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소위로 간다-3
시험이 시작된 지 고작 5분째에, 벌써 만점 기준인 철구 50개를 베어 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네 등분으로.
그러나.
그는 이미 만점 기준을 충족했는데도 불구하고, 멈출 기미가 없었다.
매뉴얼대로 100개가 넘는 철구를 일렬로 세워 뒀는데, 그것까지 모조리 베어 낼 기세였다.
“아니, 잠깐만. 저게 말이 되나?”
“오러의 강도를 저렇게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체력이 좋은 건 알고 있었는데 마력검 숙련도가 저렇게 높았나?”
이 자리에 있는 시험관들 중, 저 철구를 연속으로 100개 베어 낼 수 있는 헌터는 없을 것이다.
이등분도 힘든데, 사 등분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러의 강도를 일정 수준으로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그건 숙련된 시험관이라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 저번에 기본 검술 등급이 올라서 그런가? 자로 잰 것처럼 잘 잘리는데?’
김민준은 깔끔하게 잘리는 철구를 보고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됐다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긴 한데, 제대로 안 들렸으니 그대로 계속 베어 내기로 했다.
‘101. 102… 에이 씨. 이게 끝이야?’
베는 속도가 느려지기는커녕 더욱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102개에 해당하는 훈련용 철구를 베어 냈는데도 시간이 남아돌았다.
“응?”
다수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 보니, 시험관이든 시험생들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경악하고 있었다.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듯한 표정들이었다.
“66번 시험생. 시험관이 그만하라는 소리 안 들렸나?”
“예. 너무 집중하다 보니 못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그래. 딱히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잘했지.”
시험관은 철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 등분.
눈에 들어오는 철구가, 일정한 간격으로 사 등분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뭐라고 해야 할까.
예술의 경지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훈련을 얼마나 했으면 마력검을 저 정도로 다룰 수 있는 건지.’
사실 마력검은 김민준의 장난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시험관이 알 리 없었다.
“66번 시험생, 102개! 통과! 77번 시험생, 45개! 통과! 55번 시험생, 38개! 탈락!”
김민준은 만점을 넘어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했다.
같이 시험을 치른 이유나 역시, 비교적 여유로운 성적으로 통과했다.
“이대로 같이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같이 파이팅해요. 그것보다 마력검 되게 잘 다루시네요.”
자리로 돌아가면서 이유나가 남은 시험도 잘해 보자며 윙크를 날렸다.
현재까지 남은 시험생들 중, 여성은 이유나 단 한 명.
그렇다 보니 남성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아. 마력검보다 채찍을 쓰고 싶은데. 손이 근질거려 죽겠네.’
정작 그 윙크를 받은 김민준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다들 주목!”
“주목!”
해당 시험을 끝낸 뒤 바로 다음 시험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개인의 기량을 측정하도록 하겠다! 그 뒤는 조를 나누어, 상황 대처 능력을 보겠다!”
지금까지는 단순한 스텟을 시험해 보았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투 능력을 시험해 보겠단다.
“병사와 간부의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전반적인 힘과 전투 능력에 있어 간부가 앞섭니다. 또한, 간부는 병사들을 이끌어야 하기에 높은 상황 판단 능력도 요구됩니다.”
무심코 던지는 듯한 질문.
그 질문을 듣자마자, 김민준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답이었다.
“그렇다. 간부가 무너지면, 따라오는 병사들도 같이 무너지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시험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언뜻 봐도 수백 마리는 될 듯한 몬스터들이 괴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무워어어어어어!”
“우어어어어!”
병사들에게 흑우라고 불리는 몬스터, 다크 카우였다.
보통 소의 외형을 가진 몬스터들은 사족 보행을 한다.
그러나, 다크 카우는 사람들처럼 이족 보행을 한다.
덩치도 다른 놈들에 비해 몇 배는 크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저 불끈거리는 근육을 보면 힘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부터 시험생들은 다크 카우를 상대하게 될 건데, 마력검을 사용하지 않고 3마리를 쓰러트려야 합격이다.”
시험생에게 주어지는 건 다양한 종류의 군용 무기와, 마나건 하나.
꿀꺽.
설명을 듣던 시험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중급 몬스터에게 단신으로 맞선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다만, 고작 일반 무기와 마나건을 사용해 3마리를 처치해야 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와 씨. 이번 시험 난이도 왜 이래? 미친 거 아니야?’
‘아니. 이런 식으로 시험 치면 헌터 후보생 대부분이 떨어질 건데.’
갑자기 수직 상승한 시험 난이도에, 얼마 남지 않은 사관학교 후보생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는데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되었으니.
“개인 기량을 측정할 때는 지급되는 무기만 사용하겠지만, 상황 판단 능력을 시험할 때는 기존에 사용하던 무기도 상관없다.”
형식적인 설명이 끝나고 기량 측정이 시작되었다.
“무어어어어!”
시험생 한 명이 자리를 잡자마자 철장 안에서 날뛰던 소 세 마리가 뛰쳐나왔다.
“이런 미친! 세 마리가 한 번에!”
한 마리씩 차례대로 나올 거라 예상했던 시험생은, 3분도 못 버티고 시험장 밖으로 들려 나갔다.
“어우.”
“되게 아프겠네.”
보호 슈트를 착용하고 있어 크게 다치진 않겠지만, 순간적으로 전해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338번 시험생! 탈락!”
“330번 시험생! 탈락!”
“332번 시험생! 탈락!”
탈락자들이 다시 한번 무더기로 속출했다.
중급 몬스터 3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훈련용으로 약물이 투여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상대는 다크 카우다.
무식한 힘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놈들이라, 약점을 잘 공략해야 했다.
‘오. 쟤는 마나건 활용 잘하네.’
그동안 차례를 기다리며 하품하던 김민준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이유나라고 했었나.
마나건으로 다크 카우의 약점인 눈을 정확하게 적중시켜 시력을 빼앗았다.
‘놈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약점을 공략한다라.’
사격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역시 재능 있는 놈들은 다르다니까.’
자신 역시 저 정도는 그냥 할 수 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스가르드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열악한 환경.
걸핏하면 총알이 걸려 발사가 안 되는 엿 같은 총.
그런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방아쇠를 몇 번이나 당겼던가.
“다음! 66번 시험생!”
과거 회상에 젖어 있던 사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다.
‘무기 선택에 제한은 없는데… 한 번에 몇 개씩 들고 있으면 폼이 안 나지.’
두 번째 시험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전에 손 좀 풀 겸, 채찍을 골랐다.
“채찍?”
“저걸로 몬스터를 죽인다고? 다크 카우를?”
다들 이해가 안 되는 눈으로 쳐다본다.
시험관도 마찬가지.
당연한 현상이다.
같은 부대에 있던 헌터들 역시, 처음에는 저런 반응을 보였으니.
‘그럼 어디 묘기 좀 부려 볼까.’
철창이 열리고 다크 카우 3마리가 다짜고짜 돌진해 왔다.
모든 시험생들이 처음 몇 분은 회피에만 집중했지만, 김민준은 달랐다.
휘익!
달려오는 놈들의 다리에 채찍을 감은 뒤, 한쪽으로 패대기친 것이다.
“무워억!”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러면 어쩌나.”
균형을 잃어 넘어진 놈들을 향해 연이어 채찍을 휘둘렀다.
[고통의 채찍질 효과가 적용됩니다.]
[피해가 증폭됩니다.]
현재 김민준이 가진 완력과 채찍 숙련도만 해도, 몬스터들에게는 재앙이다.
꾸준히 성장시켜온 힘 스텟만 해도 무려 86.
작정하고 온 힘을 실어 때린다면, 다크 카우가 풍선처럼 터져 나갈 정도다.
거기에 더해 고통과 입는 피해를 증폭시켜 주는 스킬까지 있다.
다크 카우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워어어어억!”
“우워어어억!”
힘을 꽤 빼고 때렸는데도, 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했다.
그것도, 거품을 문 채로 말이다.
“어, 어어… 66번 시험생. 통과!”
고작 1분.
김민준은 시험생들이 평균 20분 동안 쩔쩔매던 몬스터를 고작 1분 만에 때려눕혔다.
아주 깔끔하게.
“…….”
“뭐지. 그냥 살살 때린 거 같은데 왜 저놈들 기절하냐?”
“야. 다크 카우가 살살 때린다고 저렇게 아파하겠냐?”
“난 저놈이 기절하는 것도 처음 봤다.”
직접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지 연신 눈만 끔뻑이는 시험생들.
‘에이 씨. 뭐야? 3대밖에 안 때렸는데?’
정작 본인은 힘 조절에 실패해, 아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바로 다음 시험으로 넘어간다!”
시험이 계속 진행되고, 현재까지 남은 인원은 40명.
승격 시험 3일 차의 마지막 시험인 상황 판단 항목이 시작되었다.
시험생들은 4명씩 1조를 이루어,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오. 뭔가 엄청난 거라도 나오나?’
이전에 비해, 안전 감독을 하는 시험관들이 배로 늘어났다.
강력한 몬스터라도 꺼내려는 걸까.
“1조! 바로 들어가서 준비하도록!”
바로 1조에 배치받게 된 김민준은, 다른 조원들과 해당 위치로 이동했다.
“상황 판단 능력은 아까보다 강력하거나, 특수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가 나올 겁니다. 일단 어떤 놈이 나오는지부터 살펴보죠.”
이번으로만 3번째 시험을 치른다는 후보생.
그의 믿을 만한 브리핑과 함께, 다들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거대한 철장이 열리며, 몬스터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시험생들이 이전에 상대했던 다크 카우였지만, 덩치가 3배 이상 컸다.
약물로 강화한 개체였다.
“무워어어억!”
놈은 다짜고짜 괴성을 지으며 시험생을 잡아채려 했다.
덩치는 거대한데, 움직임은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보다 훨씬 빨랐다.
“이런 미친!”
“숙여요!”
다들 기겁하며 놈의 손을 피했지만, 곧바로 후속타가 날아왔다.
‘가만히 두면 2명이 맞겠는데.’
적당히 상황을 지켜보던 김민준이 움직였다.
휘익!
채찍을 로프처럼 사용해, 시험생들을 자신의 근처로 끌어당긴 것이다.
덕분에 다크 카우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어때요. 저놈 쓰러트릴 수 있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저건 도저히 무리 같습니다….’
협력 방면에서도 점수를 매기기 때문에 되도록 협력을 하려 했다.
그러나, 저 몬스터의 수준은 예상보다 높아 보였다.
‘그럼 저 혼자 저놈 쓰러트려도 되죠?’
‘네?’
‘잠깐만요. 저 몬스터는….’
조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
김민준은 이미 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야! 못생긴 새끼야! 이쪽 봐! 이쪽!”
“무워어어!”
“너네 아버지 뭐 하시냐? 그렇게 아무나 막 때려도 된다고 가르쳤어? 어?”
도발을 하며 어그로를 이쪽으로 향하게 한 뒤.
품에서 비장의 채찍을 꺼냈다.
‘드디어 이걸 사용할 때가 왔다.’
정확히는 심연을 머금은 어둠.
시험관의 허락도 받았겠다, 마침 눈앞에 딱 좋은 실험 대상이 있었다.
휘익!
‘효과가 얼마나 먹히는지 한번 볼까!’
검은색을 띠는 채찍을 휘둘러 놈의 목을 휘감았다.
심연을 머금은 어둠의 특수 효과, 속박.
과연 얼마나 강한 속박력을 자랑할까.
“무, 무어어어어!”
그렇게 기대감을 품고 기다리던 찰나.
“응?”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