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줄
“저, 저건 또 뭐냐?”
“트롤의 사체 같습니다만… 뭔 놈의 덩치가….”
몬스터의 사체를 머리 위에 이고 다가오는 헌터.
그 정체는 바로, 김민준 중사였다.
보통 트롤보다 3배 이상 거대한 덩치에, 특이한 피부색.
그 압도적인 광경에 헌터들이 한동안 멍하게 쳐다볼 정도.
“다들 거들지 않고 뭐 해!”
“죄, 죄송합니다!”
구석용 소장의 일갈에 헌터들이 후다닥 달려가 안전을 확보했다.
“충성! 던전 안의 게이트는 처리했습니다! 다만, 이 던전은 초기화형 던전이기에, 앞으로 4분 뒤 아이언 골렘 10마리가 출현합니다!”
트롤의 사체를 내려 두고 태연하게 거수경례를 하는 김민준.
사단장들은 그제야 안도하고 철수 명령을 내렸다.
**
“허, 참. 3일 넘게 갇혀 있었으면 웬만한 장교들도 의식을 잃을 텐데….”
던전 밖.
김민준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던 의무 장교는 기가 찬 듯 웃었다.
그의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정상이었다.
게이트에서 나타난 이레귤러 몬스터를 혼자서 상대했다는데, 긁힌 상처 정도가 전부였고.
“제가 체력에는 자신이 좀 있습니다.”
“이건 체력에 자신 있다고 되는 수준이 아닌데… 정밀 검사는 안 받아도 되겠나?”
“예. 괜찮습니다.”
형식적으로 간단히 체크만 끝낸 뒤,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면 병사나 간부 할 것 없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다.
몬스터 사체를 운반하려는 수송반과, 던전에 다른 이상은 없는지 조사하러 간 조사반.
심각한 얼굴로 무전을 받는 대대장.
사단장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초기화형 던전 근처는 그야말로 정신없는 상황.
‘간부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지.’
김민준은 보고를 위해, 대대장에게 걸어갔다.
게이트가 발생한 던전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사실 조금이라도 빨리 듣고 싶을 것이다.
이럴 때 점수 한 번 따 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김민준 중사! 쉬지 않고 뭐 하나!”
“그냥 들것에 누워 있으라니까 그러네.”
예상대로.
간부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제발 좀 누워 있으라고 부탁해 왔다.
쌩쌩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해 준 뒤, 대대장에게 다가가 경례했다.
“충성!”
“어. 김민준 중사. 몸은? 안 쉬어도 되겠나?”
“예! 멀쩡합니다!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던전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 참…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으면서. 경이로울 정도의 체력이구만.”
말은 그렇게 해 오면서도, 어지간히 보고를 듣고 싶은 듯했다.
저렇게 눈이 반짝거리는 걸 보면.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출현한 건 3일째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던전에 대해 최대한 상세하게 보고해 주었다.
손은서 병장은 훈련 때문에 지쳐 있는 상황이라, 자신이 단독으로 아이언 골렘들을 막아냈다는 점.
게이트에서 출현한 트롤은 초재생 능력.
즉, 특수 능력이 부여된 특이한 이레귤러 몬스터였다는 점.
48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죽는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있었지만, 그동안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단독으로 놈에게 맞섰다는 점까지.
약간의 각색을 거쳐, 훌륭하게 보고를 마쳤다.
“후우… 그래.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만… 더 심각한 상황이었군. 고생이 많았다.”
그동안 묵묵히 보고를 듣던 대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들은 저 내용들은, 대대급의 전투력이 있어도 대처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손은서 병장도 해당 장소에 같이 있었으니.’
김민준 중사가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다른 병사가 방금 같은 보고를 했다면, 당장 욕부터 뱉었을 것이다.
헌터 한 명이 일정 시간마다 생성되는 아이언 골렘을 3일 동안 상대하면서, 이레귤러 몬스터까지 처치한다?
그것도 초재생 능력이 부여된 트롤을?
일반적으로, 아니.
그냥 불가능하다.
‘저 규격 외의 몬스터를 혼자서 처치했다니… 경이로울 정도다.’
곧 대령을 달 자신에게, 혼자서 트롤을 처치하라고 해도 버거울 정도다.
이레귤러도 아닌, 그냥 트롤 말이다.
트롤이라는 몬스터는 그 정도로 위협적인 놈이었다.
‘허, 참.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진급이 되면, 김민준 중사는 진작에 무궁화를 달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저게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나.
“보고는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이제 부대로 복귀해서 휴식을 취하도록.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힘들었을 텐데, 잘해 줬다.”
김민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슥 돌려 손은서를 바라보았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각종 포션을 마시고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지친 듯 보였다.
‘힘들기는요. 쟤가 더 힘들었을 텐데요.’
조용히 그녀를 향해, 따봉을 날려 주었다.
**
다음 날.
부대는 그야말로 난리였다.
“와씨. 김민준 중사님이랑 손은서 병장이 초기화형 던전에서 3일을 버텼다고? 게이트도 처리하고?”
“야. 거기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가 트롤이었는데, 그게 이레귤러 트롤이었다더라. 팔을 베면, 1초도 안 돼서 자라난다던데?”
“미친. 뭐 그런 정신 나간 몬스터가 다 있냐? 그냥 트롤도 재생 속도 미쳐서 죽이기 힘들잖아.”
“그걸 대체 어떻게 죽이셨다냐?”
“그냥 재생하지 않을 때까지 수천 번 베어 냈다던데….”
“…그게 되냐?”
김민준과 손은서가 던전에 고립된 지 3일.
아무 상처도 없이 게이트를 처리하고,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들이 고립된 던전은 그냥 던전도 아니고, 몬스터가 끊임없이 출현하는 초기화형 던전.
던전 안에 게이트만 발생해도 운이 더럽게 없는 수준인데, 하필 그게 초기화형 던전에 발생하다니.
차라리 복권 2등에 당첨될 확률이 더 클 수준이었다.
“와… 마력검을 3일 동안 사용하고도 멀쩡해? 그것도 2세대 마력검이라며? 그거 체력 몇 배는 많이 소모된다던데.”
“도대체 신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먹으신 거지?”
“손은서는 체력 고갈 때문에 전투를 거의 못 했다더라. 이게 정상이지.”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김민준 중사님이 다 하신 거네?”
병사들은 그제야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근 3일 동안 간부들의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 병사들에게는 지옥이었다.
간부들의 눈치를 보느라 오락 시설은 물론이요, PX조차 이용할 수 없는 정도.
혹시라도 크게 다치거나 한 명이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부대는 뒤집힐 것이 뻔했다.
“아. 김민준 중사님한테 궁금한 게 많은데, 하필 이럴 때 자리를 비우셨네.”
“보고 때문에 나가셨을걸.”
“크. 이미 2계급 특진은 확정인데, 여기서 다이아 하나 더 못 얹어 주나?”
“해내신 일만 보면 무궁화도 달 수준인데, 그놈의 헌터군 규정 때문에 2계급 특진이 최대란다.”
“내가 다 아깝네.”
그렇게 부대원들이 던전에 대한 일로 이야기를 나눌 무렵.
김민준은 대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대대장실.
이준범 중령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크게 웃어 댔다.
자칫 잘못했으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졌을 뻔한 일을, 아무 피해 없이 막아냈다.
또한, 그 무서운 이레귤러 트롤을 마력검으로만 처치하기까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낸 덕분에, 헌터 본부가 104사단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한다.
보통 그런 노골적인 표현은 쓰지 않는데, 의외였다.
모두 김민준 중사, 단 한 명이 해낸 결과물이었다.
“김민준 중사. 자네한테는 몇 번을 고맙다고 해도 부족하다. 진심으로 감사한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이전에 겪은 일은 별 3개짜리 장군은 데려와야 극복할 수 있을 거다. 그 정도의 일을 해낸 거야.”
“감사합니다.”
한동안 웃던 대대장이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김민준 중사. 자네, 별을 달고 싶다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그래. 그 정도 되는 헌터라면 별을 달고도 남지. 허나, 너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겠지.”
뭔가 싶었더니, 자신의 줄을 잡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반대 아니냐?’
곧 대령을 달 대대장이 자신의 줄을 잡고 싶다라.
중령이 뭐가 아쉬워서 중사의 줄을 잡고 싶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대대장의 안목은 정확했다.
‘내가 보통 헌터가 아니긴 해. 물론 다른 헌터들이 봐도 그렇게 느끼겠다만.’
군대에서는 적당히 눈치를 봐야 군 생활이 편하다고 했었나.
그렇게 해서 언제 별을 달겠냐는 생각으로 군 생활을 해 왔는데, 이게 정답이었다.
곧 소위를 달긴 한다.
하나, 아직 중사 나부랭이인 간부에게 대대장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낼 줄이야.
‘거기다 던전에서 손은서를 상처 하나 없이 데리고 나왔으니, 107사단 사단장님도 좋게 생각해 주시겠지.’
위 계급에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다 한들,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처럼 실적으로 증명하면 될 뿐이었으니까.
다만, 자신의 편이 있다고 해서 나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제가 다른 부대에 가지 않고, 여기서 복무하면 되겠습니까?”
고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 부대에서 얻을 것이 많은 이상.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정이 쌓인 이상.
웬만한 일로 부대를 옮길 일은 없었기에.
“크으… 역시. 시원해서 좋다니까.”
이준범 중령이 악수를 청해 왔다.
“중사 김민준!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악수를 거부할 리 없다.
이것으로 무적 헌터 부대 2대대 대대장, 이준범 중령은 완전히 자신의 아군이 되었다.
**
“어우.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네.”
김민준은 밤이 되어서야 단련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붙들려 있었기에.
“이번 일로 많은 걸 얻겠는데.”
당장 대대장이 직접적으로 말해 온 것만 해도 그렇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은서의 아버지.
107사단의 사단장이 개인적으로 고맙다며 연락을 해 올 정도였다.
“내가 누구냐. 당연히 여기서 점수를 더 따 뒀지.”
그녀와는 같은 부대의 후임이며, 친구 사이다.
때문에 목숨을 걸고라도 구해 줬을 것이고, 대가는 바라지 않는다는 모범적인 답변을 해 두었다.
은서 아버지의 성격상,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템을 구해 보답할 것이다.
“흠. 그것보다, 요즘 들어 강한 놈들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얼마 전 공략한 이중 던전의 보스 몬스터.
거기에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화형 던전에서 나타난 게이트에, 초재생 능력이 부여된 트롤.
양쪽 다, 헌터들이 감당해 내기에는 버거운 몬스터들이었다.
“특히, 트롤은 내 스킬들이 거의 안 먹혔으니까.”
단기간에 이 같은 상황이 연달아 터지다니.
강원도 철원이 괜히 기피 지역으로 손꼽히는 게 아니구나.
“앞일들이야 깔끔하게 해결했으니까 됐고.”
주머니를 뒤적여, 아이템을 꺼냈다.
강한 능력을 가진 몬스터였던 만큼, 얼마나 대단한 보상을 줬을지.
“…이게 뭐냐?”
아이템의 정체를 확인하자, 김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비비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