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이걸 여기서 쓰네
아이언 골렘들과 같이 동강 난 트롤이, 순식간에 회복하고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눈에 간신히 잡힐 정도였다.
“워. 뭐야. 이놈 되게 빠른데?”
물론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럭저럭인 수준.
별 힘들이지 않고, 놈이 휘둘러 오는 주먹을 막았다.
“몸통을 완전히 이등분했는데, 1초도 안 지나서 붙었다 이거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단순하게 말도 안 되는 재생 능력을 가진 건지, 아니면 어딘가에 약점을 가지고 있는 건지.
“쿠아아악! 쿠악!”
“팔도 잘 붙고. 다리도 잘 붙고. 머리는 더 빨리 붙네?”
놈이 실시간으로 주먹을 휘두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검을 휘둘렀다.
어느 부위를 베어 내든, 1초 안으로 완벽하게 붙었다.
“뭐야. 이거 평범한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겠는데?”
10분가량 몸을 베어 본 결과, 보통 방법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찌르든, 베든.
주먹으로 힘껏 때리든.
놈의 회복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서 48시간 뒤에는 사망한다고 시스템이 알려 준 건가.”
김민준이 보기에, 눈앞의 트롤은 평범한 방법으로 죽일 수 없을 듯했다.
중간에 부패 스킬을 사용해 봤는데, 썩어 가던 피부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건 뭐. 처음부터 전원이 다 던전 밖으로 나갔으면 문제없었겠네.”
어차피 48시간 뒤에는 초재생 능력이 부여된 트롤이 죽는다.
게이트 발생의 영향으로 던전이 폐쇄형으로 바뀌어, 몬스터가 빠져나올 염려도 없고.
그 말은, 그냥 시간만 지나면 알아서 죽는 놈이었다는 말이다.
“세상일이 뜻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아.”
어차피 두 명이 던전 안에 갇혔고, 48시간 동안 버티기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야 가능하겠지만, 손은서의 체력이 버티지 못할 터.
이왕 이렇게 된 거, 시험해 볼 수 있는 스킬을 다 시험해 보기로 했다.
“뭐, 뭐 저런 몬스터가 다 있어? 그걸 상대하고 있는 민준이는 또 뭐고?”
한편.
손은서는 상식을 벗어난 전투에, 어쩔 줄 몰랐다.
시도 때도 없이 트롤을 베고 때리고 있는 김민준.
머리가 부서져도 순식간에 자라나 버리는 회복 속도를 가진 트롤.
자신이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질 않았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민준이의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
저 붉은 피부를 가진 트롤.
몸놀림이 다른 트롤들에 비해 날렵하기까지 하다.
‘입구 쪽으로 가자.’
여기서 그녀가 택한 행동은, 트롤에게서 멀어지는 것.
어중간하게 거리를 두고 있으면 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빨리 상황 파악을 끝내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서걱!
“크아아악!”
“이야. 이거 완전 무한 리필 아니냐? 무한으로 즐길 수 있겠는데?”
트롤의 팔을 베어 내던 김민준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놈의 양팔을 수백 번째 베어 냈지만, 재생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베어 낸 팔이 지면에 닿기 전 자라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재생 능력.
저 트롤이 멧돼지 종류의 몬스터였다면.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는 몬스터였다면, 고깃값을 왕창 뽑아낼 수 있었을 정도였다.
물론 몬스터 고기는 맛도 없고, 몸에 해로워 먹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스킬은 다 사용했는데 안 죽는다 이건가.”
[기분 검술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기본 검술의 스킬 등급이 C로 상승하였습니다.]
검을 얼마나 휘둘렀으면, 그동안 잠잠했던 검술 스킬이 오를 정도.
이대로 검을 계속 사용해 숙련도를 더 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 이상 시간 끌기는 너무 지겨웠다.
“야. 44호. 나와서 영혼석 왕창 만들어 줘라.”
다크 사이더를 불러내 끝내려고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분명 4일이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들었는데 거짓말을 할 줄이야.
나중에 불러내서 적당히 혼내 주기로 했다.
“저놈한테는 다크사이더만큼 좋은 게 없는데. 아쉽네.”
“쿠아아아악!”
“아무래도 그걸 사용해야 되겠는데.”
여전히 팔다리가 잘리고 있는 트롤에게 다가가, 마력검을 깊게 박아 넣었다.
“쿠에에에엑!”
“이 정도로는 얼마 못 버티겠고. 힘도 좋아라.”
던전의 벽과 함께 고정된 몬스터.
가슴팍에 검이 박혀 몸부림치는 놈에게, 마기 화살을 추가로 사용했다.
이 정도면 30분 가까이 묶어 둘 수 있을 터.
“거기서 가만히 기다려라.”
김민준은 던전 입구 쪽을 향해 달렸다.
비장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 밑 준비가 필요했기에.
**
“어? 트롤을 죽인 거야? 야, 잠깐만. 너 뭐 해?”
손은서는 입구 쪽을 향해 다가온 김민준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콰앙! 쾅!
놈이 난데없이 던전 벽면을 손으로 가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맨손으로 던전의 벽을 파내다니.
무식한 힘도 힘이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설명할 시간이 없다. 너, 나 믿냐?”
김민준은 시선을 벽에 고정시킨 채, 질문을 던졌다.
지금부터 사용할 스킬은, 봉인기라고 부를 정도인 역병의 저주.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만큼, 손은서의 협조가 없으면 사용하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던전 벽을 파내고 있는 것도, 그녀를 스킬의 피해에서 지키기 위해서였고.
“뭐, 뭐야 도대체… 믿기야 믿지.”
난데없는 질문과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이기도 했고, 던전 안에서 불필요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김민준이었기에.
“그래. 그럼 여기 들어가서 10분만 참아라. 이유는 묻지 말고. 설명할 시간이 없다.”
이윽고 사람 두 명 정도가 들어갈 공간이 된 던전 벽.
여기 안에 들어가서, 10분만 기다리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입구는 공기가 안 통하게 막을 거다. 도저히 못 하겠으면 말해. 저놈이 죽을 때까지 내가 상대해 줄 테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람을 산 채로 묻는 거랑 뭐가 다르냐라고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던전 안쪽에서 트롤의 괴성이 들려오자 그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도 이곳에서 47시간 가까이는 못 버텨…. 저놈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민준이도 마찬가지일 테고.’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강요는 하지 않고 있다.
정 못 기다리겠으면, 남은 시간 동안 자기가 혼자서 막아내겠단다.
‘어이가 없어가지고. 그게 될 거 같아?’
그동안 아이언 골렘을 혼자서 처리하고, 초재생 능력이 부여된 트롤에게 혼자서 맞섰다.
다짜고짜 벽을 파내고 안에 들어가라니.
“야. 여기 나 밀어 넣고 그대로 덮을 생각은 아니지? 그건 아무리 나라도 못 버텨.”
“내가 그러겠냐.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해.”
황당하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믿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해결해 온 건 김민준이었으니까.
“10분이라고 말했지? 정확하게 초까지 셀 거야. 1초 늦을 때마다 나한테 1대씩 맞을 줄 알아.”
“그럼 1초 빠를 때마다 내가 너 딱밤 때려도 되냐?”
“아! 진짜! 미쳤어?”
“장난이다, 장난. 친구끼리 장난 좀 칠 수 있지. 지금부터 이 안에서 나오지 마라. 놀라지도 말고.”
열 내는 그녀를 안쪽에 밀어 넣은 뒤, 지옥귀들을 불러냈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확실히 막으려면 이 방법이 최고였기에.
“뭐, 뭐야! 야! 이거 뭔데!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녀는 갑작스레 허공에서 나타난 박쥐 형태의 몬스터들을 보자마자 놈들을 베어 내려고 했다.
“그놈들이 너 물기라도 하냐? 몬스터의 습성을 이용한 거니까 가만히 있으면 된다.”
“뭐? 습성? 아니, 이거 자세히 보니까 처음 보는 몬스터….”
당황하는 그녀에게 적당히 둘러댄 뒤, 트롤을 향해 달렸다.
“이야. 힘도 좋네.”
트롤의 가슴팍에 꽂힌 마력검이, 절반 이상 빠져나와 있었다.
콰악!
“쿠아아악!”
다시 깊게 꽂아 넣은 뒤, 스킬을 사용했다.
‘과부하.’
영구 기관의 성장으로 인해, 새롭게 얻은 스킬.
과부하를 사용하자, 영구 기관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족했던 마기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엄청난데. 이 정도나 채워 준다고?’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마기가 보충되었다.
이 정도면 스킬을 사용하고도 마기가 남을 정도.
[영구 기관이 과부화되었습니다.]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나 채워 줬으면 충분하고도 남지.”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병의 저주.”
그리고, 현재 보유한 스킬 중 가장 강력한 흑마법사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스스스.
몸에서 대부분의 마기가 빠져나가며, 작은 씨앗이 만들어졌다.
땅 위로 떨어트리자 씨앗은 순식간에 뿌리를 내리고 크기를 키웠다.
“크, 크아악! 크아아악!”
트롤은 그 광경을 보고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듯했다.
어떻게든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었으니.
그래 봤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빠져나올 수 없었지만.
“이걸 얼마 만에 써 보는 건지 모르겠네.”
고작 1분.
작은 씨앗이 던전 천정에 닿을 정도의 나무로 성장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성장을 마친 나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꾸물거리며 역병을 뿌리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역병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크, 크에엑! 크엑!”
“효과 죽이지? 이걸 써 보는 건 이제 3번째야. 4번짼가? 그만큼 네가 질기다는 뜻이니까,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효과는 빨리 나타났다.
엄청난 재생 능력을 자랑하는 트톨이, 피를 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대사제의 스킬로도 막을 수 없거든. 진행 속도를 늦추는 건 할 수 있겠네.”
추욱.
말하던 사이, 트롤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뭐야. 벌써 죽었냐? 아직 설명 안 끝났는데.”
그렇게 끈질기던 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둔 것이다.
바닥에 흥건한 피를 보면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피를 토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초재생 능력이 부여된 트롤을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오? 보상?”
지금까지 게이트에서 특수 능력을 가진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단 한 번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 말은, 이전의 몬스터를 처치했던 병사에게도 보상이 지급되었다는 말이다.
“하긴. 나 같아도 보상 얻었다고 말 안 하겠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보상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은 뒤, 역병을 뿌리고 있는 나무를 툭툭 쳤다.
그러자, 괴상한 형태를 띠고 있던 나무는 눈 녹듯이 녹아내리며 모습을 감췄다.
“좋아. 역병도 제대로 없어졌네. 우선 손은서 데리고 여기서 나가야지. 아. 이왕 나가는 김에, 몬스터 사체도 들고 갈까.”
김민준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던전 입구로 향했다.
보상은 나중에 확인해도 상관없었으니.
**
던전 입구가 열리자마자, 다수의 헌터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은서야! 어디 있냐!”
“김민준 중사! 들리면 대답해라!”
사단장 두 명 뒤로, 의무 장교와 의무 헌터 등 2개 중대의 병력이 뒤따랐다.
“충성! 병장 손은서! 전 괜찮습니다!”
손은서는 전투복에 묻은 흙을 털다가, 재빨리 거수경례를 했다.
이런 상황에 아버지를 보니 반가웠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기에.
“그래, 그래. 그동안 잘 버텼다. 얘기는 나중에 하자.”
손태호의 손짓에, 의무 장교가 재빨리 그녀의 상태를 점검해 나갔다.
“김민준 중사는? 던전 안에 몬스터가 남아 있나?”
“그게….”
손은서가 대답하려던 찰나.
모든 헌터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