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소위로 간다-1
[심연을 머금은 어둠]
사용자에게 가장 적합한 무기의 형태로 고정됩니다.
무기에 담긴 어둠을 이용해, 적을 일정 시간 속박시킬 수 있습니다.
소모된 어둠은 충전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용자에게 해를 입힙니다.
“워우. 이게 도대체 뭐야?”
헌터 본부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입수하지 못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연을 머금은 어둠이라….”
아이템 이름하고는.
게임 아이템에도 저런 유치한 이름은 안 붙이겠다.
“일단 사용해 봐야 알겠지.”
아이템을 손위에 가만히 올려 두었다.
겉보기에는 흐물거리는 검은 젤리 같다.
“오.”
3분 정도 기다렸을까.
아이템이 살아 있는 듯이 움직이며 자신의 팔을 감쌌다.
잡아먹으려는 듯이 말이다.
“나대지 마라. 감히 내 팔을 깨물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젤리에게 딱밤을 날려 주었다.
아이템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만.
“얌전히 내 말 들을래, 아니면 부서질 때까지 맞을래?”
꾸물꾸물.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놈은 흐물거리며 채찍 형태로 변했다.
[심연을 머금은 어둠이 사용자에게 공포를 느꼈습니다.]
[심연을 머금은 어둠이 사용자에게 귀속됩니다.]
[무기의 형태가 채찍으로 고정됩니다.]
“그러게 처음부터 말 잘 듣지 그랬냐.”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채찍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오….”
마치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처럼, 손에 착착 감겼다.
지금까지 잡아 본 채찍 중 가장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였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수준인데, 길이 조절까지 가능했다.
“이야.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좀 하네.”
길이 조절이 가능한 채찍이라니.
이세계에서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야. 너 이거랑 똑같이 변할 수 있냐? 여기 있는 헌터군 인증 마크 있지? 이것만 그대로 따라 해 봐.”
이전에 쓰던 채찍을 꺼내, 녀석에게 헌터군 문양을 보여 주었다.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헌터군의 소유다.
그게 아니더라도, 부대에서 사용하려면 검수 과정을 거쳐 인증 마크를 발급받아야 했고.
여러모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말이다.
아이템을 대놓고 사용하려면 이 방법이 최고였다.
“완전 똑같은데. 좋네.”
만족스럽게 웃으며, 채찍을 품 안에 넣었다.
기본적인 기능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아이템 자체의 특수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헌터군 기준으로 등급을 매긴다면, 심연을 머금은 어둠은 과연 어떤 등급을 받게 될까.
최소 B.
잘하면 A까지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거야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 알겠지.”
다음 던전 공략은 언제일까.
손이 근질거리는데, 지금 당장 휴가를 신청해서 던전에 들어갈까.
그렇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스마트폰이 울렸다.
김철민 중위였다.
“충성! 중사 김민준입니다!”
-민준아! 몸은 좀 괜찮냐?
“예. 내일 당장 던전에 들어가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네가 말하니까 농담처럼 들리지가 않네. 그것보다, 너 소위 진급 확정된 거 알지?
뭔가 싶었더니, 내일 당장 교육받으러 갈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었다.
-교육 기간은 6주다. 승격 시험 포함해서. 넌 이미 승격 시험 통과 확정인데, 위쪽에서 형식적으로만 참가해 달라고 하더라.
“예.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그냥 놀러 온다는 생각으로 다녀와도 될 거다. 위로 올라가려면 인맥도 중요한 거 알지? 나중에 대위 달고 나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제가 병사 때부터 잘 챙겨 주셨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얼마 전, 대대장이 자신의 줄을 잡고 싶다고 부탁해 온 걸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순간 장난기가 솟아났지만, 자제하기로 했다.
김민준은 짧은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생활관으로 향했다.
드디어 다이아를 다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
다음 날.
김민준은 다수의 병장들과 함께 헌터 본부로 향했다.
병장들 대부분이 긴장감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상태.
뭔가 싶었더니, 오늘이 바로 병사들의 간부 승격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란다.
자신이야 이미 소위로 승격이 확정이지만, 병장들은 그게 아니니 긴장할 수밖에.
간부 승격 시험 합격 여부를 기준으로, 장기 복무를 할 건지 병장에서 전역할 건지를 정한다고 했다.
‘하긴. 병사와 간부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긴 하지.’
헌터군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직업이니만큼, 대우가 좋다.
물론 일반군도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간부가 된다면 그 대우가 몇 배는 좋아진다.
중사를 단 자신이 직접 체감해 봤을 때는 그랬다.
‘헌터 연금도 그렇지. 병사 연금이랑 간부 연금이랑 차이가 좀 나는 편이니까.’
시간이 지니고.
인솔 간부가 병장들을 본부 안으로 데려다준 뒤, 부대를 떠났다.
“얌마. 너 왜 이렇게 긴장했냐?”
마침 근처에 있는 이승호 병장의 어깨를 툭 쳤다.
몸이 딱딱하게 굳은 게, 어지간히 긴장한 듯했다.
“병장 이승호.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기는 임마. 손이 덜덜 떨리는데.”
“제가 수전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구라 칠래? 너랑 같은 생활관 쓴 지가 몇 달짼데.”
녀석의 등 뒤로 가, 어깨와 목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평소 하던 대로만 해도 붙을 거다. 내가 우리 분대 애들은 좀 신경 썼거든.”
“그래도 승격 시험은 합격률이 10%도 안 되지 않습니까.”
“네가 웬일로 약한 소리를 다 하냐? 떨어지게 되더라도 다음 승격 시험에 무조건 붙게 해 줄 테니까, 열심히 해 봐. 손은서는 나랑 던전에 갇힌 거 때문에, 내년에 시험 응시한다더라. 걔랑 같이 세트로 훈련 시켜 주지 뭐.”
“…잘 못 들었습니다?”
“아. 난 저쪽이네. 간다.”
태평하게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김민준.
이승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승격 시험에 붙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승격 시험에서 떨어지면 내년까지 지옥일 터였기에.
[2020년 헌터 승격 시험]
거대한 모니터 위로 번쩍거리는 글자들.
헌터군의 심장부 같은 곳이다 보니, 시선을 돌려 보면 거대한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야. 나중에 별을 달면 이런 곳에서 근무하는 건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무적 헌터 부대는 시골 같은 느낌이다.
반면, 헌터 본부는 서울의 강남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 보고 차원에서 왔을 때는 워낙 급하게 움직이다 보니, 느긋하게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승격 시험 응시자들은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고, 합격자들은 따로 선발해 이곳에서 교육을 실시한다.
‘승격 시험은 어떤 걸 치르게 될까.’
자신이야 이미 승격 확정이지만, 호기심이 일었다.
사관학교 후보생들은 얼마나 강할까.
승격 시험을 치르는 간부들은 얼마나 강할까 싶은, 그런 호기심.
‘이왕 즐길 거, 제대로 즐겨 볼까.’
피식 웃으며 시선을 돌려 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간부가 상사였다.
2계급 특진은 웬만해서는 잘 없다.
사실 이게 당연한 광경이었다.
‘쟤네들은 후보생들이겠고.’
승격 시험을 치르는 후보생들은 4학년.
헌터 사관학교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한 후보생들만이, 승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쟤들도 떨긴 떠는구나.’
병사든 간부든 후보생이든 할 것 없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관학교 후보생들은 승격 시험에 떨어지면 재응시 기회가 1번 주어진다.
후보생들만이 가진 특권인 셈이다.
다만, 2번의 시험에 모두 불합격하게 되면 4학년의 교육 과정을 다시 이수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후보생들에게 있어 승격 시험은 수능 시험이나 다를 바 없었다.
“후우… 이거 떨어지면 끝장이다, 진짜….”
“나도. 이번이 2번째 시험인데… 더 긴장된다. 이거 떨어지면 1년 동안 다시 훈련받아야 된다고….”
다들 긴장을 풀며, 장교의 지시에 따라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지금부터 장교 승격 시험을 실시할 건데,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즉시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앞으로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각종 주의 사항을 설명하는 장교.
다른 시험과는 달리, 장교 승격 시험은 지금부터 4박 5일 동안 진행된다.
훈련도 아닌 시험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헌터 기동 훈련이나 혹한기 훈련 같은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고 한다.
김철민 중위가 훈련 중 가끔 그런 말을 중얼거렸으니까.
“지금부터 시험생들은, 여기에 비치되어 있는 장비들을 착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5분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붉은 모자를 쓴 시험관들이 여럿 등장했다.
눈치 빠른 간부와 후보생들은 재빨리 장비들을 착용해 나갔다.
승격 시험은 지금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오. 이거 좀 무거운데?’
김민준은 장비들을 착용하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병사들의 훈련 강도를 높이기 위해 착용하는 건 보통 파워 슈트다.
승격 시험을 치르는 시험생들은 파워 슈트뿐이 아닌, 파워 부츠와 밴드까지 착용해야 했다.
‘이래서 장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체감상, 무게가 300㎏는 훌쩍 넘어가는 듯했다.
이만큼 무게를 달아 놓고 뭘 시키려는 것일까.
“지금부터 시험관들을 따라 던전에 입장합니다. 종료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절대 멈춰서는 안 됩니다. 멈추는 순간 실격입니다.”
간단한 설명을 마치자마자, 시험관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처음은 체력인가. 정석 중의 정석이네.’
시험관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는 시험생들.
김민준은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방식 자체는 일반 병사들이랑 비슷한 거 같긴 하네. 강도는 천지 차이지만.’
이병 때 승급 시험을 치를 때도 분명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다만, 병사 때는 명확한 심사 기준이 있었다.
승격 시험을 치르는 지금은,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들어가서 어떤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 모른다.
멈추는 순간 실격이니 다들 이를 악물고 시험관의 뒤를 따를 뿐.
‘이거 재밌겠는데.’
시험생 중 오직 김민준만이, 즐겁게 웃으며 시험관의 뒤를 따랐다.
**
헉. 허억.
빈 던전 안에서, 시험생들의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진다.
별다른 지시 없이 달린 지 거의 1시간.
병사들이었다면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정도의 시험 강도였다.
“허억… 헉….”
“헤엑! 헥!”
“99번 시험생! 실격입니다!”
1시간이 지나고 처음으로 탈락자가 나왔다.
발걸음을 일시적으로 멈추자마자, 뒤에 따라붙던 시험관이 알아챈 것이다.
‘미친….’
‘진짜 장난 아니잖아….’
봐주는 것은 일절 없었다.
시험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10번 시험생! 실격입니다!”
“21번 시험생! 실격입니다!”
“32번 시험생! 실격입니다!”
2시간쯤 지났을까.
더 이상은 무리였는지, 탈락자가 무더기로 속출했다.
그 대상은 대부분 사관학교 후보생들.
실전 경험을 쌓은 상사들은 대체로 잘 버티고 있었다.
‘역시. 짬은 무시 못 한다니까.’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체력 스텟이 올라갈 정도의 시험 강도.
다이아 달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오… 쟤 뭐냐?’
유독 눈에 띄는 시험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