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소위로 간다-2
다른 시험생들에 비해 여유로운 표정의 여후보생이었다.
‘이야. 다른 여후보생들은 다 나가떨어졌는데, 쟤는 멀쩡하네.’
400명이 넘는 응시 인원 중.
첫 번째 시험 항목으로만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떨어졌다.
원래 이런 식으로 시험을 치르나 싶었는데, 장교 승격 시험은 매년 시험 방식이 바뀐다고 한다.
형식이 정해져 있는 병사 진급 시험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 정도면 뭐. 5%는 붙으려나 모르겠네.’
생각했던 것보다 강도가 높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여후보생 한 명이 자신 옆으로 붙었다.
“안녕하세요.”
조금 전, 잠시 쳐다보았던 여후보생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김민준 씨 맞으시죠? 전 이유나라고 해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성깔 있어 보이는 손은서와는 달리 착해 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외모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손은서와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정도?
“그런데 저 아세요?”
“알고 말고요!”
손을 맞잡고 적당히 흔들어 주니, 이유나가 환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이전에 춘천에서 민간인 구하신 거요. 그때 엄청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거 말고도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기억이 남는 건 가스형 게이트가 터졌을 때! 그때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피신시키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실적을 나열했다.
이전에 민간인을 구했을 때부터 팬이 되었단다.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에 대해 이리저리 찾아보았다나.
“아! 죄송해요. 너무 제 말만 했네요.”
곧 시험관의 시선을 느끼고, 배시시 웃었다.
“잡담해도 상관없어요. 그러라는 지시는 없었으니까요. 시험관님. 대화 좀 나눠도 괜찮습니까?”
마침 지루하던 찰나라, 말 좀 섞기로 했다.
성격이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음… 그래. 상관없다.”
시험관은 둘을 번갈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시험생들이 말을 안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숨을 쉬기도 힘든데, 말을 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두 명의 시험생은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 대화를 나눴다.
‘김민준 중사야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저 후보생도 체력이 뛰어나군.’
이번 승격 시험 강도는 상당히 높다.
후보생들은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나을 정도.
지금까지 후보생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보면, 그렇다.
‘허… 그런데 김민준 중사 쪽은 너무 여유로운데. 괴물 같은 체력이잖아.’
김민준 중사는 2시간이 넘도록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채 달렸는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상태.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던 시험관이, 처음으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1차 시험은 이것으로 종료한다!”
시험관이 종료라는 말을 뱉은 건 정확히 3시간째.
그동안 자리에 남은 시험생들은 190여 명 정도였다.
“겨우 1차 시험에서 절반이나 넘게 떨어져? 너희들은 장교가 우습냐? 소위 다는 게 우스워?”
“허억… 헉! 아닙니다!”
“아닙니다아!”
시험관 1명이 짐짓 화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절반 이상의 시험생이 떨어지는 건 예정된 결과였다.
그래도, 이곳이 어디인가.
군대다.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하면 더 욕을 먹는 곳 말이다.
“다들 엎드려뻗쳐!”
“엎드려뻗쳐!”
“하나 하면 체력을. 둘 하면 키우자. 하나!”
“체력을!”
“둘!”
“키우자!”
“내려가! 더 내려가라고! 탈락 처리되고 싶어?”
시험관들 중, 대위의 직책을 가진 장교는 시험생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틈만 보이면 어떻게든 굴리려고 했다.
“이곳은 너희들의 체력을 길러 주는 곳이 아니다! 철저한 선별 과정을 거쳐 장교를 선발하는 곳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당연히 김민준도 시험생들과 같이 기합을 받아야 했지만, 그는 예외였다.
‘뭐냐. 은근히 잘해 주는 것 같은데?’
열외된 그는 한쪽 구석에 앉아, 기합을 받는 시험생들을 구경했다.
위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왔는지, 시험관 한 명이 무심한 척 물까지 챙겨 주었다.
‘센스 있게 얼음도 동동 띄워 주네.’
물 한잔을 다 비울 때쯤, 기합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시험생들은 그제야 살았다는 표정으로 장비들을 벗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바닥에 대자로 뻗은 시험생들.
얼마나 지쳤으면, 벌써 잠에 빠진 시험생도 있을 정도였다.
‘1차 시험에 절반 가까이 탈락이라.’
승격 시험이 시작된 지 이제 3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과연, 이대로 가면 4박 5일 동안 몇 명의 시험생들이 소위를 달 수 있을까.
“아니. 하… 위쪽에서 승격 시험 강도를 높이라고 한 건 알고 있었는데, 왜 하필 내가 칠 때 적용이냐고….”
“작년에 어떻게 해서든지 붙었어야 했다. 이번 시험 체감 난이도가 3배는 더 높다.”
“거기다 이번 승격 시험부터는 마력검 숙련도까지 보잖아.”
“불 시험이네, 불 시험.”
주변에서 조용히 불평을 뱉는 시험생들.
그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이번 승격 시험의 난이도가 확 뛰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저번처럼 전 항목 1등 하면 뭐라도 주지 않을까?’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의 시험에, 김민준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갔다.
즐겁다.
지금까지는 설렁설렁, 적당히 해도 상관이 없었다면.
지금부터는 약간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만점을 받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그게 뭔 차이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자신에게 있어서는 큰 차이였다.
‘2차 시험은 뭘까.’
되도록 많은 시험을 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시험을 기다렸다.
**
1차 시험은 무식한 체력을 요구했다면, 2차 시험은 무식한 체력과 함께 민첩성까지 요구했다.
시험생들은 시험관들을 등에 짊어진 채, 정해진 거리를 일정 시간 안으로 돌파해야 했다.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달려야 순조롭게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거리였다.
“3번 시험생, 탈락!”
“2번 시험생, 탈락!”
설명만 들어 보면 1차 시험보다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2차 시험 역시, 시험관이 종료라는 말을 뱉기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
“몇 초 나왔습니까?”
“…48초 나왔다.”
“다음번에는 1초 더 단축시켜 보겠습니다.”
“어, 어어… 그래.”
지옥 같은 스텟 평가에 시험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고.
그러나, 김민준은 시험을 반복할수록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오죽했으면 시험관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와… 저 사람, 김민준 중사 맞지? 무적 헌터 부대에서 복무하는 헌터.”
“미쳤네. 3분 안에 들어오면 만점인 걸 1분 안으로 끊어 버린다고?”
“야. 저거 심지어 5번째다. 시험관들도 어이없어하는 거 봐라.”
“진짜 체력 하나는 미쳤네.”
1차 시험에 이어 2차 시험까지 압도적인 결과를 내자, 그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장교 승격 시험에서 평가 점수 만점을 받는 헌터들은 거의 없다.
현재 별을 단 장성들이 만점을 몇 번 받았다고는 듣긴 했는데… 그것도 옛날 기준일 뿐.
강화된 승격 시험이라면,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후우. 우리나 잘하자.”
“제발 이번을 마지막으로 끝나라. 제발.”
시험생들은 곧 잡념을 버리고, 시험에 집중했다.
**
승격 시험 첫째 날과 둘째 날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시험관들은 시험생들을 죽으라는 듯이 굴려 댔다.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이어지는 시험들.
이름만 시험이지, 알맹이는 지옥 훈련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로 왕복 오래달리기를 한다든가.
시험관이 그만이라는 말을 할 때까지 파워 슈트를 입은 채로 팔 굽혀 펴기를 한다든가.
아니면 레드 스톤을 지정한 장소까지 이동시켜야 한다던가.
“지금까지 몇 명 남았나?”
“예! 지금까지 남은 인원수는 61명입니다!”
그런 무식한 시험들 덕분에, 400명이 넘는 인원이 쫙쫙 갈려 나갔다.
이제 시험 3일 차를 시작했는데 말이다.
“음.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오늘은 새롭게 추가된 항목인, 마력검 숙련도를 확인하겠다.”
시험생들 앞으로 군용 마력검이 하나씩 지급되었다.
마력검을 받아 들자 시험생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어떤 기상천외한 것을 요구할지 알 수 없었기에.
“자. 시험생들은 전방에 보이는 훈련용 철구를 주목할 수 있도록 한다.”
시험관이 가리킨 곳.
100m쯤 떨어진 지점에는, 훈련용 철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지금부터 시험생들은 훈련용 철구를 하나씩 베어 낼 수 있도록 한다.”
인당 철구 40개를 베어 내지 못하면 탈락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오. 저건 내가 부대에서 베던 거보다 더 튼튼한 거 같은데?’
김민준은 철구의 내구성을 확인하자 손이 근질거렸다.
오러를 최대한으로 둘러, 힘껏 휘두르면 저 많은 철구를 한 번에 얼마나 베어 낼 수 있을까.
물론 하나씩 베어야 한다는 말에 실행으로는 옮기지 않았다.
저만한 훈련용 철구를 다시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기에.
“앞에서부터 3명씩 나올 수 있도록!”
“예!”
간단한 설명을 끝으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험생들은 호루라기가 울리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철구를 베어 내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마치 무를 써는 것처럼 쉽게 이등분 되는 철구들.
확실히 병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마력검 오러의 지속력이었다.
티잉!
“큭!”
“어우….”
처음 10개째는 기세 좋게 베어 나갔다면, 20개째부터는 오러의 강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숙련도보다는, 체력의 문제였다.
마력검의 오러는 생각 이상으로 체력을 잡아먹었으니까.
“111번 시험생, 탈락!”
“113번 시험생, 탈락!”
역시나 시험생들이 갈려 나갔다.
앞에서 시험을 치른 조들 중 절반 가까이가 탈락한 상태.
“다음! 12조!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김민준의 차례가 왔다.
“잘해 봐요. 파이팅.”
같은 조가 된 이유나가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잔뜩 긴장한 다른 조원 1명과는 달리, 여유로워 보였다.
“네. 그쪽도요.”
적당히 대답해 주고, 훈련용 철구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현재 김민준의 관심은 철구에 가 있는 상태.
‘과연. 몇 개나 베어 낼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은 20분.
그 안에, 저 많은 철구들을 베어 보고 싶었다.
50개만 베어 내도 만점이다.
하나, 그것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리 없다.
‘모처럼 마력검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데, 이럴 때 즐겨야지!’
시험관들이 철구들을 일렬로 배치한 뒤.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어디 한번 가 보자!’
기세 좋게 오러를 두른 뒤, 철구를 하나씩 베어 나갔다.
그냥 이등분해 버리면 너무 쉬우니, 자체적으로 난도를 살짝 높였다.
철구를 사 등분해 버리는 것으로 말이다.
스각! 서걱!
능숙한 동작으로 철구를 베며, 앞으로 이동하는 김민준.
시험관 몇 명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놈 뭐 하냐?”
“오러를 효율적으로 써야 되는데, 굳이 저렇게 낭비한다고?”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그렇지. 저대로면 20개째에서 끝일걸?”
그냥 이등분만 해도 충분한데, 오러를 더 사용해 굳이 네 조각으로 분리해 버렸으니까.
“응?”
“워….”
“뭐야?”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