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고립-2
“스킬 숙련도 올릴 좋은 기회다!”
김민준은 신난 기색으로 던전 안쪽을 향해 내달렸다.
손은서의 근처에 나이트 워커를 붙여 뒀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알 수 있을 터.
지금부터 이 던전은, 자신만의 놀이터가 된 셈이다.
“좋아. 많이 쌓였네.”
아이언 골렘이 나타나는 던전 안쪽.
어느새 아이언 골렘이 100마리 이상 쌓였다.
다른 헌터였다면 절망에 빠질 정도의 개체 수였다.
“게이트는 저기 끝자락에 있고.”
비교적 단순했던 던전 구조가 단시간에 많이 변했다.
게이트의 영향을 받은 탓이리라.
그래 봤자 미로형 던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했지만.
스스스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게이트.
몬스터가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동안 스킬 숙련도나 올리면 되지.”
초기화형 던전의 몬스터는 아무리 처리해도 얻는 게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헌터에 한해서다.
다른 헌터들과 달리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스킬의 숙련도를 높일 좋은 기회였다.
“스킬을 막 써 봐야 숙련도는 안 오르거든. 스킬로 몬스터를 때려잡아야 잘 오르지.”
그동안 헌터들이 싸우는 걸 지켜보기만 했던 터라, 몸이 근질거리던 상태였다.
모아 둔 마기도 많겠다, 이 기회에 스킬 숙련도를 올려 두기로 했다.
쿠웅! 쿵!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앞으로 전진해 오는 아이언 골렘 무리들.
“스킬 등급 낮은 거 위주로 사용해 볼까.”
놈들을 향해, 암흑 화살을 날렸다.
쉬익!
“오.”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아이언 골렘의 가슴팍이 뚫렸다.
그것도 단 한 방에.
헌터 기동 훈련 이후로는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스킬 등급과 마기 스텟이 올라가면서 꽤 강력해졌다.
“예전과 같은 세기였으면 그냥 튕겨 나갔을 텐데.”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몸 상태에 만족하던 중, 아이언 골렘의 공격이 주먹이 날아왔다.
하나가 아닌, 수많은 주먹.
아무리 놈들의 공격이 느리다 한들, 이 정도의 물량이면 피할 공간조차 없는 수준.
“시원하네.”
그래서 피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
투웅! 퉁!
다른 헌터였으면 진작에 사망했을 정도의 위력.
하나, 김민준의 몸에는 기껏해야 긁힌 상처가 발생할 뿐이었다.
“이것도 다 헌터군 훈련 덕분이지.”
예전 같았으면 피하거나 맞받아쳤을 것이다.
자신은 흑마법사치고 체력이 높긴 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나대지는 말고.”
멈출 줄 모르는 놈들의 공격에, 수많은 마기 화살을 만들어 냈다.
놈들이 쓰러지면 다시 마기 화살을 만들고, 다시 나타나면 또 만들어 냈다.
기계처럼 같은 행동만 반복하길 약 6시간.
[마기 화살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마기 화살의 스킬 등급이 B로 상승하였습니다!]
드디어 스킬 등급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어우.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닌데?”
김민준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놈들이 비교적 약한 몬스터라 그런 걸까.
숙련도 올라가는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렸다.
“하급 스킬이라 C에서 B로 올라간 거 체감도 안 되네.”
기껏해야 관통력이 더 올라갔다 정도?
지금까지 마기 화살로 쓰러트린 아이언 골렘의 수는 약 600마리.
그 결과가 겨우 이 정도라니.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효율이 나쁘다.
“마기도 꽤 사용했고.”
게이트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모르는 이상, 여유분의 마기를 남겨 둬야 한다.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서 말이다.
“지금부터 몸으로 때려잡지 뭐.”
생각을 바꾸고, 게이트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흑마법사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보다, 영구 기관의 스텟을 올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저놈들한테 계속 맞다 보면 체력 관련 스킬도 올라가려나?”
시간도 많겠다, 이것저것 시험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느새 출현한 아이언 골렘들이 걸어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
“마력 폭탄 강도는 제대로 조정했나?”
“예! 확인 과정은 총 3번 거쳤습니다!”
“그래.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
“알겠습니다!”
던전 밖.
현재 입구가 폐쇄된 초기화형 던전 근처에는, 단 4명의 헌터만 자리하고 있었다.
107사단 사단장인 손태호 소장과, 104사단 사단장인 두석용 소장.
그리고, 폭발물 전문 하사 2명.
‘크윽… 왜 반장님이 저희보고 가라고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짬을 때려도 왜 이런 짬을 때리냐? 미친 거 아니야? 우린 이제 3년 차라고, 3년 차!’
그들은 긴장감을 최대한 감추며, 마력 폭탄 설치 작업과 검수 작업을 마쳤다.
별 두 개의 장성은 군생활 중 1번 볼까 말까인데, 장성 두 명을 한 번에 보게 될 줄이야.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저 안에 갇혀 있는 2명이 김민준 중사하고, 손은서 병장이랬나?’
‘그래. 손은서 병장은 저기 107사단 사단장님 딸이다. 김민준 중사는 그 유명한 오우거를 생포한 헌터고.’
‘아오… 잘못되면 우리 모가지잖아.’
‘모가지로 끝나면 다행이지.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려! 절대 실수하지 말고!’
보통 헌터들이 던전에 고립되는 일이 생기면, 특수 장비를 이용해 입구를 뚫는 게 먼저다.
마력 폭탄은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선택지.
그것을 처음부터 사용한다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것이며, 안에 있는 헌터들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마력 폭탄! 준비 완료했습니다!”
“안전거리 확보하는 즉시, 터트릴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폭발물 전문 하사들이 최종 점검을 마치고,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마력 폭탄! 사용하겠습니다!”
“빛이 강렬하니, 시선은 되도록 뒤로 향해 주십시오!”
꾹.
버튼을 누르고 약 3초 뒤.
쿠와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지면이 흔들렸다.
“입구는 뚫렸나!”
“입구는 어떻게 됐나!”
입구 폭파에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강도로 마력 폭탄을 터트렸다.
웬만한 던전 입구는 뚫릴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입구가 뚫리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력 폭탄의 사용에도, 금 하나 가지 않은 던전 입구.
그것을 본 손태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이런 씨발!”
주위에 민간인들이 거주하고 있기에, 마력 폭탄의 위력은 이 이상 늘릴 수 없다.
거기다, 헌터 본부에서 사용 허가가 떨어진 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마력 폭탄.
이제는,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제발 살아서만 나와라. 둘 다!”
“김민준 중사는 강하니까, 잘 해결하고 나올 거다. 그렇게 믿어야지.”
사단장 두 명은 밤새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
김민준과 손은서가 던전에 고립된 지 2일이 지났다.
“심심해 죽겠네. 던파 하고 싶네. 캐릭터 피로도 다 날아간다!”
“쫌 조용히 해 봐! 그러다가 몬스터가 이쪽까지 넘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넘어오면 내가 다 처리하면 된다.”
“하아… 얘랑 있으니까 나까지 정신이 혼미해지네.”
여전히 태평한 김민준과는 달리, 손은서는 불안함에 잠조차 이루질 못했다.
초기화형 던전에 발생한 게이트.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위험했다.
‘쟤가 아무리 괴물 같은 체력을 가졌다고 해도, 언제까지 받쳐 줄지 알 수 없어.’
일정 시간마다 10마리씩 출현하는 아이언 골렘.
그것을 지금까지 혼자 막아낸 것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하나, 제아무리 괴물 같은 헌터라 해도 한계는 찾아오는 법.
게이트에서 빨리 몬스터가 나타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보다, 저놈이 건네준 보라색 사탕.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제 너무 지쳐서 속는 셈 치고 먹어 봤는데, 순식간에 몸 상태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무슨 아이템이냐고 물어봐도, 비밀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쟤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었겠지.’
던전에서 혼자 고립되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안함에 공황 장애까지 올 수 있다.
던전이란 그런 장소였다.
헌터들이 괜히 단체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후우.”
한편.
김민준은 그동안 꾸준한 트레이닝을 통해, 영구 기관의 스텟을 올렸다.
몬스터가 쌓이면 가서 처리하고, 영구 기관을 단련한다.
기계같이 움직인 지 2일째.
띠링.
“오?”
그 성과가, 눈앞에 나타났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스텟이 1 상승하였습니다!]
[영구 기관의 강화로, 전용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영구 기관 스텟 20을 달성하자, 새로운 스킬이 나타난 것이다.
[과부하: 영구 기관의 생성 속도가 일정 시간 동안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스킬을 사용하고 나면, 영구 기관은 과부화되어 한동안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거 완전… 부스턴데?”
급하게 마기를 끌어 써야 할 순간에 필요한, 그런 스킬.
매우 활용도가 높은 스킬이었다.
“나이스!”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옆에서 손은서가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쿠웅! 쿵!
“오?”
“어?”
갑작스럽게 던전 안이 울리며, 괴성이 흘러나왔다.
김민준과 손은서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확실하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후딱 처리하고 올 테니까, 여기 있어.”
“아니,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야지. 지금까지 너 혼자 고생했는데.”
저 단호한 표정을 보면, 어떻게든 따라올 듯하다.
‘헌터군은 원래 단체 행동이 원칙이니까. 계속 혼자 놔두는 것도 그렇겠지.’
손은서 한 명 정도야,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자신의 지시에 따르라고 말한 뒤,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저놈은… 트롤이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트롤이었다.
강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탄약을 소비하게 만드는 주범 말이다.
“저거… 이레귤러잖아….”
놈을 확인한 손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보통 트롤의 피부는 고블린이나 오크와 같은 녹색빛을 띤다.
하나, 현재 마주하고 있는 트롤의 피부는 붉은색이었다.
[트롤에게 초재생 능력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해당 몬스터는 48시간 뒤, 사망합니다.]
친절하게도, 시스템은 현재 마주한 트롤의 특성을 알려 주었다.
그냥 재생 능력도 아닌 초재생 능력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죽는다는 것.
“초재생이라. 손은서. 내가 아이언 골렘들 먼저 처리할 테니까, 뒤로 빠져 있어.”
“알았어.”
김민준은 2세대 마력검을 뽑아, 오러를 둘렀다.
‘그사이 많이 쌓였네.’
재생 능력이 뛰어난 트롤에게, 초재생 능력이 부여되어 있다라.
얼마나 재생이 빠를지 호기심이 생겼다.
‘욕망의 마기.’
스킬을 사용해, 모든 능력을 2배로 올렸다.
우우웅.
일시적으로 증폭된 능력에 마력검이 진동했다.
“얼마나 빨리 붙는지 한번 볼까!”
그 상태로 오러를 잔뜩 실은 채, 가로로 한 번 베었다.
단순한 가로 베기.
하지만, 그 위력은 강력했다.
그 많던 아이언 골렘들이 한 번에 두 동강 난 것이다.
“미, 미쳤어….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뒤에서 지켜보던 손은서의 입에 떡 벌어졌다.
마력검에 넘쳐나는 오러.
그 탓에, 검의 길이가 3m는 넘어 보인다.
거기다 저 검은 아직 개발 중인 2세대 마력검.
1세대 마력검보다 강력하지만, 그만큼 체력도 많이 든다.
“저걸 휘두르고도 멀쩡하다고? 대체 뭐야…. 어?”
그녀의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저거! 김민준! 조심해!”