폭탄주 말아! 독한 거로!”
특히, 분대원들은 휴가 일정을 맞추기까지 했다.
김민준의 축하와….
“야. 남자가 그렇게 기가 죽어 있어서 되냐?”
“시원하게 원샷 때리고 잊어버려!”
이승호 병장의 위로를 겸해서.
“…후우.”
이승호 병장은 술을 들이켜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준과는 달리, 그는 하사 승격 시험에서 떨어졌다.
장교 승격 시험이 강화된 것처럼 하사 승격 시험 역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작년 같았으면 무난하게 붙었겠지만, 마력검 항목까지 더해진 승격 시험은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이대로 장기 복무를 해야 하나.’
상사까지 무난하게 올라가려면 하사 승격 시험은 한 번에 통과해야 한다.
정년까지 남은 복무 기간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저 눈앞에 훈장을 달고 있는 괴물이야, 당연히 예외였지만.
‘저 괴물은 진짜 인간 맞나?’
사격이면 사격.
작업이면 작업.
던전 공략이면 던전 공략.
훈련이면 훈련.
뭣 하나 못 하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 같으면 질투심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김민준 소위님에게는 그런 생각이 1도 들지 않았다.
‘저 사람을 질투한다고? 그럼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지.’
압도적인 실력과 실적.
그리고 계급까지 달고 있음에도, 거만하지 않다.
부대원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무턱대고 꾸짖지 않는다.
부족한 점이 뭔지 알려 주고, 메꿔 주기까지 한다.
개인 시간을 빼내면서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풀어 주지도 않고.’
군대란 그렇다.
너무 조여도 문제고 풀어 줘도 문제가 발생한다.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김민준은 선임으로서 그런 역할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그 결과로, 부대 내의 헌터들은 김민준 소위님을 존경하고 있고.
“야. 이승호.”
“병장 이승호.”
“뭐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풀이 죽어 있냐? 승격 시험 한 번 떨어진 거 가지고.”
“아슬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압도적으로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그럼 내년 시험에는 압도적으로 붙으면 되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김민준.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서라도 도와줄 테니 언제든지 말만 하라며 씨익 웃는다.
그 모습에, 이승호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년에 압도적으로 붙을 정도면, 저 훈련받다가 죽는 거 아닙니까?”
“그건 내가 기가 막히게 조절해 줄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러니 그를 질투할 수가 있을까.
이승호는 이대로 전역하지 않고, 장기 복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얘들아! 그것보다 이 영롱한 황금빛 보이냐?”
그날.
2분대원들은 김민준의 훈장 자랑을 귀가 닳도록 들어야 했다.
**
제대로 된 소위 계급장을 달 때가 왔다.
물론 지금도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다.
헌터 장교 양성 교육을 받아야 정식으로 소위가 된다.
“요 녀석을 놔두고 갈 순 없지.”
가슴팍에 훈장을 달고, 헌터 본부로 향했다.
양성 교육을 마치고 나면 2대대 2중대 2소대를 맡게 된다.
김철민 중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리를 뺏는 것 같지만, 김철민 중위는 3대대 3중대 3소대를 맡게 되었다.
앞으로 마주칠 일이야 잘 없겠지만, 시간이 나면 술이라도 한잔 사 드려야겠네.
나한테 이것저것 신경 써 주시기도 했으니.
“응? 저것들은 또 뭐냐?”
김민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헌터 본부의 위병소 입구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